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08화
175 장 재벌의 합의 방식 (3)
"수영 씨, 한국에서 재벌은 그냥 돈 많은 부호가 아니에요. 돈으로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부자와 재벌.
그 둘은 엄밀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하수영은 웬만한 재벌보다 더 자산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재벌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저도 나름 정치인인데요."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라테그룹은 재계 순위 5위라고요. 서해그룹만큼은 아니지만 정·재계에 두터운 연줄을 갖고 있어요. 말 한 마디만 하면 그들을 위해서 움직여 줄 판검사, 정치인들이 군단은 될 걸요?"
"에이, 군단 인적 편제가 몇 명이신 줄 알고."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싸워서는 못 이겨요."
하수영이 현금이 많은 것은 알고 있다.
프리덤으로 한국, 그리고 미국에서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현금만으로는 공권력을 움직이지 못한다.
공권력을 얼마만큼 움직일 수 있느냐 여부가 재벌과 부자의 경계선을 가른다.
"적대적 인수합병 같은 거라도 하실 거라면, 저는 말리고 싶어요. 경영권을 뺏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재벌이 공격받으면 그들의 지분을 쥐고 수호하는 백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프리미엄을 주고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결국 경영권을 가져올 비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적만 좋은 일 시켜주는 셈이니.
"적대적 인수합병…… 사실 못 이룰 것도 없지만 애초에 그런 건 별로 생각을 안 했습니다."
"네?"
"저는 한국이라는 이 고요하고 앙증맞고 아기자기한 우물 속에서 평화로운 힐링 라이프를 즐기고 싶거든요."
"그게 무슨……."
"괜히 풀을 두드려서 뱀 놀라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거대 정당 러브콜을 제가 왜 모른 체하고 있는데요."
라테그룹과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전혀 없다는 뜻인가?
"그 대신 제가 몸담은 분야에서는 라테그룹을 얼마든지 한 방 먹여줄 수 있죠."
"요식업이나 식품……."
"네, 맞습니다. 선빵을 치든, 카운터를 날리든, 그 안에서만 놀 거예요. 별거 아닌 애들 싸움 가지고 일크게 벌리기 싫어요. 예전에 그러다가 나비효과로 세계대전까지 번지는 바람에 수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네? 세계대전이요?"
"아, 온라인 게임 이야기예요. 게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정서희는 더 파고들지 않고 넘어갔다.
"그래서 선빵이 나을까요, 카운터가 나을까요?"
잠시 생각한 뒤 정서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뭐든지 선공필승이죠. 공격이 최선의 방어구요."
"우리가 또 이렇게 뜻이 통하네요."
"라테그룹 회장님 성격상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그 집안이 작은 원한도 두고두고 잊지 않고 갚아준다는 마음이 강해요."
"그럼 선빵을 날려야겠네요. 적당한 게 뭐가 있을까요? 한 번 추천해 주세요."
"라데그룹이 식품 쪽에서 워낙 다양한 아이템을 다루고 있어서, 어느 한 가지만 콕 집기는 애매하네요. 만약 하실 거면 아이템 하나만 취급하기보다는…… 식품 사업 전반적으로 나서시는 게 좋을 거예요."
"다행히 저에게는 JM식품이라는 훌륭한 흑기사가 있죠."
정서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JM식품이 식품업계 3위이기는 하지만, 라테그룹하고는 다루는 분야가 많이 달라요. 라테는 주로 제과, 음료, 주류 분야에서 활동하니까요."
똑같은 식품회사라도 주력하는 분야에서 선명한 차이가 있는 상황이다.
"그럼 잘됐네요. 이참에 우리도 제과시장에 본격적으로 한 번 진출해 봅시다. JM식품이 가진 인프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요?"
"프라임컴퍼니와 JM 식품의 합작으로요?"
"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서로 힘을 합치는 게 좋겠죠."
"하지만 제과 진출이라고 하면 라데제과에 대항할 만한 킬러 아이템이 다수 필요한데…… 그걸 지금부터 연구해서 어느 세월에 내놓을까요?"
