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32화
80장 동네마트는 디폴트(4)
"자자, 들어가세나."
회원권 청약서를 작성한 노인들은 대기하던 다른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 안내원을 가볍게 훑어보고는, 노인들이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마트에 따로 안내원까지 두는 건가?"
"회원님들을 위한 전용 서비스입니다."
"이런 안내원들을 상시 대기시켜 두려면 인건비가 꽤나 나가겠어."
"칫솔치약 팔아서 이거 마트 운영이 되려나 몰라……."
"그래도 첫날부터 우리가 매출 몇 백억 올려줬으니, 한동안 마트가 적자 날 일은 없을 걸세."
수십 명이나 되는 노인들이 10억씩 질렀으니, 첫날부터 매출 몇백억을 찍고 시작하는 셈이다.
"휴게편의시설부터 먼저 보실까요?"
"그건 나중에. 안내원 아가씨, 우리는 이 마트에서 뭐뭐 취급하는지 보고 싶소."
"그래, 마트에서는 신선한 식재료를 얼마나 파느냐가 중요하지, 휴게 시설이 뭐가 중요해?"
"옳지. 암, 그렇고말고."
안내원은 미소를 띠며대답했다.
"그럼 채소 코너를 먼저 보실까요?"
"그럽시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채소 코너를 찾았는데…
"아니, 이건 특등급 송이버섯이잖아?"
"정말이지 완벽한 모양이로군!"
"이런 특등급 송이버섯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잔뜩 쌓아두고 판다고? 하마터면 새송이로 오해할 뻔했장아!"
새송이의 정식명칭은 큰느타리버섯으로, 인공재배로 생산한다. 자연산으로만 채취 가능한 진짜 송이버섯과는 전혀 별개.
"뭐? 킬로당 10만 원밖에 안 한다고? 이런 특등품이?"
"네, 원래는 킬로당 25만 원 이상은 받아야 하는 최상품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오픈 첫날이기 때문에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보다시피 물량이 제한되어 있어 소진 시에는 할인 행사가 종료되는……."
"내가 전부 사지! 잘됐군, 내일 아침에 휴민트타워 옥상에서 다 같이 삼겹살에 송이버섯이나 구워 먹자고."
노인 한 명이 호기롭게 나서자 안내원은 반색을 했다.
"감사합니다. 회원님. 그럼 여기 쌓여 있는 송이버섯 전량을 구매처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송은……."
"휴민트타워 하수영 의원사무실로 보내둬. 안내원 아가씨, 거기가 어디 인지는 알지?"
"그럼요. 마트 대표님 의정사무실을 모르는 마트 직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진열대에 쌓여 있는 송이버섯들 위로 곧바로 반투명한 재질의 천이 덮였다.
동시에 '판매 완료된 상품입니다.'라는 명찰이 천 위로 올려졌다.
송이버섯을 살까 말까 고민하던 손님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판매 완료됐다니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아, 고객님, 여기 송이버섯들은 다른 분께서 전량을 구매하시는 바람에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며, 송이버섯은 내일 다시 재고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고민하지 말고 좀 살걸."
"아니, 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다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무슨 도매업자야?"
"인스타에서 수영마트 오픈 소식 듣고 달려왔는데 송이버섯 당일 품절이라니…… 역시 청담동은 무서운 동네구나."
"그것이 청담동이니까…… 끄덕."
노인들은 송이버섯 품절을 아쉬워하는 손님들을 못 본 채로 다음 코너로 이동하며 안내를 받았다.
"여기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을 파는 진열대입니다. 여기 보시면 진열대 아래에 버튼이 보이시죠? 이 버튼을 이용해서 원하는 수량만큼 전자주문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럼 카운터에서 따로 포장을 해서 배송, 혹은 직접 가져가실 수 있게 준비를 해드립니다."
"오, 그건 참 편리하게 해놨네."
"그러게 말이야. 굳이 장바구니 들고 돌아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겠어."
