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01화
73장 우리는 건축자(2)
"자동방파제는 부산 역대 태풍 중에서 가장 파도가 높았던 것을 기준으로 3미터 이상 높이로 하자고,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재난 상황에만 튀어나오게 하고."
"그렇게 해야지."
"근데 이거 꼭 1,000억에 맞춰야 하는 거지? 지금까지 말한 것만 따져도 500억에도 훨씬 못 미칠 거 같은데."
"건축주는 3,000억까지도 생각하는거 같던데."
"……."
"내 정신 좀 봐. 이 이야기를 안했네. 이거 프라임컴퍼니 본사 사옥 건축주 의뢰야."
"야! 그걸 가장 먼저 이야기했어야지!"
박동훈은 마음이 급해졌다.
프라임컴퍼니 청담 사옥은 그의 구조기술사 사무소도 참여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미 거래 전적이 있는 VIP의 의뢰였다니.
"3,000억은 말도 안 되지만, 어떻게든 1,000억에는 최대한 근사하게 견적 뽑아봐야지. 아! 해상공원은 어때?"
"해상공원?"
"펜션 앞바다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해상부유식 인공공원 짓는 거야. 안에 수족관도 넣고, 동물원도 넣고, 놀이시설이나 문화센터도 넣고, 펜션 손님들이 보트 타고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오, 좋은데."
박동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하나면 200억은 족히 잡아먹을 수 있어. 그냥 부유시설물이니까 허가 문제만 잘 해결하면 돼. 안전성에서는 크게 지장 없을 거야."
"기왕이면 크고 넓게 지어야 바다 위에서 안정감이 있겠어."
"태풍이나 파도도 생각해야 하니까."
"좋아, 이대로 설계 한 번 내보자."
"근데 우리는 해상공원 구조체만 짓는 거고 그 위에 올릴 문화시설 같은 건 건축비에는 안 들어가는 거 아니야?"
"설마 건축주님이 그렇게 양심이 없지는 않을 거야."
해상공원에 올라가는 각종 문화시설 건축 비용도 당연히 1,000억 원에 포함시켜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또 어디서 1,000억에 맞출 견적을 뺄 수 있겠나.
건축주가 그 정도 양심은 있을 것이다. 이도공은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럼 공원에 올릴 시설 건축비도한 100억 정도 일단 뺄 수 있을 거 같네."
"넉넉하게 200억 정도 빼자."
"그럴까?"
"어디 보자. 그럼……."
10층짜리 펜션하우스 3개.
각 하우스 옥상에는 비상 헬기이착륙장 설치.
모든 하우스에 지하 패닉룸 설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비상계단 설치.
최대 파도 높이보다 3미터 이상 높은 자동방파제.
"우리 그것도 넣자고, 베란다 창살틀이 평소에는 접혀 있다가 비상시에 저절로 펼치면서 계단으로 변하는 거 있잖아."
"아, 그걸 깜빡할 뻔했네."
"화재 상황에서 빨리 대피하려면 이거 꼭 있어야 돼."
펜션 숙박객이 이용할 수 있는, 해상부유식 인공공원.
그리고 인공공원 출입을 위한 요트선착장.
"일단 이 정도를 기본 뼈대로 잡고 설계해 보자고."
"그래, 일단 시작하자."
건축비를 최대한 절감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아니, 원래 그게 정상이다.
지금처럼 건축비를 최대한 탕진하는 식으로 건축 설계를 짜본 경험은 둘에게 생소한 일이었다.
"이 대표, 나 지금 뭔가 많이 낯선 기분이야."
"나도 그래. 막 안에서 꿈틀거리는 이상한 마음을 떨치기가 힘드네."
"우리 이러다가 이상한 영역에 눈을 뜨면 어떡하지?"
"……."
돈을 탕진하는 방향으로 건축 설계를 하는 버릇에 물들이면 큰일 나는데.
"이 사장, 자네가 선박 면허 따둔게 이렇게 쓰임새가 오는 날도 있군 그래."
"빌딩과 배는 뭍에 서 있느냐 물에 떠 있느냐 그 차이밖에 없으니까.
