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28화
79 장 테라리움을 위하여 (4)
하수영.
소유주가 하수영 혼자인 유한회사 부동산임대법인 이름이다.
법인 이름도 하수영, 대표이사 이름도 하수영, 오너 이름도 하수영..
소유권 이전을 마침으로써, 이제 준공 중인 수영청담타워(구 아트락부지)는 하수영 명의가 되었다.
"토지대장을 촤르륵 넘겼을 때 하수영이란 이름이 딱딱 뜨는 게 말이야, 얼마나 멋있는 건데."
-아들아, 그래서 수련은 대체 언제할 거니?
"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번에 보셨잖아요? 이제 저 말 한마디로 1톤짜리 바위도 들어 올립니다."
-천지창조도 가능한 신어 권능을 가지고 한다는 게 고작 바위놀이라니…… 이 애비는 속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10조 분의 1밖에 안 되는 재능이라 그래요. 1조 분의 1만 됐어도 얼마나 좋아. 근데 오늘은 옛날 신화시대 이야기 안 들려주세요?"
-네 녀석이 자장가로 삼는 거 다 알고 있다!
"아닌데, 정말 열심히 흥미롭게 귀담아듣고 있는데요. 근데 우리 다음 수업 코스는 언제 들어가나요?"
-신어도 제대로 수련하지 않는 녀석이 뭐가 이쁘다고 벌써 다음 공부를 시작해?
"그러니까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니까 그러시네요."
영구결번이었던 4호기, 아트락 부지를 되찾은 하수영은 가만히 숨만 쉬어도 기분이 좋았다.
어디 그뿐인가.
뉴월드그룹에서 알아서 '수영청담타워'까지 올려주고, 지속적으로 운영관리까지도 해준단다.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고.
"나도 받은 게 있으니 뭐 하나는 베풀어줘야지."
하수영은 전성렬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어, 하 사장. 이야기는 들었어.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어린 아들을 다시 찾아낸 기분이에요."
-난 다른 것보다 스톰벅스 커피생두 공급권을 따낸 게 가장 큰 거 같아.
"에이, 스톰벅스 국내 매출이라고 해봐야 일 년에 2조 원도 안 돼요. 생두 가격 받아봤자 한 1,000억이나 하려나요?"
-어, 그 정도밖에 안 되나?
"그럼요. 물론 수영표 원두를 쓰는 만큼 매출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오를 겁니다. 한 잔만 먹던 사람들도 두 잔, 세 잔씩 먹게 될 테니까요."
-커피를 그리 많이 먹으면 건강 해치는 거 아니야?
"수영표 원두로 만든 커피는 많이 먹어도 탈이 안 납니다. 잠을 잘 쫓는 효과가 있지만, 막상 잠을 청하면 숙면을 유도하는 효과도있고요."
-대체 우리 하 사장은 작물 키울 때 비료로 뭘 주는 건가?
"불로불사가 되는 전설의 영약을 희석해서 뿌려줘요. 그럼 작물이 빨리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고 여러가지 건강에 좋은 효과도 생겨요."
-농작물 효능 같은 거 보면 정말 그런 영약 먹여서 키우는 거 같다니까.
하수영은 진실을 말했지만, 전성렬은 당연히 농담을 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라테그룹에 한 방 먹이려던 게 뉴월드에 뺏긴 청담동 부지 회사까지 이르렀구만, 이런 거 보면 나비효과라는 말이 실감이 난단 말이지.
"저도 여기까지 매듭이 풀릴 줄은 몰랐네요. 정서희 부사장님의 재치 있는 아이디어 도움이 컸습니다. 아 참."
-왜, 할 말 있어?
"뉴월드가 피눈물을 머금고 4호기 부지를 넘기고 또 수영청담타워까지 마저 지어주고 관리까지도 해준다는 데, 신임 건축주로서 너무 고맙잖아요."
-뭐야, 수영청담타워로 이름을 확정하기로 한 건가?
"그것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튼 뉴월드에 고마워서, 어떻게 하려고? 뭐라도 하나 좀 해주게?
"뉴월드마트 한정으로 2주일 정도 황비라면 1+1 행사 열어주는 게 어때요? 사은품은 우리 회사가 부담하는 것으로 하고요."
-뉴월드마트에서 좋아하겠군, 나야 85% 대주주가 권고하면 그대로 따라야지. 인사권을 쥔 양반인데.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알았네. 통보는 자네가 할 거지?
