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09화
176 장 선빵필희 - 선빵은 반드시 기분 좋다(1)
프라임컴퍼니에는 박서필 박사를 수장으로 하는 식품개발연구부서가 존재한다.
그는 식품공학, 식품영양학 등 다양한 지식을 쌓은 전문가로, 정서희와 인연이 있어 경력직으로 채용된 것이다.
연구부서는 그간 라면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식품개발에 매진해 왔다.
그간의 연구는 주로 황비버섯을 이용한 식품개발에 치중돼 있었다.
"우리는 황비버섯을 무척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으니까. 이 장점을 먼저 살려야지, 뭐하러 어려운 길부터 걸어?"
그간 꾸준히 연구를 해온 덕분에 컵밥 제품은 이미 출시를 했고, 도시락이나 개별포장 반찬 등 다양한 종류의 인스턴트 식품도 개발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상부에서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다.
"곧 황비버섯오일로 튀긴 감자칩, 고구마칩, 옥수수칩을 출시할 겁니다. 식품개발연구부서도 거기에 맞춰 주세요."
"부사장님, 제품 자체는 좋지만 이걸 지금 내놓으면 라테제과와 한판 붙자는 겁니다."
박서필은 사석에서는 정서희에게 말을 놓는 대선배이지만, 회사다 보니 깍듯하게 존대를 써주었다.
"그렇다고 라테그룹이 무서워서 제과 시장을 언제까지나 기피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회피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라데그룹이 온 힘을 다해 공작을 걸어올 텐데, 그에 대한 대비책이 충분한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소장님은 어떤 공작을 시도할 거 같아요?"
"예전에 식용이 아닌 공업용 기름을 쓴다고 언론이 보도하는 바람에 식품회사 하나가 골로 갈 뻔했던 걸 기억하십시오. 그때 태양심이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그때 열심히 목소리를 낸 언론사가 태양심하고 친하긴 했죠."
"나중에는 작게 사과보도 하나 내고 끝이었습니다. 라테그룹이 광고비로 집행하는 예산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프라임컴퍼니는 워낙에 킬러 아이 템만 취급하다 보니, 오히려 마케팅이나 판촉비로 나가는 예산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때문에 언론사하고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리 튼튼하지도, 굵지도 않은 돈줄이니까. 없어도 크게 지장이 없는.
"이번에 출시하는 과자들은 단단히 홍보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언론사들한테 광고로 돈을 좀 뿌리자는 거군요."
"네, 예방접종 비용이라고 생각하시죠. 나중에 라테그룹이 비슷한 수작을 부리려고 할 때 유용한 항체가 되어줄 겁니다."
"알았어요. 돈 좀 쓰죠, 뭐."
언론사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큰돈 받아먹고 광고해 준 신제품 과자가 나중에 정말 문제가 생겨도, 작정하고 물어뜯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물며 거짓 정보를 뿌려달라는 경쟁사의 외부 공작 의뢰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전성렬도 흔쾌히 승낙했다.
"미리 광고비 좀 뿌려서 나중에 횡액 당하는 걸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 어차피 광고비는 회계처리가 되니까 그리 진행합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왕 하는 김에 2+1 행사도 하는 게 어때요?"
"2+1 행사요?"
"과자칩 두 봉지를 살 때마다 황비버섯라면 한 개를 얹어주는 거야."
"괜찮을 거 같은데요. 과자집 만드는 회사가 황비버섯 회사라는 것을 쉽게 알리는 방법도 되고요."
"그렇지요. 황비버섯라면 고객 충성도가 어마어마하니까 자연히 과자 집에 대한 신뢰도 함께 올라갈 거야. 정 부사장 말대로 라테제과에서 몰래 음해를 해도 사람들이 잘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도 진행을 할 게요. 그런데 반드시 2+1이어야 하나요?"
"1+1은 너무 퍼주는 거 같아서. 그런데 실무적으로 나쁘지 않다면 난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정 부사장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네, 사장님."
"그리고 홍보 모델은……."
"장효주 여배우를 쓰면 되는 거죠?"
"그래요. 우리 사주가 선호하는 모델이니."