따두길 잘했지. 이렇게 쓰일 날이 오고 말이야."
두 사람은 그날부터 밤낮을 잊고 열심히 펜션하우스 설계에 몰두했다.
***
725억 원입니다."
이도공은 조심스럽게 설계 도면과 견적서를 내밀었다.
옆에서는 박동훈 건축구조기술사가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3D 조감도를 켰다.
하수영은 멋들어진 해변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3채의 펜션하우스, 그리고 해상공원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게 최선입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대체 이유가 뭐죠?"
"따, 땅이 너무 좁습니다!"
"……."
"6,000평이라고 해봤자 기존 컨벤션 센터를 허물지도 못하고 남는 땅에 펜션하우스 3채를 지어야 하니, 이 이상의 조건은 불가능했습니다."
"펜션하우스를 10층에서 더 높이는 건요?"
"30층으로 더 높여봤자 건축 비용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되면 펜션이 아니라 호텔입니다. 아니, 이미 행정상으로는 호텔 규모이려나요……."
"아, 그럼 안 되죠. 제가 하려는 건 호텔 사업이 아니라 펜션 사업이니까."
똑같은 숙박업이라고 해도 규모에 따라 호텔, 펜션은 분명한 차이를 가진다.
'내가 또 선 넘을 뻔했네. 호텔 할게 아니잖아.'
하수영은 자신을 깊이 반성했다.
조촐하고 소박하게 펜션 사업이나 하려고 했던 결심을 잠시 잊고, 그만 호텔 쪽으로 나아갈 뻔했다.
"더 이상 돈을 쥐어짜 낼 구석은 없는 거죠?"
"네, 무리입니다."
"이것도 저희가 정말 머리를 쥐어 짜 내서 만든 견적입니다."
보통 돈을 쥐어짜 낸다는 것은 비용을 아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하수영의 펜션하우스 설계에서는 전혀 반대의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어디 건축비 더 들어갈 곳이 없는지 설계를 쥐어짜 내라니…….'
언제 또 이런 설계를 맡아 볼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해 주세요."
"네, 건축 승인허가를 포함해서 모든 건 저희 사무소에서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회장님은 건설사만 구하셔서 저희에게 연결해 주시면 됩니다."
"건설사를 제가 구해야 하나요?"
"네? 저희는 건축설계와 시공감리를 진행하지, 건설 자체를 맡지는 않습니다. 프라임컴퍼니 청담 사옥도 건설은 JS건설에서 진행하고, 감리는 저희가 맡고 있듯이 말입니다."
"혹시 JS건설 사장님 번호 아시나요?"
"예, 물론입니다. JS건설을 생각하시나요?"
"네, 기왕이면 아는 데 맡기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그럼 제가 지금 그분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JS건설은 10대 재벌 기업집단 계열사이자, 건설 빅3 중의 한 곳이다.
100억 미만은 수주를 받지도 않고, 설계부터 건설까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도맡아서 한다.
본래라면 그런 대형건설사가 이도 공 같은 개인건축사의 설계를 맡아서 건설하는 일은 거의 없다.(그가 세계적인 건축사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이도공도 프라임컴퍼니 의뢰가 아니었으면, JS건설이 자신의 설계로 건물을 짓는 행운을 거머쥐지 못했을 것이다.
"네, 조진웅 사장님. 저 이도공 건축사입니다."
-아, 이 건축사. 아직 정지 작업중이라서 감리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요.
JS건설 사장과 개인 건축사.
본래라면 비즈니스로 얽힐 일이 없는 사이지만, 하수영 덕분에 기묘한 인연이 만들어졌다.
전자상가의 한 PC조립업체가 서해 전자에 컴퓨터 부품을 6,000억 어치 주문을 한 것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아니고, 저희 사무소에서 이번에 725억짜리 공사 하나를 맡게 되어서요."
-오, 축하합니다.
조진웅 사장은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6,000억짜리 설계를 맡은 것이 제대로 소문이 난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건축주라도 그런 대형 설계를 맡은 사무소라고 하면 믿음이 갈테니까.
