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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38화 (338/1,270)

프랜차이즈 갓 338화

82장 로컬병원을 수호하라(2)

"하 의원, 큰일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저 멀리 세브란스까지 통원 치료하게 생겼다고, 벌써부터 내 관절염이 돋는 거 같아. 으으……."

박달재 노인이 개량한복 위를 북북긁는 모습에 하수영은 넌지시 말했다.

"혹시 윤병원 그룹 회장님하고 친분이 있으신기요?"

"몇 번 밥 먹은 적은 있지만, 직접 친하지는 않아. 한 다리 건너서 알고 지내는 거지. 이번에도 그렇게 이야기 들었고."

"서해의료원에서 청담 윤… 아니, 아니지. 삼성동 윤병원 없어지는 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 시설을 자기들이 써야 하잖아요."

"안 그래. 서해의료원 입장에선 청담 윤병원이 그냥 없어지는 게 제일 좋아. 그렇게 못 만드니까 돈 문제로 힘들게 만들어서 지들이 사려고 하는 거지."

"그럼 윤태석 회장님이 하시는 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미운 서해병원을 도와주는 셈 아닌가요?"

"어, 그렇게 되는가?"

박달재는 생각도 못 한 지적이라는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맞네! 하 의원, 자네 말이 맞아!! 윤태석 회장이 청담 윤병원을 아예 없애 버리는 것이야말로 서해병원이 가장 좋아하는 결과잖아! 그걸알려 줘야겠어!"

"……윤회장님이그걸 전혀 모를 거 같지는 않은데요."

"분노에 눈이 멀어서 그냥 나오는 대로 내뱉는 그런 상태일 수도 있어. 재벌들이 좀 그런 게 있어. 그럴수록 주변에서 더 만류를 해야지. 내, 다녀오겠네."

박달재 노인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횡하니 사라져 버렸다.

***

하수영은 혼자 삼성동 윤병원을 방문했다.

윤병원은 삼성동 동쪽 끝자락, 한 강 청담대교가 바로 보이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에 아파트를 안 짓고 병원을 지을 생각을 한 걸 보면, 윤태석 회장도 보통은 아니었던 건가?"

준공된 지 몇십 년이 지난 건물이지만,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친 탓인지 외관은 멀쩡해 보였다.

윤병원은 크게 3개의 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구옥과 신옥,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암센터동.

그중 암센터동이 가장 멋들어진 모습을 자랑하지만,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애물단지로 보일 것이다.

결국 암센터 투자 때문에 병원 재정이 흔들리게 된 것이니까.

하수영은 조용히 병원 로비를 거닐었다.

마스크를 쓴 덕분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마스크를 벗어도 알아볼 사람이 있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룹에서 우리 병원 정리한다는 게 진짜야?"

불현듯 불안함에 젖은 병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고, 하수영은 귀를 쫑긋 세웠다.

"암센터동 때문에 재정이 엉망이라던데. 중입자가속기 들여온다 어찌고저쩌고 하다가 보건부에서 손바닥뒤집는 바람에 죄다 꼬였잖아."

"서해의료재단에서 기웃거린다는 말이 있던데."

"서해의료재단에 넘어가면 좋지만, 그래도 모그룹에서 더 투자해 주는 게 나은데……."

"지금 모그룹도 여유자금이 별로 없대. 잘못하면 우리 병원 때문에 다른 병원들까지도 흔들릴까 봐 신경 곤두세우고 있다는데."

말을 들어보니, 말단 직원들은 개인병원이라는 걸 잘 모르는 듯했다.

"교수님들도 요새 싱숭생숭하신 거 같고, 전공의 선생님들은 반쯤 패닉상태이시던데. 어제도 박기수 선생님 처방 잘못 나가서 교수님한테 된 통 깨졌대."

"나 같아도 지금 일이손에 안 잡히겠다. 병원이 넘어가네 마네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건 정부에서 나서서 수습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수영은 병원 로비와 병실 복도를 천천히 거닐며, 주위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들은 물론이고, 어쩌다 보이는 전공의와 펠로우, 교수들까지도 병원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환자들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병원 팔려요?"