"황비라면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인연이기도 하고요. 회사 초기부터 함께 걸어왔다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죠."
"……."
전성렬은 정서희의 음성에 담긴 묘한 이질감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모른 체 고개를 내저었다.
'청춘남녀 일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그래도 공사 구분이 확실한 친구니까…….'
불현듯 아내의 호들갑이 귓가에 떠올랐다.
-서희 씨가 수영 씨한테 마음이 있다니까? 내가 여자인데 그걸 몰라? 척 보면 알지.
-짝사랑이라도 한다는 거야?
-에그,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고, 이성으로서 관심이 없지는 않아서 무의식의 표층 바깥과 의식의 바닥 아래 어딘가에 걸쳐 있는, 그런 조금은 간단하지 않은 상태라는 거예요.
-지도 지 맘 모른다는 그 간단한 이야기를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하는 거야?
***
100억.
세 종류의 과자칩 홍보를 위해서 책정한 광고 예산이었다.
당연하게도 여기에는 CF영상 촬용, CF모델료, 그에 따른 기타 부수비용은 제외한 것이다.
즉 순수하게 언론사들한테 광고비명목으로 지불하는 돈이 100억이라는 소리다.
방송국은 물론이고 메이저 신문사들도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라 광고 의뢰를 받아들였다.
마케팅 비용을 짜게 쓰기로 유명한(사실 마케팅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뿐) 프라임컴퍼니가 돈을 뿌린다는 말에, 중소형 언론사들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프라임컴퍼니가 이번에 100억이나 뿌린다고?"
"그렇다니까. 광고비로 주는 돈만 100억이래. 그것도 장기광고가 아니라 단발성이야."
"와, 한 번 광고하는데 100억을 뿌릴 정도면 장기적으로는 얼마를 더 뿌린다는 거야?"
"장효주를 CF모델로 썼는데, 한두번 광고방송 내보내고 끊지는 않겠지."
"또 장효주야? 지금 장효주가 프라임컴퍼니에서 모델료로 받는 돈만 일 년에 3, 40억은 하지 않나?"
"진짜 일 년마다 작은 건물 한 채씩은 받는 셈이네. 보니까 광고 몇 번 찍지도 않더만."
"장효주가 진짜 프라임컴퍼니와 뭔가 있는 거 아니야? 거기 사주가 20대 청년이잖아."
"아, 하수영 의원? 그러고 보니 둘이 은근 잘 어울릴 거 같긴 해."
"에이, 외적으로는 전혀 안 어울리지. 하수영 의원이 비주얼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아시아 최고 미녀 여배우한테 비벼댈 클래스는 아니잖아?"
"대신 돈이 많잖아. 그것도 엄청."
점심시간, 광고 수주를 받은 언론사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프라임컴퍼니에 관해서 입방아를 찧어냈다.
"근데 이번에는 또 뭘 내놓은 거야? 저번에는 엘릭서드링크라는 요상한 건강식품 하나 내놓더만, 그거 아직도 적자라지?"
"매출은 제법 잘 나가는데, 광고비로 집행한 것만 1조 8,000억 원이래. 그래서 아직까지 적자일 수밖에 없는 거."
"뭐? 1조 8,000억?"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프라임컴퍼니가 이번에 쓴다는 100억 원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물론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출할 비용일 테지만,그래도 180배나 차이 나지 않는가.
"그래, 프라임웰빙이 지금 아시아에서 돈 팍팍 쓰잖아. 우리나라는 시장이 작아서 그나마 얼마 안 쓰는 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뿌려대는 모양이더라고."
"그새 중국 일본까지 진출했어? 근데 왜 우린 몰랐지?"
"마케미야 트러스트에서 대행하고 있나 봐. 마케미야 알지? 일본에서 가장 돈 많은 재일동포."
"아,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조용히 진행할 수 있겠네. 마케미야 트러스트는 글로벌하게 노는 곳이니까. 엘릭서드링크인가 그것도 글로벌하게 팔아치우겠지."
"그렇게 따지면 1조 8,000억 원광고비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고."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 내놓은 게 뭔데?"
"과자래."
"과자?"