"건축주께서 JS건설에 건설 의뢰를 맡기고 싶어 하는 눈치라서, 어떻게 자리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지금 건축주분이 저와 함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거기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건축주는 조 사장님도 아시는 분입니다. 프라임컴퍼니 최대 주주 하수영 회장님이십니다."
-아,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더 빨리 움직여야겠네요. 일단 끊겠습니다.
조진웅 사장의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6,000억짜리 공사를 발주한 회사의 오너이니 그럴 수밖에.
그는 전성렬과 정서희는 만나봤지만 하수영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조진웅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도공의 사무소로 달려왔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수행원은 달랑 세 명만 거느린 채였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JS건설 조진웅 사장입니다."
"하수영입니다."
"얼마 전에 구의원 당선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 알고 계셨군요."
"네, 재계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회장님의 행보는 기업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회장님이란 호칭은 지겹, 아니, 과합니다. 그냥 의원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의원님."
조진웅은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요즘 하수영은 정·재계에서 급부상한 샛별이었다.
공직자이다 보니 자산 내역이 훤히 공개되기 때문에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조진웅이 알지 못하는 건, 하수영이 프리덤 개발자라는 사실뿐이다.
그것은 공직자 자산내역에 나오지 않으니까.
"누리마루 부지에 호텔을 지으시는 거군요."
'이게 장사가 될까? 만년 적자에 허덕일 거 같은데.'
조진웅은 속으로 물음표라 떠올랐지만, 겉으로는 의연하게 반응했다.
"호텔이 아니라 펜션입니다.
"……네?"
"펜션을 한 번 해보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
조진웅은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했지만, 수십 년간 쌓아온 관록이 그를 지탱해 주었다.
"페, 펜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게 어딜 봐서 펜션이야?'
"저, 의원님. 근데 제가 알기로 펜션 조건을 갖추려면 3층 이하에 객실이 30실 이하여야 합니다만……."
"괜찮아요. 승인은 호텔로 받고 펜션 간판 걸고 장사하면 되니까요. 어차피 3, 4개층만 돌리고 나머지 6, 7개층은 공실로 놔둘 겁니다."
조진웅은 정신이 멍해지는 듯했다.
관청에는 호텔로 승인받고, 펜션간판을 내걸고 영업한다고?
그래도 괜찮은 건가?
'이런 경우도 있나?'
호텔은 관광숙박의 정점이다. 하위업체가 호텔 간판을 은근슬쩍 걸려고 편법을 쓰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는 없을 것이다.
정식 호텔이 뭐가 아쉬워서 모텔, 콘도, 펜션, 이런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겠는가?
'이거 법에는 안 걸리는 건가?'
왠지 '호텔은 펜션 간판을 걸면 안된다.'는 규정은 없을 것 같은데?
누가 그런 경우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실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작게 짓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원래 3층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공사비가 남아돌아서 그냥 10층으로 변경했어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나중에 호텔 장사도 한 번 해보고 싶어질지."
"……."
조진웅은 머릿속이 더욱 아찔해졌다.
뭔가 적응이 안 된다. 이 사람, 어딘가 이상하다.
이도공 건축사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설명했다.
"펜션하우스 건설이야 JS건설 입장에서 일도 아닐 테고, 중요한 건 해상공원입니다. 실질적으로는 바다에 떠 있는 크고 평평한 운동장 같은 구조물이라서요."
"건설회사의 영역은 아니군요. 하지만 JS중공업이 충분히 맡아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제가 JS중공업에서 임원으로 일해봤기 때문에 자신 할 수 있습니다."
해상공원은 선박건조회사가 맡아야 한다.
하수영이 시원스럽게 결정을 내렸다.
"그럼 JS중공업과 미팅을 해야 할까요?"
"제가 바로 연락 넣겠습니다."
연락을 받은 JS중공업 사장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두말할 것 없이 의뢰를 받아 들였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설계입니다. 저희 회사에 맡겨 주시면 문제없이 해내겠습니다."
"네 분 모두 감사합니다. 나중에 펜션 개장하면 초청할 테니 꼭 놀러와 주세요."
"영광입니다. 불러만 주신다면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동백섬 펜션 프로젝트에 불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