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98화
72장 해변은 우아하게(3)
부산시가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 매각 입찰에 관한 공고]
드디어 벡스코가 공식적으로 누리 마루 매각을 공고하고 나선 것이다.
벡스코의 주주인 부산시의 허락 없이는 결코 진행될 수 없는 매각이었다.
[비공개 입찰 진행]
벡스코는 기본적으로 비공개 입찰을 진행했다.
입찰희망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입찰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다.
또 건소시엄이나 법인 형태 참가는 물론이고, 개인에게도 참가의 문을 열어두었다.
물론 개인이 입찰에 참가할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 부지 정도면 별장으로 쓰고 싶어 하는 서울 부자들도 있을 테니까."
"아하, 그래서 입찰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거군."
"근데 6,000평이면 땅값을 아무리 적게 잡아도 250억은 할 텐데, 별장하나에 그만한 돈을 선뜻 내놓을 부자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더욱더 비공개로 해야 하는 거지. 별장터에 수백억을 쏟아붓는다고 주목을 받으면 부담스러울 거 아니야?"
"그런가?"
"그리고 그런 부자들이 적당히 덤벼줘야지 기업들이 제대로 숫자를 써낼 거라고."
"그럼 부산시는 개인 부자들한테 그런 바람잡이 역할을 기대하는 건가?"
"충분히 개연성은 있지. 나도 정말 개인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입찰 진행 과정에서, 입찰신청자의 신원 공개 여부는 당사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누리마루가 부산시의 소유가 아니라, 부산시가 지분을 갖는 벡스코소유이기에 가능한 절차였다.
물론 입찰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당당하게 회사 이름을 내걸었다.
그렇게 참가한 회사 숫자만 8개에 달했고, 벡스코 측은 입찰 금액이 상당하리라 기대했다.
"그래도 600억까지는 나올 듯합니다."
600억은 희소성, 입지로 인한 프리미엄을 고려한 가격이다.
APEC 국제정상회의장으로 채택할만한 장소이니만큼, 그리고 기념비적인 성격이 있는 만큼, 입찰자들은 적지 않게 탐을 낼 것이다.
벡스코는 입찰에 관한 2차 공고를 냈다.
구체적인 입찰 일정, 그리고 입찰조건들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입찰보증금은 입찰금액의 5%, 입찰 당일 즉시 납입하여야 함.]
[입찰 결과 발표 후 14일 이내에 소유권 이전 진행.']
[매각 불이행 시 자동으로 2순위입찰자에게 매입권 승계.]
물론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 비공개 입찰 조건도 있었다.
입찰을 신청할 때 비로소 알려주는 조건이며, 입찰자는 탈락하더라도 이 조건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
[보안 및 안전을 위해서 기존의 건축시설물은 모두 철거할 것.]
중앙행정부의 입김이 닿은 입찰 조건이었다.
비싼 값에 팔기만 하면 그만인 벡스코나 부산시와는 달리, 행정부는 누리마루 자체를 지워 버리고 싶어했다.
누리마루 시공업체 2곳이 지은 합작 건물의 안전 D등급 스캔들에 꼬투리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땅값은 최소 250억으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컨벤션 센터를 짓는 데 190억 조금 넘게 들었었는 데, 그 돈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
경매 측이 처한 가장 난감한 문제였다.
비공개 입찰 조건은 시설물을 철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설물 철거를 요구하면서 건물 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것은 억지다.
그렇다고 건물 비용을 제외한 가격에 낙찰되면 부산 시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것이다.
"외부에는 낙찰자가 자기 결정으로 시설물을 철거하는 것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최저입찰액에는 건물 가치를 제외해야만 할 거 아니겠습니까."
옥신각신 끝에 최저입찰액은 300억 원으로 정해졌다.
건물 가치에 감가상각을 적용해서 토지 가치와 합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경매가 진행되었다.
경매는 100% 온라인 접수로 진행되었기에 입찰신청자들이 벡스코를 방문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벡스코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부산시청에서도 사람이 나와서 경매 현황을 직접 파악했다.
"예상대로 개인 참가자도 꽤 있습니다. 무려 16명이나 됩니다."
