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15화
77장 바닥 아래 지하 (1)
조성희는 뉴월드백화점 특급 VIP였다.
한해 구매액 기준으로 999명까지 끊는 '나인즈' 등급을 갖고 있었으니까.
뉴월드 VIP 나인즈 등급의 연평균구매액은 10억 원이 살짝 넘는 수준이다.
999명이 올려주는 매출을 다 합치면 1조 원이 넘는다는 소리다.
물론 '나인즈'에 간신히 커트라인으로 걸친 조성희는 1년 구매액이 2억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동시에 백두백화점, 라테백화점의 VIP이기도 했다.
박애정신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세백화점을 골고루 사랑한다.
세 백화점마다 쓰는 돈이 매년 비슷비슷한 수준.
그녀는 어느 날 뉴월드백화점에서 VIP카드를 받았다.
"응? 앞으로 시크릿 등급제를 별도로 실시한다고?"
"뭐야, 언니?"
"뉴월드VIP접객실에서 이상한 걸 시도하나 본데? 앞으로 VIP 시크릿등급제를 별도로 운영한대."
"기존 등급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별도로 하나 더 운영한다는 소리?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한대?"
"심플하긴 엄청 심플하네."
조성희는 VIP카드를 읽어 내려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설명을 해주었다.
"시크릿 등급제는 그러니까… 구매액 기준으로 상위 29명인 블랙M, 상위 0.1%는 레드M, 상위 5%는 옐로M, 이런 식으로 별도 등급을 매겨서 운영한다는데?"
"요즘 VIP등급명을 그런 식으로 짓는 회사가 어딨다고, 조금 촌스럽긴 하다. 근데 그 3가지 등급이 다야?"
"일단은 그런가 봐."
"그럼 혜택은 뭔데?"
"음, 블랙M 등급은 뉴월드백화점본점 VIP라운지에서 월 1회 골든 트러플 요리를…… 뭐? 골든 트러플?"
순간 조성희와 여동생 조명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골든 트러플? 아랍 왕실들이 즐겨 먹는다는 그 식재료 말하는 거지?"
"아! 작년에 서해호텔에서 골든 트러플 시식 파티했다고 했을 때 정말 부러웠었는데."
"그게 진짜 엄청 중독성 강하고 귀하다며? 언니가 막 열심히 설명했었잖아. 킬로당 얼마라고?"
"킬로당 못해도 3억. 진짜 최상품은 10억 이상"
"와, 진짜 금은 비교도 안 되게 비싼 식재료네. 그걸 무상으로 준단 말이야?"
조성희는 VIP카드를 다시금 다급하게 읽었다.
"레드M(상위 0.1%) 반년에 1회, 옐로M(상위 5%)는 연 1회…… 그리고 옐로레드블랙 모두 언제든지 최상품 송이버섯 요리를 즐길 수 있다고?"
"어머어머, 송이버섯 요리 하나만 해도 꽤 세게 나오네. 근데 그렇게 운영하면 적자 아니야?"
"송이야 그렇다 치고, 골든 트러플하나만 해도 이거 감당이 안 될 텐데, 뉴월드가 작정하고 칼 빼들었구나."
그때 가정부가 정갈한 흰색 봉투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사모님, 백두백화점에서 뭔가 왔는데요."
"이리 줘요. 어머나, 이게 뭐야? 백두백화점에서도 같은 VIP서비스실시한다는데?"
"완전히 같아?"
"그래, 등급 나누는 방식하고 서비스 제공이 완전히 똑같아. 이름은 좀 다르네. 아래부터 그린G, 블루G, 퍼플G."
"그럼 라테백화점에서도 시행하는거 아니야?"
조성희는 뉴월드백화점 VIP접객실에 전화를 걸어서 얼른 자세한 내용을 확인했다.
-네, 고객님. 맞습니다. 저희 뉴월드백화점과 백두백화점에서 이번에 실시하는 VIP고객 서비스입니다.
"잠깐, 그럼 라테는 안 한다는 거예요?"
-저희 뉴월드에서 백두백화점과 협의를 해서 추진하는 서비스이고요, 라테백화점과는 아무런 말이 오고 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성희는 두뇌를 팽글팽글 돌렸다.
