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10화
76장 선빵필희 - 선빵은 반드시 기분 좋다(2)
정태오 감독은 캔맥주를 마시면서, 다음 영화 스케치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딸이 놀라서 크게 말했다.
"아빠, 효주 언니 또 CF 찍었나 봐. 지금 못 보던 CF 나오고 있어."
"그래?"
정태오 감독은 얼른 TV로 눈을 돌렸다.
98인치의 거대한 TV에는 장효주가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며 거대한 솥의 정상으로 다다르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나름 기대에 차서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아, 당신을 먹고 싶어요!!
-그것이 바로, 수많은 황금비단우산버섯으로 짜낸 오일의 고온에서 겨진 본좌의 운명이겠지. 기꺼이 그대의 포도당이 되어 포만 감과 즐거움, 활력과 기쁨을 주리라.
그리고 쐐기를 찍는 자막.
[맛과 건강을 자랑하는 황금감자 칩!]
[본 제품의 실물 색상은 CF에 나온 것과 동일한, 순수한 순금 빛깔입니다.]
"……."
"……."
"아빠, 지금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요즘 광고주는 이런 콘셉트를 오케이 해줘?"
"난 효주가 이걸 받아들였다는 게 더 납득이 안 가는데? 죽으면 죽었지 절대 이런 CF 안 찍을 친구인데, 걔가."
정태오는 어느새 홀린 듯이 스마트폰을 들고 장효주의 번호를 찾아 누르고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장효주가 지친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CF죠?
"……목소리 들어보니까 나만 연락한 게 아닌가 본데."
-지금 실톡이고 페북이고 인스타고 문자고 사방에서 연락이 쏟아지는 중이거든요.
"목소리 들어보니까 우리 장효주 배우도 뭔가 좀 아니다 싶어 하는구나?"
-어쩌겠어요, 광고주가 이게 좋다고 하는데, 직접 기본 콘티까지 짜와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광고주가?"
정태오 감독은 자연스럽게 프라임컴퍼니 대표이사인 전성렬을 떠올렸다.
그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나름생긴 대로 노는 구석이 있구나…….
-제가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래서 어쩌겠어요. 져줘야지 별수 있어요?
"프라임컴퍼니가 우리 장효주 배우한테 CF 일감을 많이 주긴 하지."
톱여배우로서의 체신도 자본주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저도 처음에는 완곡한 거절의 뜻인가 싶었어요. 그만 인연 정리하자, 뭐 그런 뜻인 줄 오해했다니까요.
"장효주 배우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해."
-근데 이야기 나눠봤는데 진심으로 그게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아주 기대에 차 있던데, 어쩌겠어요. 그래서 그냥 져줬어요.
"잘했어. 절대 광고주를 이기려고 하면 안 돼. 그럴수록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거야."
-CF하고는 별개로 신상품 과자, 아주 잘나갈 거 같아요.
"우리 장효주 배우가 모델로 나왔으면 뭘로 만들어도 잘 팔리겠지."
-그게 아니라 과자가 정말 때깔이 좋, 아니, 비주얼과 맛이 훌륭해요. 특히 비주얼, 다른 과자들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에요.
"CF에서 확실히 과자 색깔이 이쁘게 잘 나오긴 했어. 진짜 황금인 줄 알았다니까."
-CF에서 나온 게 실물 그대로예요.
"뭐?"
-농담 아니니까 한 번 사 드셔보세요. 언뜻 보기에는 정말 순금처럼 생겼어요.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 울 정도더라고요. 맛은 또 얼마나 고소하고 중독성 있는지.
통화를 마친 정태오는 대체 어떻기에 장효주가 그렇게 극찬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곧바로 옷가지를 챙겨 들고 아파트 편의점을 찾았다.
"황금감자칩 있어요? 아니면 다른 거라도"
"없습니다. 다 팔렸어요."
"네? 오늘 출시된 거 아니었나요?"
"오늘 입고된 거 맞는데 진열하자마자 싹 나갔어요. 홍보 CF가 인상이 깊었나 봐요. 전 웃기기만 하던데. 아, 맞다. 하나 더 있어요."
