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18화
77장 바닥 아래 지하(4)
백두백화점은 프라임컴퍼니가 왜 이런 좋은 계약을 제안했는지 잘 모른다.
회사 이미지 고급화를 위해 나중에 런칭한다는 프리미엄 고급 레스토랑.
골든 트러플을 주력으로 사용하여 최고의 대부호들만 받는 레스토랑 오픈을 위한 연습 과정이라고는 들었다.
당시에는 어쨌든 백화점에 손해 볼것은 전혀 없고, 이익만 있어서 계약을 덥석 받았다.
이것저것 자세히 따져보기는 했지만 결국 백화점이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었으니까.
"아… 그땐 그랬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치명적인 손해 상황이 하나 있습니다. 프라임컴퍼니가 갑자기 더 이상 안 하겠다고 손 떼는 경우 말입니다."
"VIP서비스 기간 동안 프라임컴퍼니는 우리 백화점에 무상으로 입점할 수 있잖나."
"참치하고 라면 매장 해봤자 겨우 2개입니다. 전 지점에 2개씩 넣어봤자 그거 임대료가 얼마나 됩니까?"
사실 '입점한 을의 모든 매장'이기에, 참치나 라면 외에도 다른 브랜드를 만들면 공짜로 받아줘야 하긴 한다.
하지만 지금 백두백화점 임원들은 거기까지는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 4조 3항을 보면 을은 언제든지 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지만 단지 4개월 전까지 알려만 주면 됩니다."
당시에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골든 트러플, 송이버섯 서비스 자체만 해도 파격적인 수준이었으니.
프라임컴퍼니가 그렇게 큰 수고를 들여서라도 최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 한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겸사겸사 손해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서 매장 운영비용을 일체 백화점에게 전가시킨 것이라고.
"프라임컴퍼니가 골든 트러플을 어디서 저렴하게 얻는 상황이라고 해도, 기회비용 손실이 너무 큽니다. 저라면 차라리 팟디서플라이에 제값받고 넘겨서 그 돈으로 재벌 전용 레스토랑인지 뭔지를 운영할 거 같습니다."
"그럼 최 이사 말은, 프라임컴퍼니가 서비스를 중지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빨리 접을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된다면 언제든 접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
"문제는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 백화점이 입을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겁니다."
어느 임원이 새삼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까지 고객들이 기뻐할 줄은 몰랐습니다."
"자네 바보야? 왕실 전용 요리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데 당연히 좋아할 거야 모두 이미 알고 있었잖나?"
"순진하게도 '다이너마이트만큼'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핵폭탄이었잖습니까."
"……."
그 말에는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제가 매출 증가치를 예상해 봤습니다. VIP서비스 도입으로 늘어날 한 해 매출이 최소 5조 원에서 최대 10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무전문가인 최 이사의 장담에 다들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백두백화점 작년 총 매출이 7조원이 살짝 넘는다. 15개 지점을 모두 합쳐서 7조 원, 그런데 VIP서비스 하나만으로 매출이 2.5배까지 치솟게 생겼다.
"프라임컴퍼니는 당장 이득 보는 게 별로 없는데, 우리는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백화점이 갑이 아니란 말입니다."
원래 백화점은 입점 매장에 관해 철저한 갑이다.
물론 에르메스 같은 '슈퍼 을'브랜드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더 늦기 전에 장기 계약으로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프라임컴퍼니에서 이상한 생각을 품기 전에 말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이상한 생각을 품을 거면 애초에 왜 시작을 했겠어?"
"라테백화점에서 돈 싸들고 나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테백화점이?"
그 말에 임원들은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하나같이 그런 생각은 못 해봤다는 눈빛이다.
최 이사는 열변을 토했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만약 처음부터 라테백화점을 길들이기 위해 한번 돌아서 간 거라면 어떨까요?"
"길들인다고?"
임원들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 이사가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다들 단번에 이해한 것이다.
"지금 라테백화점은 명품 브랜드매출이 박살 났습니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박살 날 거라고는 우리도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막상 실제로 체감하니 다들 충격과 놀람이 크실 겁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어도, 직접 부딪쳤을 때의 생생함은 또 다른 법이니.
"제가 라테백화점 경영진이라면 당장 찾아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우리 백화점에 입점을 해주십사 매달릴 겁니다. 계약에 길게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4개월이면 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으니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라테백화점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라테백화점, 아니, 라테그룹은 우리 백두나 뉴월드에 비해서 현금동원력이 압도적입니다. 프라임컴퍼니에 제시할 카드가 많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라테백화점의 굴복을 노리고 설계한 빌드업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임원들은 맞장구를 치며 최이사의 의견에 동조했다.
"뉴월드와 협의해서 장기 기간으로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정진수 전무는 알겠다는 듯이 고덕였다.
"내가 부회장님께 보고해야겠어."
***
라테백화점 김진명 부사장은 하수영을 만나기 위해 지극히 노력했다.
공개된 연락처(전화, 이메일 등)로 정성 들여 연락을 취하며 약속을 잡으려고 했지만, 개인비서 인공지능의 영혼 없는 유보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김진명 부사장은 하수영이 청담동 구의원 사무실을 방문하는 타이 밍을 노려서, 기습적으로 사무실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실에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김진명 부사장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노인들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평범하고 편안한 옷차림을 한 노인들이 장기, 바둑, 신문 구독, 유튜브시청, 통화, 식사 등을 하다가, 그가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시선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분히 훑어내리는 시선에, 김진명 부사장은 온몸이 분해되는 듯한 짜릿함에 사로잡혔다.
"뉘신가?"
가장 앞에 있던, 개량 한복을 입은 노인이 손부채질을 하면서 점잖게 물었다.
