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41화
83장 병원 구조조정(1)
윤태석과 합의를 한 하수영은 빠르게 후속 절차를 밟았다.
먼저 의료사업을 위한 비영리 재단 법인을 설립했다. 그 돈은 프라임오일에서 나왔다.
토지는 부동산법인(하수영) 명의로 이전받고, 병원 시설 일체는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이전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즉 하수영이 오너로 있는 프라임오일에서 돈을 내놓아 '법인병원 하수영'을 설립하고, 하수영이 오너로 있는 '부동산법인 하수영'이 토지를 사서 '법인병원하수영'에 임대하고.
자연인 하수영이'법인병원 하수영'의 이사장으로서 실질적인 운영을 한다. 의사가 아니기에 병원장은 다른 사람을 앉혀야 하지만.
법이 영리병원법인을 허용하지 않으니, 의사 면허가 없는 하수영이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이런 형태가 되었다.
"우리 병원이 지금까지 개인병원이었다고?"
"아니, 개인병원이 상급병원으로 지정되는 게 가능해?"
"윤태석 회장님이 지금까지 병원에 돈 엄청 쓰셨던 거구나. 그게 다 나라랑 기업에서 주는 돈인 줄 알았는데."
지금껏 병원에 들어간 돈이 전부 윤태석이 혼자서 번 돈이었다는 소리다.
물론 윤태석은 프리미엄을 포기한 대가로 가족들한테서 한 소리를 듣기는 했다.
"이 양반아, 누가 그걸 다 받으래? 30%, 아니, 20%만 더 받아내도 좋았잖아!"
"아, 이미 시원하게 내지른 걸 어떡해."
"양도세 낼 거만큼이라도 좀올려서 받지 그랬어! 양도세 나오는 거 어쩔 거야! 기껏 땅 판 돈에서 떼어서 내야 되잖아!"
"양도세 전혀 없다고, 수십 년을 묵힌 데다가 병원으로 운영해 온 기간이 있어서 100% 비과세야."
"정말?"
와이프의 바가지는 그제야 멈췄다고 한다.
한편 하수영의 병원 매입에는 이번에도 주희도사장이 나서서 일을 진행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대행하는 이로서 당연한 업무다.
물론 그는 총괄을 할 뿐, 실무는 여기저기서 전문가들을 구해서 진행한다.
"취득세 면제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요?"
"네, 부동산법인 '하수영'으로 이전 받기는 하지만, 비영리병원 부지로 무상 임대하기 때문에 취득세 면제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시죠."
"네, 그리고 또……."
토지 매입은 하수영의 개인 돈으로 해결했지만, 병원 운영 자체는 프라임오일에서 지속적으로 내놓기로 했다.
물론 프라임오일 입장에서는 그까짓 거 얼마 되지도 않는 지출이었다.
부병원장 최석윤.
하수영의 방문을 통보받은 그는 부산하게 병원장실을 청소한답시고 난리였다.
윤병원은 이제 이름을 바꾸고, 개인병원에서 법인병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상대는 재단 이사장.
법인병원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것은 법률상으로 그러할 뿐, 사회적으로는 병원 소유주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침내 하수영이 왔다.
"안녕하세요. 부병원장님."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이사장님."
최석윤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하수영을 맞이했다.
하수영은 의외로 혼자 방문했다.
그러고 보니 경호원이나 수행원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의정 관련 지시가 일과 시간에 실시간으로 쏟아져서, 대체 언제 그 많은 일을 다 하는지 신기하다는 칭송이 의회 내에서도 자자 한 사람이다.
"병원 매각 이야기는 이미 잘 아실 겁니다."
"네, 이미 병원 내에서도 쫙 퍼졌습니다."
"혹시 일반외과 신준섭 선생님을 지금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바로 호출하겠습니다."
신준섭이라면 최석윤도 들어본 적있는 이름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밥 먹으러 잠깐 나갔다가 수면 부족으로 기절하면서 교통사고를 당해 다시 실려 온 친구.
피범벅이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동맥이라도 찢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품 안에 있던 혈액팩이 충돌로 찢어지면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에, 병원 내 농담거리와 동정 대상이 된 친구였다.
"네? 호출이요? 벌써 업무에 복귀한 겁니까?"
"그럼요."
"다행입니다. 아직도 중환자실 신세를 지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밖에서 얼굴만 잠깐 보려고 했거든요."
"네? 중환자실이요?"
최윤석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신준섭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부병원장님, 신준섭입니다!"
신준섭은 헝클어진 머리와 꾀죄죄한 가운 차림을 하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하수영의 마음이 자연히 뭉클해졌다.
"신준섭 선생, 선생을 보자고 하신게 바로 여기 이분이야."
"네?"
의아해서 하수영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준섭의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커졌다.
"하, 하수영 의원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신준섭은 크게 반색하며, 얼른 허리를 깊이 숙였다.
신임 이사장이라고 소개하지도 않았음에도 지나치게 깍듯한 태도, 자연히 최윤석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깃들었다.
'눈치 하나는 그래도 빠른 친구인가 보네.'
"역시 저를 아시는군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지인이 강남구의회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하수영 의원님 이야기는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정말보기 드문, 아주 훌륭하신 정치인이시라고요!"
"밥 잘 사주는 부자의원이라고 하던가요?"
"허억! 그, 그걸 어떻게!"
"구의회에 지인이 있는 게 정말 맞나 보군요. 그 별명을 아시다니."
의심해서 꺼낸 말이 아니라,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던진 말이다.
"트로피로 병원 하나쯤 마련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사고 당시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그렇게 유언처럼 남겼다고 들었습니다."
