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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14화 (314/1,270)

프랜차이즈 갓 314화

76장 선빵필희 -선빵은 반드시 기분 좋다 (6)

백두그룹.

서해그룹과 더불어 한국의 재벌계를 상징하는 대기업이자, 거목이다.

서해그룹이 반도체와 모바일기기 등 고부가가치 첨단미세 영역을 파고들었다면, 백두그룹은 조선, 건설, 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런 백두그룹의 창업자 입장에서, 백두백화점 따위는 딸들의 허영심충족을 위한 자그마한 놀잇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까짓 백화점 놀음해서 얼마나 번다고?'

백영호 회장이 백화점 유통 사업을 바라보는 심정은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고작해야 VIP서비스 제공 계약 체결 장소에 직접 노구를 이끌고 행차했다니.

"진짜 골든 트러플을 엄청나게 사랑하셨었나 봐요."

정서희가 다시 한번 속닥거렸고, 하수영은 가만히 시선을 고정한 채 끄덕였다.

아까부터 백영호는 하수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백현진이 둘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와서 작게 속삭였다.

"할아버지께서 방금 오셨어. 나도 몰랐어.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오신 거거든."

"깜짝 놀랐어요. 설마 회장님이 직접 서명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그냥 계약 이야기 들으시고 오신 거 같아. 실무 경영에서 손 떼시고 웬만한 프로젝트는 거의 참여 안 하시는데……."

하수영은 자신을 위한 자리에앉았다.

본래라면 백현진의 부친인 백서훈사장이 앉아 있어야 할 맞은편에는, 백영호 회장이 날카로운 눈매를 한 채 자리했다.

"자네, 강남구의원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하수영은 공손히 반응했다.

이 정도 맞장구를 쳐주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서해호텔에서 떠들썩했던 골든 트러플 파티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미력하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한 파티였습니다."

"다음부터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나도 좀 초대해 주게나."

"연락처를 알았으면 초청을 드렸을 텐데, 저로서도 매우 아쉬운 마음입니다."

"……."

그 말에 주변 인물들의 안색이 살짝 파리해졌다.

듣기에 따라서는 연락처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가 그랬다면 버럭 화를 냈겠지만, 하수영은 이제 백두그룹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다.

"희찬아. 한 장 드리거라."

"예, 회장님."

공희찬 비서실장은 명함 케이스에서 금색으로 빛나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수영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백영호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달랑 적힌, 심플한 디자인의 명함이었다.

"내 연락처네. 다음에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나도 불러주시게나."

"네, 회장님. 감사합니다."

하수영이 공손히 명함을 챙기면서 다음 행동이 없자, 백영호가 실소하면서 물었다.

"자네도 명함을 줘야 하지 않겠나?"

"아, 저는 명함이 없습니다."

"정치인이 명함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 명함은 사무실에 두고 다닙니다."

"……."

"대신 제 연락처는 항상 오픈되어 있으니 언제든 필요할 때 연락 주십시오. 보시다시피 오늘 서명하는 계약서에도 제 연락처와 주소, 주민번호까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침착한 친구로군, VIP서비스는 언제부터 시작하나?"

"모든 밑준비가 이미 다 끝난 상황입니다. 지금 서로 서명을 하는 순간부터 바로 서비스가 개시될 겁니다."

"난 백두백화점에서 뭘 산 게 없네. 그래서 VIP권도 없지."

"가족 전원이 VIP이신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동행으로 아무나 한 명 데려가시면 되지요."

"반대로 말하면 동행이 아니면 안된다는 거군."

"회장님 개인은 VIP권이 없으시니까요."

"백두그룹 회장인데도 예외는 없다, 이건가?"

"그런 예외를 자꾸 만드는 순간 서비스의 품격은 저하되고, 골든 트러플의 가치도 덩달아 하락합니다. 아랍 부호들도 그걸 원치 않을 겁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침착한 친구로군."

백영호 회장은 더 이상 말을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백현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백현진은 얼떨떨해서 반응했다.

"네?"

"네 어미 카드, 네가 갖고 있지?"

"네? 그걸 어떻게……."

백현진의 모친이자 백영호의 며느리인 황주희는 당연히 백두백화점최상위 VIP다.

그것도 구매액으로 상위 20위 안에 들어가는, 진짜 VIP 중의 VIP다.

근데 그걸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우리 가족 중에 29등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 네 어미밖에 없더구나. 그래서 오면서 카드 좀 빌려달라 했는데, 너한테 맡겼다고 하더구나."

"……그, 그러시군요."

"네 어미 허락은 받았으니 카드 좀 쓰자."

백현진은 얼떨떨해하면서 카드를 꺼내서 조용히 내밀었고, 공희찬이 그걸 받아 챙겼다.

백영호가 협상장에서 벗어나자 정서희가 온갖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바라보다가 작게 속삭였다.

"지금 재벌 회장님이 손녀의 엄빠카드를 강탈해서 나가신 건가요?"

"제가 진짜 오래 살긴 했나 봅니다. 살다 살다 이런 것도 다 보네요."

"아, 이거 페북에 올리고 싶어서 지금 입이 근질근질해요. 페친들 알면 절대 안 믿을 거야. 나라도 못믿어. 어찌 믿어."

백영호의 등장이 워낙 강렬했던 덕분인지, 최종체결은 쏜살처럼 흘러갔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서훈은 재벌 2세, 심지어 딸인 백현진이 하수영보다도 나이가 많다.

하지만 이미 하수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지, 그의 앞에서 매우 정중하게 행동했다.

"혹시 청담동에 백화점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만약 백화점 내시겠다면 제가 임대료는 파격적인 수준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백서훈은 당황했다. 이 젊은 친구, 지금 진심인가?

