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25화 (325/1,270)

프랜차이즈 갓 325 화

79장 테라리움을 위하여(1)

하수영은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을 장악해서 스톰벅스, 나아가서 뉴월드마트에 타격을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서희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국내 커피 시장 점유율을 조금 깎여도, 스톰벅스는 눈 하나 깜짝 안해.'

전 세계 커피 시장을 쥐고 있는 스톰벅스, 국내 매출에서 몇천억 정도 깎여봤자 재정적으로는 타격이 거의 없다.

'하지만 수영원두가 출동하면 어떨까?'

-스톰벅스에 생원두를 납품하고 싶다고? 하수영 의원이 커피 작물도 키우고 있었어?

"하수영 테라리움에서 못 키우는 작물이 어디 있겠어요? 어쩌면 불로초 같은 것도 이미 키우고 있을지 몰라요."

그 불로초를 비료로 만들어서 일반작물한테 먹이는 낭비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테라리움…….

"제가 이미 맛봤는데, 아주 좋아요. 다른 커피와는 전혀 비교가 안 돼요. 아예 원두 자체가 다르다니까요?"

-어느 정도로 다른데? 스톰벅스이거는 매우 큰 건이다. 잘못되면 나만 팔로인 그 친구 앞에서 실없는 사람 되는 거고, 다시는 사업 이야기 못 꺼낸다.

"아버지, 스톰벅스가 커요, 나노소프트가 커요?"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당연히 나노소프트가 훨씬 크지. 근데 거기는 애초에 요식업체가 아니라 IT기업이잖아.

"평생 코딩만 파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라면도 팔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이 그동안 돈이 없어서, 아니면 뭐가 부족해서 요식업에 진출을 안 한 거라고 보세요?"

-…….

"수영 테라리움에서 나온 작물들은 뭐가 달라도 엄청 다른 거 아시잖아요. 이미 나노소프트도 빠져들었고, 제가 맛도 확인했어요. 제 커피 감별력 모르세요?"

-……알지. 커피맛 자체는 무척 까다롭잖아. 물론 맛만 까다롭지. 커피 우려내는 방법이나 그런 건 전혀 무관심한… 그래서 내가 지금 걱정이 되는 거야.

"아무튼 자리마련해주실거죠?"

-알았다. 근데 진석이하고는 요즘 연락 잘 안 하냐?

"끊어요."

***

뉴월드 그룹은 범서해그룹으로 분류된다.

본래 서해그룹 태생이었다가 백화점, 쇼핑 부문이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재벌가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된 자손 간 재산 분할이었다.

그룹 회장 황희철.

그는 서해그룹 회장 이창영의 매제이기도 했다.

"머쉬룸 서비스 덕분에 백화점 매출이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많이 든 정도가 아니에요. 작년 매출이 약 7.5조 원으로 역대 신기록을 달성했는데, 머쉬룸 서비스를 실시하자마자 더해진 '추가 매출'이 그것보다 더 많아요."

"오, 그 정도나 되는 거냐?"

"예, 아버지. 머쉬룸 서비스만 잘 유지하면 연간 20조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중국, 일본, 동남아 부자들이 기왕이면 우리나라에서 쇼핑하는 게 낫다 생각하고 들어오거든요. 한 번 들어올 때마다 작정하고 긁어가는 편이고요."

"기껏해야 버섯 쪼가리 하나 얻어 먹겠다고 그 많은 돈을 쇼핑에 쓰다니."

"왕족들만 먹는 아주 귀한 버섯이죠. 그게 부자들의 욕망을 제대로 자극하거든요."

"욕망의 자극이라…… 좋지. 누군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 포인트를 짚었구나."

"그 포인트를 짚은 사람이 아트락타운 부지를 원해요."

"뭣이라고?"

황세라는 부친 앞에서 차분하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뜬금없는 아트락 부지 이야기에 놀랐던 황희철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음, 여의도에 재미난 샛별 하나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는 언뜻 들었지만, 내 세대하고는 무관할 것 같아서 크게 관심을 주지는 않았었다."

"저도 돈 많은 기업가 출신의 청년정치인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돈이 많더군요. 우리 그룹과도 한 번 부딪친 적이 있었대요."

"그래?"

"네, 청담동 휴민트타워 매입이요. 그거 원래 우리 그룹에서도 탐을 냈었는데, 아트락 부지에 돈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결국 매입에 실패했죠."

"호, 그 비싼 빌딩을 개인 자산으로만 샀다고?"

"네. 지금 강남에 가진 부동산 자산만 1조 원이 훨씬 넘는대요. 부채 일절 없이."

"그 친구, 결혼은 했다던?"

"……아버지, 그 친구 올해 스물한 살이에요."

"……내가 주책이었다."

서른 중반인 황세라의 나이를 생각하면, 일단 나이에서부터 전혀 매치가 안 된다.

슬쩍 욕심을 낸 게 민망했는지 황희철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들어보니 정말 대단하구나. 서해 식품 태양심을 라면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국내 배달치킨 시장까지 완전 장악했다니. 그 정도면 이미 식품유통 황제라고 봐도 될 거 같은데."

뉴월드그룹 역시 유통 쪽에 치중하고 있기에 아쉬운 마음은 더욱 컸다.

"지금 머쉬룸 서비스도 그 친구가 일방적으로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구조예요.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것저것 챙겨줄 수밖에 없고요."

"아트락 타운을 원한다고?"

"네, 물론 시세대로 제값은 치르겠대요."

"시세대로 다 받으면 안 되지. 딱 우리가 매입한 금액에서 이것저것 비용과 수고비 정도만 얹어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양심이 없진 않구나 소리 들어."

황희철이 긍정적으로 말하자 황세라의 안색도 밝아졌다.

"그럼 아버지. 오빠를……."