16명.
적어 보이지만, 300억이 넘는 땅을 개인 용도로 쓰기 위해 참가한 부자들이 16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개인 참가자들은 뭐 볼 것도 없겠습니다. 거의 다 300억 언저리로군요."
예상대로 개인 참가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저입찰금액 근처 금액을 써냈다. 어떤 이들은 최저입찰금보다 낮은 금액(최저입찰금은 비공개이므로)을 적어내기도 했다.
"오, 이거 보십시오. 마케미야트러스트에서 입찰에 참가했습니다!"
"뭐? 마케미야트러스트? 혹시 재일교포가 세웠다는 일본의 그 투자운 용회사?"
"네, 맞습니다. 그 마케미야트러스트입니다. 무려 850억을 적어냈습니다!"
"아마 이 금액이 낙찰금이 될 거 같은데요."
생각보다 큰 액수에 벡스코 및 부산시 관계자들은 기뻐했다.
이것으로 부산 시민들을 상대로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최저입찰금에 건물 가치를 반영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던 게 헛수고가 됐네.'
'하지만 기분 좋은 헛수고였어.'
'850억이다.'
공사비를 포함해서도 수백억 원을 남겨 먹은 장사인 셈이다.
그렇게 다들 희희낙락해하고 있을 때,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산통을 깼다.
"저기, 낙찰자는 마케미야트러스트가 아닌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여기 개인입찰자가…… 아니, 잠시만요? 개인입찰자가 아니라 회사구나? 회사 이름이 꼭 사람 이름처럼 돼 있어서 순간 개인입찰자인 줄헷갈렸네요."
모니터 화면을 훑어보던 어느 직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이 회사, 지금 1,450억을 적어냈는데요?"
"뭐라고!"
다들 순간 기함을 해서 얼른 모니터를 다시 확인했다.
입찰 전자서류를 확인하니, 과연 1,450억을 적어낸, 개인처럼 보이는 상호를 가진 법인이 있었다.
"하수영? 이거 대체 뭐 하는 회사야?"
"맙소사! 1,450억이라고?"
"정말입니다! 입찰보증금 72억 5,000만 원도 문제없이 납입했어요!"
"아니, 회사 상호를 무슨 사람 이름처럼 지었대? 어디에 있는 회사야?"
"어디 보자. 소재지가…… 서울 청담동으로 되어 있는데요?"
"대체 뭐 하는 회사야?"
"회사 대표 이름이 하수영입니다.
상장은 안 되어 있고, 1인 회사 같습니다."
"부동산법인 같아요. 아무래도 서울 큰손 한 명이 부동산자산관리를 위해서 운용하는 법인인 거 같습니다."
벡스코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했지만, 어쨌거나 1,450억이라는 거액에 낙찰됐으니 잘된 일이었다.
***
"뭐? 낙찰 실패했다고?"
간만에 해운대 서해호텔에서 느긋하게 휴양을 즐기던 마케미야는 직원이 가져온 보고에 아연실색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가 됐든간에 무조건 낙찰받으라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얼마를 적어냈지?"
"850억 원입니다."
"우리 내부적으로 평가한 가치는?"
"최소 250억 원이었습니다. 토지 가치만 따졌을 때입니다. 어차피 비공개 입찰 조건 중 건물 철거 조항이 있어서 건물 가치는 따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케미야의 안색이 차분해졌다.
"850억이면 거의 3배 이상으로 직어낸 건데, 우리가 실패했다는 게 말이 되나? 대세 낙찰자는 얼마를 적어낸 거야?"
"아직 누군지는 모르고, 벡스코에서 낙찰 금액만 공개한 상태입니다. 1,450억 원을 적어냈다고 합니다."
"뭐? 1,450억 원?"
마케미야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 봐야 부산에 있는 섬 아닌가?(퇴적작용으로 지금은 육지에 붙었지만) 섬 전체도 아니고, 섬의 일부분인 6,000평을 사들이는 데 1,450억 원을 썼다고?
'평당 약 2,417만 원…….'
입찰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거 미친 거 아닌가?
