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35화 (335/1,270)

프랜차이즈 갓 335화

81 장 마트는 평화롭다(2)

하수영 의원사무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물품들이 있다.

바로 황비버섯라면 박스와 엘릭서 드링크 박스다.

"김 보좌관, 라면 열 개만 꺼내서 지금 끓여 봐. 출출하니 배고프네."

"예, 어르신!"

"아, 라면 꺼내는 김에 엘릭서드링크도 두어 개 꺼내오고."

"알겠습니다!"

김 보좌관은 얼른 일어나서 라면과 엘릭서드링크를 꺼냈다.

드링크를 바둑 두는 노인 김석원에게 건네고, 사무실 주방에 마련된 취사장비에 물을 올리고 불을 켰다.

바둑 두던 노인 김석원은 엘릭서드링크 뚜껑을 따고 안에 든 원액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키야, 역시 이 맛이야."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닌가? 설명서에는 사흘에 한 병 정도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돼 있는데."

"매일 세 병 이상 먹어도 부작용은 없다고 되어 있는 문구는 왜 생략하나? 서운하게."

"박씨 혼자만 너무 자주 먹어치우니까 드링크가 너무 빨리 떨어지잖아. 자네가 하루에 3병만 먹어? 세박스를 먹지."

"아, 그래서 내가 먹은 만큼 내 돈으로 채워 넣잖아.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한 병 먹으려고 할 때 박스 텅 비어 있으니 배송되는 거 기다리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알아? 좀 남들 생각해서 한 박스 정도는 늘 남겨놓으라고."

"알았어, 알았어."

그때 개량한복을 입은 박달재 노인이 다가와서, 바둑 두는 노인 김석원과 용호재 노인 사이에 앉았다.

그는 손에 엘릭서드링크를 한 병 쥐고 있었다.

"근데 이게 효능이 좋긴 정말 좋은 거 같아. 내가 20년 넘게 관절염 달고 살았는데, 이거 먹고 나서부터는 통증이싹 가라앉았다니까."

"관절 주사는 계속 맞고 있고?"

"그거야 계속 맞고 있지. 어휴, 한번 맞을 때마다 무슨 60만 원이나 해. 그것도 한쪽마다. 이렇게 약값이 비싸서야 돈 없는 노인네들은 어떻게 살라는 건지."

"드링크 덕분이 아니고 치료 꾸준히 받은 게 이제야 효과 보는 거 아니야?"

"내가 그래서 한 번 며칠 드링크를 끊어봤더니 바로 통증이 재발하더라고, 이거 드링크 진짜야. 이거는 건강보조식품 말고, 건강기능식품으로 승인받아서 돈 팍팍 받고 팔아야 돼."

"그보다는 일반의약품으로 지정하는 게 어때?"

그 말에 의사 사위를 두고 있는 어의준 노인이 부채질을 하며 다가와서 말했다.

"에잉, 기왕 할 거면 전문의약품으로 승인을 받아야지. 당장 내일부터 전임상부터 시작하는 건 어때? 이런건 세상에 널리 알려서 보급해야 한다고."

"약으로 파는 것보단 그냥 식품으로 파는 게 더 많이 팔 수 있지 않나?"

"약으로 팔면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지. 소비자들 신뢰도 얻을 수 있고 말이야."

"그나저나 엘릭서드링크가 중국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다면서?"

"그렇다고 하네."

"중국 인구수가 워낙 많아서 걱정인데. 설마 우리 한국 노인네들이 먹을 물량까지 부족해지지는 않겠지?"

"난 그래서 200박스 사재기하려고 주문해 놨어. 그 정도면 나 죽을 때까지는 아껴 먹을 수 있겠지."

"수영마트에도 엘릭서드링크 들어와 있지?"

"당연하지. 근데 별로 나가지는 않나 봐. 아무래도 마트보다는 온라인 주문으로 다들 사는가 보더라고."

중노년들은 건강과 의료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나이 든 성인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고혈압과 당뇨에 도움이 된다는 건강보조식품이다 보니, 노년층과 장년층을 중심으로 팔리고 있었다.

"근데 홍보가 너무 약한 거 아니여? TV고 라디오고 엘릭서드링크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본 거 같은데."

"회사가 돈이 없을 리는 없을 터인데, 마케미야라고, 일본 부동산 재벌하나가 투자해서 하는 사업이잖어."

"그래? 근데 왜 변변찮은 광고 하나 제대로 안 만들지?"

바둑 두던 노인 김석원이 그 말에 엘릭서드링크 한 병을 다시금 쭉 들이켜고는 말했다.

