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21화 (321/1,270)

프랜차이즈 갓 321화

78장 어디 받아보든가(1)

"그럼 이 딜 받아야지."

진세호 사장의 말에 임원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VIP서비스 런칭 하나를 위해서 백화점 매출의 19%를 수수료로 지불하다니!

"사장님, 그럼 우리 백화점 사업은 망합니다!"

"안 받아도 어차피 죽는다며? 그럼 일단 받고 나서 생각해야 할 거 아냐? 적자 폭은 유통사업 다른 부문에서 난 수익으로 메꾸면 되고."

백화점 사업은, 정확히 라테유통 백화점사업부다.

즉 라테유통이라는 하나의 기업에 속한 사업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어차피 우리나라 물류유통은 우리 라테유통이 꽉 잡고 있어. 백화점사업이 좀 적자를 보더라도 그걸로 버티면서 기회를 노리면 돼."

"하지만……."

"우리만 죽나? 아니야, 뉴월드와 백두도 함께 죽는 거야. 셋이 경쟁붙으면 아마 백두백화점부터 나가떨어지겠지. 거기는 형제끼리 사이도 안 좋잖아. 백영호 회장 나중에 죽으면 전혀 도움도 안 줄 테고."

현금 레이스로 가면 라테백화점이 무조건 이긴다.

재계 순위를 떠나서, 최상위급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정 이사."

"네, 사장님."

재무담당 정시돈 이사가 재빨리 대답했고, 진세호 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매출에서 19% 떼어주고 나면 우리한데 떨어지는 건 얼마지? 아, 골든 트러플로 상승할 매출까지 감안해서 이야기해 봐."

정시돈 이사는 얼른 노트북 화면으로 눈과 손을 돌렸다.

자판을 타닥거리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재빠르게 계산을 돌리기 시작했고, 다른 임원들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연간 6,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뭐라고요?"

"6,500억?"

임원들 사이에서 당혹스러운 감정이 번졌다.

작년 영업이익이 5,100억 원 정도인데, 매출 19%를 떼어주고도 오히려 영업이익이 늘어난다고?

"작년 매출이 11조 8,050억 원에 영업이익이 5,120억이었습니다. 골든 트러플 서비스를 도입하고 지금의 해외 슈퍼 쇼퍼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면, 23조 원 이상의 매출에 영업이익 6,500억 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익률이 4.33%에서 2.8%로 줄어드는군요.."

이익률은 대폭 감소.

하지만 절대 이익 금액 자체는 오히려 상승했다. 어쩌다 보니 박리다매 구조가 돼버렸다.

그러나 진세호 사장은 물론이고, 임원들의 안색에는 오히려 화색이 돌았다.

"정 이사님, 그거 제대로 된 계산이 맞는 겁니까?"

"매출의 19%를 떼어주는데 오히려 이익은 소량이 1,000억 원 넘게 늘어난다고요?"

"이익률 자체는 3% 밑으로 떨어지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쁠 건 없겠는데요?"

"아, 생각해 보니 슈퍼 쇼퍼들은 어차피 매년 수백억 원 이상의 돈을 명품 쇼핑에 씁니다. 단지 자기들 나라에서 쓸 돈을 우리나라로 들여 와서 쓰게 되는 거죠."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정 이사는 살짝 자신감이 깃든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지금보다 좀 더 입점 업체 및 파트너사들의 양해를 구한다는 가정하에 낸 수익금이지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액수입니다."

"그보다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다. 이건가?"

"이익률이 2.8%에서 더 늘어나기는 힘듭니다. 이건 최대한 쥐어짜낸 거라서요. 오히려 더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다만 매출은 비교적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기에, 23조 원보다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도 계산해 봤겠지?"

"매출이 18조 원을 넘어서지 못하면 이익률이 마이너스가 됩니다."

"18조 원이 손익분기점이라 이거군."

"물론 추가 매출이 모두 VIP매출로 잡혔을 때의 일입니다."

"17조 원을 찍으면 영업적자가 얼마나 되지?"

"연간 -300억 원 정도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매출의 19%를 떼어주고 시작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

물론 정 이사가 약식으로 급히 계산한 것이기에, 실제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진세호가 결심을 굳히기에는 충분한 액수였다.

