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02화
73장 우리는 건축자(3)
펜션 설계는 금방 나왔고, JS건설은 곧바로 동백섬 부지 정리에 들어갔다.
하수영의 지시에 따라 국제정상회의가 열렸던 본건물은 그대로 놔둔 채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
"누리마루 정자는 어떻게 할까요? 이걸 치우지 않으면 펜션하우스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없애기는 아까우니까 그대로 땅파서 잘 보관하죠. 나중에 펜션 다 짓고 난 다음에 좋은 위치 골라서 다시 놓죠."
"알겠습니다."
해운대구에서 건설 승인을 얻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설계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까.
다만 호텔업으로 신고를 했기에, 구청 관계자가 살짝 우려를 내비치긴 했다.
"동백섬 입구 근처에는 이미 서해 호텔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수익을 남기려고 호텔 사업하는 게 아니어서요. 애초에 돈만 생각했으면 그 땅을 1,450억이나 주고 낙찰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긴, 그렇네요. 낙찰자가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큰 부자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국회 양당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젊은 강남구의원이십니다."
"아, 정치하시는 분이시군요."
구청 담당자는 속으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조용히 투덜거렸다.
누리마루는 본건물을 놔두고 곧바로 공사 밑준비에 들어갔다.
정원 풍경을 장식하는 정자는 뿌리 내린 땅을 통째로 파내진 채 안전한 곳으로 이전되었다.
펜션하우스 주건축이 끝나고 마무리 작업할 때 다시 정원에 장식을 할 예정이었다.
시청 고위 관계자들은 본건물 철거가 잘 진행되겠거니 하고 손을 놓고 있었다.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구두 합의 이긴 하지만, 설마 낙찰자가 어기지는 않을 거라고 태평하게 생각했다.
펜션 공사가 다 끝나는 날, 그들은 뒷목을 잡게 될 것이다.
***
펜션하우스가 착공에 들어가자 하수영은 곧바로 부산 해운대로 내려왔다.
"그래도 명색이 건축주인데 첫삽뜨는 것은 지켜봐야죠."
하수영은 첫삽 뜨는 것뿐만이 아니라 며칠 동안 해운대에 계속 머무르며 공사 경과를 살폈다.
"꽃피는 동백섬에 펜션하우스, 마린시티 선착장에 청담의 맛 입항하리,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하수영 치킨라면 바리바리 실어 보내리. 내가 간다 부산항아, 청담동 수영푸드."
하수영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듣던 이도공 건축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떨칠 수 없었다.
"조용필 노래군요. 즉석 개사하신 겁니까?"
"네, 제가 원래 흥이 좀 많아서요. 노래가 저절로 나오네요."
"그, 그러시군요."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수영은 이도공 건축사와 나란히 동백공원에 서서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땅을 파는 게 지하 패닉룸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누리마루 컨벤션본건물을 제외한 부지 전체에 지하 패닉룸을 설치할 겁니다."
"단일 패닉룸이라고 했죠?"
"네, 패닉룸을 굳이 여러 개로 나눌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나로 합치는 게 공간도 넓고 비상물품도 더 많이 보관할 수 있습니다."
펜션하우스는 3채를 올리지만, 패닉룸은 1개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패닉룸은 거주 구간만 지하 6층입니다. 펜션하우스 3개의 숙박객 모두를 수용하기 위해서 크게 지었습니다."
"잘하신 결정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거주 구간 외에 식료품과 의약품등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싣는 비축창고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패닉룸의 외벽은 두께 20cm의 티타늄 합금으로 구성하고, 그 바깥은 다시 두께 30㎝의 철근콘크리트로 둘렀습니다."
값비싼 티타늄 합금을 마음껏 쓴 덕분에 건축비용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이도공은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흐뭇한 기분을 품었다.
하지만…….
"그냥 티타늄 합금 50㎝로 하시지 그랬어요. 아니, 기왕이면 1미터 이상으로 하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
"지금 바로 다시 수정할 순 없나요?"
"아, 아직 패닉룸 외부 콘크리트를 부은 건 아니니 얼마든지 설계 변경가능합니다. 다만 티타늄 합금을 추가로 주문하고 납품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공기가 조금 길어집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비상상황을 위한 패닉룸이니까 티타늄 합금으로 튼튼하게 짓죠."
