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00화 (300/1,270)

프랜차이즈 갓 300화

73장 우리는 건축자(1)

오죽하면 이도공 건축사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혹시 비자금이라도 만들려고 그러시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3층짜리 펜션 3채를 짓는데 건축비로만 1,000억 원을 생각하고 있다니, 누구라도 저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33층 아닌데요. 3층 맞습니다. 거기 지반 문제 때문에 33층은 허가가 안 나올 거예요."

"회장님…… 1,000억으로는 3층짜리 펜션 3채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금액이 너무 안 맞습니다."

"가만있자, 그럼 한 3,000억 정도면 될까요?"

"그,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도공은 펄쩍 뛸 뻔했다.

아니, 왜 사람 말을 전혀 거꾸로 해석을 하는 거야?

"아무리 고급 펜션이라고 해도 건축 자재는 사치품을 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1,000억은커녕 100억, 아니 50억만 써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최고급 건축자재를 마음껏 써도 50억이 한계일 것 같다.

"혹시 내부 인테리어나 내장재, 가구 같은 걸 사치품으로 하실 건가요? 유럽 왕실용 품목을 쓴다면 가능할 겁니다."

"아뇨, 인테리어나 가구 관련 비용은 따로 가계부에 있는데요. 1,000억은 당연히 펜션 짓는 비용만이죠."

"그러니까 1,000억까지는 절대 필요가 없, 아니, 쓰지도 못한다니까요. 대지면적이 6,000평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펜션하우스 간에 서로 적당히 거리 간격도 있어야 하고, 정원도 갖춰야 한다.

그 점을 생각하면 건축 면적(건물의 바닥 면적)은 끽해야 1,500평 내지 2,000평 정도 될 것이다.

고급 펜션은 공간감과 개방감을 한층 더 강조해야 하니, 무조건 1,500평 밑으로 맞춰야 하지 않을까?

"혹시 부자들 전용 펜션으로 운영하실 생각이신가요?"

1박에 수백만 원씩 넘어가는 최고 급 펜션으로 운영하려고 저러시나?

"아뇨, 일반인 대상으로 장사할 겁니다. 어차피 동백섬은 근처에 활주로도 없어서 전용기 있는 부자들이 놀러 오기도 뭐해요. 입지가 너무 안 좋습니다."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지만, 이도공은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갔다.

"2인 룸 기준으로 1박에 16만 원이니까 건축사님도 나중에 부산 놀러 올 일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12인은 26만 원입니다."

2인룸에 16만 원?

일반적인 펜션에 비하면 비싸지만, 부자들을 타겟으로 한 요금은 확실히 아니다.

누리마루 입지라든지 기타 사항을 생각하면 합리적으로 책정된 요금이다.

"일단 3층짜리 펜션 기준으로 건축가성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제가 짜낼 수 있는 최고의 견적을 내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한 일인 걸요. 견적 나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설계는 그 다음, 일단 건축비 견적을 대강이라도 내야지 그 뒤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누리마루 본건물은 정말로 철거하는 겁니까? 그러기에는 너무 기념비적인 인물이라서 아까운데 말입니다."

입찰 조건 중에 본건물 철거가 있다고 하니, 이도공은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아, 맞다. 그 말씀을 안 드렸네요."

"네? 어떤 겁니까?"

"컨벤션 본건물은 철거 안 하고 그대로 놔둘 겁니다. 전시회관으로 사용하려구요. 그거 생각하고 펜션 설계해 주셔야 합니다."

"철거를 안 하신다고요? 그럼 입찰조건을 위반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 멀쩡하고 좋은 건물을 자기들 치부 감추자고 철거하려는 게 더 말이 안 되죠."

"하지만 벡스코 측에서 항의할 겁니다."

"항의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이거 외부에 알려지면 욕먹는 건 벡스코와 부산시거든요."

"……."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국제정치 역사적인 상징성을 가지는 중앙컨벤션 건물을 헐어버리면, 당연히 비난을 받게 된다.