알바생은 판촉대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지금 황금과자집 2개를 사면 황비라면 2개를 같이 드리는 행사를 하고 있어요."
"2+2이라고요?"
"네, 1개만 사면 아무 혜택 없어요. 반드시 한 번에 2개를 동시에 사셔야 해요."
황비버섯라면은 국민 식품으로 등 극한 지 오래다. 서민들의 주식, 간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식품이다.
그런 황비버섯라면을 얹어준다면 당연히 초반부터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프라임컴퍼니에서 작정하고 띄워 줄 모양이네.'
황비버섯라면을 처음 런칭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프라임컴퍼니가 라면 사업으로 돈을 참 많이 벌긴 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태오는 편의점을 나와서 다른 마트를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어딜 가도 다들 상황은 비슷했다. 오늘 출시한 황금과자칩은 하나같이 동나고 없었다.
"황금고구마칩도 없어요? 황금옥수수칩도요?"
"네,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 진짜 구하기 힘들군요."
무려 7번째 마트에서 정태오는 가까스로 한 개 남은 황금과자칩을 집어들 수 있었다.
"1+1 같은 건 뭐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손님, 2+2 정책이라 1개만 사면 혜택이 없는데, 저희가 마침 물량이 그거 하나뿐이라……. 혹시 내일 다시 오시면 결제 취소하고 재결제해서 2+2 적용될 수 있게 해드릴게요."
"아닙니다. 그냥 1개만 살게요."
겨우 1개를 구한 정태오는 집으로 돌아와서 딸과 함께 봉지를 뜯었다.
딸은 아름다운 황금색을 자랑하는 과자칩의 자태에 황홀한 눈빛을 금치 못했다.
"우와…… 아빠가 고생고생해서 사을 만한데? 무슨 과자가 이렇게 예쁠 수 있어?"
"확실히 비주얼은 다른 과자와 차원이 다르구나."
"아빠, 뭔가 첨가물 같은 걸 입힌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이런 색을 낼 수 있을까?"
"그러게. 황비버섯오일로 튀겨내면 다 이런 색을 갖게 되는 건가?"
비주얼에 대한 평을 마친 부녀는 각각 한 조각씩 집어서 입에 넣었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부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을 잊은 채 허겁지겁 과자를 집어 먹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한 봉지를 바닥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맛있다. 너무 맛있어. 어떻게 감자 칩 따위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군것질 별로 안좋아하는 나도 이건 손이 마구 가는구나."
"아빠, 우리나라 군것질 좋아하는 애들, 이제 큰일났다."
"왜?"
"안 그래도 기름에 튀긴 거라 고지방, 고칼로리인데 이렇게 맛있으니까 이제 살 팍팍 찔 일만 남은 거 아니야?"
심지어 양까지 많다.
과자 한 봉지의 가격은 2,200원, 다른 봉지과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이지만, 과자 양과 비주얼, 맛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었다.
"제과업체들 이제 바짝 긴장해야겠구나."
"아빠, 프라임컴퍼니가 라면 시장다 먹어치운 것처럼, 이제 과자 시장도 다 먹어치우는 거 아니야?"
"말도 안 돼. 우리나라에 과자가 얼마나 종류가 많은데, 겨우 이 셋으로? 아무리 맛있어도 사람은 결국 다양한 맛을 찾게 되어 있어. 한정된 맛은 쉽게 질리잖아."
"프라임컴퍼니가 설마 이 세 가지만 계속 팔 건 아니잖아. 다른 종류도 가짓수 점점 늘려가고 그러면, 나중에는 과자 시장 다 먹어치울 수 있지 않을까?"
정태오는 갑자기 딸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전성렬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크게 좋아했다.
"대성공이야, 대성공! 황금과자칩하나로 한 달 동안 무려 3,300억원이나 팔아치웠어!"
첫 달 매출 3,300억 원.
다른 제과업계들이 보기에는 그저 머릿속이 아득해지기만 하는 숫자였다. 따라잡기는커녕 감히 비벼볼 엄두도 나지 않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벽이었다.
