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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27화 (327/1,270)

프랜차이즈 갓 327화

79장 테라리움을 위하여 (3)

"수영농가에서 생두를 공급하기로 했답니다."

순간 황태진은 멈칫했다.

지금 귀에 익은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영농가? 거기가……."

박태규 전무는 부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예, 이번에 황세라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수영농가입니다."

황태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기고 말았다.

"젠장, 지금 청담동 아트락 타운 부지를 원한다던 그 농가 말하는 거지?"

"예, 맞습니다."

"그 농장에서 커피나무도 키웠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스톰벅스와 이미 계약을 한 걸 보면 틀림없는 거 같습니다. 스톰벅스는 모든 농장을 직접 방문해서 실사한 뒤 생두 공급 계약을 맺습니다."

"우리나라 물량의 70%를 공급한다고?"

"예, 말이 70%지, 일단 그렇게 시작한 다음에 전량 공급으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거, 우리가 곤란해진 거 맞지?"

"그런 거 같습니다."

박태규 전무와 황태진 부회장은 바보는 아니었다.

커피 공급 계약이 향후 뉴월드마트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점칠 정도는 되었다.

"수영농장이 스톰벅스 원두공급을 독점하게 되면 아트락 부지를 놓고 우리와의 사이가 애매해집니다."

박태규 전무는 대놓고 그 점을 언급했다.

"하수영 의원이 아트락 부지를 간절히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아트락 부지를 노리고 스톰벅스와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시기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생두 공급은 아마 그와는 별개로 이전부터 추진했을 겁니다."

황세라의 협상 시도가 무산으로 돌아간 다음, 바로 커피나무 재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젠장, 박 전무. 이거 어떻게 해야 될 거 같은가?"

"스톰벅스 국내사업권 갱신이 1년 뒤입니다. 만약 수영농장이 국내 생두 공급을 독점하고 스톰벅스에 사업자 변경 압력을 넣는다면, 우리 입장이 골치 아파집니다."

스톰벅스 한국 영업은 '주식회사 스톰벅스 코리아'에서 운영한다.

스톰벅스와 뉴월드마트가 지분을 50 대 50으로 보유한 비상장 유한회사이지만, 경우에 따라 스톰벅스는 뉴월드가 보유한 지분 매입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설마 생두 하나 때문에 스톰벅스가 그렇게까지 나오겠어? 지금까지 국내 사업 아무 문제 없이 잘만 해왔잖아?"

"그래도 수영농장의 의지가 어떤지는 분명히 확인해 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야지. 스톰벅스를 인질로 삼아서 아트락 부지를 노릴 건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아봐."

"예, 부회장님."

잠시 자리를 비켜난 박태규 전무는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타났다.

곤혹스러움이 묻어나는 표정에 황태진은 아차 싶었다.

"뭐라고 하던가?"

"프라임컴퍼니 정서희 부사장을 통해 슬쩍 알아봤습니다. 아트락 부지를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눈치입니다."

"그래?"

"네, 스톰벅스를 슬쩍 언급했는데 나중에는 아시아 전체 생두 공급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아까지? 그만한 물량을 우리나라 농가가 감당할 수 있나?"

"수영농가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농산물 물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 그 정도 면적에서 그만한 물량을 재배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할 정도입니다."

황태진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스톰벅스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그룹의 미래가 걸린 사업이다.

그런데 하수영이국내 생두를 전량공급하게 된다면, 자신과의 사이가 애매해진다.

보통은 납품받는 쪽이 갑이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굳이 수영농장을 선택했다는 것은 스톰벅스 입장에서 미국산 원두를 운송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수영농장에서 커피를 납품받는 상황이지만, 스톰벅스 실사팀에서 커피의 품질에 무척 만족했다고 합니다. 수영농장 측에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고, 생두 구매 가격도 이미 선불로 지급한 상황이랍니다."

황태진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갑갑한 기분이 들어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창밖을 내다 보던 그는 별안간 등을 획 돌려 박태규 전무를 쏘아보았다.

"박 전무, 프라임컴퍼니에서 우리 뉴월드마트에 식료품 공급을 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황비버섯라면이 국내에서만 월 6억 개 이상 팔립니다. 연 매출로 보면 11조 원 이상입니다. 그중 2조원어치가 우리 뉴월드마트를 통해 팔리고 있습니다."

"우리 마트 작년 매출이 얼마였지?"

"20조 3, 150억 원이었습니다."

황태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뭐 라면 하나가 올려주는 매출이 마트 전체의 10%에 달하지 않는가.

"황비버섯라면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주식 트랜드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나 이거 원……."

보아하니 박태규 전무가 이것저것 자세히 알아본 모양이다.

대놓고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무슨 생각으로 보고를 올리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아트락 부지를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대체 불가능의 상품을 만드는 회사를 일반적인 납품업체와 비교해서 바라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청담동 뉴월드복합센터는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릴 미래 비전이야."

"미래를 맞이하기 전에 그게 고꾸라질 수 있습니다, 부회장님."

"……."

"결심이 어려우시다면 일단 공사만이라도 중지해 놓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황태진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이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자네 말대로 일단 부지 공사는 잠시 중지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부지를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사를 계속 이어 나가면 공사대금만 소모된다. 때문에 황태진은 일단 공사 중지를 명했다.

황태진은 곧바로 임원들을 소집해서 아트락 부지 처리 논의에 들어갔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임원들은 하나같이 박태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마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이템이 바로 황비버섯라면입니다. 그게 빠져나가면 마트 매출이 대폭 줄어듭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지금 수영치킨을 마트에서 공급받아 배송판매하는 계약을 추진 중입니다. 튀김치킨은 황비버섯오일로 튀긴 치킨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건에 악영향이 끼치게 된다면……."

