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99화
72장 해변은 우아하게(4)
"네, 고급 펜션을 지을 겁니다."
하수영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설명했다.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보이고, 바로 뒤에는 동백공원이 있고 더베이 101 복합문화단지와 서해호텔, 그리고 길게 펼쳐진 해운대 백사장이 있는 펜션, 상상만 해도 가슴이 막 뛰지 않아요?"
"……."
"펜션 시설은 특급호텔 스위트룸못지않은 최고급 인테리어로 갖출 겁니다. 낭만과 꿈과 추억과 즐거움과 행복을 파는, 해변 최고의 펜션을 만들 거예요."
"특급호텔 스위트룸이라고요?"
"네, 카펫이나 가구 같은 것도 전부 특급호텔 수준으로 맞출 겁니다."
"혹시 객실 규모는 어느 정도……."
"손님용 펜션하우스는 3채 정도 지을 거예요. 층수는 3층으로 하되 층마다 서로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죠. 2인, 4인, 6인, 8인까지는 원룸형으로 하고 12인룸은 거실과 침실 해서 복층으로 하면 될 거 같네요."
하수영은 신이 나서 그 외에도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펜션 사업을 자세히 설명했다.
우형신은 얼떨떨했지만 일단 끝까지 주의깊게 들었다.
어느 정도 설명이 끝난 후 그가 물었다.
"요금은 어느 정도로 하실 겁니까?"
"깔끔하게 주말주중 구분 없이 하려고요. 2인은 16만 원, 4인은 18만 원, 6인은 20만 원, 8인은 22만 원, 12인은 26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요금까지 술술 나오는 걸 보면, 이미 머릿속으로 펜션 사업은 다 완성이 됐다는 뜻이다.
"일단 절대적인 요금이 낮지는 않네요."
"입지나 뷰가 끝내주잖습니까. 국제정상회의 컨벤션을 입지로 한 펜션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그리고 특급호텔 수준으로 꾸미신다면서요. 그것까지 감안하고 보면 또 요금이 너무 싸보이기도 합니다."
"아예 VIP만 받는 고급형 펜션으로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랍 왕족들이 펜션 한 번 묵자고 부산까지 올 거 같지는 않아서요. 해운대 근처에 A380이나 B747이 이착륙할만한 활주로가 바로 붙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A380? B747? 그거 복층형 초대형 항공기종 아닌가요? 대당 수천억원 이상 하는 기종이잖습니까?"
그리고 웬 아랍 왕족?
하수영이 생각하는 VIP 전용 펜션이 대체 어떤 건지, 우형신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왠지 상상하는 게 무서울 정도다.
"아무튼 동백섬 펜션의 오션뷰를 일반인 손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금은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적자를 면치 못할 거 같은데요."
말을 들어보니 일단 펜션하우스 짓는 공사비만 몇십억 이상 들어갈 것 같다.
'3채에 3층 구조라고 했으니까……."
계산하기 쉽게 전부 8인실로만 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한 층에 8인실 4개가 들어간다 치면, 1채에 12개가 들어가고, 3채니까 8인실 36개를 욱여넣을 수 있다.
1박에 22만 원이니까 이용객을 풀로 받는다면, 하루 매출이 792만 원이다.
일 년 내내 풀로 받는다고 치면 28억 9,080만 원이다.
여기서 부가가치세 떼고, 펜션운영하는 비용도 제외하고 나면 과연 얼마나 남을까?
'그것도 일 년 내내 만실이라는 가정하에서지.'
공실률을 그래도 넉넉하게 60%로 잡아준다면, 기대수익은 더욱 아래로 떨어진다.
"사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돈은 안될 거 같은데요. 오히려 만년 적자사업이 될 거 같습니다."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닙니다. 낭만과 꿈과 추억과 즐거움과 행복을 팔려고 하는 사업이죠."
"그, 그러시다면야……."
우형신은 말문이 턱 막혔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하겠다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뭐, 하 사장님이 펜션 적자 같은 것에 눈 하나 깜짝하실 양반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까 별장으로 쓰는 것보다 돈은 오히려 절약되지 않을까??
