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37화
82장 로컬병원을 수호하라(1)
윤병원, 한국에서 나름 알아주는 인지도를 가진 병원그룹이다.
의사 출신의 창업자 윤태석 회장이 아들들과 함께 운영하는 병원 그룹으로, 총 대형종합병원 5개가 있다.
여기에 연구소와 대학재단까지 포함해서 종합 바이오 플래폼을 구축한, 알아주는 메디컬그룹이다.
청담과 가까운 삼성동 윤병원은 하수영 사무실에 눌러앉은 노령 지지자들이 애용하는 곳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최신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상급병원이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나? 윤병원 청담점이 망하면 우리처럼 갈 곳 없는 노인네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머나먼 교통체증을 뚫고 세브란스까지 가라고?
"어르신, 회장님, 지지자님. 일단 고정하시고요."
얼마나 열이 뻗쳤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윤병원 청담점'을 들먹거리고 있을까.
아니, 노인들에게는 윤병원 삼성동점이 청담점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교통체증 뚫고 매일 세브란스 들락거리다가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그거 누가 책임져?
"상급병원 탈락했다고 병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속 편하게 2차 병원으로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명예야 조금 떨어지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니까 그렇지!
"그럼 뭐가 또 있나요?"
하수영의 눈빛이 조금은 달라졌다.
박달재 노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여러 번 심호흡을 하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청담 윤병원'의료품질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는 거야.
"네네, 청담 윤병원, 당연히 의료품질이 떨어지니까 상급병원 지정에서 탈락됐겠죠."
-근데 그게 경영 악화가 원인이라고 하더군.
"경영 악화요?"
-그래, 청담 윤병원이 서해 강남병원에 지속적으로 환자를 뺏기고 매출도 줄어들고 있었데. 서해 강남병원이 돈지랄도 엄청 공격적으로 나왔었다는데.
"아, 의정 보고서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서해그룹이 메디컬 사업을 위해서 제대로 팔 걷어붙이고 달려들고 있다구요."
-서해 강남병원, 마음에 안 들어. 그놈들 때문에 지금 윤병원이 망하게 생겼다고, 우리 모두 지금 화가나 있어.
"근데 서비스 자체는 서해 강남병원이 더 낫지 않나요? VIP실도 더 좋다고 들었습니다."
-거긴 너무 멀잖아.
"하긴, 거리는 중요하죠."
-앞으로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아니, 병원에 무슨 불로초 같은 거 구비해 놓으래? 병실은 면회객을 맞이할 응접실과 수면실이 병행돼있으면 족하고, 의료진 실력은 초기 췌장암을 청진기 한 번으로 진단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네.
"그 정도면 적당한 난이도네요. 반어법인 건 아시죠?"
세상에 그런 병원이 있단 말이야? 아니, 삼성동 윤병원이 그 정도 수준이었단 말이야?
-청담 윤병원이나 서해 강남병원이나 어차피 둘 다 거기서 거기인데, 동네 단골종합병원이 없어졌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야. 우리 하수영의원 후원회원들은 지금 심각한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일세.
"어르신들은 절대로 청담동을 벗어나면 안 되겠네요."
-난 그래서 해외여행은 당연히 안간다네.
"어르신, 잠시만 확인할 게 있습니다. 아, 전화를 끊지는 않을게요."
-그러시게,
하수영은 잠시 마이크 음소거를 한 뒤 프리덤을 불렀다.
"프리덤, 윤병원 재정 상태가 어때?"
「지속적으로 조금씩 악화되고 있긴 했지만 충분히 버틸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서해 강남병원의 견제도 마음만 먹으면 커버할 수 있었고요.」
"그럼 왜?"
「중입자가속기 도입 때문입니다.」
"아하."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삼성동 윤병원은 암센터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중입자가속기 도입에 2,300억 원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현재 설비 주문까지는 끝난 상태입니다.」
"그게 적자 폭탄을 터뜨린 트리거가 됐다는 거군."
「여러모로 악재가 겁쳤습니다. 이미 500억 원이 나간 상황에서 보건 부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중 입자 암치료의 급여선정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갑자기 말을 바꾼 건 뭔가 냄새가 나는데."
「서해그룹의 영향력이 있지 않느냐는 음모론이 SNS에서 수차례 제기된 것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음모론이 있다는 건 확인된다.
프리덤은 딱 거기까지만 설명을 하고, 더 이상의 말은 아꼈다.
「그 외에도 실력 있는 스타 의료진의 지속적인 유출, 윤병원그룹 전방위적인 경영 악화 등이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알았다. 난 다시 통화 좀, 어르신, 오래 기다리셨죠?"
