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04화
74장 바다의 왕자(2)
도대체 미끼도 없이 어떻게 낚는 거지?
이도공과 직원들은 신기해서 정신없이 넋을 잃은 채 구경하기만 했다.
낚시용 드론은 낚싯바늘 하나만 달랑 가지고 고급 어종을 쉴 새 없이 낚아 올렸다.
참돔, 돌돔, 붉돔, 우럭, 다금바리 등 20마리의 생선을 낚은 하수영은 마침내 낚시를 멈췄다.
"이 정도면 우리끼리 먹기에는 충분할 거 같네요. 이만 이동합시다."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다 먹지도 못할 거 같은데요. 이런 큰 생선 열마리를 어떻게……."
"에이, 남자가 몇 명인데 이걸 다 못 먹어요?"
캠핑카에는 바퀴 달린 이동형 수조도 있었다.
하수영은 활어들을 모두 바닷물이 담긴 이동형 수조에 넣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캠핑카는 그대로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큼지막한 캠핑카가 들어서자 자갈치 시장 외곽 지역을 거닐던 행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수영은 널찍한 유료주차장에 자리를 잡은 뒤, 이동형 수조를 꺼냈다.
바퀴 달린 수조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을 보고 이도공과 직원들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이거 설마 인공지능 로봇이었습니까?"
"네, 그래요. 이것도 프리덤이 조종합니다."
"세상에…… 제가 쓰는 프리덤은 이런 기능이 있다는 말을 안 해주던데요."
"제가 리미티드 한정판 프리미엄구독서비스 사용자라서 그렇습니다. 보통 소비자들은 그런 구독권을 판매한다는 것도 알지 못해요."
"프리덤의 한계는 정말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군요."
이도공은 세간에서 떠도는 말을 문득 떠올렸다.
프리덤을 제대로 활용하면 의료, 통신, 자율주행, 로봇공학 등 다방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이도공은 오늘 말로만 떠돌던 그 희망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목격했다.
'근데 왜 저런 걸 일반 기업에는 제공하지 않는 거지?'
이도공은 그 부분이 이해가 안 갔다.
실비아컴퍼니가 다른 노림수라도 있는 건가? 당장 헤슬라 자동차에 자율주행 보조 인공지능으로 제공하면 엄청난 돈을 쓸어담고 시장 장악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에이, 실비아컴퍼니가 뭔가 생각하는 게 있겠지.'
물고기를 실은 로봇 수조는 일행의 맨 뒤에서 졸졸졸 따라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이동식 수조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그리 잡아끌지 않았다.
줄 같은 걸로 끌고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사장님, 저희 차림상 하나 주세요."
"어이구야, 어디서 이렇게 물 좋은 것들만 골라서 사오셨대? 이거면 대제 돈이 다 얼마야?"
"오늘 손맛이 좋더라고요."
"설마 이걸 다 낚았다고?"
"네, 동해 용왕님한테 크게 제삿돈바친 보람이 있네요."
횟집 사장은 하수영 일행을 위해 큰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었다.
"알지? 직접 낚아온 거면 차림비 두당 만오천 원이야."
"네, 소주도 갖다 주세요. 매운탕끓이게 냄비하고 밑재료도 부탁합니다. 아, 도마하고 회칼도 주세요."
"회칼? 직접 손질하시게?"
"칼질이라면 지겹도록 해봤어요. 이래 봬도 서울에서 큰 횟집 하나 운영합니다."
그 칼질이 비단 생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하수영을 제외한 누구도 모를 것이다.
사장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러났고, 이도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사장님 표정이 왜 저러는 거죠?"
"회 뜨는 거 맡기면 살점 좀 빼돌릴 수 있는데 제가 직접 한다니까 못 해서 저러는 겁니다."
"헉, 그게 정말입니까?"
"놔두세요. 원래 이런 데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라서요. 제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니 걱정 마시구요."
잠시 후 직원들이 도마와 회칼, 냄비와 휴대용 버너, 매운탕 밑재료들을 가지고 왔다.
하수영은 수조에서 참돔을 꺼내 도마 위에 놓았다.
참돔이 푸드덕거리면서 힘차게 제 항했지만, 하수영의 손길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비늘이 미끄러울 텐데 안 놓치시는 거 봐. 대단해."
"아, 칼 들어간다."
"와, 무슨 칼놀림이 저렇게 빨라?"
건축 사무소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나가던 횟집 직원들, 그리고 다른 손님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몰렸다.
쉬지 않고 재빠르게 칼을 휘리릭놀린 거 같은데, 어느새 참돔 한 마리가 깔끔하게 분해돼서 가지런하고 예쁜 살점 배열이 끝났던 것이다.
