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31화
80장 동네마트는 디폴트(3)
하수영 구의원사무실.
원래는 의원사무실이지만, 돈 많고 할 거 없는 청담동 노인들이 모이는 노인정으로 더 많이 쓰인다.
의원사무실 보좌관들은 자신들이 의원 보좌관인지 노인정 직원인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도 다들 돈 많은 사람들이고, 또 지지하는 의원 사무실이다 보니,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매우 편한 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사무실에 눌러앉은 노인들이 가끔 편의점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
"이봐, 김동구 보좌관."
"예! 어르신!"
"건물 편의점 가서 담배 좀 사와."
"알겠습니다, 어르신!"
"어, 가는 김에 샌드위치도 몇 개 좀 사와. 출출하니 배고픈데 뭐 거창하게 시켜 먹기는 배가 부담스럽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의원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는 돈많은 유권자 노인들 심부름이 잦은편.
하지만 보좌관들은 누구 하나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어르신, 여기 다녀왔습니다!"
"응, 수고했어. 이거 받아."
"감사합니다. 어르신."
10분도 안 걸리는 심부름을 다녀왔는데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턱하니 팁으로 준다.
노인들이 이런저런 자잘한 일을 시키는 편이지만, 대신에 차고 넘치는 보상을해준다.
또 하나같이 하수영의 열성지지자들이다, 사무실 직원들의 불만은 전혀 없는 편이다.
게다가…….
"사무총장,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
"초밥 시켜먹을 거야. 다들 초밥으로 통일해."
"에잉, 난 오늘 초밥 별로 안 땡기는데."
"기왕 초밥 먹을 거면 미리 말을 좀 하지. 내 단골가게에 미리 전화라도 해두는 건데."
"자네 단골 가게 인당 가격이 얼만데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인단 말인가?"
"싼 건 20만 원이면 먹을 수 있어."
"지금 인원이 자네들까지 해서 80명이 넘는데, 그럼 한 끼에 1,600만 원을 넘게 쓰자고? 안 돼. 난 의원실 사무총장으로서 절대 그런 꼴은 못 봐."
"이 친구, 언제부터 이렇게 깐깐해졌어?"
"맞아. 옛날의 최우석이가 그립군, 그리워. 밥 한 끼에 얼마가 나오는 간에 아끼지 않고 턱턱 쓰곤 했었는데."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쏟아져 나오자 최우석 의원은 버럭 화를 냈다.
"남의 돈 관리하는 게 그렇게 녹록한 줄 아는가! 나도 내 돈이었으면 아낌없이 썼어!"
"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누가 그걸 몰라?"
"아무튼 하수영 의원사무실 사무총장으로서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식비 지출을 할 순 없네. 인당 20만 원짜리 초밥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럼?"
"인당 2만 원짜리로 타협해. 오늘만 식사하고 말 거 아니잖나."
의원사무실 공금카드를 쥐고 있는 '최우석 사무총장'의 결정에 다들 구시렁거리면서 따랐다.
노인들과 사무실 직원 포함,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100명 넘게 상주하다 보니, 식비로 나가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게다가 유권자 노인들 입이 어디 보통 고급인가?
그들 입맛에 최소한 맞는 음식을 선별하다 보면, 자연히 식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물론 그 덕분에 의원사무실 직원들은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그때 개량한복을 입은 노인 한 명이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다들 왜 여기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어?"
"아, 밥 먹어야지. 곧 저녁인데."
"뭐야? 설마 다들 아직도 안 가본 거야?"
"가긴 어딜 가?"
뜬금없는 말에 최우석은 물론이고 노인들도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량한복 노인, 박달재는 답답하다.
는 듯이 가슴을 쳤다.
"아니, 오늘 수영마트 개점일인데다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가서 하나라도 물건 팔아줄 생각 안 해?"
"뭐야, 그게 오늘이었어? 다음 주가 아니라?"
"최 사무총장! 오늘 저녁은 우리 배달시키지 말고 마트 가서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이웃된 도리지. 다들 일어나세나. 아, 직원들은 그냥 여기서 밥먹고 퇴근하라고 해."