-뭐 하느라고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운 거야?
"윤병원에 관해서 잠시 이것저것 알아보느라고요."
-아무튼 하 의원, 이건 우리 청담동 노인네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아주게. 우리가 자네를 지지한 이유는 알고 있지?
"그럼요. 지역일꾼으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드리는 게 당연한 사명아니겠습니까."
-부탁함세. 내, 세브란스까지 통원치료 다닐 걸 생각하니까 30년 된 관절염이 갑자기 재발하는 것만 같아. 요 며칠 엘릭서드링크 먹으면서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더만…….
"걱정 마세요. 제가 속 시원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난 우리 하 의원 그런 시원시원한 멘트가 좋아. 다른 친구들 같았으면 최선을 다하겠다. 열심히 해보겠다, 그렇게 면피성 발언만 하는데, 우리 하 의원은 그렇지 않단 말이야.
***
귀가한 하수영은 곧바로 삼성동 윤병원의 상황 파악에 나섰다.
프리덤의 말대로 재정 상황은 현재 안 좋은 편이었다.
"원래 경영수지는 좋은 편이었네. 중입자 치료기에 나간 돈만 없었어도 단기 적자가 이렇게는 안 났겠는데."
2,300억 원이 전부 나간 것은 아니지만, 보건부가 뒤늦게 말을 바꾸는 바람에 병원 측은 사정이 좋지 않았다.
중입자 가속기 도입을 일시 중지하는 바람에 병원 분위기는 더욱 나빠졌다.
「보건부의 결정 변경에 누군가의 로비가 있지 않느냐는 음모설도 제기된 상황입니다.」
"향긋하고 짜릿한 음모의 냄새가 나는구나."
이 정도 권모술수야, 하수영의 눈에는 그저 귀여운 애교로만 보였다.
경쟁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신흥 도전자의 돈지랄.
그 신흥 도전자는 아마도 서해 강남병원일 것이다.
"흐음…… 이거 가만히 놔둬도 청담동 어르신들한테 큰 영향은 없겠는데."
청담 윤병원, 아니, '삼성동 윤병원'이 악재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라진다고 해서 그 병원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결국 인수나 위탁을받아서 운영을 할 것이다.
그럼 사무실에 상주하는 노인들이 단톡방에서 걱정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병원을 멀리 다녀야 한다는 미래 말이다.
"서해병원, 우리 귀염둥이 어르신들 걱정 끼치게 한 것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야 뭐."
실질적인 피해는 아마도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내친김에, 다음 날 의회에 출근한 하수영은 자세한 전후사정을 알아보았다.
최우석 부의장도 같은 지역구이니만큼 발 벗고 나서서 사태 파악에 나섰다.
"서해병원에서 삼성동 윤병원 시설을 탐내고 있는 건 사실인 거 같아.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다던데."
"비영리법인 병원을 그렇게 회사 인수합병 하듯이 가져올 수 있는 건가요?"
"운영권 가져오는 거야, 뭐. 오히려 더 쉽지."
"이미 강남에 기존 병원이 있는데, 삼성동 병원 시설까지 먹어서 운영하겠다는 건가요?"
"아예 상권을 장악하겠다는 거지. 세브란스야 건드리기 어렵지만, 윤병원 정도야 뭐. 게다가 윤병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상급병원이었다는 상징성도 있고, 서해병원으로서는 여러모로 탐이 날 만하지."
"정말이지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군요. 서해의료재단도 이미 잘 나가는 병원 여러 개 갖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원래 다 그렇지. 아, 노인네들이 새벽까지 걱정돼서 떠들어대느라고 내가 잠을 다 설쳤네."
"단톡방 알림이라도 좀 끄시지 그러셨어요."
"5분마다 나를 찾는데 거기에서 대답 안 하고 모른 체하기도 좀 그랬어."
"다음부터는 프리덤한테 적당히 맞장구만 쳐달라고 한 번 부탁해 보세요. 알아서 해줄 겁니다."
"어, 그런 것도 가능한가?"
"물론이죠. 범죄도 아닌데요."
최우석은 그런 꿀팁을 처음 알았다는 듯이, 과연 하며 거듭 감탄을 터뜨렸다.
"자, 그럼 결론을 내지. 삼성동 윤병원이 어렵긴 하지만 최악의 경우 망하더라도 서해의료재단이 운영할 거고, 우리 유권자들이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렇지?"
"동의합니다."
"그럼 우리 사무실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고, 밥 먹으면서 설명해 줘야지."
"예. 그러시죠."