'블랙M 등급은 애초에 절대 못 들어가.'
지금도 뉴월드 상위 999명에 겨우 걸쳐 있는 상황인데, 상위 29명은 언감생심 어림도 없다.
'레드M 등급은 가능할 수도 있어.'
상위 0.1%.
이건 충분히 가능할 듯이 보인다.
'이 카드를 나만 받았다는 전제하에서지.'
백화점 측에서는 당연히 기존의 상위 VIP들을 대상으로 이 카드를 돌렸을 것이다.
구매욕을 자극해야 하니, 아마 구매액 상위 10% 내지 15%까지는 안내를 받지 않았을까?
'이래서는 레드M 등급도 위험할 수 있어.'
빠르게 생각을 마친 조성희가 동생 조명희를 바라보았다.
동생도 이미 계산을 마친 모양이다.
"언니, 백화점 하나는 정리해야 해. 알지?"
라테는 정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애초에 서비스를 시행하지 않으니. 그냥 '원천탈락' 이다.
백두와 뉴월드, 둘 중에서 하나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 들어보니까 본점 라운지에서만 혜택받을 수 있는 거 같아. 백두도 그건 마찬가지라 하고."
"전문 셰프진을 상시 운용해야 하니까 지점마다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을 거야."
"백두백화점은 정리하자. 뉴월드본점이 우리 집에서 훨씬 가까워. 라운지 요리 자주 먹을 거 생각하면 가까운 곳이 아무래도 낫지."
"그러자. 앞으론 쇼핑을 한 곳으로 싹 몰아야 해. 그래야 상위 0.1%를 노려볼 수 있어."
"맞아. 우리 말고도 다른 VIP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다.
연락을 받은 VIP들은 분명 라테를 제외하고, 백화점 둘 중에 하나로 올인하려 할 것이다.
뉴월드와 백두.
둘 중 한 곳으로 올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신규 VIP서비스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언니, 작년에 백화점 쇼핑에 돈얼마 썼어?"
"6억? 7억? 대충 그 정도 되는 거 같은데."
"백화점 3개 다 합쳐서 그렇다는 거지?"
"그렇지."
"난 2억 중반 정도 썼는데…… 앞으로는 언니 명의로 몰아서 쇼핑해야 할 거 같아."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둘이 합쳐서 9억 정도 되니까, 0.1%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장담하면 안 돼. 강남 백화점 큰 손들, 다들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걸?"
"그럴까?"
"예전처럼 세일리지 한도 좀 늘려 주고, 정기적으로 콘서트 티켓 보내주고, 그런 것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서비스야. 골든 트러플 그거, 재벌들도 절대 쉽게 못 먹는 거라고."
조명희가 한숨을 쉬었다.
"에휴, 아랍 왕실 요리 한 번 먹어 보자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백화점들은 VIP관리를 위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윤 창출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한계가 명백하다.
하지만 이번 서비스는 파격 그 자체다.
이놈들이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으니까.
***
"박 상무, 지금 뭐라고 했지?"
김진명 사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애써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눈썹이 쉴 새 없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명품관 매출액이 전월 대비 89%감소했습니다."
"89%……."
"그리고 오늘 같은 경우, 본점 루이비통 매장의 매출액이 0원이었다고 합니다."
"……."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루이비통에서 별다른 항의는 없습니다만."
당연히 그럴 것이다.
루이비통 전체 매출이 줄어든 게 아니라, 라테에 입점한 매장 매출이 다른 지점으로 넘어간 것이니까.
물론 해당 지점은 난리가 났겠지만, 본사 입장에서는 크게 새삼스러울 게 없으리라.
그리고 루이비통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명품관 브랜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 백화점을 이용하던 VIP들은 전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뉴월드와 백두, 둘 중에 하나를 골라서 구매금을 올인하는 형태의 소비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두 백화점이 시행하는 시크릿 등급제 멤버십에 들어가기 위해서겠지."
바닥 아래 지하 20층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김진명 부사장은 드디어 뉴월드와 백두에서 시행하는 시크릿 등급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믿을 수 없었다.
