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12화
76장 선빵필희 -선빵은 반드시 기분 좋다 (4)
골든 트러플.
세게적인 곡물회사 팟디서플라이가 생산량의 6, 70%를 책임지며,사실 상 유통량을 독점하는 식재료다.
주소비층은 아랍, 유럽의 왕실.
킬로그램당 수억에서, 최상품은 수십억까지도 하는 식재료다 보니, 일반 재벌들은 감히 먹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우리 백두그룹 회장님,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딱 두 번 드셔본 적이 있었지."
백현진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처음에 자기 돈, 회삿돈으로 드셔본 건 아냐.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킬로당 수억이 넘는 음식을 사먹는다?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자기 돈으로는 엄두를 못 낼 일이다.
조그만 반도의 '지나가는 재벌 1'이 1, 2kg 정도 사먹고 싶다고 수줍게 제안을 넣어봤자, 팟디서플라이가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기 때문이다.
"나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백두건설 끌고 중동에 도로 깔러 가셨을 때 이야기야. 당시 친해지게 된 아랍 왕족 건설책임자 집에 우연히 초대받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골든 트러플 요리를 드셔보셨대."
백현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천상의 맛이었대. 할아버지가 원래 먹는 낙을 중요시 여기시는 분이었는데, 자기가 지금까지 헛살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시는 거야."
"첫맛이 너무 강렬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
"그 맛을 몇 년 동안 못 잊어서 결국 친구들과 계모임을 하나 만드셨어. 돈을 각출해서 골든 트러플 20kg인가를 사서 다 같이 요리를 해드셨대. 그게 100억인가 그랬을 거야."
"20kg에 100억이면 최상품 등급은 아니었겠네."
"친구분들은 골든 트러플 시식 경험이 없지만, 할아버지가 하도 극찬을 하시고 또 아랍 왕족들이 좋아하니까 버킷 리스트 한 칸 채운다는 심정으로 시도해 본 거지."
백현진은 냉수로 잠시 목을 죽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게 할아버지가 인생에서 골든 트러플 두 번째로 드셔본 경험이었고, 대성통곡을 하셨지."
"왜? 당신께서 기억하시던 맛하고 차이가 많이 났었나?"
"아니, 기억하시던 맛 그대로였거든."
"……아."
"이 좋은 걸 왜 여태껏 멀리하고, 살았나, 그 시간이 아깝고 후회가 막심해서 눈물이 나셨다는 거야."
"작년 서해호텔 파티 초청장을 드릴 걸 그랬네."
"사실 엄청 아쉬워하셨어. 정말 가슴을 쥐어뜯으며 안타까워하셨지."
"언니, 말이라도 좀 해주지."
"나, 그래도 염치는 있는 사람이거든?"
두 여자는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대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국내에는 골든 트러플 자체를 팔지를 않아. 일본, 중 국에는 그나마 조금씩 유통이 되는데 국내는 유통망 자체가 없어."
"그걸 우리 회사에서 작년에 처음으로 시장에 내놓았잖아."
"알지. 팟디서플라이에서 300kg을 4,500억 원이나 주고 사갔다면서?"
"응, 모두 최상품이었거든."
"팟디도 보통 독한 게 아니네. 유통망 독점 지키려고 그걸 싹쓸이하다니."
"그해는 팟디도 골든 트러플 가지고 큰 재미는 못 봤을 거야. 시중 물량이 전년도보다 늘어나서."
"우리나라에 골든 트러플 농장이 정말 있기는 한가 보구나."
"공개는 못 해. 아시겠지만."
"어느 정도 물량을 낼 수 있어?"
"그것도 비밀. 레스토랑 한두 개 정도만 겨우 유지할 정도라고 보시면 돼."
"그럼 팟디서플라이도 크게 눈엣가시로 여기지는 않겠구나."
세계적 곡물기업이자, 골든 트러플유통회사인 팟디서플라이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골든 트러플의 그 지고한 가지다.
아주 특별한 소수의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움.
그 가치 덕분에 아랍과 유럽, 중국의 대부호들이 한 끼에 수억,수십억이나 하는 가격을 마다하지 않고 찾는 것이다.
그 가치가 훼손되면 대부호들은 더 이상 골든 트러플에 큰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다.
한때 고급어종으로 취급받았던 광어가 대량양식에 성공하면서부터 싸구려 횟감이라는 이미지가 붙은 것처럼.