점심시간이 되자 하수영과 최우석은 나란히 휴민트타워 의원사무실로 돌아왔다.
적을 감시하는 미어캣처럼 오매불망 고개를 빼놓고 기다리던 노인들은, 식사를 하면서 들은 설명에 만족했다.
"어쨌든 간에 지금 청담 윤병원은 간판이 바꿔 다는 한이 있더라도 유지된다는 거지? 괜히 걱정했네그려."
"에이……. 그래도 지금 주치의하고는 꽤 오랜 친분이 있는데, 그 친구 목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아, 정 갈 데 없으면 우리가 일자리 하나 만들어주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그래도 상급종합병원 교수까지 지냈던 사람인데, 요상한 감투를 줄수는 없잖나?"
"내가 우리 사학에 의대총장 자리 하나 정도는 마련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으잉? 오씨, 자네 의과 딸린 대학도 갖고 있었어?"
"이 친구야. 여태 그것도 몰랐나?"
"전혀 몰랐네. 우리 중에 의과대학 가진 친구가 있었을 줄이야. 근데 왜 한 번도 놀러 오라고 말 안 했어?"
"아, 조그마한 지방대야. 서울병원도 강북에 있고, 그래서 오라고 말 안 했어. 자네들이 흠잡을까 봐."
"의대총장이면 뭐 나쁘지 않네."
"정 안 되면 우리 회사 사외이사자리라도 하나 내주지, 뭐. 제약회사니까 그 친구도 크게 체면 손상은 없을 거야."
"그래도 의대총장으로 가는 게 가장 모양새가 좋지. 기왕이면 지금 병원에 계속 유임되는 게 좋고."
"어려울걸? 서해병원이 서해그룹 분위기를 그대로 빼다 박아서 피점령자들한테 가차 없어요. 병원장은 물론이고 과장들도 우수수 잘려나갈 가능성이 높아."
그렇게 잘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틀 후, 박달재 노인이 수영마트까지 허겁지겁 하수영을찾아왔다.
마감을 준비 중이던 하수영이 의아해서 맞이했다.
"어르신, 무슨 일입니까?"
"하 의원! 망했어, 다 망했어!"
"뭐가 망했습니까?"
"아, 청담 윤병원이 글쎄, 아 글쎄, 그게 진짜, 아이고, 이걸 어쩌나, 세상에."
얼마나 큰일이기에, 박달재 노인은 숨만 헐떡일 뿐 제대로 된 설명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는 하수영이 다급하게 건넨 엘릭서드링크를 한 병 쭉 마시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힘들게 말을 이었다.
"윤병원 그룹 회장 윤태석이가 뿔이 잔뜩 났어."
"병원 오너가요?"
비영리법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오너라고 칭하는 게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
"청담 윤병원을 서해에 넘길 바에는 그냥 없애 버리겠대."
"없애 버린다고요?"
"그렇다니까. 서해그룹에서 작업 들어왔다는 거 알고 대노해서 난리도 아니었대. 서해그룹에 놀아날 바에는 그냥 망하더라도 병원 청산하고 부지는 비싼 값 받고 팔아서 정리하겠다는 거야."
"병원 재단이잖아요? 매각이나 청산이 마음대로 안 될 텐데요?"
개인병원과 달리 의료법인재단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기에 마음대로 사고팔거나 할 수 없다.
"나도 몰랐는데, 윤병원이 개인병원이래!"
"개인병원이요? 아니, 개인병원이 3차 병원까지 승급할 수도 있습니까?"
"그러니까 다들 여태껏 당연히 재단 병원인 줄 알았지! 청담동 병원말고 다른 4개 병원도 죄다 실질적으로는 개인병원이래!"
하수영은 얼른 검색을 해보았는데, 사실이었다.
개인병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빅5메디컬그룹까지 성장한,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입지전적인 사업체 병원이었다.
모든 개업의들의 이상 모델이라는 내용까지 확인했을 때, 박달재 노인이 다시 말했다.
"병원은 폐업하고, 부지는 정리하고, 그 돈으로 다른 병원사업체나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나 봐."
"네? 부지를 판다고요? 아, 그럼 제가 얼른……."
순간 좋아했던 하수영은 곧바로 실망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아, 맞다. 거기 청담동 아니지."
노인들이 하도 청담 윤병원, 청담윤병원 거리니까 자신도 모르게 착각했다.
엄밀히 말해서 청담동 옆에 붙어 있는 병원인데 말이다.
※본문에 나오는 윤병원은 소설적 재미를 위한 허구적 설정이 반영되었으므로, 현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