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24화
78장 어디 받아보든가(4)
'4호기야, 참 오래 걸렸지?'
청담동 아트락 타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품격 미술관.
대지면적 22,500제곱미터를 자랑하는 대단지 건물이며, 땅값 시세만 7,500억 원에 달한다.
본래 어느 대부호의 소유물이었는데, 그가 탈세로 현 정권에 찍히면서 해외 이주 전에 시중에 내놓았다.
덕분에 작년에 강남에서 부동산 큰 손들 사이에서 한때 떠들썩하기도 했다.
수십 명이 넘는 큰손들이 법인을 설립하여 아트락 타운을 매수하려고 1조 원이 넘는 돈을 모았지만, 책임중개사 최동주가 그 돈을 들고 튀어버렸다.
그는 동남아에서 그 돈을 다 쓰거나 사기당한 뒤 비참한 신세로 한국에 잡혀 들어왔다.
뉴월드그룹은 1조 1,50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아트락 타운을 샀다. 건물은 가치가 없지만, 땅값에 프리미엄을 제대로 얹어서 지급한 것이다.
그 뒤로 하수영은 4호기를 영구결번으로 남기며, 언젠가 반드시 되찾으리라 칼을 갈았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아트락 타운을 돌려주세요. 그거 원래 제가 사려고 했었단 말이에요."
"아, 아트락 타운을 말씀이십니까……."
백화점 사업과는 무관한 땅이다.
하지만 뉴월드그룹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바로 뉴월드그룹에서 추진 중인 쇼핑, 주거, 영업, 회사, 엔터테인먼트등을 총망라하는 대규모 초고층 마천루 주상복합시설을 지으려고 매입한 땅이니까.
22,550제곱미터의 땅에는 복합센터 1개와 3개의 오피스, 호텔, 주거동이 들어서게 될 계획이며, 높이 560미터의 초고층 빌딩이 우뚝 설예정이다.
잠실의 라데월드타워를 이기고 말겠다는 그룹의 결연한 의지가 담길 복합마천루 사업이다.
'이제 막 철거를 다 끝내고 한창 땅을 다지고 있는 중인데…….'
황태진 부회장,
차기 회장인 그룹의 후계자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 하필이면 그 땅을 원한다니.
성진만은 갑자기 현기증이날 것만 같았다.
'아트락 타운이라니.'
백현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뉴월드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아트락 타운 부지는 황태진 부회장이 밀어붙이는 복합마천루 사업 터전이다.
'하필이면 다른 땅도 아닌, 아트락타운을…….'
문제는 황태진 부회장은 뉴월드백화점 사업과 전혀 무관하다는 데 있었다.
뉴월드그룹은 크게 백화점 사업과 마트 사업으로 나뉜다. 그리고 황태진 부회장은 마트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백화점 사업은 여동생인 황세라가 맡아서 운영하는데, 부친인 회장이 사망하면 당연히 계열 분리가 예정되어 있다.
황희철 회장은 아직 건강한 편이지만 고령인 탓에 당장 내년에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황태진 부회장이 백화점을 위해서 아트락 타운을 내어줄 이유가 전혀 없는상황이다.
남매라 해도, 비즈니스와 상속은 비정한 것이니까.
"제 조건은 그겁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하수영은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이 정도에서 일단 멈추는 걸 보면, 그도 뉴월드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게 분명했다.
선택권은 줬으니, 너희가 알아서 결과를 만들어 와라.
그의 침묵은 이런 뜻이었다.
***
"뭐라고요? 아트락 타운 부지를 달라고 했단 말입니까?"
성진만 상무가 가져온 결과에, 뉴월드백화점은 발칵 뒤집혔다.
황세라 사장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손가락 끝을 잘근 씹었다. 임원들은 올라서 웅성거리고 있지만, 그녀는 아직 입을 열지도 못했다.
"예, 알고 보니 하수영 의원이 아트락 타운 부지를 사려고 준비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그룹에서 먼저 매입하는 바람에 허공에 붕 떴었고요."
"우리 백화점 사업부가 매입한 땅도 아닌데…… 왜 하필 그 땅을 요구하는 겁니까?"
