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20화
77장 바닥 아래 지하 (6)
3종류 황금과자집을 내놓았을때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경쟁자가 회장의 손주 진석현과 얽힌 것, 그리고 경쟁 백화점 두 곳의 골든 트러플 VIP서비스 중심핵이라는 걸 알게 되어 의심이 커졌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게 확실해졌다.
하수영은 라테그룹에 선공을 날린 것이다.
그것도 무덕대고 휘두른 주먹이 아니라, 라테그룹이 적당한 때를 노려 응징을 가할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한 일이다.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습니까?"
"손주, 아들이 불구가 됐는데 있겠습니까?"
"……."
곧바로 돌아온 대답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애초에 라테그룹이 저에 대한 보복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저도 굳이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건데요."
"우리 그룹은 보복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부사장님 입이 아니라 오너일가가 걸어온 길이 말해주고 있죠."
"……."
"진석현 씨 부친도 북하면 사람 두들겨 패고 여기저기 경제…… 아무튼 진석현 씨도 음주운전으로 사람 불구 만든 것만 이미 두 번입니다."
경제, 라는 말 뒤에는 아마 '경제범죄'라는 말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오너 일가가 올바르고 공정하게 살아왔다면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건데요,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저한테 다 말씀해 주시는 이유가 있겠군요."
"어차피 입 다무실 거잖아요. 안그래요?"
그럴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정확히 맞추니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재벌 일가도 아니시고 그냥 월급 쟁이 전문 경영인이신데, 이런 치정에 괜히 얽히기 싫으시겠죠. 회장님 분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안그래요? 뭐, 제 분노가 부사장님 쪽으로 튈 수도 있고……."
그 말에 김진명은 뒤통수가 괜히 섬?해졌다.
하수영은 의자를 뒤로 밀어내며 편안하게 등을 기대었다.
그 모습에서 김진명은 불현듯 회장님이 품고 있는 느긋한 기세를 느꼈다.
"사무실에 와 있는 제 지지자분들, 어때요?"
"하나같이 범상치 않으신 분들 같습니다."
"지금 와 있는 저분들 재산 다 합치면 아마 20조 원은 거뜬할 겁니다."
김진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40명도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정도나?
"그리고 오늘 안 오신 분들도 많아요. 아무래도 제 지역구가 청담동이다 보니 기침 꽤나 하시는 분들이 지지자 중에서 상당하시죠."
김진명은 분명한 경고로 알아들었다.
저들이 힘을 합치면 라테그룹은 몰라도, 적어도 자신 한 명쯤은 골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매출의 19%로 합시다. 20%로 딱 맞춰 하면 너무 정 없어 보이니, 10%대로 맞춰 드리죠."
라테와 거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애초에 라테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니까.
"그렇게 알고 검토하겠습니다."
하수영의 진짜 속마음은 모른 척하겠다는 의미의 대답이었다.
***
"하… 이걸 어쩌냐."
사무실을 나선 김진명은 로비에 멈춰 서서 문득 한숨을 쉬었다.
온몸을 뒤덮고 있던 긴장감이 그제야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흥미롭다는 듯이 자신을 훑어보던 노인들의 시선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한 명 한 명이 걸어 다니는 기업이나 마찬가지.
그런 이들이 수십, 수백 명씩 뭉져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아마 다들 중진 국회의원 몇 명쯤은 상시적으로 후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젊은 구의원.
라테그룹도 함부로 볼 수 없다. 일개 전문경영인인 자신은 말할 것도 없다.
"마왕성이네, 마왕성."
마왕성.
불현듯 떠오른 단어지만, 그보다 저 의원사무실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청담동에 저런 대형 평수 사무실이면 매달 나가는 임대료만 해도 얼마야."
로비데스크에 기댄 채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데스크에 앉아 있던 젊은 경비원이 알아듣고 미소 띤 채 말했다.
"아, 의원님 사무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기는 임대료가 없습니다. 의원님이 이 건물 소유주시거든요."
"뭐요? 그게 정말입니까?"
김진명은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빌딩이면 못해도 7, 8천억은 넘을 텐데, 소유주라고?