"황금비단우산버섯이 킬로당 만원? 킬로당 10만 원이나 하던 게 참 많이 싸졌어."
황금비단우산버섯은황비라면을사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1,800원짜리 라면을 사면 80g의 황비버섯을 얻을 수 있으니.
1g의 버섯을 얻으려면 22,500원을 라면에 투자하면 된다는 소리다. (물론 개수가 딱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여기 있는 노인들한테는 꿈이 황비라면을 사서 안에 든 버섯을 꺼내 먹는 게 오히려 불편한 일이다.
"좋아, 그럼 황비버섯은 내가 전부 사지. 안내원 아가씨, 이것들도 의원 사무실로 보내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진열대에는…….
"오, 이 감자들 설마 수영농장에서 난 것들이야?"
"양이 진짜 얼마 안 되네. 하긴, 우리 하수영 의원이 버섯 외 다른 것들은 소일거리로 조금씩만 키운다고 했으니까."
"그럼 이거 언제 또 나올지 모른다는 거네. 이것도 전부 우리가 사야겠어."
몇십kg밖에 안 되는 물량이기에, 혹시나 다른 손님들이 채갈까 노인들은 얼른 몽땅 샀다.
"아니, 이건 수영농장산 보리가 아닌가?"
"얼마 안 되니까 이것도 우리가 전부 담자고."
"이봐요, 안내원아가씨."
"예, 고객님. 이것들 역시 배송하겠습니다."
노인들은 뒷짐을 지고 채소류, 곡류 코너를 돌면서 느긋하게 쇼핑했다.
말 한 마디만 하면 알아서 착착 되니, 이게 마트에 온 건지 백화점 명품관에 온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여기는 통행 공간이 아주 널찍해서 좋구먼.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칠 염려도 없고 말이야."
"저번에 며느리 따라 뉴월드마트 한 번 가봤는데 왜 그렇게 도떼기시장 같은지.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치기 일쑤였어."
"하수영 의원이 마트를 아주 잘 지었어."
채소류, 곡류 코너를 전부 돌고 난 뒤에는, 해산물육류 코너로 이동했다.
"여기는 해산물과 육류 등을 파는 곳입니다."
"근데 왜 여기는 유리벽으로 둘러싸 놓은 건가?"
"예, 비린내와 고기 냄새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보다시피 내부에는 특별한 음압장치가 설치돼 있어, 안의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아, 나 그거 알아. 우리 사위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음압병실인지 뭔지 있더라고."
해산물, 육류 코너를 돌고 난 후에는 고객쉼터를 둘러보았다.
110인치짜리 TV에서 흘러나오는 바둑 방송은 노인들의 눈과 마음을 금세 빼앗았다.
"역시 TV가 널찍하게 크니까 잘 보이고 좋구먼, 우리 집에도 이런 거 하나 들여놓을까?"
마트를 한 바퀴 둘러본 노인들은 무척 만족해했다.
"괜찮은데? 이정도면 청담동을 대표하는 대형 할인 마트라고 해도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네."
"아, 저기 하수영 의원 아닌가?"
한 노인이 어느 방향을 가리켰고, 과연 하수영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르신들, 와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우리 하수여 의원 개업식날인데 당연히 와야지."
"우리가 매출도 듬뿍 올려줬어. 우리 전부 하나씩 회원권도 오늘 샀다고."
박달재 노인이 자랑스럽게 말하자 하수영도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오, 첫날부터 골드티켓 수십 장을 팔았네요. 이거 출발이 아주 좋은데요? 제가 어르신들의 격려 잊지 않고 우리 청담동을 빛내는 최고의 마트로 운영하겠습니다."
"……."
"……."
"……."
"……다들 왜 그러시죠? 표정이 안좋아 보이십니다."
박달재 노인이 먼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골드는 아니고, 실버로 샀어."
"네? 10억짜리 실버요? 아니, 왜 100억짜리를 놔두고 10억짜리를 사셨어요?"
