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97화
72장 해변은 우아하게 (2)
누리마루 APEC하우스는 해운대 동백섬 남쪽에 있다.
부산시가 40%가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벡스코'의 소유시설물로, 5,980평의 부지에 총면적 905평 규모의 국제회의장이다.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위해 쓰였고, 지금도 국제회의 장소로 사용된다.
"프리덤, 다른 전시장을 짓는다는 이유로 이런 전통이 있는 컨벤션을 매각한다는 게 납득이 되냐?"
-경제적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게 뭘까. 짚이는 게 하도 많아서 감을 못 잡겠네."
수많은 인생을 경험해 온 하수영은 당장 떠오르는 경우의 수만 수백 가지가 넘었다.
물론 그 수백 가지 모두 부정적 방향에 지우진 이유였다.
"뭘까? 대체 뭘까?"
그렇게 하수영은 궁금증을 안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우형신 중개사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물론 선물꾸러미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이 충만했기에, 지루하지는 않은 기다림이었다.
***
-알아냈습니다!
"뭐죠? 뭐죠? 너무 궁금했단 말이에요."
-세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서 정확히 알아내는 데 좀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부산 중개사 네트워크에 줄이 닿아서 알아낼 수 있었네요.
우형신은 소소하게 자기 홍보를 결들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겠죠. 보통 이런 케이스에서 이유가 한 가지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몇 가지 이유가 서로 얽혀 있는 상황인데요. 먼저 부산시 재정이 별로 안 좋습니다.
"지방정부가 서울 빼고 언제는 재정 상황이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요."
-현직 부산시장이나 고위 공무원, 부산시의회 인물들도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닙니다.
"그거야 이상할 것도 없는 사실이 죠. 아,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요."
-벡스코에서 새로 전시장 하나를 더 짓는 것은 이미 말씀을 드렸고요.
"기억합니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 시공사 중에서 2곳이 지금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대입니다.
"오, 그래요?"
-네, 누리마루를 건설할 당시, 두 회사가 합작해서 따로 지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요. 아, 물론 누리마루하고는 상관없는 별도의 합작 사업입니다. 그런데 그 빌딩이 최근에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았습니다.
"불량 등급을 받았네요. 그럼 재건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완전 철거는 아니고 조건부 재건 축으로 보강 명령을 받은 상태라고 합니다. 지은 지 20년도 안 된 건물인데 말이죠.
"아하, 의심의 불똥이 누리마루까지 튄 상태라는 말이군요."
누리마루는 3개 시공사가 힘을 합쳐서 지었다.
그런데 그 당시, 2개 시공사가 파로 합작해서 건물을 지은 게 있는 데, 그게 세월이 흘러 이번에 D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네, 제가 시청 관계자라 해도 좋은 눈으로 보기는 힘들 겁니다.
"누리마루 안전진단은 시에서 몰래 했겠네요. 물론 당연히 A등급이 나왔겠죠?"
-아닙니다. B등급이 나왔습니다.
B등급(양호), 보조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있어서 일부의 보수가 필요한 상태.
일반적인 건물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하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장소다.
A등급이 나와도 부족할 판인데, B등급이라고?
-이게 지금 부산시만의 체면 문제가 아닙니다.
"청와대 심기도 매우 불편하겠네요."
시공사 중 2곳이 같은 시기에 지은 건물 중 D등급(불량)을 받은 게 있다. 그리고 누리마루 자체도 B등급을 받았다.
만약 APEC 회원국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라 망신이다.
-와, 그때 우리나라 정상들이 모였던 회의장이 안전진단 D등급 자리였다고?
-완전 불량 건물이었네. 잘못하면 우리나라 정상들 그때 싸잡아서 생매장됐을 수도 있었겠다?
-아뇨, 아닙니다! 누리마루는 B등급이고요! 다른 건물이 D등급이에요! 혼란 가지지 마셔요!
-시공사 두 곳이 같은 시기에 지은 다른 건물이 D등급이라며? 그럼 누리마루도 D등급이란 말 아님?
-절대 아닙니다!
충분히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APEC 회원국들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찔리는 입장(한국 정부)에서는 불안정한 변수를 만들어두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정부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부랴부랴 팔아치울 정도인가요?"
-그 2곳 시공사 중 한 회사 출신이 지금 국토부 장관으로 있습니다.
"이야, 그게 또 그렇게 이어지나요?"
연결 흔적을 지워야 할 동기가 있었다. 이건가?
-사정이 이리저리 복잡합니다만, 어쨌든 정부는 빨리 처분하라고 부산시를 조용히 압박하는 입장입니다.
"부산시도 은근히 반기는 입장이겠고요."
-네, 새로 짓는 전시장 덕분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은근 있어서요. 이번에 시공사에서 제대로 성의를 표시한 거 같습니다.
하수영은 결론을 정리했다.
"아무튼 행정부나 부산시나 벡스코나 시공사나, 치워 버리고 싶은 계륵이라는 데 합의를 했군요."
-네,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매각되지는 않을 거 같고…… 입찰할 때 특별히 지켜야 할 조건 같은 게 있을까요?"
-아마 완전 철거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있더군요.
"켕기는 것은 아예 없애 버리겠다. 이거군요."
이 정도면 계륵이 아니라 치워 버리고 싶은 뼈다귀다.
'거기가 그래도 터는 좋은데…….'
앞으로는 바다가 바로 보이는 탁트이는 전망.
뒤로 조금만 나오면 특급호텔과 종합 여가시설과 요트장, 해운대 모래 사장이 있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건설 비용으로 200억 원 정도 들었습니다만, 완전 철거가 조건이니 땅값만 내면 될 겁니다. 물론 경쟁에 따라서는 프리미엄이 붙을 거구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입찰하겠습니다."