정서희도 잔뜩 흥분해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하루에 한 봉지씩 꾸준히 먹었다는 셈이에요, 제과업계에서 이런 기록은 전무후무해요. 겨우 3종류밖에 안 되잖아요."
"판촉비로 지출이 컸지만, 이정도면 제대로 홍보가 된 셈이지. 앞으로 쭉쭉 나아갈 일만 남았어."
전성렬과 정서희는 초기 물량을 어떻게 조절할지를 놓고 고심했었다.
수요량보다 일부러 적게 풀어서 조기 소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었다.
물량을 좀처럼 구하기 힘들면 여기저기 소문이 나고, 뭔데 그렇게 사람들이 찾나 하는 착시 효과가 생기니까.
하지만 둘은 과감하게 충분한 물량을 푼다는 방침을 택했다.
"일단 가급적 빨리, 한 번이라도 황금감자칩을 먹어보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이 과자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한 번만 먹어 본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거야."
"진짜 마음 같아서는 전 국민한테 한 번씩 다 한 입만 먹어보라고 뿌리고 싶은데, 어떡하면 그게 가능할까요?"
"나도 같은 심정이야."
첫 달 매출 3,300억 원을 찍었지만, 이익률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2+2 판촉 행사로 황비버섯라면을 그만큼 뿌렸기 때문이다.
무려 1억 4,000만 개 이상의 황비버섯라면을 공짜로 뿌려댔으니.
무료로 뿌린 라면 사은품으로 소요된 출혈이 거의 2,000억 원이 넘어간다.
"과자 이익률을 대충 8%로 잡으면 대충 264억 남겼다 치고, 라면으로 나간 출혈을 2,000억으로 잡으면, 1,700억 이상 적자를 본 셈이군."
"적자가 아니라 광고 집행비용으로 쳐야죠. 어차피 다 회계 처리 되는 거예요."
"여기에 광고료하고 모델료까지 다 합치면…… 정말 런칭 홍보비용으로만 2,000억 이상 쓴 셈인데?"
"대신 앞으로 그만큼 더 많이 벌어 들일 수 있는 기반을 닦았죠. 요즘 우리 황금과자칩을 모르는 소비자들은 없다시피 해요. 성공이에요, 대성공."
조용히 듣고 있던 하수영이 입을 열었다.
"라테제과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죠?"
"라테제과…… 아무래도 우리의 과자 시장 진출이 눈에 거슬리긴 할 거예요. 뭔가 대책을 세우겠죠."
"걱정 말게. 주요 언론사들이 우리 제품 대대적으로 선전해 줬어. 우리가 돈 팍팍 뿌렸거든. 라데그룹이 그거 뒤집으려고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안 될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그래도 돈을 삼킨 펜대는 믿으면 안됩니다. 워낙 망각력이 좋아서 자기가 바로 전에 썼던 말도 다 잊어버리거든요."
"언론 쪽은 제가 잘 주시하고 있을 게요. 수영 씨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정서희가 그렇게 자신감을 보였다.
"이래 봬도 나름 식품재벌 딸이에요. 그런 쪽으로 친한 분들 많아서, 돈만 충분하면 잘 관리할 수 있어요."
"아시겠지만 라테그룹이 얼마나 큰 원한을 품고 행동할지 몰라서요. 회사에는 피해 없도록 잘 부탁합니다."
"네, 그럴게요."
전성렬은 이제 과자 상품 출시가 라테그룹을 저격한 선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아무렴 좋았다. 회사의 매출이 쭉쭉 오르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우려를 아주 버려두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 하 사장 자산도 그렇고 지위도 그렇고, 설마 라테그룹이 말도 안 되는 보복 짓거리를 하려고 할까?"
"제가 이순…… 이 장군 밑에서 구르고 구를 때 피부로 체득했는데, 그놈들은 신의와 상식이라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분명히 움직입니다."
"흠……."
"이제 경기장 링 설치했으니 슬슬 잽 준비해야죠."
"잽을 이제 준비한다고?"
"과자 점유율 조금 뺏는다고 라테그룹에 생채기 별로 안 나요. 라테백화점 정도는 건드려 줘야, 아 우리가 지금 선빵 살짝 맞았구나, 하고 깨달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