그 말도 안 되게 값비싼 골든 트러플 요리를, 상위 5% 이내의 고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니,
'VIP들 상대로 벌어들인 돈을 죄다 서비스로 지출하겠다는 속셈인가?'
킬로당 수억 이상 가는 식재료로 최고급 요리를 제공하겠다니.
밑지고 파는 장사꾼이 없다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장사를 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최고급 송이버섯 요리 상시 제공서비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다.
"박 상무, 자네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비용이 얼마나 들 거 같은가?"
"말도 안 됩니다. 상위 29명에게 월 1회, 동행자 1인 기준으로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식재료값만 연간 700억 원이 넘어갑니다."
"……."
"그들에게 신년선물로 주는 골든 트러플, 그리고 0.1% 고객과 5%고객에게 제공하는 식재료값까지 다 합치면, 매년 수천억 원은 가뿐히 넘을 겁니다. 어쩌면 1조 원이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최상위 5% 고객 전체가 우리 백화점에 남겨주는 연간 이익이 1조원이 넘나? 아니지?"
"우리 백화점 전체 지점 작년 영업이익이 6,000억 원이 안 됩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 말도 안되는 서비스를 해서 남는 게 전혀 없어. 남는 게 없는 정도면 다행이지, 서비스 반년만 시행해도 백화점을 팔아야 할걸?"
그런 미친 짓을 두 경쟁사는 왜 시행한다는 것인지, 라테백화점은 아직까지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두 백화점이 사이좋게 미친 건 아닐 테고, 이거 부담하는 주체가 분명히 따로 있어."
"설마 팟디서플라이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일까요?"
"팟디서플라이? 그건 또 뭔데?"
"골든 트러플 유통사입니다. 글로 벌 곡물기업인데, 우리나라 기업과는 직접적인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국제시장에서 유통되는 골든 트러플은 사실상 이 회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잠깐, 어디서 한 번 들어본 거 같은데?"
"작년에 국내에서 채집된 골든 트러플 300kg을 팟디서플라이가 4,500억 원에 일괄 매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신문에서도 한 번 크게 났었죠."
"국내에서도 골든 트러플이 생산된다고?"
"원래는 생산되지 않지만, 작년 어떤 개인이 소유한 농작용 토지에서 골든 트러플 300g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떠들썩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진명 부사장의 안색이 밝아졌다.
드디어 진실을 향해 접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느낌 온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한 번 자세히 조사해 봐."
"네, 부사장님."
"조속히 이 문제 해결해야 해. 더 이상 보고를 질질 끌 수 없는 거 알지? 내일 중으로는 보고 올려야 하고, 그 안에 상황 파악과 대비책까지 세워둬야 해. 안 그럼……."
회장님이 풀스윙으로 던지는 재떨이가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김진명 부사장은 이 나이 먹어서도 그런 수모를 겪긴 싫었다.
***
박수홍 상무는 일 처리가 영민한 편이었다.
그는 오래 걸리지 않아서, 골든 트러플이 발견되었다는 경기도 어느 야산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원래 집안 대대로 농사짓던 친구인데, 자기 집 뒤뜰에서 골든 트러플이 발견되었다지 뭡니까 글쎄."
"아주 초대박이 난 거죠. 근데 지금도 골든 트러플이 생산되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마 더 이상 생산되지는 않을 걸요? 땅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고, 무슨 지질학자 한 명한데 토양 조사를 의뢰했다고 들은 거 같아요."
"지금은 서울 올라가서 부동산 장사하면서 정치판에 진출하려고 기웃거린다던데……."
박수홍 상무는 일단 골든 트러플이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경기도 전원주택 뒤뜰을 찾았다.
한적한 곳에 야트막하게 세워진 뒤 뜰을 뒤로한 전원주택을 생각하고 목적지를 찾았지만…….
"전원주택이 어디 있다는 거야?"
그곳에는 철저한 보안을 받는 신축첨단연구동 건물 수십 채가 연구단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아니, 연구단지 입구에는…….
[축! 안살린 왕자님의 테드 강연! Coming soon!]
[경사! 내년부터 우리 수영리에 드디어 도시가스 공급 시행!]
[우리 수영리 주민들은 LA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원합니다!]
원주민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가 사방에 가득히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