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26화
79장 테라리움을 위하여(2)
하수영의 결재를 받기 전, 정서희는 국내에 들어온 스톰벅스 팔로인 이사를 만났다.
부친 정재민의 친우인 그는 사업차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들어왔다.
"어려운 발걸음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려고 했는데 직접 한국까지 들어와 주시다니요."
"안 그래도 한국에 한 번 들어오려고 했어요. 타이밍이 좋았죠. 그래, 무슨 일입니까?"
"스톰벅스에 커피 원두를 공급하고 싶습니다."
"음……."
팔로인 이사의 표정이 대번에 안좋게 변했다.
아무리 친우의 딸이라지만, 다짜고짜 너무 큰 제안을 들이대니 화가 났다기보다는 당황한 것이다.
"JM식품이 해외에 커피 농장을 갖고 있었나요?"
"JM식품이 아니라 프라임컴퍼니입니다. 작년에 출범한 종합식품회사죠. 지금은 국내 라면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입니다."
"그럼 커피 농장이……."
"국내에 있죠. 우리나라도 이제 커피를 자체적으로 재배하고 있거든요. 긴 설명보다는 일단 한 번 드셔보시죠."
정서희가 눈짓을 보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바리스타가 다가와서 원두를 직접 보여주었다.
"원두가 아주 좋군요."
팔로인은 모양이 좋은 양질 원두만 정성스럽게 골라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원두들의 모양은 예쁘장하고 균열하게 잡혔으며, 흠잡을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트, 미디엄, 다크 로스트를 한꺼번에 진행하겠습니다."
바리스타는 원두를 보여주고 난 후, 곧바로 볶기 시작했다.
팔로인 이사는 흥미로운 눈을 한 채 드립 과정을 지켜보았다.
보통 자신감이 아니고서야, 감히 자신 앞에서 직접 드립 과정을 보여주면서 커피를 접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일까.
"먼저 아메리카노입니다."
아메리카노, 스톰벅스에서 가장 잘팔리는 커피 중 하나.
팔로인 이사는 제일 먼저 나온 메뉴를 먼저 눈으로 한껏 살펴보았다.
"커피색을 보니 물 비율을 잘 맞췄군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만들어진다.
일단 색은 마음에 든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질 만큼 선명한 갈색.
팔로인 이사는 천천히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조금은 긴장되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그의 반응을 세밀히 관찰했다.
'수영농장 커피는 분명히 먹혀.'
커피 맛이라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자신의 혀도 한껏 충족시킨 맛인데.
팔로인 이사는 천천히, 끝까지 커피를 마셨다.
태연히 잔을 내려놓는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 이외의 감정이보이지 않았다.
기대했던 어떤 리액션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에, 오히려 정서희가 당황했다.
'이 사람, 혹시 지금 감기라도 걸렸을까?'
그래서 지금 맛을 제대로 감별하지 못하는 건가?
그렇게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팔로인 이사가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가 생두 구매를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실 계획이셨습니까?"
"덩크도너츠에 제안을 하려고 했지요. 스톰벅스가 부상하기 전에는 그래도 세계에서 커피 매출 1위 브랜드였잖아요. 지금도 전 세계 매출 2위구요."
"이거, 한국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큰 아쉬움을 남길 뻔했군요."
정서희의 안색이 밝아졌다.
***
하수영의 결재를 받은 정서희는 곧바로 스톰벅스와 본계약을 추진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 세계 스톰벅스 매장에 귀사의 생두를 공급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요. 얼마든지 수요 감당 가능합니다."
"제 심정도 그렇습니다. 저와 뜻을 같이하는 이사진도 상당하구요. 그러나……."
팔로인은 어두운 낯빛으로 말끝을 흐렸고, 정서희는 이어질 내용이 짐작되었다.
"전 세계 매장 생두 공급은 이사회에서 반대하나 보군요."
"우리와 계약해서 커피 생두를 공급하는 커피농가가 전 세계에 퍼져 있으니까요. 남은 계약 기간도 상당하고, 또 하루아침에 그 농장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게 하워드 회장의 방침입니다."
"이해해요."
"그리고 한 농장에만 독점적인 공급권을 줄 수는 없다는 게 안전 경영을 위한 대책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 물량을 커버 가능한지 아직 실사확인도 되지 않았고요."
"저라도 그럴 거 같습니다."
정서희는 못내 아쉬웠지만, 그런 마음이 보이지 않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비즈니스는 결국 채산성과 리스크관리를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원두라 한들 한 곳에서만 공급받으면, 만약 그 농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 뒷감당이 안 된다.
또한 한국의 작은 농장에서 커피를 키워봐야 그 양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미국 이사진들의 의심과 우려도 있고,
"그래도 제 설득이 통한 덕분에 일단 한국 스톰벅스 매장에서 원두를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한국 전 매장에 공급하는 건가요?"
"그것 역시 당장은…… 하지만 제가 장담합니다. 머지않아 한국의 모든 매장에서 귀사의 원두를 공급받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까지 귀사의 원두를 공급받으려고 아우성을 칠 겁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협의 끝에, 한국의 수요량 중에서 기본 30% 이상을 수영농가 에서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작년 한국 전체 매출이 약 1조 9,000억 원이었으니, 5,700억 원의 물량을 가져간 것이다.