"당연히 이런 건 제가 해야죠. 그래야 좀 고맙다는 말도 듣고 그럴 거 아닙니까."
-근데 황태진 부회장하고 통화해본 적은 있나?
"통화해 본 적은 없고, 계약할 때 잠깐 얼굴은 봤습니다. 같이 왔던 박태규 전무, 그 사람한테 전화하려고요."
-알았네.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다시 박태규 전무에게 연락을 취했다.
-네, 뉴월드 박태규 전무입니다.
"안녕하세요, 하수영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박태규 전무는 살짝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며칠 전에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서로 바쁘기도 했고요."
-아닙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프라임컴퍼니에서 2주일 정도 뉴월드마트 한정해서 증정행사를 해보려고요. 황비버섯라면 1+1 행사 어떠세요? 사은품 비용은 우리 부담으로 하겠습니다."
-아, 정말이십니까?
박태규 전무는 반색했다.
증정행사를 하면 당연히 매출이늘어난다. 사은품을 제조사가 온전히 부담한다고 하니, 뉴월드마트는 매출과 인지도 증가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그럼요. 우리 프라임과 뉴월드도 이제 반쯤은 한 울타리 안에 들어온 거 아닙니까.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니 부담 없이 받으시죠."
-배려 감사합니다.
***
라테백화점 매출은 완전히 박살 났다.
백화점 명품관은 이제 손님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가장 큰 돈줄인 명품관 VIP 손님들이 뉴월드와 백두로 우르르 빠져나간 탓이다.
백화점 사장 진세호는 매출의 19% 수수료라는 비장의 카드까지 던진 채로, 하수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하수영 vs 뉴월드백화점 vs 백두백화점 3자간 독점공급계약' 이었다.
진세호 사장은 눈을 부릅뜬 채 보고서를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이게 사실인가?"
"예, 사장님, 수영농장은 5년간 뉴월드와 백두백화점에만 머쉬룸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5년마다 갱신하는 조건입니다."
"수수료는 매출 9%라고?"
"네, 그렇습니다. 이미 경영공시가 된 내용입니다."
공시까지 했다면 계약 내용은 사실이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공시 내용에 섣불리 장난질을 칠 순 없을테니,
"우리는 19%를 약속했어, 그렇지?"
"맞습니다."
"그 둘을 합쳐봐야 18%, 그리고 원래 우리 백화점 점유율이 가장 높았고,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정상이야. 그게 이득이니까,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날 갔다는 것은…… 우리 백화점, 아니, 우리 라테그룹이 꼴 보기 싫다는 거야. 안 그런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세호는 병상에 누워 있는 조카, 진석현을 떠올렸다.
평생 침대 신세를 져야 하고 자손도 못 가진다고 하지만, 가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가 바드득 갈렸다.
"그 새끼 그거…… 그러게 내가 술먹고 운전대 좀 작작 잡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따지고 보면 라테백화점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모두 진석현 그놈이 음주운전 사고를 냈기 때문 아닌가.
그놈만 아니었어도 하수영과 이렇게 악연으로 얽힌 일은 애초에 없었는데.
***
특급 병실.
진석현이 입원해 있는 병실이었다.
호텔 스위트룸을 방불케 하는 넓은 응접실과 손님용 방까지 딸린 병실 침대에 진석현이 멍한 눈을 한 채 누워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걸 봐서는 잠을 자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진세호는 조용히 다가가서 머리맡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좀 어떠냐?"
"……삼촌."
그제야 진석현이 휑한 눈으로 진세호를 돌아봤다.
"세영이가 헤어지재요."
"세영이는 또 누구냐? 아이돌? 가수? 모델?"
"……."
진세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이 녀석이 가장 절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것? 자손을 볼 수 없다는 것? 아니면 젊고 예쁜 여자들과 더 이상 놀아날 수 없다는 것?
아마 세 번째이지 싶다.
술과 여자라면 그렇게 사족을 못쓰던 놈이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죽거나 식물인간이 안 된 게 어디냐. 비록 걷지는 못해도 팔은 멀쩡히 쓸 수 있으니, 일단 살아난 것에 감사하거라."
"어,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
"매몰차다고? 내가?"
진세호는 픽 하고 비웃음을지었고, 그제야 진석현은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 표정이 굳었다.
"너 하나 때문에 지금 백화점 사업이 날아가게 생겼어. 알고는 있는 거냐?"
"네? 제가 뭘 했다고 그, 그러세요?"
