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11화
76 장 선빵필희 - 선빵은 반드시 기분 좋다(3)
"라테백화점?"
전성렬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정서희도 마찬가지로 놀라서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이봐, 하 사장. 라테백화점은 덩치가 아주 커. 아무리 하 사장이라 해도 쉽사리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냐."
"제가 직접 건드린다고는 안 했습니다."
"적당한 대타라도 있는 건가?"
"네, 좋은 경쟁자가 있잖아요. 그것도 둘씩이나."
두 사람은 하수영이 말한, 좋은 경쟁자 둘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뉴월드하고 백두백화점?"
"네, 라테백화점을 견제할 훌륭한 백화점이죠."
"그야 그 둘이 나서면 라테백화점을 한 방 때리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 둘이 뭐하러 그런 걸 해주겠나?"
"우리는 아직 그 둘 백화점하고 별접점이 없는데요."
"접점이 없다면 만들면 되죠."
"접점이라……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게 수영라면하고 수영참지 정도인데, 그 정도로 그 둘이 우리를 대신해서 라테백화점을 한 방 때려줄까?
난 좀 회의적이네만."
수영레스토랑과 수영오세안이 입점한다면 당연히 그 둘은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입점을 조건으로 라테백화점을 견제해 달라는 요구는 코웃음을 질 것이다.
애초에 저울이 전혀 맞지 않으니까.
"뉴월드, 백두한데 굳이 라테그룹이야기를 꺼낼 생각도 없습니다. 괜히 이리저리 말만 새어 나갈 테니까요. 라테의 'ㄹ' 자도 빵긋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무슨 계획이 있는 건가요?"
"그전에 먼저 백화점의 본질을 생각해야죠. 부사장님, 백화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정서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백화점이 뭔지 몰라서가 아니라,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쇼핑을 즐기는 공간이죠. 경영진 입장에선 그런 고객들을 상대로 수익을 내는 사업체고요."
"맞는 말씀이긴 한데, 조금 더 경영진의 눈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철저하게 수익면에서, 뭐가 중요한지."
"그야 결국 매출이죠."
"맞습니다. 혹시 백화점 헌법 제1조 제1항이 뭔지 아시나요?"
그때 전성렬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백화점 헌법? 그런 게 어디 있다고?"
"백화점은 VIP 공화국이다. 이게 헌법 제1조 제1항이죠."
"……."
"제1조 제2항, 백화점의 주권은 VIP에게 있고, 모든 매출은 VIP로부터 나온다."
전성렬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니, VIP만 손님이고 일반 손님은 손님도 아니라는 건가? 물론 많이 팔아주면 백화점 입장에서 좋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어, 근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사장님."
"정 부사장?"
"뉴월드 같은 경우는 상위 2% 고객이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어요."
"상위 10% 고객은 전체 매출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요."
"……"
"일반 주식회사에서는 50%만 넘어도 경영권을 갖는데, 75%면 이미 말 다 한 거 아닙니까."
"그래도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소수국민의 인권이라는 게……."
"백화점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 VIP 공화국이잖아요. 둘을 서로 비교하면 안 되죠."
전성렬은 일순 말문이 막혀서 입을 열지 못했다.
정서희가 잔뜩 궁금증을 품은 얼굴로 물었다.
"뉴월드와 미래백화점 VIP를 노리시려구요?"
"네, 원래 VIP들은 그룹이 겹치잖아요."
"맞아요. 보통 한 백화점에서 높은 등급의 VIP는 다른 백화점에서도 VIP등급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뉴월드와 백두백화점 VIP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안해 볼까 합니다.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요?"
하수영은 씩 웃음을 지었다.
전성렬의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아군임에도 너무나 사악하게만 느껴졌다.
자신에게도 이럴진대 적에게는 어떻게 느껴질 것인가.
"저에게는 세 가지 버섯이 있죠. 황금비단우산버섯, 송이버섯, 그리고……."
"골든 트러플."
"이 셋의 조합은 그 어떤 VIP의 마음도 함락할 수 있습니다. 뉴월드와 백두는 절대로 거절 못 해요."
***
백두백화점 VIP 접객실장, 백현진.
30대 초반의 나이지만 그녀는 어엿한 VIP 접객실장직을 맡고 있다.
실장급이지만 그녀는 일반 직원이 아닌, 임원 대우를 받고 있다. 백화점의 VIP들을 관리한다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그런 요직에 앉은 것은, 그녀가 바로 백두그룹가(家)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재벌 3세.
그녀 자체가 귀한 혈통을 타고 난로열패밀리이기 때문에, VIP 접객총책임을 맡기에는 어떤 면에서 적합했다.
그날도 곧 있을 VIP 행사를 위해 분주하게 게획을 짜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 서희야. 오랜만이다."
-언니, 잘 지내셨어요?
"나야 정신없이 잘 지냈지. 너는? 아, 말할 것도 없겠네. 프라임컴퍼니 요즘 엄청 잘나가고 있으니까.너도 그 회사 지분 꽤나 들고 있지?"
-얼마 안 돼요.
"그래도 3대 주주 중의 한 명이고 현직 부사장이잖아. 대단한 거야, 그 나이에. 지금은 아저씨가 네 눈치만 보고 있다며? 서진 씨는 잘 지내?"
-유학 간 지 좀 됐어요.
"어쩜, 그럼 네가 이제 JM식품그룹 물려받는 거 확정이네?"
-아마 그렇겠죠?
"기집애, 목소리에 자신감이 아주 철철 흐르는구나."
친한 여동생이 간만에 걸어온 전화.
백현진은 VIP 접객실장으로서의 책무는 잠시 내려놓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근데 한창 바쁜 네가 수다나 떨자고 이렇게 길게 통화 잡고 있을 린없고…… 할 말 있구나?"