"광고가 없긴 왜 없어. 지금 중국에서 허구한 날 TV 틀었다 하면 나오는 게 엘릭서드링크 광고인데."

"그랬나?"

"중국 시장이 원체 크니까 중국 시장부터 공략한다는 게 회사 전략 같더만, 저번 달에 중국에서만 3억 불인가 팔았대."

"근데 중국에서 번 돈, 한국 가져오기 쉽지 않을 텐데."

"듣자니까 중국에 회사 차려서 파는 게 아니고, 그냥 중국 수입 회사에 갖다 파는 식이라던데?"

"아, 그런 식이면 걱정 없이."

"중국 놈들하고는 사업하는 거 아니랬어. 뭘 하려고 해도 공산당 놈들이 수저 내밀고 퍼가려고 한다니까."

그때 이태리제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트레이닝복을 입은 최원태 노인이 헐레벌떡 사무실에 뛰어들었다.

"다들 여기서 뭣들하고 있는가! 지금 이럴 때가 아녀! 어서 다들 일어나!"

"왜, 무슨 일인데? 최씨."

"고춧가루! 고춧가루! 수영농장산특제 고춧가루가 지금 들어왔다 이 말이야!"

"뭣이라고!"

"다행히 멍청한 손님놈들이 그게 뭔지 몰라서 만지작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사지를 않네! 빨리 일어나세들!"

"가자고, 빨리! 어서가자고!"

수십 명의 노인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났다.

한바탕 전쟁 피난이라도 떠나는 듯한 다급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신참 직원이, 떨떠름해서 상사에게 물었다.

"어르신들 지금 의원님 마트 가신 건가요? 특제 고춧가루니 뭐니 하시던 거 같은데……."

"아아, 그거…… 뭐라고! 수영농장산 특제고춧가루라고!"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던 상사는 벌떡 일어나서 옷을 챙겼다.

그는 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원 사무실을 후다닥 나서서 사라져 버렸고, 남은 직원들 사이에는 적막이 흘렀다.

다른 상사 한 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수영라면 오리지널 먹어본 적 있지요? 맛이 어땠어요?""

"엄청 맛있죠. 매일 먹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먹지 못하는 게 안타깝죠."

"수영라면 먹으면서 뭔가 다른 면류 요리와는 차별성이 있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거야 당연하죠."

"그 맛의 가장 큰 비밀이수영농장산 특제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라는 말이 있어요. 수영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스페셜 김치도 그 고춧가루를 이용해서 담그는 거고요."

"아, 그래요?"

"그 고춧가루가 다른 요리에도 뿌려서 먹으면 맛의 깊이를 극한까지 끌어낸대요. 저번에 어르신들이 옥상에서 삼겹살 구워 드실 때 있죠? 그때 의원님이 한 번 맛이나 보라고 고춧가루 뿌려주셨는데, 그 뒤로 의원님만 보시면 고춧가루 또 언제 주냐고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곤 하셨어요."

"……아."

신참 직원은 조용히 납득이 되었다.

몇 번 먹어보지 않은 수영라면과 스페셜 김치.

그 놀라운 맛의 비밀이 특제 고춧가루에 있고, 그것이 지금 마트에 들어왔다니.

그러니 노인들과 상사가 저렇게 얼른 마트를 향해 달려간 것이리라.

"그 특제 고춧가루는 시중 판매는 아예 하지도 않는대요. 수영라면 오리지널과 스페셜 김치 담그는 데에만 사용하고, 가끔 지인들에게 귀한 선물 정도로만 돌려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저렇게 급하신 거고요."

"양이 정말 얼마 안 되긴 하나 봐요."

"절대량이 부족한 건 아니고, 라면 하고 김치 팔리는 게 워낙 많으니까 시중 판매까지 할 엄두가 안 나는 거겠죠. 수영레스토랑 본점에서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김치가 떨어져서 못 내오는 경우가 있으니까."

"완벽하게 납득했어요."

물론 고춧가루를 삼겹살에 뿌려 먹은 게 어떤 맛이 날지는상상이되지 않았다.

라면이나 김치야 당연히 잘 어울리겠지만, 삼겹살에?

하수영은 특제 고춧가루를 상품화할 마음은 없었다.

지금처럼 수영라면과 수영김치를 위한 특별 레시피 재료로 활용하는 정도로만 족하다.