별장은 사치품으로 취급되다 보니 취득세도 그렇고 재산세도 그렇고 이것저것 부담해야 하는 게 장난 아니니까.
***
우형신은 '부동산법인 하수영'의 대리인 자격으로 벡스코와 소유권 이전을 진행했다.
벡스코는 낙찰자 이름을 짤막하게 공개했고, 시민들의 관심이 폭증했다.
"하수영? 이거 사람 이름 아니야? 그럼 지금 우리 부산의 자랑 누리마루를 개인이 낙찰받았다는 거야?"
"아니네. 자세히 보니 사람 이름처럼 생겼지만 사람 아니고 그냥 부동산법인이네."
"왜 이름을 저런 식으로 지었대?
헷갈리게시리."
"보니까 대표자 이름이 하수영인데? 부동산 큰손 하나가 법인 명의 내면서 자기 이름을 붙인 건가 봐."
누리마루의 낙찰 결과는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것 외에도 시민들의 관심을 끄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해운대 엘파다는 진짜 바람 잘 들날이 없네."
"돈 먹은 공무원 '또' 나왔어? 어휴, 진짜 그럴 거면 아예 철거를 하던가."
"저거 허가 내준 놈이 누구인지 찾아내서 족쳐야 한다."
엘파다.
해운대에 들어가는 초고층 다목적 주상복합단지 이름이었다.
누리마루를 대체할 해운대 컨벤션도 여기에 지어지며, 누리마루에 있던 정상회의 기념사진 등 관련 전시품들도 이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누리마루는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는다.
***
청담동 이도공 건축사사무소 이도공 건축사는 프라임컴퍼니 청담동본사 사옥 설계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수영의 연락을 받았다.
사무소의 가장 큰 고객의 연락인 터라 그는 만사를 제쳐 두고 연락을 받았다.
"네, 회장님! 건축사 이도공입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설계 의뢰를 하나 맡기고 싶어서 그러는데 언제 미팅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아, 그럼 지금 미팅할까요?
"네, 제가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제가 사무소로 가는 게 아무래도 낫죠. 설계 관련 자료들이 전부 거기에 있잖습니까.
이도공은 살짝 감동했다. 이런 세심함이라니.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 잠시 후에 봅시다.
이도공은 곧바로 직원들에게 하수영의 방문을 알렸고, 직원들은 부리나케 일어나서 사무실을 정리하느라고 분주했다.
"야, 쓰레기통 빨리 비우고 와! 아니, 무슨 하루 만에 쓰레기통이 이렇게 꽉 차기 있다고?"
"황비라면박스 다시 제대로 진열해! 박스가 지금 서로 각이 안 맞고 삐뚤삐뚤하잖아!"
"상표 이름이 좀 잘 보이게 놓으란 말이야! 사무실 딱 들어오시자마자 바로 박스부터 눈에 들어오도록!"
직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을 청소한다. 황비버섯라면 박스를 재진열한다. 이리저리 바빴다.
브리핑을 위해 다양한 건물 외관양식을 찾아보던 이도공은 불현듯 황비버섯라면 박스를 보고 화를 냈다.
"아니, 박스가 전부 안 뜯은 새 거면 어떡하냐!"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꼭 먹으려고 쌓아둔 게 아니고 보여주려고 쌓아둔 거 같잖아! 한 개 정도는 뜯어져 있고, 안에 라면 몇 개도 좀 비어 있고 래야지 우리가 먹으려고 들여놓은 것처럼 보이잖아!"
"원래 먹으려고 들여놓은 게 아니라 보여주려고 들여놓은 거잖아요?"
직원들은 억울했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라면 좋아하는 사람치고 황비버섯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은 또 어디 있나?
하지만 이도공 건축사는 사무실에 전시 목적으로 들여놓은 황비버섯라면 박스에 손을 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당연히 라면 박스는 모두 뜯지 않은 새것들이다.
'손도 대지 못하게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내가 그랬었나? 아무튼 빨리 박스하나 뜯고 안에서 라면 몇 개 꺼내!