-역시 언니는 귀신이에요. 맞아요. 할 말 있어요.
"뭐야? 남자 이야기? 아니면 사업이야기?"
-사업 이야기요. 언니, 우리 그룹 프랜차이즈 브랜드 몇 개를 언니네 백화점에 입점하고 싶은데……
"너희 그룹에서 프랜차이즈도 운영했었니?"
백현진은 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듯이 물어봤다.
-에이, 언니, 선수끼리 이러지 말죠. 수영레스토랑하고 수영오세안말이에요.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근데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건…… 입점 협상에서 좀 좋게 봐달라는 뜻이구나?"
-그건 아니고요, VIP 서비스에 관심이 있어서요.
"VIP 서비스?"
그제야 백현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살짝 지워지며 대신 의아함이 깃들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 지금 언니네 백화점 VIP 라운지에 있는데.
"바로 코앞까지 와서 전화한 거 보면 가벼운 건 아닌가 보다. 알았어, 지금 바로 나갈게."
백현진은 통화를 마치고, 얼른 핸드백을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VIP 고객접객실은 VIP 라운지와 그리 멀지 않았기에, 백현진은 바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실장님, 반가워요. 라운지는 웬일로?"
"약속이 있어서요. 그럼 편히 쉬십시오, 박시현 고객님."
아는 얼굴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백현진은 한껏 미소를 띤 얼굴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정서희를 찾았다.
드디어 백현진이 맞은편에 앉자 정서희는 피식거리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왜 이렇게 오래 걸려서 와요?"
"명색이 접객실장이다. 친한 고객님들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인사 한마디 어떻게 안 나누니."
"하여튼 언니네 집안에서 언니가 가장 마음 편하게 사는 거 같아."
"난 이게 적성에 맞는 거 같애. 원래 패션과 쇼핑을 좋아해서 파고들기도 했고."
"그래도 막상 사업 쪽으로 파고들면 조금은 다를 텐데."
"그러게 말이야. 가끔 머리 아플때도 있지만, 뭐 그래도 좋아하지도 않는 분야에 종사하는 것보단 낫잖아? 우리 오빠들처럼."
일단 가벼운 주제로 분위기를 매만진 뒤, 백현진이 물었다.
"뭐 때문에 통화 한 번 하기 힘든 우리 서희가 이 누추한 백두백화점까지 찾아왔니?"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입점하면 임대료는 얼마까지 해줄 거예요?"
"그거야 최대한 좋게 맞춰줄 수 있지. 우리 서희 얼굴을 봐서라도."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빨리 그 중요한 용건을 꺼내! 얼른!
궁금증 가득한 백현진의 표정은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언니네 백화점하고 VIP 특별접객코스 같은 거 추진해 볼까 하는데, 혹시 생각 있어요?"
"VIP 특별코스?"
백현진은 올 게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VIP 특별접객이라니, 언뜻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프라임컴퍼니가 백화점 VIP들을 대상으로 제공할 만한 호화 서비스가 뭐가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수영레스토랑? 수영라면이 맛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런 거 가지고는 어려울걸? 너도 알잖아? 우리 백화점 상위 1% VIP들은 외식할 때 밥 한 끼에 수십만 원은 기본으로 써."
"언니, 나도 나름 재벌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이야. 그걸 왜 몰라."
"뭐가 있는 거야?"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을 하나 내기로 했거든."
"아, 그래? 별로 남지는 않겠네."
백현진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재벌만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의외로 이익이 잘 안 되기도 한다.
오히려 지금 프라임컴퍼니처럼 불특정 대다수 군중을 상대로 하는 장사가 더 많이 남는다.
애초에 재벌들의 재산 자체가 민중 소비자들을 상대로 차곡차곡 벌어들인 돈으로 형성된 것이니…….
"뭐, 부자들만 와서 먹으라는 최고급 면 요리라도 만들려고? 거기에 참치살 같은 거 올려서?"
'이 언니, 진짜 수영라면 한 번도안 먹어봤나 보네.'
"그런데 가게를 내기 전에 아무래도 진짜 부자들 상대로 간단한 테스트 같은 걸 받아보고 싶어서. 그래서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무료로 제공해 보고 싶은데, 안 될까?"
"무료라고 우리가 다 좋아하는 거 아냐. 오히려 그런 협찬 제안은 지금도 무수히 들어와. 그리고 데스트? VIP 고객들 입맛에 실망을 끼칠 순 없어."
왜 백화점까지 찾아왔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이번에 신규로 낸다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맛 컨디션을, 백화점 VIP들을 상대로 반응을 떠보겠다는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들어주기 어려울 거 같다."
"그래도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잖아."
"그야 임원진들 상대로 품평회 정도는 추진해 줄 수 있지. 하지만 그 전에 내 까다로운 혀부터 통과해야 할걸?"
"난 언니가 분명 왜 그렇게 튕겼지하고 민망해할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자신은 있는 모양이구나? 품격만 문제없다면 사실 VIP 라운지에 넣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근데 어떤 컨셉 레스토랑이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하니?"
"우리 회사가 작년 서해호텔에서 열었던 행사 기억하지? 래플사 CEO 팀마 진, 스티브 스필드 감독, 클라우드 미 전 부통령, 윌리엄즈영국 왕세손, 그리고 안살린 LA다저스 구단주까지 참석했던."
그제야 백현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고, 정서희는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보였다.
"정서희, 너 설마……."
"골든 트러플 요리. 킬로당 수억이상씩 하잖아? 그걸 백두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시범적으로 서비스해 보고 싶어."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고객님."
"그럴 수 있어. 이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