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43화 (343/1,270)

프랜차이즈 갓 343화

83장 병원 구조조정 (3)

황태수 원장은 원래 국내에서 손꼽히는 흉부외과 교수였다.

한국대 의대 수석 졸업에, 누구보다 빠르게 교수까지 달았으니까.

왕성한 학술 활동과 의료 활동을 통해, 그는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실력을 갖췄다. 체력도 자신 있었고, 무엇보다 수술을 매우 좋아했다.

자신의 손끝에서 생명이 재탄생되는 경험.

그 짜릿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돈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

모두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으니 나만의 흉부외과 병원을 갖고 싶다!'라는 자신감으로 대학병원을 뛰쳐나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야심 차게 흉부 외과를 개원했다.

그리고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진 돈도 계속 까먹을 수밖에 없는 분야라는 것을.

'그래서 병원장이 그때 그렇게 매번 나한테 눈치를…….'

과거 몸담았던 한국대 병원에서 왜 그렇게 눈치를 먹었는지, 매출 장부를 보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걸 그렇게 마구 삭감을 하면 우리더러 치료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우리는 규정대로 처리할 뿐입니다. 저는 아무런 권한이 없고, 통보만 해드리는 거예요. 정 불만이 있으시면 정식으로 민원제기 하세요.

"이봐요, 이봐요!"

오늘도 건강보험공단 심평원과 한 바탕 드잡이질을 하는 것으로, 그는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눈치를 보던 간호사가 얼른 다가와서 말했다.

"저, 원장님, 다음 주에 수술하기로한 박태진 환자분 말인데요."

"응? 그분이 왜? 뭐 상태가 안 좋아지셨대?"

"대학병원에 수술하신다고, 수술일정 취소하셨어요."

"……."

"한국대 병원에 어렵게 예약을 잡으셨다고,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내가 그 한국대 병원을 박차고 나온 사람이야."

"그, 그렇죠."

"내가 그 한국대 병원에서 수술 머신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라고."

"……맞습니다."

"환자들이 수술받고 싶어서 몇 달씩 줄 서던 퍼펙트 써전이 바로 나라고! 그 내가 지금 여기 동네병원에 있다고!"

"……."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자신을 찾는 환자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에 대학병원을 박차고 나왔는데, 정작 그 환자는 자신이 없는 대학병원을 선택하다니.

설비야 한국대 병원이 훨씬 좋겠지. 위급한 상황에서는 백업 시스템도 잘 되어 있을 테고.

하지만 그 한국대 병원에는 지금 자신이 없다.

'그래도 수술 취소됐으니 그만큼 적자는 덜 나오겠네.'

이런 식으로 위안을 해야 하는 처지가 우습다.

더 웃긴 것은 그냥 하는 정신승리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다는 것.

수술 자체가 무조건 적자를 발생시키니, 수술이 취소도면 그 적자도 없는 게 돼버린다.

물론 덩달아 매출도 줄어드는 거지만…….

진료가 없어 한가한 오전을 보내는 데, 동료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황 교수, 나야.

"아, 박 교수. 잘 지냈나?"

-문안은 됐고, 자네 병원 요즘 어때?

"적자지, 뭐. 그때 자네 말을 들을 걸 그랬어."

-이 친구야.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흉부로 개원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계속 수술하고 싶으면 대학 병원에 꼭 붙어 있으라고 그렇게 말을 해줘도 못 알아먹어요.

"아, 잔소리할 거면 끊어. 안 그래도 마누라 잔소리 때문에 요즘심란하다고."

-자네는 제수씨한테 백번 절해야 돼. 그나마 돈 많은 마누라 만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지.

"잔소리할 거면 끊으라니까."

-쯧쯧. 자네 이거 끊는 대로 우리 병원 최윤석 원장님한테 전화 한 번 드려봐.

"최윤석 원장님? 그분, 원래 부병원장님 아니었어? 언제 승진하셨대?"

-아직 정식 병원장은 아니지만 확정사항이야. 아무튼 끊는 대로 전화 해봐. 자네 스카우트하고 싶으시대.

"뭐? 그게 정말이야?"

-왜, 솔깃해?

"자세히 좀 말해봐. 얼른!"

-한국대 병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을 보장할 테니까 자네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일탈 한 번 해봤으면 됐잖아. 자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오라고. 난 돈 많은 마누라가 없어서 그런 일탈도 못 해.