"수영레스토랑 배달직영점 마트 입점을 한창 논의 중인데, 수영농장과 사이가 틀어지면 무척 곤란합니다."

"다음 달부터 수영냉동참치를 납품받으려고 마트사업부에서 준비 중입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보고에 황태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우리 마트가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프라임그룹과 그리 사업으로 얽혀 있었던 건가?"

"황비버섯라면 하나만으로 이미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회사입니다."

마트사업에서 식품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

황태진은 체념하듯이 중얼거렸다.

"이것도 운명인가……."

"부회장님, 이왕 이리된 거 우리가 챙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아야 합니다."

"황세라 사장님이 백화점 지분을 나눠준다고 했습니다. 그걸 받고 부지를 양도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4,000억 원의 프리미엄이 더 낫지 않을까요?"

"현찰이야 나중에 벌면 되지만, 백화점 지분은 이 기회가 아니면 못받습니다. 황세라 사장님도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지분을 내놓기로 한 겁니다."

황대진은 결정을 내렸다.

"아트락 부지는 포기합시다."

임원들은 먼저 황세라와 다시 협상을 한 후, 이사회 의결을 받기로 했다.

***

황태진을 대신해서 박태규 전무가 황세라를 만나서 재협상을 시작했다.

"그 전에 약속한 만큼은 못 드리겠는데요."

"네? 사장님, 하지만 저번에는……."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잖아요. 저라고 스톰벅스 소식을 못 들었는 줄 아세요?"

"……."

"그리고 또, 알고 보니까 뉴월드마트가 스톰벅스 말고도 라면이니 뭐니 해서 프라임그룹과 꽤 얽혀 있던데요? 이제는 아트락 부지를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요?"

결국 처음에 약속했던 백화점 지분의 절반 정도를 받고, 아트락 부지를 하수영에게 넘기기로 협의했다.

황세라는 곧바로 정서희에게 연락했고, 정서희는 박태규 전무 앞에서 시원스러운 조건을 제시했다.

"부지를 1조 1,500억 원에 구매하셨죠? 취득세와 기타 경비, 그리고 이자율을 연 2%로 계산한 비용까지 얹어서 저희가 매입하겠습니다. 철거비용과 현재까지 부담한 공사비용도 당연히 우리가 감당하죠."

"감사합니다."

박태규는 한숨을 돌렸다.

적어도 부지 되팔기로 인해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미래 비전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백화점 지분을 얻었으니 아쉽지만 쓰린 속을 달랠 만하다.

'근데 프리미엄은 따로 안 주나?'

그간 들어간 매몰비용, 기한이익만 보전해 주고, 그것으로 끝인 것인가?

박태규는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참, 그리고 뉴월드복합센터 말인데요. 설계도와 조감도를 봤는데 비전이 괜찮던데요. 라테잠실타워를 넘어서는 초고층마천루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우리 그룹이 오래전부터 사활을 걸고 준비한 야심 찬 프로젝트였으니까요."

"시공사 세팅과 건설계획도 이미 다 세팅된 마당이고, 정지작업도 다 끝나서 이제 건물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 와서 뒤집는 건 좀 아까운 거같아요."

그 순간 박태규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느낌에, 정서희의 눈을 저도 모르게 빤히 바라봤다.

"공사 진행 자체는 뉴월드마트에서 기존 계획 그대로 맡아서 해보시겠어요?"

"그 말씀은 지금, 그러니까."

박태규는 어느새 자신의 막내딸뻘인 정서희 앞에서 손끝을 떨며 흥분하고 있었다.

"네, 복합센터를 날리는 건 아까운 거 같아서 그대로 지으려고요. 물론 이름은 수영청담타워 정도로 바꿔야겠지만요."

뉴월드마트가 부지만 넘기고 빠지는 게 아니라, 복합센터를 계속해서 짓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건축발주대행, 당연히 그에 따른 보수를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박태규가 흥분한 것은 그깟얼마 안 되는 보수가 아닌, 그 뒤에 이어질 말 때문이었다.

"복합센터가 준공되면 어차피 지속적으로 관리해 줄 주체도 필요하고요."

"그걸 저희 그룹에 맡겨주시는 겁니까?"

"네, 소유만 우리 하수영 회장님 명의로 올리고, 공사와 운영관리는 뉴월드에서 계속해 줬으면 좋겠어요."

복합센터 최종운영 관리 권한은 현찰 프리미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된다.

회사가 기획했던 미래 비전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게 아니라, '집사 자격'으로 한 발이나마 걸칠 수 있게 되었다.

"아, 참고로 주거공간은 일반분양은 안 해요. 전부 세로 돌릴 거니까 그렇게 변경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태규 전무는 막내딸뻘인 정서희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의외의 선물을 받은 황태진 부회장도 어느 정도 상실감을 떨칠 수 있었다.

***

"백화점 명의도 받았고, 부지 매입에 들어간 매몰 비용도 이자까지 챙겨서 돌려받았고, 마트에서 황비버섯라면이 빠질 우려도 없어졌고, 복합센터 운영권까지 보장받았으니…… 이 정도면 우리가 손해 본건 아니군."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득입니다. 마침 삼성동 부지에 주상복합타워를 올릴 공사대금이 부족했는데, 아트락 부지 넘기고 받은 돈을 투입하면 될 거 같습니다."

"이런 게 바로 전화위복인가? 참, 사업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갈지 알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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