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30화
80장 동네마트는 디폴트(2)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지점장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필사적으로 뇌 회로를 가동했다.
마트에서 일하는 일반 직원들이야 라테그룹에 대한 소속감이 희박한, 철새 같은 직원들이다.
마트를 정리하거나 통폐합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잘려 나가는 비정규직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엄연히 라테유통 소속 정직원이다. 라테유통에서만 수십 년을 일했다.
문제는 라데마트 청담동 지점이 없어진 이상, 자신이 갈 곳도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정상적인 승진이라면 유통본사에서 다른 자리로 영전되겠지만, '라테마트 청담점'은 어쨌든 폐점을 맞이했으니,
"저는 라테유통 직원이기 이전에 여기 마트 지점장이라고 감히 자부 합니다. 이 마트에서만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마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마트를 떠난적이 없습니다."
"흐음, 그러신가요."
하수영이팔짱을끼며 생각에 잠기자 지점장은 애가 타서 말을 이었다.
"저를 고용해 주신다면 마트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겠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매년 적자만 나오도록 방지했나요?"
"그, 그것은……."
"농담입니다. 마트의 탄생 구조와 배경부터가 이미 적자가 예정된 상황인데, 그걸 일반 직원 탓으로 돌릴 순 없지요. 알겠습니다. 지점장님도 고용승계하죠. 대신, 이제 더 이상 라테유통 직원이 아니니만큼 '청담동 스타일'을 따라주셔야합니다.
아시겠어요?"
"무,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지점장은 기뻐서 얼른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담동 스타일이라는 게 뭐지?'라는 생각이들었다.
"뭐, 사실 앞으로도 적자는 꾸준히 이어질 겁니다. 오히려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도, 아니, 커지게 될 거예요."
"그, 그렇습니까."
"마트를 운영하는 목적은 판매이익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으니, 그 점은 염려하지 말라고 일반 직원들 다독여 주시구요."
지점장은 '역시 부동산 투자인가?'라고 생각했다.
라테유통에서도 애초에 부동산을 장기간 묵힌다는 목적으로 마트를 운영해 왔으니…….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최만식입니다!"
"좋습니다. 최만식 점장님, 이전 라테유통의 분위기나 관행은 모두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다시피 저는 젊고, 진취적이며, 변화와 개혁을 즐기는 마트주입니다. 이전의 분위기를 생각했다가는 다들 곤욕을 치르실 거라는 걸 알아주세요."
"네, 절대 잊지 않고 명심하겠습니다. 직원들 관리도 더 주의를 기울 이겠습니다."
"일단 마트 내부와 인테리어를 전면적으로 갈아엎을 겁니다. 직원들 월급은 그대로 나갑니다. 관리직 이상은 매일 출근해서 마트 개조 상황을 체크하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마트 개조를 맡을 업체부터 수소문해 주세요. 비용은 상관없지만 일을 '정말 잘하는' 업체로 골라 주셔야 합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최고로 일을 잘하는 업체로 골라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정든 라테유통을 떠나게 되었지만 최만식 점장은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본사로 돌아가 봤자 벽 보고 책상만 지키면서 잘릴 날만 기다릴 신세 아닌가.
며칠 후,
최만식 점장은 마트 개조를 맡을 시공업체 사장을 데리고 나타났다.
"여기 설계입니다. 이대로 해주실 수 있나요?"
하수영이 노트북을 돌려서 보여주자 시공업체 사장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설계를 이미 했다고?'
설계비용이 빠져나가는 게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작은 공사에서 설계 따로, 시공 따로 하는 경우는 과정이나 끝이 좋지 않다.
클라이언트가 어떻게든 시공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다른 곳에서 저렴한 설계를 가져온 경우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공 중에 설계에 문제점이 발견되는 경우가 빈번하고, 시공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며, 클라이언트의 잦은 갈등이생길 수밖에 없다.
'이 건은 거절해야겠네.'
그렇다고 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바로 거절하면 클라이언트의 심기가 너무 상하게 된다. 또 자신을 선정한 최만식 점장의 면을 볼 낯도 없어지고…….