"골든 트러플이 호불호 없이 정말 맛있고 중독성이 강하긴 한데…… 아랍 왕족들이 안 찾기 시작하면 팟디서플라이도 그 가격을 유지할 필요가 없겠지."
"우리도 그 점은 매우 신경 쓰고 있어, 골든 트러플의 가치는 지켜야지. 레스토랑 한 개, 잘해야 두 개. 손님은 하루에 딱 9팀까지만 받을 거야."
"레스토랑 운영으로 남는 건 별로 없겠어."
"대신 럭셔리 이미지가 남죠. 돈주고도 못 사는, 지금 우리 그룹에는 그런 게 필요해."
"골든 트러플을 끼얹으면 럭셔리 이미지는 그냥 무조건 저절로 생긴다고 봐야지. 근데 VIP서비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세세하게 잡아놓은 건 아직 없고, 뼈대 정도만 있어."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너희가 세세하게 잡아봤자 내가 결국 다시 칼질하게 돼있어. 골격부터 같이 잡아보는 게 낫지."
"최상위 매출 고객 29등한테는 새해 선물로 골든 트러플 한 끼 분을 보낼 생각이야. 4인 식사 기준으로."
"시작부터 너무 센 거 아니야?"
"새해 선물과 별도로 한 달에 한번, 동행자 1인까지 VIP라운지에서 골든 트러플 요리를 무상으로 제공할 생각이야."
"그건 이월되지 못하고 소멸식으로 해야 할 거야. 그리고 또?"
"상위 0.1% VIP고객은 6개월에 한번 골든 트러플 요리를 제공할 생각이야. 그리고 상위 5% 고객도 일년에 한 번 VIP행사에 초청해서 골든 트러플 요리를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백현진은 가만히 끄덕거렸다.
상위 VIP로 갈수록 남들이 감히 따라 하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국내에는 전혀 유통되지 않는, 한 끼에 수억씩 하는 아랍 왕족들이나 즐기는 골든 트러플 요리를 여기서는 먹을 수 있다?
벌써부터 돈 많은 사모님들 콧구멍에 헛바람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이거 치열한 매출 경쟁이 벌어지겠는데."
돈 주고도 먹을 수 없는 초호화요리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경쟁심을 불붙이는 게 아니다.
선착순, 누군가는 즐길 수 있지만 누군가는 즐길 수 없다는 제로섬 무대.
이제부터 고객들은 상위 29등 안에 들기 위해서, 상위 0.1% 안에 들기 위해서, 상위 5% 안에 들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매출을 올려줄 것이다.
일반 고객들에게는 부질없는 신들의 싸움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이 될 것이다.
백현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네. 다른 백화점은 이제 다 죽었어."
VIP고객들은 보통 백화점 여러 곳을 둘러보며 쇼핑을 즐긴다.
백두백화점의 VIP는 라테백화점, 뉴월드백화점의 VIP인 경우가 대부 분이다.
"어차피 구매할 물건이라면 이제 다른 백화점 말고 우리 백화점에 와서 구매할 테니까."
적어도 겹치는 품목은 이제 싹쓸이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사실 특정 백화점 매장에서만 파는 진짜 한정판 같은 것은 가짓수가 몇 개 되지 않는다. 백화점전체 매출 증감에서도 큰 의미는 없다.
정서희가 미안한 얼굴로 덧붙였다.
"백두백화점에서만 할 건 아닌데."
"뭐야? 야! 그런 게 어딨어!"
"사실 백두백화점이 지점이 몇 개 안 되잖아. 다른 백화점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적지. 물론 그만큼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한층 높은 편이지만"
"너, 그래서 라테고 뉴월드고 몽땅 다 시행하겠다는 거니?"
"아니, 라테는 말고 뉴월드까지만."
"……?"
백현진의 기세가 살짝 누그러졌다.
헛꿈을 꾼 줄 알고 잠시 화가 났었는데, 라테는 제외라고?
'라테백화점이 제외되면…….'
라테백화점 VIP들을 사이좋게 양분해서 끌어올 수 있다.
혼자 다 먹는 것보다는 적겠지만, 그만큼 라테백화점을 휘성거리게 만들기에는 더 유리하다.
뉴월드백화점은 백두백화점보다 지점 수도 많으니까.