"자, 먼저 드세요. 갓 회 떴을 때 드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하수영은 신이 난 손길로 이번에는 돌돔을 가져와서 회를 뜨기 시작했다. 금방 회접시로 변한 돌돔의 살점들이 건축사무소 직원들 앞에 놓였다.
그 다음은 우럭이었다.
"활어회 요잔 원샷, 우럭 두 개 더! 너는 참돔보다 좋은 맛을 갖고 있겠지? 텀블러 한 잔에 널 털어버리고 ~"
"회장님 신나셨네요."
"이거 회장님이 하나부터 열까지다 일하셔서 송구한데, 신나신 거 보니까 저희가 가만히 있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하수영은 20마리나 되는 활어를 모두 회를 뜨고, 다음에는 매운탕을 준비했다.
회를 뜨고 남은 생선 머리와 밑재료, 소금과 고추장 등을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자, 다들 한잔합시다."
가볍게 요리를 마친 하수영이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었고, 직원들도 기분 좋게 건배했다.
제돈 주고는 절대 못 먹을 값비싼 회를 먹고 있으니, 부산에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수영이 잠시 화장실을 간 틈을 타서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회장님이 요리를 정말 좋아하시는거 같아. 그렇지?"
"그러게. 낚시도 좋아하시는 거 같고."
"대체 회장님은 못하는 게 뭘까? 난 저 나이 때 라면이나 겨우 끓였던 거 같은데……."
"부동산 재벌에, 성공한 요식업 사업가에, 각광받는 정치인에, 회 뜨는 솜씨도 일품이고, 인품까지 저리 좋으니 이거 너무 사기 아니냐?"
"근데 왜 여자 친구는 없으시지? 왠지 회장님, 여자에는 관심 없으신 거 같지 않아?"
"회장님 클라스에 맞추려면 웬만한 여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 거 같은데."
"아, 그래서 여자 친구가 없으신가?"
"정말 없는지 우리가 모르는 건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장담을 해?"
"오늘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연락오는 걸 못 봐서 그렇지. 보통 여자 친구 있으면 이렇게 멋지게 요리하는 거 사진 찍어서 자랑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으시잖아."
"아, 듣고 보니 그렇네."
술자리가 파할 무렵에는 어느새 저녁이 깊었다.
하수영을 제외하고 다들 거나하게 취한 채 캠핑카에 올랐다.
이도공 건축사가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하수영을 보고 물었다.
"회장님이 술은 궤짝으로 드셨는데 왜 얼굴은 전혀 취한 티가 안 보이는 거죠? 제가 많이 취했나 봅니다.
끄윽……."
"전혀 안 취한 거 맞습니다. 보실래요?"
하수영은 어디서 났는지, 그 자리에서 음주측정기를 꺼내서 거세게 불었다.
알콜 수치를 확인한 이도공은 한순간 술이 깨는 기분을 받았다.
"0.00%? 아니, 궤짝으로 드셨는데 왜 그렇게 나오죠? 그거 고장 난 거 아닌가요?"
"제가 효과 좋은 알콜 분해제가 있어서요. 아, 시판은 하지 않는 제품입니다. 이거 복용하고 술 먹으면 술자리 끝나고 길어도 20분 안에 알콜 싹 없어집니다."
"아니, 취하려고 먹는 건데 그럼 의미가 없잖습니까."
"저녁에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도 운전대는 안 잡을 겁니다. 술 궤짝으로 먹은 건 사실이니까요. 남들 눈에는 음주운전이죠."
알콜 분해제는 다름 아닌 엘릭서로 키운 브로콜리였다.
황금비단우산버섯보다 고농도의 엘릭서로 키운 브로콜리는 원래 숙취해소를 위해 시범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숙취 해소를 넘어서서 체내의 알콜 기운 자체를 싹 없애 버리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즉 아무리 만취 상태여도 이걸 먹으면 아예 술을 먹지 않은 상태와 똑같아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운전대를 잡을 마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이 술을 많이 먹은 것은 사실이니까.
"대리 부르셨나요?"
"네, 운전 좀 해주세요."
"서울까지 가시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그전에 해운대 서해 호텔 경유해 주세요. 거기 내리실 분들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운좋게 트레일러 면허를 가진 대리 기사 콜이 금방 잡힌 덕분에, 일행은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캠핑카가 어느덧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으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회, 회장님. 잠시만 세워주십시오. 저 토할 거 같습니다."
"저, 저두요."
이도공과 직원 한 명이 구토를 호소했고, 캠핑카는 잠시 도로 옆으로 정차했다.