"좋아, 그럼 받아. 이 딜."

"예, 사장님."

회의 과정을 지켜보던 김진명 부사장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딜이 성사될 줄이야.

매출의 19%를 떼어주고 시작하니까 당연히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출 18조 원을 넘어가면 오히려 이익이 남는다고?

'중국, 이 무서운 자식들…….'

아아, 이것이 바로 대륙 졸부들의 기상인가?

"힘들 텐데…….'

김진명 부사장은 우려 속에서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수영이 19%라는 숫자를 지른 것은, 거래를 안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진세호 사장의 조카, 진석현의 음주운전 때문에 이 모든 게 시작되었으니.

'아니, 어쩌면 하수영 회장이 받아 들일지도 몰라.'

어느새 김진명은 속마음에서도 하수영을 꼬박꼬박 회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라테그룹과 큰 비즈니스로 얽히게 되면 오너 일가도 사적인 원한은 어쩔 수 없이 떨칠 수밖에 없으니까.'

관건은 손주, 아들의 불구를 회장과 부회장이 얼마나 삭힐 수 있겠느냐였다.

진세호야 자기 아들도 아니고 조카 일이니 아랑곳하지 않고 추진하겠지만…….

***

본격적인 서비스 런칭을 앞두고, 예비 서비스 시행일이 잡혔다.

시범적으로 본점 VIP라운지에서 골든 트러플, 송이버섯 요리를 대접하는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이다.

뉴월드와 백두백화점은 서로 협의 해서 같은 날, 같은 시간으로 일정을 잡았다.

아무래도 두 백화점이 힘을 합쳐야 라테백화점을 뜯어먹기에 더 좋을테니.

백두그룹 창업주 백영호 회장은 측근들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본 점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올해 4분기부터 열릴 본 서비스에 앞서서, 미리 서비스 준비 상태를 체크하는 시범서비스입니다."

VIP접객실장이자 손녀인 백현진이 시종일관 에스코트하면서 설명했다.

"행사는 오늘부터 열흘 동안 지속됩니다. 첫날인 오늘은 먼저 최상위 29명, 블랙M 등급 VIP를 초청해서 골든 트러플 요리를 접대할 예정입니다."

"그럼 내일은?"

"상위 0.1%의 레드M등급, 모레는 상위 5%의 옐로M등급을 초청합니다."

"0.1%라면 몰라도 5%의 고객들을 본점 라운지가 전부 소화하지는 못할 텐데."

"그래서 8일 동안 순차적으로, 시간까지 조정해서 초청할 예정입니다. 물론 레드M등급은 오늘뿐만이 아니라 행사 기간 언제든지 시범 서비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등급이 낮을수록 빡빡한 일정과 시간에 맞춰야 한다.

하지만 최상위 등급은 첫날부터 느긋하게 자기 내키는 대로 즐길 수 있다.

"최상위 29명도 월 1회 제한이라니, 상당히 빡빡하구나."

"골든 트러플 자체가 매우 비싸고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비스를 받지 않은 달이 있을 경우에는, 그 다음 달로 권리가 이월됩니다."

"그건 당연한 거지. 그나저나 네 어미는 언제 오는 거냐?"

"이미 라운지에 도착해서 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백영호는 VIP 선정을 위해서 며느리 카드를 빌려서 쇼핑을 했다. 물론 결제대금은 자신이 감당했다.

하루빨리 VIP가 되기 위해서 한 꼼수다. 물론 백화점 측은 이런 꼼수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29명 중에서 몇 등이냐?"

"……."

"왜 말을 못 하느냐?"

"……2, 29위이십니다."

"……."

그 순간 백영호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백현진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억지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백영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백현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를 썼지?"

"지금까지 252억 원 어치를 구매하셨습니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백영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252억 원이 꼴찌라면…… 29명 구매액을 다 합치면 최소 1조 8,000억 원은 되겠구나."

인당 평균 구매액을 대충 600억원으로 잡은 계산이었다.

하지만 백영호의 중얼거림은 그 자리에서 보기 좋게 박살 났다.

"28위의 구매액이 992억 원입니다."

"……."

바로 윗서열과의 차이가 무려 3.9배가 넘는다.

"누구냐? 대체 누가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백화점 쇼핑에만 천억 가까이 쏟아부은 게냐?"