"네, 자기 빌딩 사무실을 쓰는데 임대료를 왜 내겠습니까."
김진명은 얼굴이 굳은 채로 얼른 빌딩을 나섰다.
차량에 다가가자 미리 먼저 사무실을 나서서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이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 타자마자 그는 지시했다.
"하수영 의원, 지금 재산 조회 한번 해봐. 공직자 재산에 등록된 거있을 거 아냐."
"네, 부사장님."
공개된 재산내역 열람이기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산 내역을 훑어본 김진명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아니, 무슨 부동산 자산이 이렇게 많아?"
"청담동 부동산 큰손이라고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냥 큰 빌딩 몇 채 정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내친김에 김진명은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알아봤다.
프라임컴퍼니의 순이익, 매출, 예상기업가치.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수영지 킨이 전국적으로 올리는 매출과 이 이곳에 오기 전에도 상당한 재력가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차의 폭이 너무 컸다.
"내가 적어도 0을 한 개나 두 개는 빼고 생각했던 거 같네."
"공개된 재산이 이 정도라면 숨겨 둔 재산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공직자인데 재산을 숨겨둔게 있을까? 그리고 재산 운영 방식을 보면 별로 재산을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스타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습니까?"
"건물 관리하는 방식을 봐.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관리 자체는 깔끔하고 편하긴 한데, 대신 매년 세금폭탄을 맞는다고, 얼마든지 절세할 방법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 안 하잖아."
일단 부동산법인을 '하수영' 이라고 짓고, 빌딩들을 그 법인의 관리로 두는 것부터가 웃겼다.
"숨겨둔 재산은 별로 없을 거라고 봐. 있다 해도 그냥 어쩌다 보니 잊어먹은 것이겠지."
"정말 엄청난 재산가네요. 이런 사람이 왜 재계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보니까 여의도에서도 이미 몇 번 러브콜을 보냈었군. 강남구의회에서도 평이 좋고, 사실 누가 구의원 열람재산까지 일일이 찾아보겠나?"
"그래도 이 정도면 젊은 재벌 정치 인이라고 기사에 몇 번 오르락내리 락했을 거 같습니다만."
"기사가 안 나온 게 조금 이상하긴한데, 뒤로 손을 썼을 수도 있겠지. 필요 이상의 주목을 받는 게 싫어서. 너무 돈이 많은 것도 정치인에게는 큰 약점일 수 있어."
정치적으로 큰 꿈을 꾸고 있다면,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진명의 눈에는 하수영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은 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잠깐, 수영레스토랑이 미국에도 진출했다고?"
"아, 그런 기사가 있군요. 나노소프트와 손을 잡고…… 헐, 그 IT사우루스 나노소프트가 요식 프랜차이즈에 뛰어들었다고요?"
"수영라면이 나노소프트 내부에서도 윈드밀 OS고 하드웨어고 전부 제치고 수익 1등 효자 아이템이라는데요?"
"……."
김진명은 자신의 결심이 틀리지 않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라테 오너 일가와 하수영이 어떻게 되든 간에, 자신은 그저 모르는 척 떨어져 있는 게 최고다.
***
라테백화점 매출이 바닥을 치는 사이, 뉴월드와 백두백화점은 여전히 공공행진 중이었다.
국내 VIP들의 구매액도 크게 늘었지만, 그래도 중국에서 유입된 슈퍼리치들의 구매액이 엄청났다.
"이대로만 가면 하반기 매출만 10조 원이 넘을 거 같습니다."
최고 기록이 연 매출 7조 원 정도였으니, 하반기 매출만 10조 원이 넘을 거라는 것은 매우 즐거운 소식이었다.
"골든 트러플, 그게 대체 뭐라고……."
"화이트 트러플과 블랙 트러플은 먹어본 적 있지만, 영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원래 얇게 갈아서 그냥 음식에 뿌려 먹는 거 아냐?"
"주로 그렇게 먹기는 하는데, 골든 트러플은 통으로 조리해서도 먹는대요. 맛이 좋긴 정말 좋나 봐요."