이 사람이 생각하는 비상상황이라는 게 혹시 적군 잠수함이 동백섬에 미사일이라도 퍼붓는 건 아닐까?
"흡음재를 두텁게 사용해서 층간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바로 위층에서 축구를 하면서 클럽 콘서트를 열어도 아래층에서는 전혀 모를 겁니다. 문만 닫는다면 말이죠."
"아주 좋아요. 펜션에서만큼은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웃고 떠들며 놀 수 있어야죠. 기껏 비싼 돈내고 숙박했는데 제대로 놀지도 못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이도공은 그 말에 문득 생각했다.
건축비를 생각하면 하수영이 책정한 펜션 이용료는 어림도 없는 수준인데?
"아, 어서 빨리 펜션이 완공됐으면 좋겠어요. 바닷바람을 맞으며 장사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근거리네요."
"펜션 자체는 빨리 지을 수 있습니다. 해상공원은 좀 늦어질 겁니다. 아무래도 10층 건물보다는 건조 난 이도가 있어서요."
"해상공원은 뭐 나중에 들여도 되니까 펜션부터 지어지면 바로 영업시작해야겠어요. 그나저나 동백섬펜션에서만 파는 독특한 먹거리가 있어야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을 텐데……."
"여기서 더 이상 굳이 뭘 추가하지 않아도 예약은 꽉 찰 거 같은데요."
"뭘 팔면 좋을까. 동백섬 누리마루펜션에서만 파는 아주 특별한 먹거리, 그게 있어야 하는데……."
하수영은 이미 이도공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수영라면, 수영참치, 그런 건 당연히 기본이고 그 외에 동백섬만의 고유 아이템이 필요해. 뭐가 좋을까…….'
독창성과 희소성이 프리미엄을 만든다.
펜션에서만 접할 수 있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그런 독특한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하수영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반색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뭐 좋은 생각이 나셨습니까?"
"건축사님, 바닷가 펜션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바닷가 펜션이요? 그야 당연히 신선한 회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게 생각나죠."
"그리고 생선 바베큐도 생각나지 않으세요? 큼지막한 솥에다가 생선 대가리 넣어서 장작불에 매운탕 끓여서 먹고요."
"생각만 해도 벌써 입에 군침이 돕니다."
"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회와 생선 바베큐와 매운탕이요?"
이도공은 의아했다.
물론 바닷가 펜션하면 떠오르는 로망이긴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건 없는 아이템인데?
혼자 뭔가 대단한 것을 생각해낸 것처럼 뿌듯해하고 있는 게 이상했다.
"지금 바로 통영에 한 번 들러야겠군요.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통영에 볼일이 생각나신 모양이군요."
"네, 거기에 제 개인 양식장이 있거든요."
"양식장도 갖고 계십니까?"
이도공 건축사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치켜떴다.
동시에 하수영이 방금 무슨 구상을 품었는지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하수영은 통영에 있는 수영오세안 양식장을 찾았다.
본래 참치양식조합이었던 것을 인수해서 차린 양식장,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금속 무공해 청정 참치를 출하하는 곳이다.
통영 앞바다에는 참치를 가둬 키우는 그물 가두리가 예전에 비해 열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전직 조합장이었다가 지금은 수영참치 전무 겸 사장 대리를 맡고 있는 박영식 전무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설명했다.
"사장님이 처음 인수하셨을 때보다 참치 개수가 열 배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앞으로 10개월치 주문량이 꽉 밀려 있어 현재는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치들이 건강한 걸 보니 제 마음이 다 뿌듯하군요."
"수영참치는 지금 통영의 자랑거리입니다. 통영시청에서는 관광코스로 우리 수영참치 양식장을 넣기도 했습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즉석 참치회를 선보이는 관광 코스를 준비해줄 수 없느냐고 문의까지 왔습니다."
"그런 건 받아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다 우리 참치 브랜드 홍보에 도움이 되는 거 아닙니까."
"네, 그래서 지금 긍정적으로 협의 중입니다."
평소에도 자주 통화를 하고 보고를 받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얼굴을 자주 보는 건 힘들다.
박영식 전무에게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면 되지만, 양식장 총운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도 좋지 않다.
"제가 해운대에서 자그맣게 펜션 하나를 내려고 합니다. 지금 한창 땅 다지고 있어요."
