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44화 (344/1,270)

프랜차이즈 갓 344화

83장 병원 구조조정 (4)

병원이 소득세를 대납해 준다?

처음 듣는 개념에 황태수는 일시적인 혼란에 빠졌다.

아니, 그런 병원이 세상에 어디 있어?

잘못 말했다. 그런 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

"즉, 여기 계약서에 보장된 금액은 자네가 받아갈 세후 금액이라는 거지. 소득세, 건보료, 국민연금, 고용 보험, 산재보험 다 떼고, 순수하게 자네 통장에 꽂히는 금액."

"……그게 5억 5,000만 원이라는 말입니까?"

황태수는 실례인 줄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꺼내 연봉실수령 계산기 앱을 켰다.

서툰 타이핑으로 숫자를 두드리는 데, 최윤석이 그걸 보고 한심하다는듯이 말했다.

"프리덤, 우리 모바일맹 황 교수를 위해서 네가 대충 계산해 줘라."

-지금 황태수 교수님 상황에서는 세전 급여로 약 9억 4,700만 원을 받으시는 것과 동일한 혜택입니다.

"9, 9억 4,700만 원!"

"쯧쯧, 원래는 우리가 대충 10억을 부르려고 했어요. 하지만 막상 이것 저것 떼어가는 거 보면 멘붕 올 거 아냐? 그래서 차라리 실수령 5.5억을 보장해 주는 게 근로자 입장에서 더 해피할 거 같아서 이런 식으로 계약을 하는 거야."

조삼모사의 묘리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도 국내 최고의 흉부외과 교수인데 원숭이 먹이 배분에 비유하는 것은 조금…….

"간호사들은 따로 인사과에 입사원서 제출하라고 하고, 병원 기자재는 총무과에 말해놓을 테니 걔들이 알아서 정리할 거야. 우리 병원에서 못 쓰겠다 싶은 것은 안 돼."

"그런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최신 설비에 꼭 필요한 것만 샀어요."

황태수는 자신만만했다.

대형병원은 설비 교체도 다 돈이라, 좀 지난 설비를 계속 이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돈을 써야 되나, 하는 마인드가 강한 편이다.

"쯧쯧…… 우리 병원, 이번에 설비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교체하기로 했어. 하다못해 원무과 직원 컴퓨터키보드까지도 저소음적축 기계식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네?"

"하루 종일 타이핑하는데 키보드라도 좋아야 직원들 손가락 피로가 덜할 거 아니냐, 그게 이사장님 생각. 아무튼 일반 컴퓨터고 MRI고 뭐고 간에 싹 다 최신으로 갈기로 했어."

"서해그룹이 대체 얼마나 돈을 많이 붓기로 했으면……."

"응? 무슨 소린가?"

황태수의 중얼거림에 최윤석 부병원장은 손가락을 세워서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서해그룹 같은 돈독 오른 놈들은 애초에 나가리야. 우리 병원은 하수영 이사장님이 인수하셨다고."

"하수영 이사장님? 그게 누굽니까?"

처음 듣는 이름에 황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장차 대권에 도전하실, 장래가 촉망받는 정치인이셔. 아참, 자네도 황비라면은 알지? 그거 창업주야."

"아, 황비라면이요?"

"수영레스토랑 오리지널 라면 종종 배달시켜 먹는다며, 그것도 그분이 하시는 거고."

"그렇군요."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돈이 많은 개인 부자시더라고, 개인 자산만 따지면 서해그룹 회장도 상대가 안 될걸?"

물론 오너 일가가 해외에 숨겨놓은 비자금은 제외한 것이다.

"이사장님이 이룩하신 걸 전부 말하기엔 시간 없으니까 그건 다음에. 아무튼 그분 꿈이 이거야. 대한민국모든 의료진과 환자들이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그런 병원으로 만드는거."

"가장 훌륭한 병원?"

"아니아니, 모두가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그런 병원, 황 교수 자네한테 5.5억이라는 거액 연봉을 보장해 주는 게 바로 그런 이유라고."

모두가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병원이라.

