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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19화 (319/1,270)

프랜차이즈 갓 319화

77장 바닥 아래 지하(5)

김진명 부사장은 더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차를 마시는 척만 한 거 대체 어떻게 알았지?

구석에 아주 작은 'H' 로고가 박힌 검은 단색 셔츠를 입은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 수영보리차를 마시고도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이야! 고로 자네는 그 차를 전혀 마시지 않은 게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속이 안 좋아서……."

"어허, 속이 안 좋으니까 더더욱 그 차를 마셔야지!"

"암, 우리가 표정 썩어들어가는 거 보고 일부러 속 좀 달래라고 권한 차인데, 그렇게 마시는 척만 하는 건 우리 모두를 모욕하는 걸세!"

"라테그룹이 크긴 많이 컸군. 이참에 버릇 한번 가르쳐 줘볼까?"

"이참에 회사에 전화해서 앞으로 라테 물품은 단 하나도 사지 말라고 해야겠어."

"나도 하는 거 봐서 라테백화점에 입점한 매장들 싹 뺄까 생각 중이야."

"어허, 어서 마시라니까?"

이미 혼백이 달아난 채 김진명은 후르륵 차를 마셨다.

따뜻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접신을 한 듯이 크게 확장된 동공, 파르르 떨리는 입술, 가늘게 경련하는 손끝을 보고, 그제야 노인들은 흡족한 듯이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진짜 마셨군."

"해산 박씨가 처음 수영보리차를 마셨을 때 딱 저런 표정이었지, 암."

"아니, 그놈의 신입 타령은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되나?"

"어허, 한번 신입은 다음 신입이 들어올 때까지 영원한 신입이야. 그걸 모르나?"

"여기 있잖아, 신입."

"이 친구는 신입이 아니고 손님이지, 손님! 그 차이는 수영보리차와 보리차만큼 크네!"

노인들의 티격태격은 이제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위장에서부터 따스하게 퍼지는 맑고 청명한 느낌에, 김진명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고작 차 한 잔에 이런 표현을 갖다 붙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리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또 묘한 중독성이 있다.

"어떻게, 차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하수영이 묻자 김진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경악이 담긴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훌륭한 맛입니다."

"시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음료차시장이 얼마 되지도 않고, 일단 손님 접대용으로만 쓰고 있는 수제차입니다. 제가 가문의 비법으로 직접 키운 보리로 우려낸 차죠."

"이게 보리차라고요?"

그러고 보니 보리차라고 노인들이 말도 했었고, 또 보리 맛도 났었던 거 같다.

하지만 싸구려 보리차와는 차원이 다른, 중독성 깊은 품격과 맛이 있었다.

'설마 마약이라도 탄 건 아니겠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을까.

"여기서는 정신이 없군요. 일단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하수영은 자신의 사무공간으로 김진명을 안내했다.

유리문을 닫는 순간, 거짓말처럼 다른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노인들은 사무실 밖에 옹기종기 모인 채,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안쪽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팔짱 낀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김진명을 향해 뭐라고 입 모양을 보냈다.

'우리가 지켜볼 것이다.'

대충 그런 입 모양이었던 거 같다.

김진명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하수영을 돌아봤다.

"방음이 완벽하군요."

"간혹 민감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으니까요. 사무실 전체에 도청방지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혹시라도 말이 새어 나갈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기초의원 사무실에 그런 설비를 갖춰야 할 이유가?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네요. 수영레스토랑 라테백화점 입점이 무산돼서 참 아쉬웠는데, 혹시 그사이에 경영진 마음이 변하기라도 한 건가요?"

김진명이 하수영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저번에 수영레스토랑 입점을 논의 했지만, 임대료 책정 방식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무산되었던 적이 있으니.

"만약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전 지점에 입점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조건도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오, 꽤 파격적인데요."

"그렇게 계약이 무산되고 줄곧 마음에 걸렸습니다. 수영라면의 맛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훌륭한 퀄리티인데, 우리 라테백화점에 입점하지 못한 게 언제나 안타까웠습니다."

"저도 아쉬웠습니다."

"지금이라도 하수영 의원님…… 아니, 회장님께서 마음을 바꿔주신다면 라테백화점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입점하는 거야 뭐 어렵지 않죠.

그럼 저번처럼 라테백화점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되는 방식으로 입점하기로 할까요?"

"그걸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야지요."

다행히 분위기는 제법 선선하게 풀리고 있었다.

김진명은 수영레스토랑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하수영의 환심을 살 만한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다.

"꼭 한 번 수영참치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바빠서 지금껏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냥 조금 맛있는 평범한 참치입니다. 다만 중금속 우려가 없다보니 참치를 좋아하는 손님들이 앞다 투어 찾고 있죠. 특히 임산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일본에도 수출을 하신다고요."

"네. 아, 그러고 보니 라테그룹 본사가 일본에 있던가요? 그럼 수출망확장에 도움이 되겠군요. 지금 사가는 업체는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아서 늘 아쉬웠거든요."

참치 이야기와 칭찬도 빠뜨리지 않았고,

"실은 제가 엘릭서드링크 애용자입니다. 집과 사무실에 이만큼 쌓아놓고 먹고 있죠. 여기 제 실록 프로필사진입니다."

"아니, 알고 보니 소중한 고객님이셨군요. 이만큼이나 쌓아두고 드실 정도면 지금까지 몇백만 원 이상은 쓰셨겠어요?"