노인들이 자리를 털고 주섬주섬 일어나자 의원사무실 직원들도 얼른 말했다.
"어르신들, 아닙니다. 저희도 얼른 수영의원님 마트 가봐야지요."
"됐어. 공과 사는 확실해야지. 그런데 의원사무실 직원들 끌고 오면 구의회에서도 이런저런 말만 나와."
"암, 요즘 유권자들이 그런 의원사무실 갑질 별로 안 좋아해. 우리 공과 사는 확실히 하자고."
최우석은 선임보좌관에게 의원사무실 살림살이 카드를 내어 주었다.
"오늘은 저녁 이걸로 대강 시켜먹고 퇴근들 해. 아니면 퇴근해서 다 같이 회식하든가. 카드는 내일 반납하고."
"예, 부의장. 사무총장님."
최우석은 구의회 최다선의원이자 구의회 부의장이지만, 이 사무실에서는 사무총장이라는 직위를 만족한다.
사실 그의 의원사무실도 하수영의원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상황이지만…….
"이제야 우리 청담동에도 좀 쓸 만한 대형마트가 들어오는군."
"맞아, 무슨 명품 사옥, 전시관, 딴따라 기획사들 같은 거밖에 없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주민들이 살기에 얼마나 불편했는데."
"원래 라테마트 있던 거 인수해서 개조한 거라지?"
"맞네. 라테마트는 주차장만 그럴싸하게 지어놓고 물품은 별로 안 들여놔서 막상 차 끌고 가도 살 게 없었는데, 수영마트는 괜찮겠지?"
"나중에 우리 하의원이 백화점 같은 것도 하나 들어오도록 힘써 줬으면 좋겠는데. 요즘 뉴월드와 백두백화점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내가 기대하고 있어."
"그냥 뉴월드 강남점이나 가."
"거기 근처만 가도 차 막혀서 혈압오른다고, 안 그래도 지금 혈압 잘 안 잡혀서 고생인데."
"혈압이 잘 안 잡히면 엘릭서 드링크를 먹어야지. 그게 고혈압에 그렇게 좋대."
노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영마트로 향했다.
의원사무실이 있는 휴민트타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노인들은 설렁설렁 걸어갔다.
노인들은 다 같이 있을 때, 걸을만한 거리는 웬만하면 직접 걷는 편이다.
수십이 어울려서 담소를 나누면서 걷는 재미도 있고, 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운동하겠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 저건가 본데?"
"오, 외관은 괜찮은데?"
보석전문 명품 브랜드 사옥을 방불게 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에, 노인들은 만족한 반응을 보였다.
「수 영 마 트」
"난 간판이 가장 마음에 들어. 글씨체에 아주 힘이 팍팍 들어가 있어."
"아주 그냥 글씨체가 간판을 뚫고 나와 하늘로 솟구질 듯한 웅심이 담겨 있네그려."
"글씨가 아니라 한 마리 용이 간판에 박혀 있구먼."
노인들은 웃고 떠들며, 웬만한 사람들은 접근조차 부담스러울 거 같은 위용을 뿜어내는 대리석 정문을 통과했다.
"우리 하수영 의원이 마트 단장에 돈을 좀 썼구먼."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청담 대형할인마트라고 할 수 있지."
"아니, 없어 보이게 무슨 할인을 찾고 그래? 여기가 어디야? 청담동이야, 청담동!"
"우리 연씨는 아직 돈이 덜 있어 봤구먼, 원래 있는 사람들이 공짜, 할인 더 좋아하는 이야."
"암, 그렇지. 남보다 더 많이 사는데 당연히 할인 더 많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자동문을 통과해서 마트에 들어서 자, 정장을 입은 안내원이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오픈일이라서 프리미엄 회원권 할인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혹시 한 번 보시겠습니까?"
"회원권? 마트에 그런 게 있어?"
"아, 골프도 회원권이 있는데 마트가 왜 회원권이 없어."