부산시와 벡스코는 그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입찰자에게 책임을 돌려 버린 것이다.

"이미 소유권은 넘겨받았고, 제가 건물을 헐지 않아도 문제될 게 없거든요. 안전진단 다시 받아서 문제없다고 행정결정 받으면 그만이에요."

결과적으로 부산시와 벡스코는 본 건물을 철거하지 않는다고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다.

'부산 시민 여러분, 부산시에서 누리마루 본건물을 자꾸만 헐라고 하는데요? 이거 뭐 있는 거 아님?'

'뭐! 아니, 그 뜻깊은 건물을 왜 헐어!'

'부산시를 조사해라! 뭔가 비리가 있다!'

이런 식의 폭로전은 부산시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난 이도공은 떨떠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네, 그러니 그건 문제없습니다. 설계 진행해 주세요."

"저, 혹시 처음 경매에 참가하실 때부터 본건물 철거하실 의향은 없으셨던 건지……."

"철거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거면 철거하려고 했죠. 근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놔두는 겁니다. 벡스코도 너무 염치가 없어요. 원래라면 900억도 못 받을 거 1,450억이나 받았으면 뭐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죠."

"……."

"심지어 거기 땅값은 300억도 안해요."

***

하수영의 의뢰를 맡은 후, 건축사사무소는 더욱 바빠졌다.

프라임컴퍼니 본사 설계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펜션 설계를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사님 몸이 하나인데 지장을 안 준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근데 친억에 맞출 수 있기는 해요? 그 반의반도 못 쓸 거 같은데……."

"100억짜리 견적이나 겨우 내면 다행이지. 10억 던져 주면서 컴퓨터견적 하나 맞춰 오라고 하면 누가 그걸 할 수 있겠어?"

"전 할 수 있는데요. 워크스테이션 제대로 맞추면 10억은 우습지도 않습니다."

"근데 그 컴퓨터가 아이들 유튜브교육 용도라고 하면?"

"……할 말 없어지네요."

"아이들 유튜브 교육 용도로 10억짜리 워크스테이션 맞춰 오면 그건 진짜 양심이 없는 거지."

"건축사님이 정말 어려운 의뢰를 맡은 거군요."

무절제한 탕진, 돈을 내다 버리는 식으로 건축 설계를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건축사의 자존심이 있지, 무의미한 낭비를 어떻게 눈뜨고 볼 수 있겠는가.

부당한 부풀리기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저렴하게 나오는 비싸게 나오든, 설계 자체에는 합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건축사님, 박동훈 구조기술사님 오셨어요."

"빨리 들어오라고 해."

오랜 동료가 들어오자 이도공은 반갑게 맞이했다.

"이 대표, 일 하나 또 맡았다며?"

"어, 이번에도 자네가 힘 좀 써줘야겠다. 안전 설계 팍팍 넣어줘."

"어느 정도로?"

"태풍과 해일과 지진에도 끄떡없는 펜션을 지어야 해."

건축사가 건물을 설계한다면, 구조기술사는 그 건물의 안전구조를 설계한다. 박동훈은 이도공과 오랫동안 합을 맞춰 온 사이였다.

"규모 9.0급 건물로 지을 거야. 알아둬."

"……농담하는 거지? 3층짜리 펜션에 그런 내진 설계를 넣겠다고?"

"벌써 그러면 곤란해. 이제 시작일 뿐이야. 모든 펜션하우스 지하에는 대형 패닉룸(재난대피소)을 넣어야 해."

"동백섬에 소말리아 해적이라도 온대? 아니면 조선시대 왜구들이 타임머신 타고 출현이라도 한대?"

"지진이나 태풍, 해일 때문에 동백섬이 외부와 고립될 경우를 상정하는 거야. 이 패닉룸에는 공기정화장치, 수질정화장치, 그리고 1년은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 의약품이 상시 보관되어 있어야 해."

"나는 구조기술사지, 나사(미 우주 항공국) 폐쇄생태계 연구원이 아니야."