혹시 갑자기 라면 드시고 싶어지셔서 하나 끓여달라고 했는데 라면 박스가 꽉 차 있으면 회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알겠습니다!"
직원들은 부랴부랴 라면 박스 하나를 뜯고 안에서 라면 몇 개를 꺼내 각자 나눠 가졌다.
"3개 정도만 남겨놓자. 그럼 우리가 라면을 즐겨 먹는 거라고 생각하실 거 아니야?"
"그래, 3개 정도 남겨놓는 게 적당하겠네."
이렇게 해서 3개 정도 남은 박스하나, 그리고 아직 뜯지 않은 박스가 15개가 되었다.
처음 계획은 라면박스 서너 개 정도 들여놓는 것이었지만, 이도공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라면박스 16개를 들여놓았던 것이다.
"아, 오셨다! 저기 퍼포먼스(하수영의 캠핑 차량 모델명) 들어오고 있어요!"
"우와, 퍼포먼스는 진짜 언제 봐도 죽여주네. 유니목 캠핑차량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퍼포먼스가 더 대단한 거 같아."
"그거 알아? 저게 특제주문 차량이라서 세상에 딱 한 대밖에 없대."
"어, 정말?"
"응, 화물칸에 스포츠카도 실을 수 있는 모델이라는데 말 다 했지. 차체도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서 교통사고에서도 안전하고."
퍼포먼스는 고속버스 이상 가는 초대형 크기에, 전면 하단이 일반 승용차처럼 1미터 정도 돌출되어 있다.
덕분에 버스나 화물차와 충돌해도 운전석은 안전하다.
돌출된 전면 하단부가 1차적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내부는 거의 특급 호텔 객실처럼 되어 있다던데. 아, 안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창가에 우르르 몰린 직원들은 그렇게 부러움을 담아 자기들끼리 떠들었고, 이도공은 측근 직원 몇 명을 거느리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달려나 갔다.
마침 하수영이 운전석에서 내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아, 이렇게 마중 나오실 것까지는 없는데."
"아닙니다. 당연히 마중 나와야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도공은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하수영을 안으로 안내했고,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 직원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저 사람은 누군데 이도공 건축사님이 저렇게 쩔쩔매지?'
'서울에 건물 좀 있나 보네. 건축사가 저리 조심스러워 하는 거 보니."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수영은 반듯하고 정갈하게 가득 쌓인 라면 박스를 볼 수 있었다.
"황비버섯라면이 참 많네요."
"직원들이 워낙 좋아해서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박스는 먹는 터라 제 렇게 들여놓았습니다."
하수영이 보지 못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참으로 볼만 했다.
'일주일에 두세 박스?'
'너무하시네. 지금까지 손도 못 대게 하셨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실 수 있는 걸까…….'
"아, 직원분들이 그렇게 황비버섯라면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럼 저도 가만있을 수 없죠. 프리덤."
-네, 마스터.
"온라인마트에 정기주문 넣어. 여기 사무실로 한 달에 황비버섯라면 12박스씩 배송되게 해."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주문 넣겠습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라면본사 건물 설계해 주시는 분들한데 드리는 작은 성의일 뿐입니다. 직원분들이 이렇게 라면을 애호해 주시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직원들은 의기투합해서 아자아자! 하고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한 달에 12박스 정기배송이면 앞으로 회사나 집에서 라면은 공짜로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프리덤이 회장님을 마스터라고 부르네요? 보통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같던데 말입니다."
"아, 그러네요. 저도 프리덤이 주인님이라고 부르던데……."
"전 VIP 버전을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VIP 버전이 따로 있습니까?"
"네, 시판 버전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 최고관리자 버전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하수영은 회의실로 안내받아서 이도공과 정식 미팅을 시작했다.
이도공은 누리마루 낙찰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치켜뜨며 놀라워했다.
"펜션을 지으신다는 겁니까?"
"네, 건축비로 1,000억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3층짜리 3채 짓는 거니까 모자라지는 않겠지요?"
"지금 33층을 잘못 말씀하신 건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