"과자 원료로 쓰는 쌀, 밀, 옥수수, 감자, 이런 것들을 제가 공급할 수 있죠."
"수영농장에서요?"
정서희는 눈을 빛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네, 수영라면 면발 만드는 밀가루가 특별하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실거고."
"그럼요. 다른 밀가루 면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독특한 식감과 풍미가 있죠. 막입일수록 그 차이를 더 선명하게 느끼는 걸요."
수영라면은 하수영이 엘릭서로 재배한 밀로 면을 만든다.
때문에 다른 면류 음식과는 비교가 안 되는 월등한 맛의 퀄리티를 자랑하게 되었다.
"아시겠지만 제가 키우는 농작물들은 가문의 비법을 사용해서 기르기 때문에 다른 농작물보다 훨씬 맛이 좋습니다."
"당연히 알죠."
"일단 가볍게 감자칩부터 시험 삼아 만들어볼까요?"
"감자칩이요?"
"네. 제가 가문의 비법으로 키운 감자, 그리고 황비버섯오일을 써서 튀기는 거죠."
정서희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이야기에 가슴이 벅차 왔다.
황비버섯오일로 튀긴 감자칩이라니! 심지어 수영농장의 감자를 써서!
"당장 해보라고 할게요. 감자는 언제 준비해 주실 수 있나요?"
"이틀이면 됩니다."
"당장 가서 세팅할게요. 그 정도는 프라임컴퍼니 자체적으로도 할 수 있어요."
"네, 그럼 저도 준비할게요."
***
이틀 뒤.
하수영은 수확한 감자 300kg을 프라임컴퍼니 공장으로 배송시켰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얼른 나와서 감자 박스를 받아 안으로 실어 날랐다.
감자칩을 만드는 건 별게 없었다.
감자를 얇게 슬라이스로 썬 뒤, 기름에 튀기고, 적절한 양념이나 향신료를 뿌려주면 끝이다.
직원들의 관심도는 그저 그런 편이었다.
지금도 라면 하나로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 굳이 과자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니까.
"제과 시장은 라테그룹이 꽉 잡고 있는데, 우리가 후발주자로 뛰어들어서 선방할 수 있을까?"
"몇십 년 동안 과자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우리가 어느 세월에 따라잡지?"
"우리 회사에 제과연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식품연구개발 부서가 있긴 하지만 제과 쪽은 잘 모르는거 같던데."
직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공장장의 지시에 따라서 시키는 대로 일했다.
먼저 감자 10개를 골라내서 얇게 썬 뒤, 전분을 빼기 위해 물에 담갔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감자를 꺼내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황비버섯기름에 넣고 튀겼다.
감자가 바삭하게 잘 튀겨진 후 남김없이 꺼내서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했다.
"이야…… 색깔이 노란 게 맛있게 생겼는데?"
"시판되는 감자칩 중에서 이런 색 가진 감자칩은 없지 않아?"
"감자칩이 아니라 황금칩같이 생겼네."
그렇게 튀겨진 감자칩은 선명한 순금의 빛깔을 찬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진짜 금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일단 결과물을 눈으로 본 직원들은, 처음에 시큰등했던 것과 달리 적지 않게 동요했다.
"이거 진짜 금괴를 썰어놓은 것처럼 생기지 않았어?"
"나도 진짜 금인 줄 알았다니까. 만져보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네."
"이렇게 생긴 과자라면 반응이 괜찮을 거 같은데? 원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비주얼이 좋으면 일단 두 수는 먹고 들어가잖아?"
"누가 보면 식용금으로 도금한 감자칩인 줄 알겠네."
"아, 그렇네. 원래 고급 요리에 더 맛있어 보이라고 금가루 뿌리기도 하잖아? 그런 느낌으로 강조하면 소비자들도 좋아할 거 같긴 한데?"
원래라면 양념이나 향신료를 추가 해야 한다.