"말 끊지 말고, 어차피 설계는 나와 같이할 거니까 일단 계속 들어."

"……계속해 봐."

박동훈은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바꿔 꼬았다.

"패닉룸에는 구조발산신호장치를 넣어야 해. 어떤 악천후에서도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튼튼하고 안전한 통신장치를 설치해야 해. 자가발전장치는 기본이지."

"잊었나 본데, 우리 같은 대학 같은 건축공학과 나왔다. 그런 건 네 여동생한테 물어봐야지."

참고로 이도공의 여동생은 같은 대학 전자공학과를 나와서 대형 이동통신회사에서 재직 중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너 부전공으로 전자공학과 듣고 교양으로 정보통신학도 배운 거 다 알고 있어."

"그쪽 관련 책 마지막으로 펴본 게 10년이 넘었어, 인마."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박동훈은 기가 찼지만 어디 한 번 끝까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동 건물지하침수방지용 장벽 알지? 몇 년 전 강남에서 물난리 나서 빌딩들 지하 침수되고 난리 났었잖아."

"알지. 그 이후로 건물주들이 새빌딩 올릴 때마다 자동 물 장벽 꼭 설계 넣어달라고 하잖아. 비 오면 물 높이에 맞춰서 저절로 벽 올라가는, 야! 잠깐? 너 미쳤어?"

"그것도 넣어야겠다. 언제 파도가 덮칠지 모르잖아."

"서울 한복판에 쏟아지는 폭우하고 동해에서 쳐들어오는 파도하고 같냐! 너 지금 자동방파제라도 만들겠다는 거야?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높은 파도 오면 솟구쳐서 막아주는 그런?"

"오, 자동방파제, 그거 네이밍 굿이다. 역시 우리 박동훈 상무님, 센스가 넘치셔."

"야! 나 독립한 지 한참 됐다! 언젯적 상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미안, 입에 붙어서."

"안 해. 아니, 못 해. 야, 3층짜리 펜션하우스 3채 짓는 데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설계를 꾸역꾸역 집어넣는 거야? 지금 네가 말한 조건만 추가해도 몇십억은 더 들어갈 거다!"

"그게 문제다. 몇십억밖에 안 들어간다는 게."

"몇십억이 누구 애 이름도 아니고……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제야 박동훈은 심각함에 젖어 있는 이도공의 표정을 알아차렸다.

"1,000억이다."

"……1,000억?"

"이 견적, 1,000억에 맞추라고 건축주한테 의뢰받았단 말이다."

"혹시 3층이 아니라 33층짜리야? 동백섬에 그런 고층 건물 지으려면 음……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긴 해. 하지만 여전히 1,000억은 턱도 없어."

"나도 33층짜리면 얼마나 좋겠냐. 3층 맞아."

"……."

"나도 처음에 너랑 똑같은 질문 했다. 3층을 33층으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하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이 없어졌다.

박동훈은 비로소 이도공의 심정에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런 고뇌를 혼자 안고 있었을 친구한테 가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박동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대표."

"응, 박 대표."

"솔직히 내진설계 풀로 때려 박아도 펜션 3채면 끽해봐야 10억, 20억이야.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일단 기본으로 넣어야겠지?"

"당연하지."

"건축주가 무조건 3층을 고집한 거야?"

"최소 3층이라고만 했던 거 같은데."

"그럼 10층으로 하자. 지금 한 번 물어보긴 해봐."

"기다려."

이도공은 바로 하수영에게 전화를 넣었고,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3층이 적당할 거라고 생각하셨는데 내 말 들어보니 10층도 괜찮을 거 같으시대."

"좋아, 그럼 10층으로 하고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도 넣자."

"견적비가 약간이나마 늘어났군. 숨통이 트이네."

"패닉룸은 VIP 지하벙커 식으로 지으면 한 20억은 더 쓸 수 있을 거야. 3채로 치면 60억이네."

"이렇게 쉽게 100억을 넘길 줄이야. 젠장, 역시 처음부터 자네하고 상의할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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