"네가 사고 낸 그 친구, 하수영 의원 말이다."
"의원? 정치인이었어요?"
"전혀 몰랐나 보네. 아무도 설명안 해주더냐?"
"……."
침묵은 긍정이다.
진세호는 조금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그 친구도 유통 쪽에서 한 끗발 하던 친구다. 강남구 의원이기도 하고, 배경도 만만치 않아. 지금 그 친구 때문에 백화점 사업이 날아가게 생겼어."
"피해자는 전데 어, 어째서요?"
"형님이 네 복수한답시고 칼 갈고 있다가 오히려 그 친구가 먼저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이리됐다."
진석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 한창 돈을 펑펑 쓰면 놀기 바쁜 그에게 백화점 사업 붕괴라는 책임은,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었다.
묵묵히 바라보던 진세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왜 찾아왔을 거 같으냐?"
"……모르겠어요."
"그 친구 찾아가서 사과해."
"제가요? 저는 피해자라고요! 평생 걷지도 못하고 여자하고 그것도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요!"
"이 새끼가 어디서 삼촌 앞에서 여자 그것 지랄하고 있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같으니!"
진세호가 묵직한 음성으로 호통을 치자 진석현은 찔끔해서 움츠러들었다.
"됐고, 방법은 하나뿐이다. 네가 그친구 찾아가서 사과하는 거. 아니면 내가 그 친구를 여기로 불러올까?"
"저, 전 사과 못 해요! 그놈 때문에 제가 이 꼴이 됐는데 제가 왜 사과를 해요!"
"그럼 할 수 없지. 아버지께 모든 걸 사실 그대로 말하는 수밖에."
"하, 할아버지께요?"
"그래. 형님이 너 이리된 거 복수하려다가 오히려 역공당해서 백화점 날아가게 생겼다고. 그럼 아버지도 후계자 생각을 달리하시겠지."
진석현의 손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철부지 재벌 3세이지만, 자신의 부귀영화가 어디에서 들어오는지는 안다.
장손인 아버지가 후계자에서 밀려난다면, 자신의 미래 역시 지금보다 질이 떨어지게 된다.
"사과할 테냐, 말 테냐?"
"……."
"네가 사과한다면 아버지께 간언하는 것은 내가 보류해 보마. 어쩔래?"
"……."
이번 침묵은 명백한 거절이었다.
아니, 거절이라기보다는 책임 회피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진세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눈으로 진석현을 가만히 쏘아보았다.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
"생각이 바꾸면 연락해라. 다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알아둬라."
진세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기대를 품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녀석의 꼬라지가 어떤지 눈으로 확인하고, 울화통이나 한번 터뜨리려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답답한 꼴을 보니, 오히려 자신의 속만 터지게 생겼다.
병원을 나선 진세호는 그대로 부친, 진철진 회장을 찾아갔다.
"뭐라고? 백화점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예, 아버지. 형님이 검찰을 움직여서 보복을 준비 중이라는 걸 눈치채고, 그쪽에서 먼저 선공을 취했습니다."
보복 지시는 원래 진철진 회장 선에서 떨어진 것이다. 아끼던 장손이 불구가 된 것 때문에 진철진 회장은 눈이 뒤집어졌으니까.
하지만 진세호는 부친의 책임은 모르는 척 제외하고, 친형 탓으로 교묘하게 화제를 몰아갔다.
"이미 VIP 중 99%는 뉴월드와 백두로 건너갔습니다. 이대로는 백화사업을 우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보복을 준비하다가, 애꿎은 백화점 사업만 타격을 입은 겁니다."
"크흠……."
"아버지. 상대는 정유업계에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뭐? 정유까지?"
"네, 실질적인 정유 1위나 마찬가지입니다. 백화점 다음은 일본 정유유통이 될수도 있습니다."
라테그룹은 국내 정유사들이생산한 질 좋은 기름을 일본에 갖다 파는 일도 한다. 백화점에서 그치지 않고 정유유통까지 피해가 올 수도 있다.
"백화점은 못 살리더라도, 여기서 끊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님이 수습하는 게 옳습니다."
진세호는 끝까지 부친은 책임에서 제외시킨 채, 친형 진태호한테만 모든 것을 떠넘겼다.
"어떻게 말이냐? 태호 녀석이 찾아가서 석고대죄라도 하란 말이냐?"
"혼자 가면 안 됩니다. 석현이 데리고 찾아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