하지만 괜히 그런 것들을 뿌렸다가는 황금비단버섯오일로 튀겨낸 감자 칩이 지닌, 순금빛 본연의 색이 가려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공장장과 이사 등 시음을 맡은 이들은 먼저 오리지널 그대로 먹어보기로 했다.
감자칩을 한 입 깨무는 순간.
"마, 맛있어!"
"너무 맛있어요! 말도 안 돼! 어떻게 감자칩 따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맛이!"
"이 맛은…… 소주를 부르는 맛이다."
"아니,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죠?"
시음을 맡은 이사들이 발을 동동구르자 직원들도 그렇게 맛있나, 하면서 한 입 먹어보고는 똑같이 방방뛰었다.
남이 맛있다고 해서 따라 하는 게 아닌,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맛있었기 때문이다.
"와, 황비버섯오일로 튀기니까 이런 맛이 나는구나."
"수영치킨이 괜히 잘나가는 게 아니라니까."
"사실 누구나 생각한 거 아니야??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에 황비버섯오일을 쓰면 맛이 확연하게 달라질 거라는 거 말이야."
"지금까지 황비버섯오일로 치킨과 감자를 튀겨보겠다는 발상을 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지."
"와씨…… 이거 그럼 감자칩 한 봉지에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거야? 한 십만 원씩 받아야 되나?"
"다른 업체라면 그렇게 받아야 남겠지. 근데 우리는 황비버섯을 싸게 조달할 수 있잖아."
경영진과 직원들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엘릭서로 키운 감자, 엘릭서로 키운 황비버섯으로 만든 기름, 그 두가지가 합쳐졌을 때 어떤 비주얼과 맛을 창출해내는지, 혀끝에서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
***
감자칩이 성공한 이후, 프라임컴퍼니는 다양한 방면으로 테스트를 계속했다.
고구마칩도 만들어보고, 옥수수집도 만들었다.
양념이나 향신료 등 여러 가지 첨가물을 다양한 조합으로 넣어서 맛에 변화를 줘보기도 했다.
"첨가물을 넣는 게 나쁘진 않아요. 확실히 맛을 조금 더 끌어올려 주기는 합니다."
"그런데 첨가물을 넣으니 아무래도 감자칩 본연의 황금색이 흐려지는 부작용이 있긴 있어요."
"맛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느냐, 아니면 그걸 포기하고 예쁜 황금색을 지켜내느냐…… 어렵네요. 이건 정말이지 기호의 차이라서요."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애매할 때는 뭐다?"
"둘 다 갖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정서희는 식품연구부서 연구원들과 함께 다양한 방면으로 조리법을 시도했다.
그 결과 감자칩 5종류, 고구마칩 5종류, 옥수수칩 5종류의 최종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각각 향신료나 양념을 달리하여 맛에 변화를 준 것들이다.
물론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순수한 재료 본연의 맛과 비주얼을 강조한 버전도 빠지지 않았다.
"이 상품들은 한꺼번에 출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정 부사장?"
정서희의 말에 전성렬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신제품 과자들은 기존 제과 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전략무기였다.
황비버섯라면이 그랬듯이, 과자칩시장을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다.
"런칭 제품 가짓수가 많으면 아무 래도 초점이 분산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오리지널 버전 3가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음…… 오리지널 버전에 주목을 주자는 거군요."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감자칩, 고구마집, 옥수수칩.
이들은 다른 것들보다는 맛이 조금 떨어지지만, 대신 선명한 황금빛깔을 자랑한다. 쉽게 말해 보는 맛이 있다.
"네, 황금 과자라는 이미지를 일단 강조해서 아성을 구축하는 거죠. 그 이미지가 공고해진 다음에 첨가물을 넣은 다른 버전들을 출시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요.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과자 대량생산 라인을 갖추려면 우리 프라임컴퍼니는 아직 그쪽 경험이 부족한데……."
"그건 급한 대로 JM식품에 적당히 대가 지불하고 설비와 인력 끌어오기로 했어요."
"좋습니다. 급행료 지불해서라도 빨리 움직입시다."
전성렬은 라테그룹 저격을 위해 과자칩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건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