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36화 (336/1,270)

프랜차이즈 갓 336화

81장 마트는 평화롭다(3)

"고춧가루! 수영농장산 고춧가루 어디 있어!"

노인들은 헐레벌떡 마트에 뛰어들면서 데스크를 찾았다.

실버 등급 회원을 알아본 안내원이 친절한, 하지만 당황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응대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수영농장산 고춧가루! 어디 있어!"

"저어, 고객님. 유감이지만……."

"뭐? 유감? 아니야! 안 돼! 말하지 마!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수영농장 특제 고춧가루 상품 200g 29병은 이미 전부 팔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아."

"벌써 팔렸다고?"

다리에 힘이 빠진 노인들은 좌절한 나머지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네, 오늘 입고된 고춧가루 상품 200g 29병은 모두 팔렸습니다. 다음 입고를 기다리심이 어떨까요?"

박달재 노인이 허탈해서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가격을 좀 합리적으로 설정을 했어야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하니까 우리 같은 선량한 10억실버 등급 노인 회원들이 피해를 보잖아."

"가격이 얼만데? 그러고 보니 가격이야기는 못 들었네."

"일반 고급 고춧가루보다 3배 정도 가격으로 판다는구먼."

"완전 날강도 심보 아니여?"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날강도 심보라는 것은, 일반적인 비난과는 전혀 궤를 달리한다.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싸게 팔면, 손님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피 흘리고 죽이고 그러라는 거지. 아니, 우리 하 의원, 어찌 심보를 그리 쓸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이. 적어도 일반 고춧가루보다 백 배는 더 받아야, 아 우리 같은 선량한 10억 실버 등급 노인 회원들이 이런 부당한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 거 아닌가."

"내, 하수영 의원을 적극 지지하는 콘크리트층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비판적 지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구만!"

노인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수영을 성토했다.

혹시라도 팔렸을까 봐 허겁지겁 달려왔건만, 이미 다 팔리고 없다니.

"이봐요, 아가씨. 그럼 다음입고는 언제인가? 내일 새벽에는 들어오나?"

"일정으로는 이틀 뒤로 되어 있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상황을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하 의원, 일부러 특제 향신료 가지고 손님들끼리 치고받고 피 흘리고 박 터지고 하는 꼬라지 즐기려고 싸게 파는 거여."

"젊은 친구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사람이 변했어."

"그러게 말이야. 마트주 하고 나더나 변했어. 변했다니까."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마트주라고 하더니. 세상 참 부질없구먼."

안내원들은 속으로 웃음을 참으면서, 노인들이 자기들끼리 투덜거리는 걸 보고 있었다.

수백억, 천억대자산가들이겨우 몇만 원짜리 고춧가루 하나 가지고 저렇게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좌절하는 모습이, 왠지웃음이났다.

"아니, 다들 여기서 뭐하세요?"

그때 유니폼을 입은하수영이설렁거리며 노인들을 향해 다가왔다.

다른 손님들은 하수영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치고 있었다.

그냥 마트에서 일하는 평직원으로 여긴 것이다.

"하 의원. 자네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특제 고춧가루 좀 팔아달라고 그렇게 졸랐을 때는 들은 제도 안 하더니, 정말 이러기인가?"

"우리가 골드 회원권 안 사고 실버회원권 샀다고 지금 일부러 그러는거 맞지? 내가 잘못했네. 오늘 당장에라도 골드 회원권으로 갱신함세. 그러니 모레 들어오는 특제 고춧가 루는 전부 나에게 팔아주게."

"아니, 김석원이! 지금 이렇게 뒤통수치기있기인가!"

"그럼 나도 오늘 당장 골드 회원권으로 갱신하겠네!"

"뭐야? 골드 회원권으로 갱신하면 우리 모레 들어오는 특제 고춧가루살 수 있는 거야? 그런 분위기인가?"

"근데 우리 지금 30명인데?"

"……."

"……."

박달재 노인이 툭 꺼낸 말에, 노인들은 일제히 입을 다문 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하 의원, 모레 들어오는 물량은……."