"저희 마트는 회원권을 크게 실버와 골드로 나누어서 판매하고 있는데요. 실버 같은 경우는……."
안내원은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채 회원권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처럼 물품 구매 시 다양한 할인 혜택과 주차 시 발렛파킹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고, 마트 내부에 있는 다양한 문화시설을 미리 예약해서 이용하실수도있습니다."
카페와 TV시청룸 등 마트에 존재하는 다양한 휴게장소는 당연히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문화시설은 회원권을 가진 고객들을 위해, 30%의 자리는 항상 남겨둔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남겨놓은 예비석은 오로지 회원권을 구매한 고객들만 이용할 수 있다.
"나쁘지 않네. 그래서 얼마인가?"
"예, 실버회원권의 1년 구매가는 10억 원, 골드회원권의 1년 구매가는 100억 원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안내원은 조금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노인들이 크게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VIP전용 골프회원권도 그렇게는 안 나가는데, 무슨 마트회원권이 그렇게 비싸?"
"가격은 마트주께서 결정을 하신 거다 보니……."
"하수영 의원, 정말 대단한데, 아주 통이 커."
"이건 그냥 회원권 살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림 속의 떡이나 잡수라는 말이잖아?"
누가 봐도 타당한 해석이다.
'우리는 이렇게 비싼 회원권을 운영하고 있어! 하지만 팔 생각은 없어! 그냥 재미로 운영만 하는 거야! 하하! 회원권 사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꿈 깨! 우리도 팔릴 거라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거든!'
애초부터 팔릴 거라는 기대없이 만든, 과시용 서비스 회원권.
하수영의 그런 의도가 팍팍 느껴지지 않는가?
이쯤 되자 노인들은 괜히 오기가 생겼다.
거듭 말하지만 이들 중에서 자산이 1,000억 밑을 도는 이들은 없다.
"그거 실버 등급 사면 할인을 얼마나 해주는데?"
"이씨, 진짜 사려고? 아니, 할인 좀 해주고 발렛파킹 좀 해준다고 10억씩이나 주고 마트회원권을 산단 말이야?"
"실버 등급은 상시 5% 할인이 적용됩니다. 모든 할인행사와 당연히 중복해서 적용되고요. 골드 등급은 상시 8% 할인이 적용됩니다."
"10억이나 내는데 그거밖에 할인을 안 해준다고?"
"네, 그렇지만 물품 구매시 회원권 구매금액 10억 원에서 구매비가 차감되는 방식입니다. 남은 금액은 다음 해로 넘어가지만, 할인 등 회원혜택을 더 이상 누리실 수 없습니다."
노인들은 그제야 회원권의 운영 방식을 이해했다.
"결국 10억 원어치를 선불로 내고 할인 받아가면서 구매하라는 말이군."
"할인, 발렛파킹, 시설이용우선권이 덤으로 붙고 말이야."
"일 년 안에 10억 원 다 못 쓰면 회원 혜택만 사라지는 거고, 돈은 그대로 남아 있고."
"뭐야, 그럼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개량한복 노인, 박달재가 혀를 찼다.
"이 사람들아. 여기가 백화점이야? 마트라고, 마트, 칫솔하고 소고기 사서 언제 일 년 만에 10억 원을 다 쓰겠다는 거야? 그거 반의반도 다 못 쓸걸?"
"아차, 그러네."
"그냥 다들 예치금 미리 넣어두고 평생 마트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이보소, 안내원 아가씨. 나는 실버 등급으로 하나 구매하겠소."
"나도 실버 등급으로 하나 주시오."
"나도, 나도."
"이 사람들아, 줄을 서야지. 안내아가씨가 지금 난처해하잖아."
수십 명의 노인들은 착실하게 줄을 서서, 회원권 구매성약서를 작성했다.
줄을 서 있던 박달재 노인이 문득 중얼거렸다.
"동네마트에서 10억이라…… 내가 죽기 전에는 다 써볼 수 있을까?"
"상속하면 되지. 근데 이런 것도 세금 붙나?"
"국세청을 무시하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