"하수영 의원 지역구가 청담동이잖습니까. 그 동네 땅에 그렇게나 관심이 많답니다."
"그래요?"
"네, 처음에는 강남구 금싸라기 땅이나 빌딩에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 데, 청담동만 벗어나면 아예 관심이 없답니다. 압구정동이나 삼성동에 아무리 좋은 매물이 나와도, 길 하나만 건너면 그냥 눈을 안 준답니다."
"그거 희한하네요. 왜 그렇게 청담동을 좋아하는 겁니까?"
"그게 강남구의회 최대 미스터리라고 하더군요. 강남구 다른 지역에도 얼마든지 투자할 만한 좋은 건물이 많은데, 유독 청담동에만 집착을 한답니다."
"이거 참……."
적어도 뉴월드백화점을 엿 먹이기 위해서 일부러 콕 집어 아트락 타운 부지를 원한 것은 아닌 거 같다.
말을 들어보니, 거의 편집증적으로 청담동 부동산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황세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트락 부지, 지금 상황이 어떻죠?"
"철거가 다 끝나고 이제 막 정지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지금은 나대지라는 거군요."
"예, 하지만 마천루 복합시설 설계는 이미 다 나왔고, 공사대금도 충분히 마련됐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냥 다른 생각 없이 짓기만 하면 됩니다."
황세라는 초조하게 손가락으로책상을 두드리는 걸 반복했다.
머쉬룸 서비스 덕분에 매출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는지는 이미 들었다. 이 거래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1조 원이 넘는 땅을 거저 달라고 해도 고민할 판에, 시세에 따른 돈을 주고 산단다.
그게 자신의 땅이었으면 주저 없이 넘겼을 텐데, 하필이면 친오빠의 땅이다.
"부회장님께 한번 말이라도 넌지시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의외로 부회장님도 머쉬룸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계산 확실한 부회장님이 조건 없이 순순히 들어주겠어요? 아트락부지 그 땅에 초대형 복합단지 올린다고 오래전부터 야심 차게 움직여온 분인데?"
어느 임원도 우려를 나타냈다.
"부회장님 설득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설득이 되더라도 적어도 백화점계열 지배지분 정도는 내줘야 할 겁니다."
"차라리 다른 걸 말하라고 다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때요? 아트락 부지는 우리 손에서 벗어나 있는 매물이라고."
성진만 상무는 난색을 표했다.
"하수영 의원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게다가 우리 그룹 내부 사정을 명확히 알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룹 사정을 안다고?"
"네, 아트락 부지가 우리 백화점과 무관한 건 알지만, 그걸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허…… 우리 뉴월드백화점 그룹이 살다 살다 이런 대우를 받게 될 줄이야."
콧대 높은 해외 명품 브랜드 앞에서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은 없는데.
"머쉬룸 서비스 하나로 매출이 몇 배로 뛰었잖습니까. 당연한 상황입니다."
"맞습니다. 머쉬룸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중국 부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사주지 않았을 겁니다."
"아, 그래서 말인데요. 팟디서플라이가 나중에라도 마음을 바꿔서 중국 유통을 하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중국졸부들이 자유롭게 골든 트러플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 아랍의 소비욕이 뚝 떨어집니다. 팟디서플라이도 언제나 그 점을 민감하게 생각하고요."
"결국 머쉬룸 서비스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황세라 사장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은 뒤, 차분히 말했다.
"일단 제가 회장님과 이야기는 한번 나눠보죠."
뉴월드그룹 회장, 황세라와 황태진의 부친.
교통정리를 시도해 보겠다는 말에 임원들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환해졌다.
***
"스톰벅스 작년 매출이 얼마죠?"
하수영이 뜬금없이 묻자 정서희는 조금 당황했으나, 곧바로 대답했다.
"1.9조 원 정도 됐을걸요? 근데 왜요?"
"왜 물어보는 거같은가요?"
말을 흐리면서 정서희는 생각에 잠겼다.
무턱대고 던진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곧 뉴월드그룹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스톰벅스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게 뉴월드그룹이니…… 혹시 아트락 부지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부사장님도 눈치가 제법이시네요. 역시 철혈 경영인답습니다."