사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수영라면의 깊이 있는 맛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엘릭서로 키운 특제 고춧가루가 첨가되어, 모든 재료들의 본질적이 맛을 끌어내 혼연일체로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엘릭서 고춧가루로 담근 김치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실제로 많은 요리 유튜버와 셰프, 요리 연구가들이 수영라면의 맛을 재현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온갖 레시피를 적용해도, 그 맛의 절반도 흉내 내지 못했다.

그들이 만든 요리는, 재료값은 훨씬 많이 들어갔는데 맛은 뭔가 흉내내다가 개망신당하는, 재료빨로 맛이 있기는 하지만 이 돈 주고는 절대 안 사먹는 그런 결과물이었다.

"한정판이라는 건 원래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이런 것도 종종 있어주고 해야지 소비자들이 우리 마트에 충성하게 된다고."

판매용 골든 트러플 1개가 있긴하다. 심지어 하루 공급량이 1개라는 상한선이 있고, 그나마도 진열품이 팔려야 재입고가 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골든 트러플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있어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상징이었다.

소비자들의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봐야 하는 상징보다는, 힘들게 줄을 서서 어렵게 손에 넣었을 때 쾌감을 확인할 수 있는 실체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수영은 엘릭서 고춧가루를 공개한 것이다.

"자, 손님 여러분. 지금 소개해 드릴 것은 저희 수영마트의 지주회사인 수영농장에서 가문의 고대 비법을 활용해서 키운 특제 고춧가루입니다."

하수영은 유니폼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쾌활한 목소리로 상품을 홍보했다.

헤드셋형 마이크에 대고 우렁차게 상품 홍보썰을 푸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마트주이자 청담동 부동산 큰손이며 강남구의원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마스크를 쓴 데다가, 넉살 좋게 마트 매장 상품을 홍보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 마트주가 수영레스토랑 운영하는 거 아시죠? 손님 여러분, 수영라면 한 번씩 다 드셔보셨나요? 허구한 날 떨어지기 바쁜 특제 수영김치는요? 바로 이 특제 고춧가루가 수영라면과 수영김치의 맛을 살려주는 일등공신이랍니다!"

"오, 그게 진짜예요?"

하수영이 미리 심어놓은 바람잡이가 질문을 던지자, 그는 옳다구나 하면서 티키타카로 받았다.

"그럼요. 이 고춧가루를 살살뿌려 주면 그 어떤 음식도 자기도 몰랐던 맛의 극한까지 끌어낸다는 사실! 고춧가루이긴 하지만 그 어떤 음식하고도 잘 어울립니다! 계란프라이나 맨밥에 뿌려 먹어도 맛있어요!"

"에이, 그건 말도 안 돼요."

"진짠데. 그럼 한 번 지금 드셔보시겠어요?"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프라이팬에 계란을 풀어 계란프라이를 조리하며, 엘릭서 고춧가루를 위에 살살뿌렸다.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손님들의 눈에는 의아함과 미심쩍음, 흥미가 담겨 있었다.

'저런 게 정말 맛이 있을까?'

'계란프라이에 고춧가루라니……. 좀 아니지않아?'

"자자! 다들 하나씩 잡숴봐! 잡숴봐! 수영치킨에 육계를 공급하는 양계농장에서 산지직송으로 받은 신선한 유정란을 티타늄 합금 프라이팬으로 사정없이 구워내서 특제 고춧가루를 가차 없이 투척한 이 맛! 잡숴봐. 잡숴봐."

하수영은 한 번에 구워낸 계란프라이 20개를 좌판 위에 꽉 늘어놓으며 시식을 권했다.

그때 바람잡이와 무관한, 명품 의류를 두른 고운 중년 여자가 나서서 계란프라이를 찍어 맛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부릅떠지며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이 외쳤다.

"이 특제고춧가루! 제가전부살게요! 지금 몽땅 살게요!"

"감사합니다, 손님. 그런데 이 특제고춧가루는 출하량이 너무 적어서 손님 한 분당 1병씩만 팔 수 있어요."

"제가 전부 산다니까요! 가격은 두배, 아니, 세 배 드릴 테니까 전부 저한테 파세요!"

"하하, 원칙은 원칙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손님."

계란프라이 맛을 본 중년 여자는 겨우 29병밖에 되지 않는 수량을 보고 신음했다.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서 저마다 차례차례 맛을 본 이들도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도 살래요! 나도!"

"내가 맛봤으니 나한테 우선권이 있어! 나한테 안 팔면 내일부터 고추 포대 뒤집어쓰고 마트 앞에서 1인 시위 할 거야!"

고춧가루 진열대 시식코너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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