그래서 거절 명분을 찾으려고 대강설계를 살피던 도중 시공업체 사장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잘 만들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비용 절감을 쥐어 짜 내려고 대강 만든 설계가 아니었다.
고도로 숙련된 설계기술자가 마트의 효율화를 위해 동선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배치해 만든 설계라는 게 보였다.
"비용은 아끼지 말고 자재도 좋은 것으로만 팍팍 써주세요."
"……저한테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으시고 그냥 계약하는 겁니까?"
"네, 최만식 점장님의 선별안을 믿습니다."
그 말에 최만식 점장의 표정에 감동이 잔뜩 떠올랐다.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다만 공사에 어떤 하자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비용 충분히, 합리적으로 지불하는 만큼 그 점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돈 걱정 없이 짓는 건데 설마 소홀히 하겠습니까."
시공업체 사장이 자신 있다는 듯이 가슴을 팡팡 쳤고, 옆에서 최만식 점장이 얼른 거들었다.
"김 사장. 우리 회장님, 마트는 취미로 하시는 거고 본업은 따로 있어요."
"아, 물론 그렇겠지요. 딱 봐도 회장님 용안에 귀한 기운이줄줄 흐르는 거 알아봤습니다."
"강남구의회 지역구 의원이에요. 지역구는 바로 여기 청담동이고요."
그 말에 시공업체 사장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최만식은 거듭 말했다.
"그러니 문제없이 시공해야 합니다. 더 말 안 해도…… 알죠?"
"무, 물론입니다. 절대 문제없도록 성심을 다해서 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입안의 혀처럼 굴어줄 때가 너무 편하고 좋다.
하수영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공사 잘 부탁합니다."
마트는 곧바로 내부, 외부 공사에 들어갔다.
재건축이나 골격을 뜯어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내부단장만 새로 하는 것이기에, 공사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마트 관리직원들은 공사 기간 중에도 빠짐없이 출근하며 공사 진행 현황을 살피고, 실시간 피드백을 주었다.
공사 중에는 나올 필요가 없는, 유급휴가 중인 일반 직원들도 틈틈이 나와서 공사 과정을 살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데다가, 급여 100% 수준의 유급휴가를 받았기에 그들은 새 마트주에 대한 호의가 가득 차 있었다.
"뭔가 엄청 뜯어고치고 있는데?"
"근데 진열대 공간을 너무 줄인 거 아니야? 저래서야 물품을 많이 채워 넣지도 못할 텐데."
"그래도 통로가 넓어진 것은 좋네. 이러면 손님들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을 것 같아."
진열대 공간을 줄이고 대신 통행공간을 넓혔다.
언뜻 보기에는 마트가 아니라 백화점, 그것도 명품관 로비를 보는 듯한 공간감을 부여했다.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 육고기를 파는 공간도 당연히 마련했다.
코너는 투명한 유리벽으로 공기 순환을 차단하고, 따로 자동유리문을 설치했다.
"근데 저건 뭐죠? 처음 보는 건데."
"아, 저건 음압 장치입니다. 여기 해산물 정육코너의 실내 공기압을 음압으로 유지시켜 주는 거죠. 그래서 안에 있는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아, 나 들어본 적 있어. 이거 대형병원 같은 곳에나 있는 거 아니에요? 위험한 전염병 환자들 격리시키는……."
"네, 맞습니다."
"아니, 겨우 비린내와 고기 냄새잡자고 이 비싼 걸 마트에 설치한다고요?"
"저희도 이해가 안 가지만 마트주 선택이라고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이런 건 얼마나 해요? 비쌀 거 같은데."
"여기 해산물정육 코너 음압 기능 넣는 비용만 한 6억은 들었을 겁니다."
"……."
직원들의 놀라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상에, 여기 마트 안에 카페라도 차리는 건가요?"
"네, 스톰벅스가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프랜차이즈 카페지만 운영하기에는 편리해서 청담분점을 내기로 했습니다. 스톰벅스 청담점에서 보조적으로 운영하는 거죠."
"대체 마트에 이런 게 왜 필요한 거죠?"
"그야 마트주가 원하시니까……."