"29병입니다. 아, 짐작하시겠지만 이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숫자입니다. 제휴 백화점에서 머쉬룸 VIP 서비스를 받는 최상위 VIP도 딱 29명이니까요."

"그렇다는 것은……."

우리들 중에서 2명은 탈락이다.

동시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노인들은 눈빛을 날카롭게 바꾸며 서로를 노려보고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씨, 자네가 포기해."

"내가 왜? 그러는 김씨, 자네가 포기해!"

"어허, 이씨 자네 이번에 리조트 새로 짓는다고 현찰 막혀서 마음고생 좀 했잖나. 자네가 무슨 골드 회원권이야?"

"이 친구가! 내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100억 정도는 쌈지주머니 털면 어디선가 튀어나올 거라고!"

"쌈지주머니까지 털어야 할 정도로 돈이 없으면 그냥 착실하게 살림살이나 돌봄이 어떤가?"

"그러는 박씨 자네는! 이번에 막내며느리가 장사하다가 사고 쳐서 80억 넘게 메꿔줘야 한다며! 막내아들 부부 80억 주고 나면 골드 회원권은 무슨 돈으로 사려고?"

"지금 이 순간부터 강하게 키우기로 했네. 자기들 과오는 자기들이 스스로, 언제까지 이 늙은 애비가 뱃주머니에 아들이고 며느리고 손주고 넣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 청담동 캥거루 부모들 참 안됐어. 나 때는 다 큰 자식만 넣고 다니면 됐는데, 이제는 자식 배우자에, 그손주까지넣고 다녀야하니……."

"캥거루들이 근육질인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근데 이야기가 왜 자꾸 딴 데로 새는 건가?"

노인들이 티격태격하는 광경을 지루하게 바라보던 하수영이 어깨를 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어르신들, 골드 회원권을 구매하셔도 특제 고춧가루 구매는 확답드릴 수 없습니다."

"뭐! 그게 어째서!"

"회원권은 어디까지나 할인, 그리고 마트 내 편의시설 이용우대에만 적용됩니다. 마트상품 판매와 구매에 있어서, 그 어떤 고객 차별을 둘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곧 마트의 헌법정신과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니까요."

"마트의 헌법정신…… 그게 뭔가?"

"간단합니다."

하수영은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줄을 서세요."

"……."

"……."

"설마 이 나이 먹고 새벽부터 마트앞에서 줄 서서 사가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하 의원, 정말 마트주 되더니 변한 거 같네. 그렇게 자상하던 우리 지역구의 일꾼이 어쩌다가……."

"제가 지지자와 유권자, 주민들을 모시는 지역 일꾼이긴 하지만, 지금 이 마트 안에서만큼은 지고한 마트주입니다. 마트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외부의 그 어떤 신분도 끌고 들어와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자네는 만삭의 와이프가 먹고 싶다고 엉엉 울면서 애원해도 그렇게 차갑게 원칙을 내세울 셈인가?"

"그때는 농장에서 새로 빻아서 갖다 주면 되죠. 거기는 마트 밖이잖아요."

"……."

"……."

"이건 부당하네, 하 의원, 심히 부당한 일이야. 나로서는 도저히 묵과 하기가 힘드네."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면서흥분하던 박달재 노인은, 하수영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하 의원, 혹시 내 수양아들 할 생각은 없으신가?"

하수영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희 아버지 아시면 큰일 납니다. 청담동 쓸려 나가요."

***

하수영은 수영레스토랑 본점은 이택진 셰프한테 맡기다시피 한 채, 마트 관리에 치중하고 있었다.

수영레스토랑과 수영오세안은 이제 자신이 없어도 문제없이 잘 돌아간다.

주희도 사장이 프랜차이즈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잘 만들어놓은 덕분이다.

"역시 회사든 뭐든 간에 인사가 알파고, 오메가라니까."

폐점을 마친 하수영은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자신도 마트를 나섰다.

영업용 조명은 꺼졌지만, 외관의 장식 조명은 쉼 없이 환하게 빛나며, 마트의 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캬, 누구 마트인지 몰라도 디자인 아주 새끈하니 죽이고."

-주인님, 안살린 교수님께서 신물질 국제특허를 출원했습니다.