"응, 감자칩, 고구마칩, 옥수수칩, 이렇게 세 종류를 출시한대."
"이야…… 프라임컴퍼니도 드디어 제과시장에 뛰어드는 건가? 근데 생각보다 너무 심플한데?"
"첫발 놓는 거니까 가볍게 간 보는 거겠지. 맞다. 프라임컴퍼니에서 광고 계약하면서 시제품이라고 몇 박스 가져온 거 있던데, 한 번 먹어볼까?"
"그럴까?"
잡담을 마친 직원들은 사무실로 들어와서 과자 박스를 찾았다.
하지만 박스는 하나같이 텅 비어 있었다.
"아니, 그 많은 걸 그새 다 먹었다고?"
"여기 한 봉지 남았네. 근데 진짜 누구 다 먹은 거야? 우리 사무실에서 과자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그들은 문득 편집국장의 입가에 묻어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서 작게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맛있게 먹고 있는데?"
"표정이 다들 왜 저래? 과자에 무슨 약이라도 탔나……?"
의심스러운 표정을 떨치지 못한 채 과자봉지를 개봉한 직원은 감자칩하나를 꺼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과자가 이렇게 생겼어?"
"꼭 황금으로 만든 거 같잖아? 아니, 진짜 황금하고 색이 완전히 똑같아?"
"이거 설마 금으로 도금한 과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식용 금처럼 말이야."
"설마. 회나 소고기라면 몰라도 과자를 그렇게 먹는 사람이 어딨어?"
직원들은 반신반의하며 찬란한 황금빛 광채를 자랑하는 과자를 바라보다가 한 입 깨어 물었다.
고소하면서도 짜릿한, 한편으로는 푸근한 중독성 넘치는 맛이 입안 가득히 퍼졌고, 그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진짜 맛있는데?"
"너무 맛있다. 아니, 평범한 감자집이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정말 과자에 아편 같은 거라도 탄거 아냐? 중독시켜서 정신없이 먹게 만들려고?"
"아, 여기 봉지에 크게 써 있는데? 황금비단우산버섯 오일로 100% 튀겨낸 황금 과자칩이라고?"
"황비버섯오일? 아니, 그 비싼 기름으로 과자를 튀기는 미친놈이 있단 말이야?"
***
예쁘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여자가 차분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거인이 쓰는 듯한 거대한 솥 위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천천히 오르던 여자는 어느덧 거대한 솥 위에 도착했다.
솥 내부에 가득 채워진 기름은 고운 방울을 터뜨리며 파직파직 튀어 오르고 있었다.
여자가 솥 안을 내려다보자, 기름이 빠져나가듯 표면이 점점 가라앉으며, 그 아래 잠겨 있던 커다란 황금색 감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감자는 감고 있던 두 눈을 지그시 뜬 채 여자를 바라보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왔는가.
"아주 먼 곳에서 황금감자칩을 찾아 왔습니다. 그분은 어디에 계시나요?"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이로다.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몰라 묻다니.
여자는 탄성을 내지르며 기도하듯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역시 당신이군요!"
-그렇다. 내가 바로 전설의 황금감자칩이다. 이 나를 튀겨내기 위해 수백 개가 넘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장렬히 온몸을 희생했지. 먹고 싶지 않느냐?
"아아, 당신을 먹고 싶어요!"
-그것이 바로, 수많은 황금비단우산버섯으로 짜낸 오일의 고온에서 튀겨진 본좌의 운명이겠지. 본좌는 기꺼이 그대의 포도당이 되어 포만 감과 즐거움, 활력과 기쁨을 주리라.
거대한 황금 과자는 잘게, 그리고 얇게 잘리면서 수없이 많은 작은 감자칩으로 변해 부유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처럼, 황금색 감자칩은 수없이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그중 한 조각의 감자칩이 수즙은듯이 여자의 눈앞에 멈춰 섰고, 여자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감자칩을 들어 한 입 깨물었다.
바삭!
그리고 흐르는 자막.
[맛과 건강을 자랑하는 황금감자 칩!]
[본 제품의 실물 색상은 CF에 나온 것과 동일한, 순수한 순금 빛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