"아니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아니, 간호사분들이 자기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서요. 여기 병원 팔리면 저 수술은 어떻게 되나 해서요."

"그럴 일 없습니다. 수술 일정은 전혀 지장 없으니 마음 편히드시고 처치만 잘 따라주세요."

병원 전체를 한 바퀴 쭉 둘러본 하수영은 구옥 1층 로비로 다시 나왔다.

"이 정도면 뭐, 더 볼 건 없네."

-구의회 차원에서 병원 지원을 생각하십니까?

"글쎄다, 잘 모르겠네. 여기가 청담동이었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인수를 했을 텐데, 하필 삼성동이어서 말이야."

하수영은 안타까운 눈으로 구옥 로비 이곳저곳을 구석구석둘러보았다.

"윤병원아, 윤병원아. 너는 왜 하필이면 삼성동에 태어났니, 응? 길 하나만 건너서 태어났으면 내가 많이 예뻐해 줬을 텐데."

-병원 운영에도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프리덤, 한 지역의 건물주가 된다는 것은, 그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에 대한 소유를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마음 같아서는 경찰서와 소방서도 갖고 싶다니까? 병원이야 당연히 말할 것도 없지."

-경찰서와 소방서는 개인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민간소방시설을 보유하는 형태는 가능합니다.

"나도 안다. 아무튼종합병원이나 학교야말로 개인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공공적인 시설이지."

하수영은 손가락을 튕기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문제는 청담동에는 적절한 종합병원이 없단 말이지. 1차, 2차를 막론하고 죄다 개인병원이니까."

-2차 병원으로 인정받으려면 병상이 100개 이상 있어야 합니다만, 현재 청담동에는 그런 병원이 없습니다.

"아, 그래? 와, 우리 동네 왜 이렇게 후졌어? 아니, 무슨 2차 병원 하나 없다는 게말이돼?"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도 계산기 두들겨가며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땅값 시세를 생각해야 한다. 성형외과, 피부과처럼 돈 되는 업종이 아닌 대형병원이 들어오는 것은…….

그때였다.

"비켜요! 비켜!"

"꺄악! 피 좀 봐!"

"비키라고요! 어서 비켜요!"

의료진이 빠른 속도로 병상을 밀면서 로비를 달리고 있었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봐선, 중한 부상을 입은 응급환자로 보였다.

로비에 있던 방문객 중 심약한 이들이 피를 보고 비명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상을 밀면서 응급수술실로 사라졌다.

"쯧쯧, 응급환자인가 보군."

-……신분을 알려드릴까요?

"뭐?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 거냐?"

하수영은 의아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리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프리덤이 마음만 먹으면, 저 환자가 누구인지 하수영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수영은 고객개인정보를 열람하는 것은 최고관리자의 도덕에 어긋난다며, 서비스 제공 업무상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묻지 않았다.

또 프리덤도 정말 필요한 게 아니 고서는, 먼저 고객의 개인정보를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

-신준섭, 이 병원 외과전공의 3년차입니다.

"뭐? 이 병원 의사라고? 아니, 근데 왜 다쳐서 실려 오는 거야?"

-병원 밖으로 잠시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스마트폰 단말기는 구급대원이 회수해서 병원 측에 인계했습니다.

"아이고, 저런, 재수가 없었네."

-재수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얼마든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던 사고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신준섭 고객은 사거리 코너 횡단 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보행자 신호 적색 상황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차도 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 바람에 달려 오던 차량에 치이게 된 겁니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

-38시간 동안 연달아 이뤄진 수술 때문에 지독한 수면 부족 상태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누적된 과로로 체력이 고갈이 난 상태였고요.

하수영은 입을 다물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준섭 의사를 알아본 병원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걱정을 나타내는 게 조금씩 들렸다.