사실은 오늘 허겁지겁 막 사서 사진으로 남긴 것들이다.

"네, 참 훌륭한 건강보조식품인 것 같습니다. 꾸준히 먹고 있는데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저절로 느낍니다."

역시 거짓말이다. 아직 한 방울도 먹어보지 않았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하수영의 표정이 감동으로 물드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 마음에, 김진명 사장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회장님께서 뉴월드와 백두백화점에 골든 트러플을 제공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 두 백화점이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프리미엄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경험이 필요한 회장님의 상황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라테도 꽤 정보력이 좋군요."

"너무 아깝습니다. 골든 트러플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식재료가 아닌데요. 그 값비싼 식재료를 공으로 얻는 업체들이 괘씸하기도 하고요."

"아, 혹시 골든 트러플 이야기를 하러 오신 건가요?"

하수영이 바로 정곡을 짚어내자 김진명은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드디어 각오했던 순간이 왔다.

"저희 라테백화점에도 같은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무조건 뉴월드나 백두보다는 훨씬 좋은 대가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훨씬 좋은 대가?"

"네, 적어도 10배 이상의 대가를 보장하겠습니다."

하수영과 두 백화점이 내부적으로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무리 저렴하게 얻었다 하더라도 하수영이 만족할 만한 조건은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김진명 부사장은 그래서 자신 있게 딜을 던질 수 있었다.

그런데…….

"백화점 매출을 전부 저한테 주시겠다고요? 그럼 백화점 운영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방금 무조건 10배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나중에 변경갱신 조건으로 백화점 매출의 10%를 수수료로 받을 생각이었는데, 10%의 10배면 100%잖아요."

"……."

"부사장님이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되죠?"

김진명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매출의 10%라니? 이게 무슨?

설마 그런 조건으로 골든 트러플을 제공받고 있었단 말인가?

'두 백화점 모두 연매출이 7조 원이상…… 지금 흐름으로 보면 적어도 20조 원 이상은 가뿐히 찍는다. 그럼 2조 원?'

백화점이 두 곳이니 총 4조 원이다.

그런 막대한 출혈을 감안하면서까지 골든 트러플을 공급받고 있었다.

는 말인가?

'미쳤다. 미쳤어.'

반도체 라이선스 로열티를 내는 것도 아니고, 일반 유통업이다.

옷 팔고 가방 팔고 구두 팔아서 마진이 얼마나 된다고, 이익의 10%도 아니고 매출의 10%를 준단 말인가.

영업이익이라고 해봤자 매출의 7%가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인데.

일단 매출의 10% 까고 시작하면 대체 얼마나 남는다고.

'잠깐, 변경갱신할 때 내밀 조건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아직은 그런 조건이 아니라는 뜻인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매출의 10%는 아무래도…… 뉴월드와 백두가 그런 조건에 응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백화점 작년 영업이익이 5,000억 원이 조금 안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연 매출 20조 원 찍습니다. 그중 10조 원 이상은 아마 중국 같은 해외관광객 부자들이 올려줄 거고요."

부정할 수 없는 지적이었다.

"수수료로 매출 10% 까고 시작해도, 영업이익이 6,500억 이상은 남을 겁니다. 사이즈가 제법 있다 보니까 쥐어 짜내면 그 정도는 남길걸요?"

김진명은 재빨리 머릿속으로 암산을 해보다가, 충분히 그 정도는 남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매출은 2배 이상으로 늘었는데 이익은 30% 정도만 증가했으니, 경영진 입장에선 조삼모사일 수도 있겠다.

김진명은 하수영의 눈을 직시했다.

희미하게 웃는 눈빛은, 마치 너희는 얼마나 제시할 수 있느냐고 시험하는 듯했다.

'석현 군 음주운전 때문에 보복 조치를 한 게 정말 아니었단 말인가?'

그냥 순수하게 '공격적인 비즈니스'를 추구했을 뿐인가?

"아, 맞다. 진석현 씨는 잘 지냅니까? 사고 후유증은 없는 편이고요?"

그 순간 김진명은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돌려 묻고 있지만, 하수영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석현 군은……아마 평생 침대 신세를 져야 할 겁니다. 하반신 불구라서 움직이질 못합니다."

더불어 자손도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구태여 덧붙이진 않았다.

"저런, 안됐네요."

"……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제가 합의하면서도 걱정을 좀 했습니다. 잘못은 진석현 씨가 전부 저질렀는데, 애꿎은 저한테 라테그룹이 분노를 품고 나중에 보복하려고 하지 않을까 해서요."

오너 일가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수틀리면 재떨이 던지고 골프채 휘두르는 일족인데, 귀하디귀한 손주가 불구가 되었으니, 사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너 일가에는 분풀이 대상이 필요하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회장님도 부회장님도, 하수영 회장님께서 당하신 고초에 안타까움과 미안한 감정을 품고 계십니다."

전혀 자신은 없지만, 김진명으로서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에이, 제가 재벌들 정서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셔도 안믿죠. 원래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남 복부에 꽂힌 쇠 창보다 더 아픈 법인데, 설마 그러려고요."

"……."

김진명은 확실히 느꼈다.

두 백화점에 VIP서비스를 시행한 것은, 처음부터 라테백화점을 노린 저격이었음을.

'이 사람, 선공필승을 노린 것이었구나.'

그게 아니라 선빵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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