"중국의 진져핑 회장님입니다. 중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그룹을 운영하시는……."

"……27위는?"

"중국의 통신회사를 운영하시는 씬씨츠엔 회장님이십니다. 1,002억 원어처리를 구매하셨습니다."

27위와 28위는 고작 9억 원 차이다.

백영호는 기가 막혔다가, 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중국 대부호들이 씀씀이가 엄청나긴 엄청나구나. 놀라워서 내가 잠시 할 말을 잊었어."

"당과 인민의 눈치가 보여서 어느 정도 자제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게 자제한 정도라니."

역시 중국 대부호들의 사치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인 것인가.

백영호도 마음만 먹으면 천억 원이상도 얼마든지 쇼핑에 쓸 수 있지만, 당장 국민들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식으로 사치를 부렸다가는 국가지원이나 사업자 선정, 세무 조사등에서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을 것이다.

"알았다. 어서 가자."

"예, 회장님."

비록 오늘 초청받은 이들 중에서 가장 꼴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룹 회장이다. 즉 VIP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잔칫집 주인이기도 한 것이다.

백영호는 애써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VIP라운지에 들어섰다.

오늘을 위해 딱 29개의 원형 테이블만 세팅한 라운지는 왕실 전용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호화로운 인테리어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있는 하나의 테이블을 제외한, 28개의 테이블은 이미 초청객들이 앉아 있었다.

백영호가 들어서자 그들 중 대부분이 눈을 돌려 흘끔 바라본다.

-네가 우리 중 가장 최약체인가?

백영호는 그들의 눈빛에서 왠지 그런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은 백영호는 천천히 다른 손님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동양인, 아마도 중국인들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차분히 둘러보는 데, 불현듯 가장 멀리 있는 테이블 주인의 이색적인 얼굴이 눈에 닿았다.

"저분은 누구지? 중국인은 아닌 거 같은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르만 빈 하살딘 알사우드 왕세손이십니다. 왕위순위에서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분이 바로 우리 백화점 최대 구매자이십니다."

"쇼핑에 얼마나 썼지?"

"2,050억 원어치를 구매하셨습니다."

"……."

"심지어 백화점에 없는 물품들만 주문한 터라, 돈만 내시고 아직 상품은 아직 받아보지도 못하셨습니다."

전통 아랍 복식이 아닌, 단색 정장차림의 자르만 왕세손은 황금빛으로 노릇하게 잘 구워진, 통 골든 트러플 요리에 포크를 쿡 찔렀다.

마치 구운 감자를 먹듯이 아무렇지 않은 손길에, 오히려 주변의 중국 대부호들이 속으로 기겁했다.

아니, 한 입 한 입 음미하면서 경건하게 먹어야 할 판에, 무슨 감자 소금에 찍어 먹듯이 저렇게 먹는다고?

자르만 왕세손은 대충 한 입 베어 물고는, 동행한 늘씬한 금발의 모델 애인에게 말했다.

"그래도 특등품이나 상급품은 아니네. 이 정도면 하급과 중급 사이?"

"여기 백화점에서 준비한 최고 좋은 품질 아니에요?"

"상위 29명 컷이라고 했으니 아마 가장 좋은 거겠지. 그래 봤자 상등품에는 한참 못 미쳐."

대충 한 입 더 먹은 다음, 절반 이상 남은 골든 트러플 통구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뒷머리에 팔짱을 끼며 태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히 왕족도 아닌 일반인들한테 알라의 축복을 제공한다고 해서 해씸했는데, 기껏해야 이런 중하급품이라니."

"자기가 이해해요. 저 사람들도 이거 한 번 먹어보려고 몇 달 동안 백화점에 출근하며 쇼핑하느라 고생했을 거잖아요."

"나도 그래서 관대하게 넘어가잖아."

"자기는 언제든 특상품도 원하는 만큼 받아볼 수 있지만 저 사람들은 일 년에 딱 열두 번만 먹어볼 수 있어요. 심지어 자기 궁에서 편하게 먹는 것도 아니고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직접 발걸음해야 해요."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또 매년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요. 참 못 할 짓이죠."

"알라의 축복을 삼키려고 아등바등하는 꼴이라니…… 가소롭지만, 조금 기특하기도 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