"그래?"

-네, 작물의 생장을 촉진시키고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비료입니다. 이 비료를 사용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10%의 수확량 증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야."

엘릭서의 흔적이 남아 있는 토양이라지만, 그것을 연구해서 기어이 신물질 비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다니.

그 재능과 끈기, 학구열도 놀라운데, 더 대단한 걸 만들 수 있음에도 탄생한 것은 작물 비료였다.

아마도 기왕이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싶었던 그의 진심이 반영된 것이리라.

"그럼 성과도 얻었으니, 이제 우리 뒤뜰에서 철수하려나?"

-아직은 좀 더 머무르면 토양 연구에 매진하고 싶은 눈치 같습니다. 이번에 연구동을 하나 더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금 더 있어주면 수영리 주민들이야 좋지. 이제 와서 갑자기 안살린 교수가 나간다고 하면 수영리 주민들 단체로 멘붕 오겠네."

안살린이 들어오고 난 뒤, 수영리는 급격한 부흥을 이뤘다.

지역사회에 젊은 피와 많은 돈, 물류 확장이 수혈되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수영리 관할 지자체장은 하루가 멀다고 연구시설을 방문하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게 더 안살린 교수를 귀찮게 만든다는 것은 알려나 모르겠네."

기업가치 5조 달러가 넘는 국제자 원투자회사의 오너이자 아랍 왕족이며, LA다저스 구단주이자, 유망한 지질학자이자, 셀럽.

한국의 조그마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안타깝게도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통령이 와도 귀찮아할 사람인데…….

"프리덤, 요즘 고객 서비스는 별문제 없냐?"

-개인비서의 선을 넘는 주문을 하는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을 잘 긋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최고관리자라고 고객 개인정보를 일일이 다 열람하면 안 되지. 관리 윤리에서 어긋나"

-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연예인 악플다는 사람들은 어때?"

-대부분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체크할까 봐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빅브라더 권한을 허용해 준 적은 없는데 말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수영은 간만에 청담동 거리를 혼자 거닐었다.

마트에서 저택까지는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차가 아닌, 다리에 의지하는 것도나쁘진않다.

애애애앵! 애애애앵! 애애애앵!

그때 저 멀리에서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늦은 시간이고 도로도 한가한 편인데 사이렌을 울리는 걸 보면, 진짜 구급환자가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꺼져가는 생명이 타고 있구나. 굳이 저렇게 서둘러서 갈 필요가 없는 것을.

"아버지? 저기 탄 환자가 죽을 운명이라는 건가요?"

-생운이 완전히 소멸했다. 구급대원들이 어떻게든 살리려고 발악을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분신이라고는 하지만, 우주를 다스리는 주신의 눈에 인간의 생명이란 미물과도 다름없을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이처럼 덧없는 것 이느니, 아들아, 너 또한 속세의 쾌락은 빨리 적당히 즐기도록 하고, 너무 거기에 빠지지 말고, 진정한 시간의 의미를 듬뿍 누릴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갓 후계자 수업의 길을…….

"아, 잠시만요. 전화 왔어요."

-인석아! 지금 아버지가 근엄하게 훈육하고 있지 않느냐!

"어떡해요. 제 후원회장님 전화인데 안 받을 수도 없잖아요."

-후원회장이라고 해봤자 너보다 돈 없잖아!

"아무튼 나중에 이야기해요. 잠시 만요."

하수영이전화를 받자 후원회장,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 박달재 노인이 다급히 말했다.

-이보게, 하 의원, 그 이야기 들었는가?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윤병원 말이야, 윤병원. 잘 알지?

"그럼요. 윤병원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윤병원은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5개의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메디컬그룹이었다.

청담동은 아니지만 바로 인근 지역에 붙어 있어, 돈 많은 청담동 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청담동에서 가장 가까운 3차 병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3차 병원 지정에서 탈락했어! 이제 흔하디흔한 2차 병원 꼬라지가 될 예정이라고! 나도 그 병원만 10년 넘게 다녔는데!

"네? 그게 정말인가요?

-지금 우리 노인네들 단톡방 난리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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