'손잡아서 나쁠 건 없지.'
"라테백화점은 확실히 열외인 거야?"
"응, 거기는 우리하고 사업적으로 몇 번 이해관계가 충돌한 적이 있어서, 굳이 얽히지 않으려고 해. 확실한 거야."
"뉴월드에도 같은 조건을 적용할 거지?"
"그래야 공평하니까."
"좋아, 나 이 딜 받을게."
"아, 언니. 한 가지 말 안 한 게 있다."
"뭔데?"
"혜택을 받는 모든 VIP들은 VIP라운지에서 언제든지 송이버섯 요리를 즐길 수 있어. 물론 동행 1인까지, 하루 1회만 가능하다는 조건이야."
"원래라면 엄청 파격적이라고 내가 놀라야 하는 게 맞는데, 골든 트러플 때문에 다 묻혀 버렸네. 그걸 체음에 말했으면 두 번 놀랐을 건데, 한 번만 놀라고 말았잖아."
"사실 나도 같은 이유에서 깜빡했던 거야."
정서희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황금비단우산버섯 오일을 발라서 구운 송이버섯 요리라서 아주 맛있을 거야."
"그냥 그 컨셉 가지고 따로 고급 레스토랑 하나 내주면 안 돼?"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구."
정리하자면 이렇다.
매출 상위 29위까지는 골든 트러플 새해선물, 월 1회 VIP라운지 골든 트러플 요리 제공.
상위 0.1%는 6개월에 1회.
상위 5%는 1년에 1회.
그리고 세 그룹은 모두 하루 1회 VIP라운지에서 황금비단우산버섯기름을 발라서 구운 송이버섯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사실 황비버섯 오일로 구운 송이 버섯 요리 하나만 해도 웬만한 호텔에서 50만 원이 넘어가는 메인디쉬인데…"
"라테백화점 VIP관리는 확실히 박살 나겠지?"
"박살 나지. 절대 이런 서비스 제공 못 해. 아니, 돈 벌려고 VIP관리하는 거지 VIP한테 퍼주려고 관리하는 건 아니잖아? 처음에는 아마 우리더러 미쳤다고 할 거야."
"어차피 알게 될 테지만, 우리가 나선다는 것은 당분간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경쟁사가 처음에는 오판해서 이리저리 헛발질할 거잖아."
"뉴월드에도 그렇게 잘 말해 둬.
근데 럭셔리 레스토랑 하나 만들자고 너무 지출을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걱정마. 우리 회사 돈 잘 벌어."
"……부럽다."
"사실 금전적으로는 손해 보는 거 아니야. 식재료를 어디 가서 사오는 것도 니고, 직접 키워서 내놓는 거니까. 회계상으로는 우리도 흑자야."
"더 부럽네. 나도 한 번 하수영 사장님 농장 가보고 싶어."
"가보면 놀랄걸?"
"그 정도야?"
"완전 미래식이더라고, 나는 한 20년쯤 미래로 온 줄 알았다니까. 농장 이름도 테라리움 1호, 2호, 막 이러더라구."
앞으로 라테백화점에서 쭉쭉 흡수될 VIP고객 매출액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던 백현진이 문득 물었다.
"근데 우리 처음에 뭐 말하던 거 있지 않았어?"
"아, 맞다.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입점. 조건 어디까지 맞춰줄 거야?"
"원하시는 걸 말씀해주세요, 고객님."
"그냥 짧고 간단하게 가는 게 어때, 언니? 우리가 VIP서비스 제공하는 기간 동안에는 입점한 모든 매장임대료고 전기료고 수도료고 없는 걸로, 인테리어 비용도 백화점에서 대줘."
"그 정도야 당연히 해드려야지. 계약서에 명시해 줄게."
[4조 3항 : 을은 갑에게 제공하는 VIP서비스(이하 5조에서 서술)를 언제든지 중지할 수 있으며, 중지 4개 월 전까지 서면으로 통고해야 한다.]
[4조 4항 : 갑은 위 3항의 VIP서 비스를 제공받는 기간 동안, 갑의 백화점에 입점한 을의 모든 매장에 대한 일체의 임대료, 전기료, 수도 료, 인테리어 비용 등을 책임진다.]
눈썰미 좋은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함정조항이 하나 있다.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으로 한 정하지 않은, '입점한 을의 모든 매장'이라는 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