"아니, 제가 무슨 철혈 경영인이라 고요. 저 정도면 그래도 사원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따뜻한 따도녀 부사장……."
"뉴월드마트에서 스톰벅스를 운영하고 있죠?"
스톰벅스.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유명한 황태진 부회장이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다.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스톰벅스를 힘들게 들여온 황태진 부회장은 이전까지 말아먹은 모든 사업에 대해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스톰벅스가 흥해도 보통 흥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몇천 원짜리 커피 팔아서 1.9조원 찍으려면, 대체 몇 잔을 판 거야."
"일 년 동안 4, 5억 잔은 판 거죠. 물론 커피만 팔았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지만요."
"황태진 부회장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스톰벅스잖아요."
"설마 아트락 부지 때문에 스톰벅스를 건드려보겠다는 건가요?"
"네."
"어떻게요? 잠깐만, 설마?"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어느새 하수영은 다 내린 커피를 정서희 앞에 대령한 채였다.
뭔가 꼼지락거리는 거 같더니, 그새 커피 한 잔을 내렸는지 놀라웠다.
"어…… 향은 아주 좋네요. 달콤하면서도 푸근하고, 질리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에요."
"이미 예상한다는 표정인데요?"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또 수영농장에서 가문의 비법으로 재배한 원두를 사용했겠죠? 그리고 저는 처음 맛보는 감미로운 풍미에 기겁을 할 테고, 수영 씨는 이거면 스톰박스를 잡을 수 있겠냐고 물어볼 테죠."
"레퍼토리가 너무 한 방향으로 굳어졌죠?"
"그거야 어쩔 수 없죠. 수영농장의 특징이니까요. 그럼, 어디 일단 커피맛을 한번……."
정서희는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듯이 마셨다.
커피잔을 쥔 하얀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게 보인다. 떨림은 손목과 팔을 거쳐, 어깨까지 번져갔다.
그렇게 부르르 떨던 정서희는 이윽고 빈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잠시 동안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그녀가 눈을 번쩍 뜨고 바라봤다.
"진짜 수영농장에서는 작물에다가 니코틴을 비료로 주는 거 아닌가 싶네요. 벌써부터 이 커피 맛에 중독된 거 같은데요?"
"리액션이 생각보다 점잖으신데……."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이 커피, 스톰벅스 잡을 수 있어요. 충분히 잡고도 남아요."
물론 커피 프랜차이즈가 커피 맛하나만 가지고 일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테리어, 커피 시간, 매장 분위기, 직원의 친절도와 고객 응대 시스템의 체계적인 관리, 그런 종합적인 요인이 서로 맞물리며 지금의 스톰벅스 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브랜드 이름값 역시 절대 무시 못하는 요인이고,
"시간을 절약하려면 커피 프랜차이즈 2위인 투스플레인과 손을 잡거나, 아예 인수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도 비슷한 생각은 했습니다."
"1위와 2위부터 6위까지 다 합쳐도 1위 매출에 턱도 없으니 2위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충분히 한 방 먹일 수는 있을 거예요."
"네, 저는 그냥 황태진 부회장이 화들짝 놀라서 아트락 부지 매각 협상 테이블에만 나와주면 족해요."
"혹시 그럼 이 건은 저한테 맡겨 주실 수 있나요? 아, 원두는 얼마만큼 생산 가능해요?"
"테라리움이 잘 가동하고 있어서 물량 조달하는 것은 얼마든지 문제없습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좋아요. 물량 걱정은 전혀 없다고 하셨죠? 걱정 마시고 그럼 저한테 주세요."
정서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수영과 헤어진 그녀는 부친, JM 식품 정재민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예요."
-그래, 어쩐 일이냐.
"스톰벅스 팔로인 이사님하고 아직 연락되시죠?"
-당연하지. 근데 그 친구는 왜?
"혹시 자리 한번 만들어주실 수 있나 해서요. 중요한 비즈니스 제안이 있거든요."
-무척 바쁜 친구야. 별거 아닌 이야기할 거면 아예 자리 안 만드는 게 나아.
"별거 아닌 게 아니에요. 스톰벅스에 생원두를 납품하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