신준섭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지만…… 정말 그런 말을 했다면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알 거 같습니다."
"해보세요."
"의원님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임차인들이 전부 만족한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다들 안정적인 복지에 좋아한다고요."
"그것도 의회 직원 지인분에게 들으신 거군요."
"……네. 그래서 평소에 그런 생각을 몇 번 했습니다. 의원님이 우리 병원 이사장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의사 수도 더 팍팍 뽑아서 의료 공백도 안 생기게 하고, 환자를 위해서 좋은 시설과 약제도 투자 많이 해주시고…… 그런 상상을 동료 의사들과 가끔 나누곤 했습니다."
"제가 그 상상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친히 강림했습니다."
"네?"
신준섭은 물론이고 최윤석 부원장까지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하수영은 최윤석을 주시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병원 인수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신준섭 선생님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까지 병원과 동료, 환자들의 미래를 걱정하신 점, 그리고 그런 사고가 날 정도로 평소에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본인 업무에 매달리신 점……."
"평소 힘들긴 하지만 그날은 하필 수술이 여럿 겹치는 바람에 운이 없……. 윽!"
최윤석은 얼른 옆구리를 찔러 입을 다물게 했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아무튼 '청담 수영병원'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여기 신준섭 선생님이 결정적인 트리거로 작용하셨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병원 내에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부, 부병원장님?"
"신준섭 선생은 가만히 있어!"
그 와중에도 하수영은 마이웨이로 자기 할 말에 집중했다.
"일단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뀌게 될 겁니다. 저는 당연히 제 스타일,'청담 스타일'로 병원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물론입니다."
최윤석은 한편으로는 바짝 긴장했다.
상대가 평판이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그게 병원 운영에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오랫동안 모셔온 윤태석 회장은 직접 겪어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보였을 뿐이기에, 그의 불안함은 컸다.
"먼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을 겁니다."
"구, 구조조정입니까!"
순간 최윤석과 신준섭의 얼굴색이 노래졌다.
뭔가 희망찬 분위기를 잔뜩 잡아놓고, 시작부터 던지는 게 구조정 카드라니!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에서, 나쁜 소식을 먼저 던지는 것이겠지?'
그리고 좋은 소식은 아주 좋은 것일 테고, 그래야만 해! 그래야만 한다고!
"네, 일단 의료진 숫자를 세 배로 조정합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이루기는 힘들지만, 시간을 들여서라도 천천히, 반드시 시행해주세요."
시간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세 배로 줄이겠다니!
최윤석 부병원장은 진심으로 옷을 벗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었다.
'잠깐, 세 배라고?'
그 순간, 한 줄기 의구심이 최윤석의 머릿속을 뚫고 올랐다.
그는 조마조마해서 물었다.
"세 배 조정이라는 것이…… 설마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의미입니까?"
"그럼 세 배로 줄인다는 그런 말도 있나요? 그건 1/3이라고 표현을해야죠."
"실례했습니다!"
"세 배로 늘린다고요!"
전자는 최윤석, 후자는 신준섭의 반응이다.
3이라는 숫자에 그만 착각을했다.
쥐어짜내기 식으로 굴러가는 병원문화 특성상, 당연히 1/3으로 줄이는 거라고 오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전공의 숫자는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협회에서 TO를 정해서 할당합니다."
"전문의 이상급으로 골라서 데려오면 되죠. 아무튼 숫자는 지금의 3배로 무조건 맞추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설마 교수급도 포함입니까?"
"교수가 많으면 더 좋죠. 보니까 전공의들도 휴일 없이 평균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거 같은데,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 운영예산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원이 굴러가기 어렵습니다."
"저, 기초의원이지만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이 자기 사업체에서 근로기준법 안 지키면 주민소환 받아요. 이거 탄핵감이라구요. 우리 법정근무시간은 지켜가면서 일하자고요."
뭔가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묘한 설득력이 있다.
"주 40시간 근무, 맞춰주실 수 있죠?"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최윤석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빠르게 두들겼다.
인력을 3배까지 충원할 필요도 없다. 2배만 조금 넘어가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건비인데…….
"근데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아, 당연히 인건비 조정도 해야죠."
구조조정에 이어 이제 인건비 조정인가?
(나쁜 카드인 줄 알았던)좋은 카드가 먼저 나왔으니, 이제 진짜 나쁜 카드가 나올 차례인가?
"지금 이 병원, 의료진 인건비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은 수준이라고 들었는데요."
최윤석은 다시금 긴장했다.
윤병원은 재벌가 병원보다는 의료진 급여가 조금 낮고, 일반 대학병원보다는 높은 편이다. 즉 종합병원치고는 급여가 좋은 편에 속한다.
그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이라면, 급여를 깎자는 뜻이겠지?
의료진 수를 파격적으로 늘리려면 결국 어느 정도는 급여를 줄여야 할 테니까.
'급여는 조금 줄이더라도, 전체적인 근로 환경은 개선을 하자는 취지 이신가?'
의료진 수가 늘었으니 전체 인건비는 어쨌든 상승한다. 대신 근무 시간은 파격적으로 줄어들고, 개인 삶의 질이 향상되겠지.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려 하고 있는데, 하수영이 신준섭한테 물었다.
"지금 급여로 얼마 받아요?""
"420 정도입니다. 세전으로……."
"연봉 420만 달러라. 나쁘지는 않네요."
"네?"
당연히 '연봉'이 아닌 '월급'으로, '미화'가 아닌 '원화'로 대답한 신준섭은 머리가 일시정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