이래 봬도 라테그룹에서 한평생 자본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온 몸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노인들을 이끄는, 리더 격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예, 저는 라테백화점에서 나온 김진명이라고 합니다."
"풍채를 보아하니 임원급 이상은 되겠군. 직급이?"
"과분하게도 부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적당하이. 일단 앉으시게. 손님 대접을 소홀히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노인은 손 부채질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최우석이라고 하네. 그냥 최사장이라고 부르면 되네."
"어찌 제가 감히 어르신께 그런……"
"그게 이 사무실 룰이고 규칙이야. 정 뭐하면 최 사장님이라고 부르시게."
"알겠습니다. 최 사장님."
널찍한 사무실 어디에서도 하수영은 보이지 않는다.
타이밍이 살짝 어긋난 걸까? 아니면 정보가 잘못된 걸까?
김진명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래, 우리 하 의원 사무실에는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나?"
최우석이란 노인이 묻자 다른 노인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에이, 국회의원 사무실에 뭐가 있어 찾아왔겠어? 당연히 민원이 있어서 찾아왔겠지."
"이 사람아. 아직 국회의원 아니야. 구의원이라고."
"국회의원은 따논 당상인데 나중에 입에 찰떡같이 붙이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불러둬야지. 구 의원은 우리 하 의원한테 있어서 지나가는 거점일 뿐이라고."
노인들은 곧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고, 김진명은 그 순간 몇몇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익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분은 박성태 회장님 아닌가?'
종로에서 알아주는 현금 부자.
비즈니스로 굴리는 현금만 2,000억원이 넘어가는 재력가로, 재벌 기업들도 단기 목돈이 급할 때 그를 찾는다고 들었다.
몇 년 전에 20대 신부와 새살림을 차리고 청담동으로 이사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눈에 얼굴이 익은 노인들 모두 하나같이 종로 사채업계 대부, 2금융권 회장, 대형 리조트 오너 등 범상치 않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처음 보는 얼굴도 자신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을 것이다.
자연히 긴장감에 온몸이 뻣뻣해졌다.
"실은 하수영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이 사무실 안에서는 회장님도, 사장님도, 대표님도, 농부도 아닌, 하수영 의원이야. 그 점을 명심하게."
"죄송합니다. 하수영 의원님을 쾌러 왔습니다."
"곧 올 거야. 구의회에서 퇴청하는 길에 잠깐 빌딩 몇 개 좀 보고 온다고 했으니. 프리덤, 맞냐?"
-예, 맞습니다. 주인님.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걸세. 근데 하 의원한테는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찾아오셨는가?"
"그건 제가 섣불리 말씀드리기 곤란해서……."
"어허, 내가 이래 봬도 하수영 의원사무실 사무총장 최우석일세. 그런데 나한테 먼저 설명을 못 하겠다고?"
그 순간 여기저기 노인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무총장이란 말에 터진 거 같은데, 김진명은 왜 그게 웃긴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분위기로 보나 뭐로 보나, 하수영을 대리해서 의원사무실을 관리하는 사람은 맞는 거 같은데?
"실은 구의회 관련 업무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먼저 말씀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워서………"
"아니, 하 의원을 찾아왔는데 의원 관리 민원이 아니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
"여기는 의원사무실일세. 그 외의 업무는 처음부터 여기에 들고 오지 말았어야지. 큰 정치하는 사람을 사사로운 일로 이렇게 번거롭게 해서야 쓰나."
"원래 라테그룹이 그렇지. 근본 없는 기업이야."
"근본이 없긴 왜 없어. 물 건너에 당당히 뿌리 두고 있는데."
"다들 너무 그러지 말게. 그래도 우리 아들 주거래처가 라테유통인데, 부사장씩이나 되는 인물 앞에서 면박을 주면 내가 다 마음이 아파."
회장님이 임원들을 죽 세워두고 아드님을 손수 골프채로 훈육하실 때에도, 이 정도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은 안 들었던 거 같다.
하나같이 포스가 장난 아닌 노인들 수십 명이서 품평을 하듯이 이리저리 떠들고 있으니, 점점 혼백이 육신을 이탈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 손님이 오셨나요? 아, 김진명부사장님 맞으시죠? 라테백화점."
"아, 오랜만입니다. 하수영 사장……아니, 의원님."
"의원이면 어떻고 사장이면 어때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아니,부의장님은 손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차도 안 내주셨어요?"
"아, 지금 막 내주려고 했어.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까 늦어진 거야."
"……부의장님?"
김진명이 얼이 빠져서 작게 혼잣말을 하자, 하수영이 얼른 알아듣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분, 강남구의회 부의장직을 맡고 계신 최우석 의원님이십니다."
"…아까 저에게는 하수영 의원 사무실 사무총장이시라고……."
"그건 아르바이트로 하는 거고요. 기초의원은 부업이나 알바의 허용 폭이 매우 넓거든요."
"……."
"자, 여기 김진명 부사장님도 차 한 잔 드시게. 한 번도 안 먹어본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놈은 없다고 하는, 수영농장 특산물로 만든 차야."
"암, 한 번만 마셔보면 그 맛에 중독돼서 매일 그 차를 찾아 여기에 출근도장을 찍게 되지."
"어서 먹어보라고, 진짜 맛있어."
주변에서 노인들이 권유했지만, 김진명은 차를 살짝 입에만 대면서 먹는 시늉만 했다.
지금으로써는 한 모금이라도 삼켰다가는 그대로 토할 것 같아서였다.
"아, 정말 맛있습니다."
"입에 대고 말았구만."
"안 삼켰네, 안 삼켰어."
"좋은 마음에 좋은 차를 대접해 줬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야…… 하 의원. 이 친구 못 쓰겠으니까 대충 타이르고 내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