후다닥 내린 이도공과 직원은 야외에 설치된 회장실을 향해 재빨리 들어갔다.
"어쩐지 주량이 생각보다 세다 생각했는데, 술을 평소보다 과하게 드셨나 보네."
"평생 먹어볼까 말까 한 안주차림이라서 다들 과하게 먹었습니다. 저도 과하게 먹었…… 우욱! 우웩!"
그렇게 말하던 직원도 입을 틀어막고는 캠핑카에서 내려서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대리기사는 하수영과 눈이 마주치고는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사장님은 전혀 안 취하신 거 같은데요. 술을 거의 안 드셨나 봅니다?"
"제가 제일 많이 먹었는데요. 지금은 다 깼지만요."
"아이구, 아주 강철로 된 간을 갖고 계시네요."
"아버지 덕분에 튼튼하고 좋은 간을 받았거든요."
심심해서 대기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 원래 크레인카 운전면허를 갖고 계시다구요?"
"네, 제가 운전하지 못하는 차는 없습니다. 바퀴 달린 건 모두 운전가능해요. 아, 오토바이는 빼고요.
이륜 바퀴는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절대 안 탑니다."
"요새 건설시장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요."
"매우 안 좋죠. 이번에 동백섬에 초대형 공사 하나 발주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크레인카는 안 쓸 모양이더라고요. 그냥 일반타워크레인 쓴다던데."
"크레인카 하면 역시 립헬이 최고인 거 같죠.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막 뭔가가 있어요."
"아, 저도 립헬 좋아합니다."
그렇게 대화거리를 찾은 두 남자가 나이를 초월해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요란한 엔진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대리기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또 저놈이네."
"아시는 차량인가요?"
"부산에서 알아주는 있는 집 자식인데, 어디서 스포츠카 하나 샀다고 밤이면 밤마다 저렇게 광안대교부터 시작해서 바닷가를 질주하는 놈입니다. 요 며칠 잠잠해서 사고 나서 뒤졌는 줄 알았는데 안 죽고 멀쩡히 살아 있네요."
"운전을 아주 위험하게 하나 보네요."
"저놈 때문에 병신 된 사람이벌써 둘인가 돼요. 돈으로 다 틀어막아서 뉴스 한 줄 제대로 안 났죠. 귀신은 뭐하나, 저놈 안 잡아가고…… 응?"
마침내 저 멀리 강렬한 불빛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람보르기니 한 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리기사는 람보르기니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차량의 움직임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저놈, 저 미친놈! 술 먹고 운전하는 거 같은데요? 어어! 지금 저거 어디로 가는 거야!"
람보르기니는 어느새 도로를 이탈해서 공원으로 접어들었다.
그 순간 차체 스피커와 연동된 프리덤의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동선 예측 완료! 이대로 98%의 확률로 이도공 건축사가 사용 중인 간이 화장실에 충돌합니다! 긴급 상황!
"어어? 어어? 핸들이 지멋대로 움직인다!"
이미 프리덤은 경고음을 울리는 동시에 강제로 차량 통제권을 가져간 뒤였다.
순식간에 속도를 낸 캠핑카는 간이 화장실의 측면에 빠르게 도달해서 멈춰섰다.
그 순간에도 람보르기니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캠핑카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대리기사가 사색이 돼서 외쳤다.
"부, 부딪친다! 으아악! 으아악…… 으아악?"
쿵, 하고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대리기사는 멍한 눈으로 충돌한 람보르기니가 허공으로 튀어오르며 뒤집히는 광경을 바라봤다.
차량이 여러 번 나뒹구는 모습을 보면 충돌한 게 맞는 듯한데, 캠핑카에서 전해지는 충격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람보르기니가 뒤집어지는 걸 보니,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간이 화장실은 무사합니다. 2초만 늦었어도 이도공 건축사와 직원들이 사망했거나 중상을 입었을 겁니다.
"술을 처먹었으면 나처럼 얌전히 대리나 부를 것이지, 왜 폭주를 하는지 모르겠네. 119에 신고해야겠다."
-제가 이미 신고했습니다. '람보르기니 레플리카 운전자가 과속운전으로 도로를 이탈해 간이 화장실을 덮치려고 하다가 캠핑카에 충돌해서 뒹굴었음, 즉각 구조 요망.' 이라고 신고했습니다.
"이거 지금 프리덤이 말하는 거 맞죠? 근데 레플리카요?"
"아아, 짝퉁 복제카 말하는 거예요. 진품카면 저렇게 나가떨어지지 않고 앞부분이 찌그러지면서 멈추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