"근데 맛보다는 희소성이 더 클걸. 진짜 왕족만 먹는 진짜 사치품이니까, 슈퍼리치들이 이렇게 환장을 해서 몰려드는 거 아니야."
"근데 좀 허탈하긴 하네요. 평상복 세팅에만 수억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인데도, 이거 한번 먹어보겠다고 백화점에서 남들과 쇼핑 경쟁이나 하고 있다니."
"아랍 부자들은 편하게 배송받아서 먹고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웃길까?"
"근데 아랍 부자들이 보면 골든 트러플 희소성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거 아니야? 원래 자기들만 먹는 건데 '서민'들도 손을 댈 수 있으면, 기분 나빠서 손 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서민들이 편하게 먹는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개고생해서 맛이나 한번 보는 수준이니까, 그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할 거야. 원래 졸부와 겸상하는 건 모욕이지만, 잔칫날에 거지한데 마당에 한 상 차려주는 건 기분 좋은 베플이거든."
"슈퍼리치들도 어쩌다 겨우 먹을 수 있는 잔칫날 음식이라니…… 진짜 그래서 킬로당 수억씩 하고 그러는구나."
***
두 경쟁백화점에 벌어지는 잔치판을, 라테백화점은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었다.
라테쇼핑 진세호 사장(진석현의 작은아버지)은 임원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러라고 회사에서 그 비싼 월급 줘가면서 당신들한테 일 시키는 줄 알아! 대책을 만들어야 할 거 아냐, 대책을! 지금 매출 박살 나는 거 안보여?"
"VIP들이 경쟁사로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가 없…… 큭!"
변명조로 말하던 임원 한 명이 얼굴에 재떨이를 맞고 나가떨어졌고, 다른 임원들은 눈을 얼른 아래로 내렸다.
"그러니까 VIP들이 다시 우리 백화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할 거 아니야.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다들 이 정도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머리가 굳었나?"
김진명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쥔 채, 시선을 피했다.
자신보다 어린 사장의 호통을 고스란히 참아내는 것도 참으로 모욕적이다. 하지만 로열패밀리는 어쩔 수 없으니.
'말이야 쉽지.'
이미 그룹 차원의 조사에서 대강의 정황이 드러난 상황.
진세호 사장은 골든 트러플 서비스를 백화점에서도 실시할 수 있도록 임원들을 암묵적으로 닦달하는 것이다.
"프라임컴퍼니, 누가 만나봤어? 만나보긴 했을 거 아냐. 얼마 불러? 뭐 주면 우리 백화점에 서비스 시작하겠대?"
"골든 트러플 자체가 킬로당 수억이 넘어가는, 초고가 식재료이다 보니……."
"누가 그걸 몰라? 내가 당신들보다 더 잘 알아. 나도 먹어본 적 있다고, UAE 갔을 때."
비즈니스로 UAE를 방문했을 때 아랍 대부호한테 딱 한 번 대접받아 본 걸 가지고, 언제까지 자랑거리로 우려먹으려는지.
"왕실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이다 보니 다들 그렇게 환장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명품 쇼핑은 계속할 거니까, 한 번에 남들보다 바짝 당겨서 미리 사두면, 골든 트러플 1년 동안 12번은 맘 편히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
"……."
"뭐야, 왜 아무 말이 없어? 설마 아직까지 프라임컴퍼니에 접촉 안해본 거야?"
그때 김진명 부사장의 오른팔인 박성수 상무가 슬그머니 눈을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김진명은 허락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박성수상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비스 대금으로 19%를 불렀습니다."
"백화점 영업이익의 19%? 뭐…… 그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네."
"영업이익이 아니라……."
"순이익?"
"매출의 19%입니다. 전체 매출……."
"날도둑 같은 놈들이네!"
진세호는 곧바로 흥분해서 벌떡 일어났다가, 문득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5분이 넘어가도록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맹렬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임원들의 불안감도 극도에 달했다.
설마?
"이 딜, 안 받으면 우리 백화점 사업 죽는 건 맞는 거지?"
"매출의 19%라니요.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조건입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아! 됐고! 이대로 가면 우리 백화점 죽어, 안 죽어? 그것만 빨리 말해!"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