그 정도 돈도 없어요? 라는 황당한 표정에 노인들은 그만가슴이무너질 것 같았다.
'하 의원은 우리가 당연히 골드 회원권을 살 거라고 생각했었구나!'
그런데 전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니.
물론 이들도 할 말은 있다.
'마트에서 쌀하고 감자 사서 어느세월에 100억을 다 쓴단 말인가!'
"……음, 실례했습니다. 사실 회원권 사주신 것만 해도 제가 정말 감사드릴 일이죠. 아, 맞다. 오늘 들어온 송이버섯과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전부 싹쓸이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소 풀이 죽어 있던 노인들은 그제야 안색이 환해져서 껄껄 웃으며 반응했다.
"개업일인데 우리가 매출 좀 팍팍올려줘야지."
"어차피 우리끼리 나눠 먹고, 또 의원사무실 친구들에게도 돌리고 하다 보면 금방 다 없어져."
"양이 생각보다 너무 적은 거 같은데. 송이와 황비버섯을 좀 더 들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신선도 문제 때문에 그날그날 팔아치울 양만 들여오고 있어서요. 어르신들께서 싹쓸이하실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넉넉하게 들여오는 건데 말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손님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입구에서부터 사람 기죽이는 뭔가가 있잖나."
"밖에서 보면 이게 할인 마트인지 명품 전시관인지 구분이 안 갈 디자인이니까."
"그래도 인터넷 홍보글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적자 보는 거야 상관없는데 파리만 날리면 마음이 아프거든요. 직원들도 불안해하고요."
최우석은 마트를 돌아다니는 손님들, 그리고 진열대를 가만히 둘러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앞으로 수영농장에서 생산되는 작물들은 전부 여기서 살 수 있는 건가?"
"네, 물론이죠."
"골든 트러플도?"
"네. 그런데 골든 트러플은 별로 안 나갈 거 같아서 중등품으로 하루에 40g만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골든 트러플은 쌀 같은 곡물 위에 놓고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면 품질이 저하되지 않고 장기 보존이 가능하다.
"별로 안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안 나갈 거 같은데……."
"한두 달 지켜보다가 안 나가면 우리 중에서 제비뽑기로 순서 정해서 사주는 사람을 정할까? 우리라도 팔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 그거 괜찮군. 40g이면 칠백, 팔백만 원 정도 하지?"
"네, 그 정도 합니다."
"순서대로 사주는 거니까 그 정도는 별 무리 없겠어. 하, 진짜 아랍왕족들은 어떻게 그 비싼 걸 감자 먹듯이 아무렇지 않게 먹는 건지."
"우리 청담동에서도 원유 펑펑 솟았으면 좋겠군그래."
"나중에 땅 파보면 여기 수영마트에서 막 석유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살던 집에서 골든 트러플이 나오고, 산을 샀더니 옛날 유물들이 쏟아지는 게 바로 우리 하수영 의원이잖아?"
오픈 첫날이지만, 마트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다만 마트 밖은 달랐다.
저녁이 깊어지자 인스타 등에서 홍보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 밖에 몰려들어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아무래도 지하철역과 거리가 멀고, 또 마트 외관 자체가 지나치게 화려하다 보니, 사람들이 섣불리 들어오지 못하고 기가 죽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마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명품관 출입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부유층이었다.
물론 용기를 내어 마트에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직원들은 손님들의 옷차림새나 타고 온 차량 브랜드를 가지고 그 어떤 서비스 차별 대우도 없었다.
하나같이 미소를 머금은 채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어서 오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안내데스크는 저쪽입니다."
"원하시는 상품을 여기 스크린서치 장치에서 손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수영레스토랑 배달버전을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어느 손님들은 마트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건물만 보면 초고가 명품마트 같은데 천 원짜리 껌도 다 파는구나."
"근데 이렇게 해서 영업이익이 남기는 남을까?"
"남는 게 있으니까 자신 있게 운영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