물론 커피 최종소비자 가격으로 따졌을 때 5,700억 원이라는 소리지, 생두 가격이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스톰벅스 같은 초대형 커피 제국이 이만큼이나 물량을 넘겨준 것도, 팔로인 이사가 강경하게 이사회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기존 공급가 그 수준으로 하죠."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원두인데……."
"다른 커피 농장에 비해서 특별히 재배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재배단가로 따지면 거저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테라리움은 시설비는 많이 들어가지만, 운영비 자체는 거저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회계를 하려면 시설비도 결국에는 작물값에 반영을 해야겠지만…….
"올해 안에 코리아 매장 전역에서 귀사의 원두를 공급받게 될 겁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꼭 그렇게 되길 바랄게요."
"그런데 대체 어떤 환경에서 커피를 키우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맛이 나는 겁니까? 안 그래도 커피중독자인데 이제는 그 원두 맛을 못잊어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듭니다."
원래 카페인 자체가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수영농장에서 생산된 원두는 맛과 풍미는 물론이고, 그 중독성까지 강화해 버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그가는 더욱 진하고 강하게 발휘된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맛이라 그래요."
"비, 비닐하우스……."
"아, 첨단공법으로 업그레이드된 비닐하우스라서 진짜 비닐을쓰는 것은 아니고, 강화유리로 대체했어요. 나중에 실사 오실 때 한 번 보세요."
당연하겠지만, 스톰벅스는 최종 계약을 맺기 전 농장의 상태를 실제로 눈으로 확인한다.
***
얼마 후, 미국에서 농장 실사를 위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팔로인 이사는 그들을 이끌고 경기도에 있는 테라리움 농장을 방문했다.
"오, 이건……."
거대한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의 위용에 그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놀라워했다.
"이게 전부 커피농장이란 말입니까?"
"이런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장은 미국에도 없습니다. 마치 미래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농장이로군요."
"그나저나 농지 면적이 너무 작은 거같은데, 여기서 과연 필요한 수량을 생산할 수 있을까요?"
실사팀은 놀라움 반, 기대감 반의 감정을 품은 채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하수영이 손수 안내하며 설명했다.
"전부가 커피 농장은 아닙니다. 커피 작물은 일단 이곳에서만 키우고 있지요. 저쪽은 밀밭, 그리고 저쪽은 배추밭입니다."
골든 트러플, 송이버섯 농장은 테라리움 1호기에 집중되어 있어, 테라리움 2호기에 들어선 실사팀으로서는 볼 수 없었다.
두툼한 커피체리(열매)가 잔뜩 달린 커피나무의 모습에 실사팀은 살짝 질렸다.
"아니, 가지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열매가 달린다고요?"
"이렇게 열매가 많이 맺히는 커피나무는 처음봅니다. 어느 커피농장을 방문해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정도 물량이면 한국 소비량 30% 정도를 공급하는 것은 거뜬하겠는데요."
하수영이 자랑스러운 표정을 띠고 설명했다.
"지금 테라리움 추가 건조를 진행중입니다. 그 테라리움은 아예커피나무 전용 테라리움으로 세팅해서 농사를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 작업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이 넓은 농장을 설마 혼자서 관리하시는 것은 아닐테고……."
"이 농장에서 사람은 저뿐입니다."
"네? 아니, 이거 말고도 농장 건물이 더 있는 걸 봤는데, 정말 이 모든 것을 혼자서 관리하신다고요?"
"자본주의와 공학의 결합 덕분이죠. 곧 귀염둥이들의 모습이 보일겁니다."
실사팀과 팔로인 이사는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가 했다.
하지만 곧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금속 외피와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로봇들의 모습에 기겁했다.
로봇들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커피체리만 정확하게 따서 채집하고 있었다.
"아니, 저런 농장 로봇들이 개발되었단 말입니까?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허어, 이러다가 전 세계의 모든 농장주들이 작업꾼들을 대량해고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
하수영은 미소를 띤 채 친절히 설명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 로봇 같은 경우는 한 대 만드는 데 50억정도 들어갑니다. 부품값만 따졌을 때 비용입니다."
"……."
"동력원은 농장 전용 전력을 쓰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안 들지만, 아마 보통의 농장주라면 이 로봇을 쓸 바에는 사람을 고용해서 쓸 겁니다."
실사팀의 머릿속에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그럼 이 농장, 운영하면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거 아닌가?
"그럼 농장 재정 상태는 괜찮은 겁니까? 500만 불짜리 로봇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는데……."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커피 말고 다른 작물들 팔아서 이미 투자비용은 회수한 상태입니다."
팟디서플라이에 판 골든 트러플 300kg 덕분에 투자비 부담은 일절없었다.
"실사도 다 하셨으니, 그럼 최종계약을 하실까요?"
"네,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수영은 스톰벅스와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합의 내용 하나가 변경되었다.
"30%가 아니라 70%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공급 정도를 봐서 내년에는 100%로 할까 합니다."
"그럼 저야 좋죠. 그렇게 합시다."
무인농장의 위용을 확인한 실사팀의 마음이 큰폭으로움직인덕분이다.
***
"부회장님, 앞으로 스톰벅스가 우리나라 농가에서 원두를 공급받기로 했답니다."
스톰벅스 국내 유치는 황태진 부회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실적이다. 때문에 황태진은 스톰벅스에서 언제나 눈과 귀를 떼지 않았다.
"그래?"
"네, 올 하반기부터 당장 소비량의 70%를공급받기로했답니다. 내년에는 100%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그만한 능력이 되는 농장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