전화를 끊고, 황태수 교수는 얼른 최윤석 부병원장 전화번호를 찾았다.

하지만 상대는 통화 중이었다.

황태수 교수는 5분 간격으로 전화를 계속 시도했지만, 무려 30분 넘게 계속 통화 중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느라고 바쁜 모양이었다.

"아, 병원장님. 저 황태수입니다."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자 황태수는 얼른 인사했다.

기분 좋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 황 교수, 내가 바빠서 대화 길게 못 하고, 자네 우리 병원에서 일할 생각 있나? 김 교수 있어서 과장 자리는 못 주지만 대우는 아쉽지 않게 해줄게.

과장 자리는 황태수에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개원도 망해가는 지금, 그는 안정적으로 수술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한국대 병원 있을 때보다 연봉하고 근로조건은 더 많이 쳐줄 테니까, 이제 일탈은 그만하고 돌아오라고, 아니, 자네 같은 인재가 큰 병원에서 일을 해야지, 로컬에서 재능을 썩히면 쓰나?

"하지만 저는……."

-자네가 한국대 병원 왜 뛰쳐나왔는지는 나도 아네. 수술 좋아하는 자네한테 수술 가지고 이것저것 신경 건드리니까 힘들었겠지. 그래서 개원하니까 좀 나아졌나?

"……."

-훨씬 힘들어졌잖아. 그 좋아하는 수술도 자주 못 하고, 내가 말했지. 누가 동네병원에서 가슴 여는 수술받겠냐고.

"부병원장님이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저 한국대 병원 나온 것도 이제 아셨으면서……."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냥 대충 넘어가게. 아무튼 우리 병원 올 거지?

"와이프하고 의논도 해봐야 해서……."

-진료하면 할수록 적자만 나는 병원인데 와이프가 뭐 때문에 만류하겠어?

"그래도 수술은 삼가고 문진하고 약처방 같은 것만 하면 수익이 꽤 납니다. 노인들 심근경색 예방용 영양주사 같은 것도 한 방에 10, 20씩 넘다 보니 꽤 쏠쏠해요. 수술만 안 하면 운영 자체는 그럭저럭……."

-잠깐만, 나 잠시 울고 와도 되나? 우리 황 교수가 그런 말 하는 거 들으니까 눈물이 왈칵해서 그래.

정말 울러 갔는지, 최윤석 부병원장은 몇 분 정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다시 돌아왔다.

-자네가 한국대 병원에서 얼마 받았지?

"연봉으로 1억 9천 받았습니다. 제가 최고 연봉자였죠."

-2억도 안 되는데 최고연봉자라고? 내가 알기로는 박기훈 교수가 3억인가 찍어서 최고 연봉자라고 들은 거 같은데.

"아, 그 친구는 겸직이잖아요. 의대 나가서 애들도 가르치고 이것저것 많이 하니까 그렇죠. 연구수당도 있고요. 기본이 1.9억이라는 거고 수술 수당까지 다 합치면 박기훈이 그 친구보다 제가 더 높죠."

-아, 기본 급여만 1.9억이야? 그럼 의사 연봉으로만 치면 최고는 맞았겠네.

황태수 원장은 내심 긴장했다.

최윤석 부병원장은 지금 자신을 스카우트하기로 결심을 단단히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냥 넌지시 던져보는 게 아니라, 스카우트 자체는 확정을 했고 조건을 맞추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병원 새로운 급여 내규에 따르면…… 4억 줄게. 수술 수당 말고 기본 연봉, 우리 병원 올래? 대신 흉부외과장 자리는 못 줘.

"4억이라고요!"

황태수 원장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업계 최고 연봉은 3억 남짓한 수준.

그 돈을 받으려면 서해 서울병원에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입사하거나, 혹은 한국대 병원에서 겸직교수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혹시 애들 가르치거나 연구도 병행할 생각 있어? 그럼 아마 최대 5, 6억까지도 받아갈 수 있을 거야.

순간 황태수는 턱이 떨어질 듯이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실례인 줄 알면서도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겨우 놀란 가슴이 진정돼서 입을 열었다.

"윤병원 요즘 돈많습니까? 모그룹에서 바이오 플래폼 제대로 구축했다던데, 신약이라도 하나 터졌어요?"

-신약보다 훨씬 좋은 게 터졌지. 우리나라 최고 부자가 병원 인수했어.

"그래요? 정말 잘됐습니다."