-어, 정말이십니까?
"청담동 아니라고 제가 포기할 줄 아셨어요? 사장님도 보기 드문 특이한 매물이니 일단 제크는 하자고 하셨으면서."
-반신반의했죠.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혹시 가격에 제한은…….
"없습니다. 무조건 확보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무제한 매입이라고 하지만 평당 수억 이상이 들어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애초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치킨 레이스가 벌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또 3,000만 원을 벌었네요."
전화를 끊자 직원들이 그렇게 좋아라 했다.
우형신 중개사도 괜히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입찰 성공한 것도 아냐. 너무 설레발 치지 말자고."
"부산시에서 매각 굳혔고, 하수영사장님도 입찰 결심 정하셨고, 그럼 게임 끝난 거죠."
"이미 땅 주인은 정해졌습니다. 아직 부산시와 땅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죠."
"수영 사장님이 나선 순간 게임 끝이죠."
우형신중개사사무소는 하수영과 맺은 약정에 따라 3,000만 원의 상한선 금액 내에서 중개수수료율 0.1%를 받는다.
즉 거래가액이 300억 원이 넘는 부동산은 무조건 3,000만 원이다.
"평당 500만 원으로 잡아도 300억원 깔고 시작하는 거죠. 입찰 레이스에서 프리미엄이 얼마나 붙으려나."
"근데 거기 국제회의 열렸던 곳이라 상징성은 있는데, 딱히 뭔가를 하기에는 애매하지 않나요?"
"바로 뒤에 접근성과 뷰 좋은 조선 호텔 이미 있고, 더베이101도 있고…… 기껏해야 카페 정도?"
"카페는 무슨. 우리 하수영 사장님을 뭐로 보고."
우형신은 직원들의 수군거림에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당당히 폈다.
"당연히 별장이지."
"아……! 그렇구나, 별장."
"죄송합니다. 일평생을 소인배로만 살아와서 소인배의 경제관념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네요."
"확실히 거기에 별장 하나 차리고 가끔 머리 식히러 내려가면…… 카,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요."
***
그렇게 우형신중개사사무소는 하수영이 별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확신을 품고, 매수 작전에 나섰다.
"하여튼 부동산과 건설이 낀 곳 치고 부정부패가 없는 곳은 없는 법이지."
마케미야는 보고서를 읽으며 혀를 찼다.
"안전진단 B등급? 심지어 이거 하우스 본건물이 받은 게 아니고 정원에 있는 정자가 받은 거네?"
"네, 그렇습니다. 하우스 본건물은 당연히 A등급입니다."
"인섹트 건벤션? 그 새로 짓는다는 전시장에 이런저런 눈먼 돈이 많이 돌아다니는구먼."
마케미야는 누리마루 APEC하우스매각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새집 지으면서 이거저거 빼먹고 싶으니까 헌 집 팔아치우는 거지."
"인센트 컨벤션이 완공되면 부산시, 벡스코, 시공사 모두가 두둑하게 챙길 수 있으니까요. 부산 최대의 랜드마크가 될 겁니다."
해운대에 새로 지을 예정인 인센트컨벤션, 전시장 규모로만 보면 누리마루의 3배가 훌쩍 넘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전시장 규모만 따졌을 때 3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최고 95층의 초호화 다용도 주상복합단지잖습니까."
인센트 컨벤션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었다.
전시장 외에도 쇼핑몰, 문화시설, 호텔, 그리고 일반 입주민까지 들어서게 될 다용도 주상복합단지였다.
이 건설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면 부산시와 벡스코, 시공사는 모두 돈방석에 앉는다.
"근데 그거 분양은 문제없겠어? 일반 입주자 분양이 540세대나 된다면서?"
"분양 공고만 뜨면 바로 완판될 겁니다. 서울 부자들이 쌓아둔 현금이 바로 투입될 테니까요."
"누리마루도 참 안됐군. 정상회의까지 개최한 기념비적인 시설인데, 겨우 이권 문제 때문에 철거될 처지라니."
마케미야는 부산시가 철거를 입찰조건에 넣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우리도 들어간다."
"매입하시렵니까?"
"그래, 당장 쓸 데는 없지만 좀처럼 나오기 힘든 매물이지. 이런 돈주고도 못 사는 매물은 살 수 있을 때 확보해 둬야 해.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길 테니까."
땅은 오래 묵혀둘수록 본연의가치를 찾아간다.
마케미야가 지금까지 가슴에 품은 확고한 신념이었다.
현재 누리마루 부지가 갖는 위치적 입지는 부산 해운대에서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이런 건 살 수 있을 때 사놔야 한다.
"얼마가 됐든 간에 사들여."
"알겠습니다."
마케미야트러스트에서 '얼마가 됐든 간에'라는 표현은 나름 합리적인 기준이 있다.
바로 마케미야에서 자체적으로 감정한 부동산의 시세가액의 최대 3배수준.
'그래도 시세의 1.5배에서 2배 정도면 살 수 있겠지.'
'평당 대충 500으로 잡으면 300억이니까…… 900억 안에서 마무리하란 말씀이시군."
'아무리 뻥튀기해 봤자 7, 800억정도면 충분해.'
보기 드문 매물인 만큼 부동산에 관심 있는 큰손들이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마케미야트러스는 순자산 5,000억 엔이 넘는 회사다.
몇백억 원 수준의 부동산 투자를 성공시키는 것은 하품 나올 정도로 쉽다.
직원들은 그렇게 서로 우스갯소리로 미리 축하를 나눴다.
"이 게임은 뭐, 시작해 보기도 전에 끝났어."
"암, 우리 마케미야트러스트가 나섰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