"……."
시공업제 직원도 허허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헉! 이 TV는 대체 몇 인치입니까? 이렇게 큰 TV는 진짜 처음 보는데요."
"8K 110인치 모델입니다. TV값만 1억 8,000만 원인가 하던데, 원래 팔려고 만든 게 아니고 기술력 자랑하려고 만드는 거라서 부자들이나 간간이 주문한대요."
"아니, 마트에 이런 TV가 대체 왜 필요해요?"
"보다시피 여기는 장 보다가 피곤해진 손님들이 잠시 편안하게 TV 시청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보
"그러니까 왜 이런 초고가품 TV를 갖다 두냐고요? 이것도 우리 회장님 선택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심지어 휴식공간은 세 군데로 분리되어 있다. 즉 110인치 TV만 3대라는 소리다.
휴식공간 내부는 방음유리벽으로 분리가 되어 있고 자동문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옆방 TV 소리에 방해받지 말고 쾌적하게 시청을 즐기라는 배려에서 유리벽으로 격리를 해놓을 겁니다."
"……."
한편 상품 진열대 하단에는 자그마한 터치 버튼이 일일이 설치돼 있었다.
"여기 진열대 있는 이 버튼들은 다 뭐죠?"
"원하는 상품의 종류와 개수를 선택해서 입력하는 버튼입니다. 선택한 상품들을 마트 컴퓨터에 전송해서 포장을 해주는 거죠. 물론 배송도 가능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
"직접 바구니나 카트에 담아도 되지만, 그게 귀찮은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전자 장바구니에 골라 담아서 포장을 받아가든, 배송을 받는 선택을 하게 해주자는 취지…… 라는 게 마트주의 생각입니다."
"……."
"상품 다 고르고 포장되는 동안 휴게실이나 카페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도 되고, 바로 집으로 배송시켜도 되는 거지요."
직원들은 바로 공사현장을 감시 중인 최만식 점장에게 달려가서 물었다.
"점장님, 이렇게 해서 우리 마트, 남기는 남아요?"
"이거 공사비용 회수는커녕 적자만 더 늘어나는 거 아니에요?"
보니까 상품진열 공간은 반의반도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여기가 마트예요, 문화센터공간이에요?"
"쉬거나 놀러 오는 김에 생필품이나 고기, 해산물 같은 것도 좀 사가라는 뭐 그런 의미인가요?"
"아까 들었는데 진짜 마트 바닥 전부 다 대리석으로 깔아서 마감한다는 게 사실이에요?"
최만식 점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 자네들 청담동 스타일 몰라?"
"……."
"우리가 지금까지 말만 청담동 마트였지, 스타일은 동대문 쪽이었다고, 회장님 취향이 이렇게 확고하면서도 고결하시니, 이제야 청담동 마트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내부 모습을 갖추게 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마트를 무슨 고급 전시 하우스로 만들어 놓는 것은……."
"그래도 일반 마트에서 취급하는 것들은 남김없이 취급하니까 괜찮아. 듣기로는 일반 마트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들까지도 취급한다고 하더라고"
***
마트 내외부 개조시공이 드디어 끝났다.
신장 오픈을 준비하기 위해 드디어 정식으로 출근한 직원들은, 마트 입구에서부터 발걸음이 굳어버렸다.
은은한 반짝임을 고급스럽게 뿜어내는, 옅은 블루컬러 대리석으로 치장한 마트 외관은, 이전의 라테마트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청담동 명품거리 의류브랜드사옥을 연상케 하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외관, 그리고 마트 간판.
화려한 외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촌스럽다 싶을 정도로까지 느껴지는, '궁서체'로금지막하게 박힌 마트 간판이 기묘한 카리스마를 당당히 내고 있었다.
「수 영 마 트」
"왜, 때문에, 궁서체냐고……."
"저거 하나가 너무 옥에 티잖아. 외관은 저렇게 명품 의류 사옥처럼 지어놓고는……."
"……근데 이상하게 어울리네. 눈이 떨어지지가 않아. 혹시 나만 그래?"
"어, 너도?"
"야, 나두, 나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