***
"매물의 최소가치는 약 250억 원입니다. 얼마를 적어내면 적당할까요?"
부산에 내려가 있던 우형신은 가격을 결정해야 할 때가 되자 전화로 의사를 물어왔다.
입찰 절차는 서울에서도 진행할 수 있지만, 그는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부산에 장기 출장을 가 있었다.
시청과 벡스코, 해운대의 오랜 부동산업자들을 상대로 발품을 팔면서 생생한 정보를 긁어모은 것이다.
"제 생각에는 최소 900억 원 이상은 적어내야 안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케미야트러스트가 입찰에 참가했다는 정보가 있어서요."
-확인된 사항인가요.?
"입찰참가자 명단 공고에는 없습니다만, 입찰 과정에서는 비공개를 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처럼 말이죠."
최종 낙찰이 되면 당연히 낙찰자와 낙찰금을 공개해야 하지만, 입찰 도중에서는 입찰자의 의지로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었다.
-1,450억 원으로 가시죠.
"네?"
우형신은 당황해서 바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일단 금액이 너무 컸다. 안전을 생각한다 해도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그가 놀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청담동 저택이랑 같은 금액이군요."
-네, 맞습니다.
청담동 저택의 거래가액은 1,450억원이었다. 우형신은 지금까지 하수영이 거래한 모든 부동산의 금액을 기억했다.
'역시 별장으로 쓰시려는 게 틀림없군.'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청담동 저택과 같은 금액을 쓸 리가 없지 않겠는가?
-느낌이 옵니다. 청담동 집하고 같은 금액으로 사들이면 반드시 낙찰될 거고.
"900억만 써도 낙찰은 될 거 같은데요."
-해신으로부터 두고두고 좋은 운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동해신이 보기에도 900억으로 에누리 치는 것보다 단위 하나 더 붙이는 게 기분 좋을 거 아니겠어요?
바다에 제사 지내는 셈 치고 1,450억 원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우형신은 불필요한 지출이 아닌가 싶었지만, 돈신이 붙은 사람의 결정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하수영은 돈이 쫓아와서 달라붙는, 청담동 거물이니까.
'바다 신에 제사 지내고 액땜도 한다는 건가. 스케일 한 번 참…….'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죠."
-네, 부탁합니다.
우형신은 곧바로 입찰을 신청했다.
신청을 마친 후에는 입찰보증금 납입계좌서류를 스캔해서 하수영에게 전송했다. 자신은 업무만 대행할 뿐, 돈은 하수영이 직접 납입할 것이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겠어."
입찰 신청을 마친 지금, 자신이 부산에서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낙찰 이후의 업무는 그때 다시 내려와서 진행하면 될 일, 우형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밀린 업무를 보았다.
"저번에 보고 드린 월세 계약 3건이 전부입니다."
"요즘 청담동 부동산 거래가 왜 이렇게 얼어붙었대. 이래서야 입에 풀질이나 하려나 모르겠어."
"그래도 이번에 3,000만 원짜리 한건 하셨잖아요."
"그건 매매가 끝나야 들어오지. 아직 우리 사무실 돈 아니다."
***
입찰이 마감되고 다음 날, 벡스코는 낙찰 금액을 공고했다.
[1,450억 원]
"이얏호! 우리가 낙찰받았네요! 축하합니다. 사장님!"
"인마, 천억 넘게 썼는데 당연히 낙찰이지."
우형신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이제 하수영 명의로 소유권 이전을 진행해야 했다. 정확히는 '하수영'이란 상호를 지닌 부동산임대업 회사 명의다.
그 전에 하수영을 만나 얼굴도 보고, 누리마루 부지의 사용 용도도(요식적이지만)확인해야 했다.
"당연히 별장으로 쓰실 거죠?"
"네? 아닌데요. 제가 언제 별장으로 쓴다고 했었나요?"
"별장이 아니라고요? 설마 호텔이라도 지으시게요?"
"아뇨, 부지 들어가는 섬 입구에 바로 호텔 하나 있는데 뭐 하러요."
하수영은 당황한 우형신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펜션 지을 건데요?"
"페, 펜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