"자리는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설득은 네 몫이다."

"네?"

황세라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일이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청담동 복합센터, 주거부터 영업과 호텔숙박, 쇼핑과 문화생활까지 모든 것을 원터치로 끝낸다는 컨셉이지?"

"네, 맞아요……."

"네 오빠도 지금 그룹의 미래를 걸고 밀어붙이는 사업이다. 그런 중요한 것을 내가 마음대로 떼어다가 너한테 갖다 줄 수는 없는 거다. 이미 상속을 대비해서 교통정리도 다 마쳐 놓은 상황 아니냐."

"그럼 저희 백화점 사업은……."

"그러니 네 오빠도 만족할 만한 대가를 네가 생각해내야지. 그냥 아버지 카드 써서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이미 한참 전에 졸업하지 않았느냐."

"……."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으니, 자리는 내가 마련해 주마. 네 오빠가 혹할 만한 카드가 마련되면 언제든지 내게 말하거라."

부친과 헤어진 황세라는 그 뒤로 임원들과 한참이나 의논해서, 오빠 황태진 부회장이 만족할 만한 카드를 궁리했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카드는 현찰과 백화점 사업 지분, 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매수비용과는 별개로, 프리 미엄을 인정하여 4,000억 원의 현찰을 즉시 지급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백화점 사업에 관한 지분을 나눠주는 것.

의심할 여지 없이, 황세라가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카드였다.

하지만 부친의 입회하에 열린 가족모임에서, 황태진은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

"이건 우리 그룹의 50년 미래가 걸린 사업이다. 겨우 그 정도로 부지를 팔 순 없어."

황세라는 간곡하게 설득했지만, 황태진은 조금의 빈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협상은 무산되었다.

"너무 그렇게 걱정을 하실 것은 없어요."

뉴월드백화점 관계자로부터 결과를 들은 정서희는 쾌활하게 반응했다.

"당장 장기계약을 보장해 드리기 어렵다는 것뿐이지, 뉴월드백화점 머쉬룸 서비스 중단을 고려하겠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건 상도의가 아니죠."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트락 부지 매입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은 해주실 거죠?"

"물론입니다. 혹시라도 다른 걸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저희 회사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뉴월드백화점 관계자는 당장 사이가 나빠질 일은 없다는 장담에 크게 안심했다.

"저희도 뉴월드와 가능한 길게 가고 싶어요.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리면 그만큼 충분한 준비가 갖춰져야 하잖아요? 일단은 우리 두 회사, 연애 정도로만 만족해요."

"우리 두 회사가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백년해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서희는 미팅 내내 조용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원하던 것이 불발되어서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어떻게 저런 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젊은 나이지만 마인드 컨트롤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뉴월드 관계자는 서둘러서 상대가 만족할 만한 다른 카드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장기계약을 체결하지 못해도, 매출의 9%는 수수료 개념으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단기계약 기간 중에는 단기계약서에 따른 권리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게 이치에 맞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따로 있다.

언제든지 계약서대로 중단을 하려면, 계약서에 표기된 이상의 것을 받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도를 정확히 읽어낸 뉴월드관계자는 더욱 마음이 다급해졌다.

미팅을 끝내고, 정서희는 참았던 심호흡을 크게 터뜨렸다.

"후우, 됐어."

하수영이 원하던 조건은 불발되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정서희가 원했던 명분이 만들어졌다.

이제 하수영은 스톰벅스에 생원두를 공급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 찬성할 것이다.

"아트락 부지, 제가 꼭 갖게 해드릴게요. 수영 씨."

황태진의 뉴월드마트 사업부는 국내 스톰벅스의 지분 50%를 쥐고 있다.

스톰벅스는 황태진이 가장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회사 매출 파이프라인.

그렇다면 그 스톰벅스에 생원두를 전량 공급하는 커피 농장은, 그에게 어떻게 비칠까.

***

"결재해 주세요."

정서희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앉아서 전자서명을 종용했다.

하수영은 태블릿을 통해 전자결재문서로 날아온 결재서류를 확인하고는, 그녀를 조용히 직시했다.

"이래서 저번에 생산량을 확인하셨던 건가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저는 우리 회사가 쓸 수 있는 무기체계가 어떤지 면밀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어요."

"처음부터 이런 것을 원한 것은 아니고요?"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 참여는 수영 씨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오해했나요.?"

"저는 4호기를 되찾으면 거기에 큰 상가를 짓고, 1층 가장 목 좋은 곳에 수영커피라는 간판을 달려고 했어요."

"전 세계 스톰벅스 매장에 생원두를 '전량 납품'하는 농장주가 직접 차린 수제커피매장, 어때요? 소비자들이 막막 엄청 좋아할 거 같지 않아요?"

"어, 가만."

"그걸 시작으로 해서 수영커피 브랜드가 쭉쭉 뻗어 나가는 거죠. 나중에는 아예 스톰벅스를 인수합병해 버려도 되고요. 물론 이건 좀 먼 미래가 되겠지만."

"듣고 보니 괜찮은데요?"

"거봐요. 제가 다 계획이 있다니까요. 수영 씨가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결재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수영 씨가 원하는 걸 충족시켜 주잖아요."

정서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마치 유혹하는 여자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자, 거기에 서명하세요. 그리고 황태진 부회장의 갑이 되세요. 그럼 4호기도 다시 수영 씨한테 돌아와요."

"지금 잠깐 동안 정 부사장님이 악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목소리톤 대사처리, 그게 뭡니까."

"대주주가 잃어버린 청담동 부동산을 훔쳐다 줄 유능한 악마죠. 어서 서명하세요."

하수영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전자서명을 마쳤다.

정서희는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커피 전용 테라리움을 하나 더 짓는 게 좋을 거 같아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