'청담동 부동산 큰손이라고는 들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런 제안을 할 줄이야.

뭔가 대답할 말이 궁했다.

청담동은 백화점을 세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미 가까운 삼성동에 백화점이 있는 상황에서 청담동에 세워봤자 적자만 볼 뿐이다.

정말 극소수의 VIP만을 위한 소규모 갤러리몰을 만든다면 모를까, 부자부터 중산층, 서민까지 두루두루 방문하는 백화점은 어불성설이다.

"죄송하지만 삼성동에 이미 본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계약을 체결한 이곳, 백화점 본사 길 건너편에 떡하니 있다.

"청담동은 지리적으로 새로운 지점을 내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아쉽네요. 유권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한 번 여쭤 본 건데……."

"도와드리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싶지만, 이미 너무 가까운 곳에 본점이 있는 상황이라……."

그러고 보니 지역구가 청담동이었지?

그럼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치인들이란 원래 돼도 않는 거 찔러보는 걸 잘하니까.

'근데 정치인이라고 해도 맞는 건가? 이 친구 정체성이…….'

정치인? 부동산 임대업인? 기업인? 농업인? 요식업자? 뭐라고 정의를 해야 하지?

***

서명이 끝나자마자 하수영은 곧바로 뉴월드백화점 본사를 찾아서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

뉴월드백화점 측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수영 앞에서 매우 극진하게 굴었다.

특히 조형석 상무는 이 계약을 책임진 재벌 3세임에도 불구하고, 하수영 앞에서 매우 깍듯하게 굴었다.

"의원님의 의정 활약은 이전부터 새겨듣고 있었습니다.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강남구의회와 강남구청을 휘어잡고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잖습니까."

"감사합니다. 혹시 강남구민이신가요?"

"주소지가 청담동입니다. 실은 저번 보궐선거 때도 의원님에게 표를 드렸습니다."

"아이고, 지지자분을 만나 뵙게 돼서 이거 영광입니다."

계약 체결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하수영은 자신보다 나이도 열 살 이상 많은 조형석 상무와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기에 바빴다.

덕분에 수행원들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꼿꼿하게 선 채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네? 청담동에 백화점을요?"

"네, 다름이 아니라 청담동에 백화점이 없어서 요즘 제가 고민이 많습니다. 민원도 상당하구요. 아니, 다른 지역에도 있는 백화점이 청담동에만 없어서 쇼핑하는 데 애로사항이 심하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대형 백화점은 없지만, 그 대신 명품거리와 특별한 부자들을 위한 갤러리 백화점 등 다양한 사치공간이 많지만, 그 점은 대화에 쏙 빠져 있었다.

"저런…… 하긴, 사실 백화점이 명품부터 가전과 가구, 의류,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한 자리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해 볼 수 있다는 장점만큼은 그 무엇도 따라잡을 수가 없죠."

"심지어 지하에는 장을 볼 수 있는 대형마트도 있고요. 그런 백화점이 우리 청담동에도 필요하다. 이겁니다."

거듭 말하지만, 일반 백화점보다.

더 좋은(그래서 다른 지역이 부러워하는) 시설들이 많이 있지만, 그 점은 대화에서 쏙 빠져 있다.

일반 백화점 상권이 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는데…….

"하지만 일반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 수익을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미 뉴월드 강남점이 있어서요."

"그럼 뉴월드 강남점 청담분점이라도 내주시면 안 됩니까?"

조형석을 제외한, 뉴월드백화점 임직원들은 기가 막혔다.

이게 무슨 보건소도 아니고, 웬 분점 타령이란 말인가?

'아예 들어가면 뉴월드 청담동점이지, 뉴월드 강남점 청담분점이란 말장난은 또 뭐야?'

'이래서 정치인들이란…… 잠깐, 근데 저 사람 정체성이 정치인이 맞기는 한가?'

"뉴월드백화점 청담동 진출을 꼭 진지하게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물론 이것은 정치인 하수영으로서의 민원이지, 오늘 계약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제가 그런 점은 확실한 사람이니 절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임원들의 귀에는 절대 걱정해 달라는 반협박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들은 웃을 수 없었다.

***

라테백화점 본사.

김진명 부사장은 일일매출보고서를 검토하던 중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뭐야? 오늘 매출이 왜 이렇게 줄었어?"

원래 일 매출이야 어느 날은 많았다가 어느 날은 공치기도 하고 그러는 법이다.

적어도 주간, 월간은 되어야 통계가 의미 있지, 하루하루 단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명 부사장의 눈을 확 잡이끌 정도로, 매출이 기이하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명품관 매출만 확 줄어들었잖아?"

놀랍게도 명품관 일매출이 역대급 최저치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갱신했던 것이다.

명품관을 애용하는 VIP층이 단체로 병이라도 난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측근인 박수홍 상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반응했다.

"하루 정도야 그럴 수도 있죠. 오늘 뉴월드백화점과 백두백화점에서 VIP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 그랬나?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두 백화점이 동시에 겹쳤네."

"네, 뉴월드와 백두 VIP는 우리 라테 VIP이기도 하잖습니까. 오늘 행사가 있어서 그쪽으로 좀 빠진 모양입니다."

"우리도 다음 주에 행사가 있었지?"

"네, 맞습니다."

"뭐, 그럼 이 정도야 금방 복구되겠지."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행사에 따라서 일 매출의 변동 폭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때문에 김진명 부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

"뭐야? 명품관 매출이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떨어졌어? 이게 말이 돼?"

전날 하락 폭이 바닥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가 더 지나자 지하 20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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