황태수는 속으로 가만히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이사장이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어떤 마인드로 병원을 바라보는지는 알 거 같았다.

"이사장님이라는 분에게 우리 병원은 드림카 같은 거군요."

"뭐, 그렇지. 근데 그래서 나쁠 게 있나? 이사장님은 소망을 충족해서 좋고,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의료활동할 수 있어서 좋고, 환자는 좋은 서비스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나중에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긴할 겁니다. 그렇게 낭비할 돈을 쥐어짜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위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하면서요. 효율 비효율 따지는 거 좋아하잖아요."

"돈 한 푼 안 보태는 놈들이 남이 돈 쓰는 거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다는 게 이사장님 마인드시네."

"어우, 마인드 단단하시네요. 그럼 병원 경영 방침 흔들릴 일은 없겠습니다."

"자, 어서 가봐. 내일부터 일단 출근해. 난 다음 면접이 또 있어서……."

"네, 부병원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황태수는 원장실(최윤석이 현재 병원장 직무대행)을 나섰다.

복도에는 익히 얼굴을 아는, 40대 이상의 의사들이 줄을 지어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모두가 신규 모집자로, 최종 면접혹은 근로계약서를 쓰기 위해 대기 중인 이들이다.

하나같이 얼굴이 밝은 것을 보면, 모두 좋은 조건으로 이미 입사가 확정된 모양이다.

1층 로비로 내려온 황태수는 잠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던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대로 말했다.

"병원은 정리하고, 내일부터 여기 출근하기로 했어. 병원 기자재는 좋게 값 쳐서 병원에서 사준대."

-잘됐네요. 거 봐요. 내가 개원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잖아요.

"아, 처음에는 당신도 찬성했잖아."

-난 당신이 가슴성형 전문 병원으로 개업한다는 줄 알았지!

"아니, 흉부외과 교수가 무슨 가슴 성형 병원을 개원해!"

-그 정도 계산은 하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흉부외과 개인병원이라고 나중에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 줄 알아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개업에 돈 절대 안 대줬어요!

"아, 미안해. 난 당신도 알고 찬성한 줄 알았어."

-한국대 병원 아닌 게 아쉽지만, 이제라도 대학병원 다시 들어가니 다행이네요. 연봉은 얼마 준대요?

"5억 5,000 준대. 강의까지 하는 조건으로."

-세상에! 아니, 윤태석 회장님이 웬일이래? 와, 당신을 진짜 좋게 보셨나 보다! 그 정도면 업계 탑 아니에요?

"탑 오브 탑이지. 지금까지 의대 교수가 이 정도 연봉 받은 적은 없었을걸?"

-강남에 가슴성형외과 차렸으면 그 열 배는 더 벌었어요, 이 양반아.

"아니,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렇게 빠져?"

-아무튼 이제 절대 딴짓하지 말고 죽자고 윤병원에 충성해요! 나중에 혹시 개원할 거면 가슴성형외과, 무조건, 알았죠?

"제자들 부끄러워서 어떻게 보라고 그런 걸 차려. 그냥 여기서 은퇴할 거야."

-다행이네요.

전화를 끊은 황태수는 불현듯 시선을 느끼고 돌아봤다.

대각선으로 앉은 청년 하나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이 병원 영입된 교수님이세요?"

"아, 그래요. 그런데 그쪽은……?"

"이 병원 인수한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상대는 재단 명함을 건넸고, 앞부분에 표시된 재단법인 이름을 확인한 황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집어 넣었다.(뒷면은 확인하지 않았다)

"재단 직원이신가 보네. 반가워요. 인수업무 때문에 다 같이 오셨나 봅니다."

"혼자 왔습니다. 차분히 둘러볼 게 좀 있어서요. 그런데 교수님, 병원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다마다요. 이런 말도 안되게 좋은 조건 해주는 병원이 어딨까. 재단에서 너무 퍼주다. 나중에 재정 악화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지만……."

"돈은 걱정 마세요. 재단에서 병원운영으로 100조 원 정도 일단 예산 잡아놨습니다. 병원 적자가 얼마가 나든 그거 군말 없이 다 메워줄 겁니다."