"펜션이요? 갑자기 왜 그런 걸 하려고 하십니까?"
"소일거리입니다. 힐링용이죠. 경치 좋은 바닷가에 작은 펜션 하나 내서 손님들과 웃고 떠들며 마음의 평화를 다잡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이해가 됩니다."
공감이 가득 담긴 해맑은 표정.
그 작은 펜션을 위해 땅값만 1,450억이 들었고 건축비까지 합치면 2,000억이 훌쩍 넘어간다는 것을 모르는 이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요, 특권이다.
"바닷가 펜션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당연히 신선한 해산물과 소주 한 잔이죠. 생선 바베큐를 곁들이면 더 좋고요."
"역시 박 전무님은 바닷가 사나이라서 그런지 한 번에 제 생각을 꿰뚫어보시는군요."
"혹시 펜션에서 서비스할 해산물을 따로 양식하고 싶으신 겁니까?"
"네. 광어, 우럭, 돔, 전복, 가리비, 홍합 등등 다양한 해산물을 양식하고 싶습니다."
"아하, 종합 양식장을 운영하려고 하시는군요."
"네, 사이즈 작은 규모로요. 어차피 펜션 손님만 상대할 거니까요."
"아무래도 양식장 마진은 많이 안남겠, 아니, 적자만 안 보면 다행인 수준이겠네요."
한두 가지의 어류를 전문적으로 양식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어류를 소량으로 양식하는 것이니까.
'똔똔(손익분기)은커녕 무조건 적자 나겠네. 적자폭만 안 커도 다행이겠어.'
물론 박영식 전무는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무공해 참치 양식 하나만 해도 많은 수익이 남고 있다.
그런 참치 양식도 취미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수영은 부동산 자산도 많이 갖고 있다.
취미로 하는 펜션 사업을 위해서 적자 봐가면서 양식장 좀 운영하는 게 뭐 어떤가?
"다른 데서 흉내 낼 수 없는 펜션서비스를 제공하면 됐죠."
"알겠습니다. 그럼 부산 낙동강 쪽에 종합 양식장을 따로 세울까요?"
"통영에서 거기까지 인력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낭비니까 그냥 여기에 하나 더 만드시죠."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두리 그물은 제가 곧 갖다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신형 양식장 지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양식 어종은 가능한 다양하고 많이 확보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제 로망이거든요."
"네, 아주 최고급 품종만 키워내서 출하하겠습니다."
***
얼마 후, 하수영은 성역의 기운이 담긴 가두리 그물을 잔뜩 가져왔다.
물론 박영식 전무는 어떻게 해서 무공해 참치가 양식되는지 원리를 알지 못한다.
그도 처음에는 그물에 무슨 과학적인 비밀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었다. 비슷한 의심을 한 이들이 가두리 그물을 몰래 훔쳐가서 양식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물을 훔쳐서 참치를 양식해도 중금속이 없는 무공해 참치로 성장하지 않았다.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 이후, 가두리 그물에 대한 의심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전무님, 근데 왜 그물을 사장님이 따로 가져오시는 거예요? 저도 그래서 처음에는 그물에 뭔가 비밀이 있는 줄 알았잖아요."
"이 그물이 질기고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거야. 그래서 다른 그물보다 비싸지."
"친환경적인 소재요?"
"튼튼하고 질기긴 한데, 특수소재로 만든 거라서 바닷물에는 약해. 해수에 노출되면 서서히 마모되기 시작해서, 5년 이상 지나면 완전히 분해된대. 그래서 4년 정도 주기로 그물을 완전히 갈아줘야 해."
"아니, 그러면 돈만 더 들어가는거 아니에요?"
"사장님이 그만큼 환경을 신경 쓰시는 거지. 썩지 않는 그물이 유실 되었다가 바다를 떠돌아다니면서 거북이나 어류한테 괜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시려는 거지."
종합 양식장은 금방 뚝딱 만들어졌다.
박영식 전무는 양식 가능한 모든 종류의 해산물을 소량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이거 손해 안 보고 팔려면 광어 kg당 20만 원은 받아야겠는데요. 누가 그 돈 주고 광어 먹어요. 킬로당 2만 원이면 너끈한데."
"돈 벌려고 키우는 거 아니다. 펜션 손님들 상대로 낭만과 꿈과 추억과 즐거움과 행복을 팔려고 키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