황태수는 당연히 서해그룹에서 드디어 인수에 성공했거니, 하고 생각했다.

-아마 자네가 우리 병원 오면 최고연봉자 될 거야.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한국 모든 월급의사 통틀어서 최고 연봉자가 될 거고,

"그렇게 많이 주면 병원 재정이감당 가능합니까?"

-감당 가능해. 그건 자네가 걱정할 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그래도…… 기껏 병원 접고 갔는데 나중에 연봉 깎이거나 네 연봉감당 안 되니 나가라고 하면……."

-그럴 일 없어. 이사장님은 우리 병원이 모든 면에서 업계 최고가 되기를 원해, 의료진 대우, 환자 대우, 병원 서비스, 그 모든 면에서 말이야.

황태수는 이해가 안 갔다. 골목상권까지 아득바득 군침을 흘리며 탐내는 그 악독한 재벌 1위 그룹이?

-의료진 숫자 늘리는 것도 근무시간 줄여주려고 그러는 거야. 근로는 줄어드는데 월급은 늘어나는 거지.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그 손해를 메워야 합니다. 안 그러면 병원이 오래 유지될 수 없어요."

-그건 자네가 우리 병원 온다고 약속하면 설명해 주지. 그 전에는 외부인이라서 말 못 해줘.

"……."

-그리고 개원하면서 설비 들인 거 있지? 그거 우리 병원에서 쓸 만하다 싶으면 매입해 줄게. 아, 하는 김에 간호사들도 데려오면 더 좋고, 지금 병원이 의사고 간호사고 다 부족해.

"갑자기 간호사 부족할 일이 뭐 있습니까?"

-병원 인수한 이사장님이 의사, 간호사, 지금보다 3배로 딱 맞춰서 늘리라고 엄명하셨단 말이야.

사실 더 이상 고민할 건 아니었다.

아니, 이 조건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다.

그가 우려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너무 좋은 조건이라 나중에 모든 게 엎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미인이 갑자기 고백을 해오면, 나중에 그녀가 질렸다고 시원하게 차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선뜻 손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알겠습니다. 그럼 병원 바로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지금 바로 진료 종료하고 싹 정리해. 하루라도 빨리 와야 적자도 줄어들고 월급도 더 챙기지.

"네, 알겠습니다."

-강의하고 연구도 할 거지?

"강의라면 윤의과대학에서 하는 거죠?"

-그렇지. 병원 팔리긴 했지만 협력 대학은 그대로 안고 가기로 했으니까.

"다른 사람 양자로 들어간 자식이 자기 방은 원래 그대로 쓰는 셈이네요."

-대신 월세는 두둑하게 내잖아. 원래 가족들 입장에선 손해 볼 건 없지. 자세한 조건은 내가 지금 메일로 보냈어. 데려올 직원들한테도 설명해 줘.

이메일을 확인하니, 과연 장문의 전자문서가 첨부돼 있었다.

세부 조건을 훑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황태수는 간호사들을 부른뒤, 이직 이야기를 꺼냈다.

"주 40시간 근무에, 급여는 지금보다 30% 이상씩 올려 받는 수준이야. 대학병원 빡쎄고 군기 잡는 게 싫어서 로컬에서 일하는 거 알지만, 놓치기에는 아까운 조건이라서. 다들 어때?"

고심 끝에 간호사들은 이직을 승낙했다.

"정말 주 40시간 근무가 맞는 거죠?"

"여기 보면 초과근무 시 10분마다 5,000원씩 지급한다고 돼 있어. 병원 파산하기 싫으면 초과근무는 안시킬 거야."

병원을 닫은 황태수는 곧바로 최윤석을 찾아 삼성동 병원으로 향했다.

근로계약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전에 미리 듣지 못한, 매우 '중대한 조항'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납? 이게 뭐죠? 제가 병원을 위해서 뭘 대납해야 한다는 겁니까? 이, 이런 건 없었잖아요!"

"아, 내가 설명을 깜빡했군. 세금을 대납한다는 건데, 자네가 하는 게 아니고 병원이 자네를 위해서 대납한다는 거야. 스타 교수들을 위한 특혜지."

"무슨 세금을 대납해요? 대체 왜요?"

"자네가 나라에 내야 할 세금. 소득세 같은 거."

"그걸 왜 병원에서 대신 내줘요?"

"이사장님께서, 스포츠 구단들은다 원래 그렇게 운영한다고 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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