"배, 백조 원이라고 했습니까?"

황태수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럼요. 재단이 원하는 건 누구나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그런 병원을 보유하는 것. 그겁니다. 막말로 환자 들한테 병실 팔고 약 팔고 수술 팔아서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요?"

"……."

"그러니 실무자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자기 몸 챙기면서 환자들 잘돌보면 될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기피과가 여기서는 인기과가 되는 거, 꽤 멋있는 일이잖아요."

"혹시 내가 커피 한 잔 사도 됩니까? 재단에 관해서 물어볼 게 좀 있는데, 바쁘지 않다면……."

"커피 말고 술 사시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드리죠."

"술, 좋죠."

그렇게 50대를 앞둔 교수와 20대의 청년은 의기투합해서 근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10인분을 시키는 것을 보고 황태수는 먹성이 대단하다며, 속으로 놀랐다.

"제가 본업이 농사라서요. 농사일이 워낙 힘들어서 평소에 이렇게 많이 안 먹어주면 살이 쭉쭉 빠집니다."

"건강에는 아주 좋겠어요."

황태수는 재단 직원 청년으로부터 향후 병원 운영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세히 캐물었다.

그리하여 재단 운영 자금이 프라임오일, 국내 메이저 정유회사에서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라고 아세요?"

"처음 듣는데……."

"UAE 자원회사인데 석유, 금, 다이아몬드, 천연가스, 아무튼 땅 파서 나오는 자원이란 자원은 전부 취급하는 공룡자원회사입니다. 회사 가치가 지금쯤 아마 10조 달러에 육박할 걸요? 넘을 수도 있어요."

"10조 달러!"

"프라임오일이 바로 그 국자투 자회사다. 이겁니다."

그제야 황태수는 이 말도 안 되는 돈지랄의 자신감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적자가 1조는 10조든 간에 무제한으로 커버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기왕이면 교수님이 새로 들어오시는 다른 의료진한테도 소문좀 내주시구요. 참고로 지금 당장 재단 통장에 있는 출연금만 10조원입니다."

"10조 원, 알았어요. 내가 소문 제대로 내드리지."

"중입자 가속기 그것도 이어받아서 진행합니다. 심평원 삭감? 치사해서 정부 코 묻은 돈은 안 봅니다. 막말로 프라임오일이 국내에서 기름 팔아서 버는 돈이 얼만데요."

"근데 정유업이 원래 그렇게 이익이 많이 남소?"

"아, 자회사라서 국자투에서 원유를 공짜로 줘요."

"……."

"공짜로 원유 얻어서 제값 받아 팔고 있으니 당연히 이익이 많이 남죠. 원자재 매입비가 없잖아요."

삼겹살과 소주 값으로 50만 원이 넘게 나왔지만, 황태수 교수는 귀중한 정보를 들은 것에 만족했다.

***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저의 소중한 지지자 여러분."

하수영이 점잖게 입을 열자, 수백명이 넘어가는 노인들의 눈이 일제히 빛났다.

넓은 의원사무실이지만 하수영후원회 멤버들이 한 명 빠짐없이 출석했다 보니, 무척 비좁게 느껴졌다.

"윤병원 정상화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윤병원은 '청담수영병원' 으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지금 그 위치에서 더 좋은 의료서비스로 우리 청담동 고령층을 위한 주치의 역할을 돈독히 해줄 겁니다."

"오! 결국"

"잘됐어, 정말 잘됐어."

"난 앞으로 강남 세브란스까지 다녀야 하는 줄 알고 진짜 마음 졸였지 뭔가."

"청담수영병원은 앞으로 제가 이사장으로서 책임지고 운영할 테니,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하 의원! 하 의원!"

"앞으로 청담수영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의 바이블로 거듭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하수영은 노인 지지자들 앞에서 정중히 허리를 숙였고, 최우석 부의장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돈 많은 청담동 노인 지지자들의 절제된 박수 소리가 사무실을 한참이나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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