"아까 교통사고 환자, 일반외과 신준섭 선생이라며?"

"뭐, 정말이야? 아니, 30분 전에만 해도 나하고 같이 커피 마셨는데 어떻게 된 거야?"

"수술 3건 연달아 하느라고 38시간 동안 수술실에서 살았대. 다 끝나고 밥 먹으러 나갔다가 기절하면서 차에 치인 거래."

"말도 안 돼. 어떡해. 아, 그냥 병원 식당에서 드셨으면 안 다치셨을 텐데."

"심각한 게 아니면 좋겠는데. 지금 외과는 초상집 분위기야. 가뜩이나 힘든데 3년 차 한 명 이탈해서."

"무사 쾌활을 빌어줘도 모자랄 판에 빵꾸 난 것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니. 뭔가 슬프다."

"다른 선생님들도 지금 당장 죽게 생겼으니까. 사고로 죽으나 과로로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는 거지, 뭐."

"쉿, 저기 외과 수술팀 지나간다."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이 충혈이 된 의사 몇몇이 수술복을 입은 채 지나가고 있었다.

막 수술이 끝났는데 곧장 다음 수술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수영이 프리덤한테 물었다.

"여기 병원 왜 갑자기 골든타임 드라마 찍는 거냐? 중증외상센터 같은 건 안 보이던데?"

-오늘 하루만 동맥류 파열, 간 종양절제, 위천공 봉합수술…….

"됐고, 그래서 몇 건?"

-총 7건의 수술이 있었습니다. 그중 3건은 예정에 없던 응급수술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건 아니지?"

-외과 쪽이 평소에도 힘든 건 사실이지만 오늘은 특히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어제가 커피라면 오늘은 티오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평소도 힘들고 오늘은 특히 더 힘들었다. 이거지?"

-네, 그렇습니다.

"너 근데 오늘따라 왜 물어보지도 않은 걸 이렇게 시시콜콜 자세히 설명하냐?"

-마스터의 진정한 내면의 욕망을 지원해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얼씨구, 내 내면의 욕망이 뭔데?"

-청담동이 아니라서 고민하고 계시잖아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쥔 손을 앞으로 길게 뻗은 채, 지그시 렌즈를 노려보았다.

누가 보면 마치 셀카를 찍는 모양새.

하지만 사실은 지금 프리덤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법적 주소지가 청담동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청담동입니다. 지금 청담동에는 이런 큰 대형병원이 없고, 마스터를 지지하는 열성 유권자들도 이 병원을 지켜내고 싶어합니다.

"나중에 적당한 부지 사서 병원 새로 큰 거 하나 올리면 돼."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죠. 일단이 병원을 사서 운영하다가 신사옥 지어서 이전하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하수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렌즈를 바라봤고, 프리덤은 계속 말했다.

-사세요, 이 병원. 어차피 종합병원 하나쯤 마련하려고 하셨잖아요. 이만한 매물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청담동이 아니지."

-인수해서 청담수영병원이라고딱이름 붙이면 알게 뭡니까. 사람들은 여기도 청담이겠거니 할 겁니다. 어차피 도로 하나 사이잖습니까.

"하나 묻자. 내 내면의 욕망 때문이냐,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 때문이냐?"

-……실은 신준섭 고객이 아까 사고 나서 의식을 잃기 전 유언을 남겼습니다.

"유언?"

-프리덤, 하수영 갓물주님한테 트로피로 병원 하나쯤 마련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전해줘. 이렇게요.

"……그것참, 난 친구일세. 가슴이 조금 뭉클해지는데?"

하수영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정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부사장님, 프라임오일에 지금 돈 좀 남는 거 있어요? 뭐 좀 급히 살 게 있어서요."

한편 응급수술실에서는…….

"아오. 준섭이 이 새끼, 왜 혈액팩을 품에 넣고 다녀? 피범벅 된 거 보고 어디 동맥이라도 끊어진 줄 알았잖아!"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이 새끼는 감히 응급수술실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당장 쫓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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