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96화
72장 해변은 우아하게(1)
마케미야는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지가 한참이었다.
자산운용회사 '마케미야트러스트' CEO한테 모든 경영을 맡기고, 한가한 신선놀음을 즐긴 지 오래였다.
물론 필요하다면 투자금을 끌어오거나 경영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주주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 그는 요즘 '프라임웰빙컴퍼니'에서 엘릭서드링크 판매에 한창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이미 한국 출시는 마쳤고, 최근에는 미국에도 유통망을 구성해서 판매를 시작했다.
-나노소프트의 수영라면 매장과 연계해서 홍보를 하니 소비자들 반응이 더 좋아.
"다행이네요. 잘 되고 있어서."
-서희 너는 진석이랑 뭐 없냐?
"있을 리가 있겠어요."
-요즘 진석이가 수험 준비 때문에 바빠서 너한테 신경을 못 쓰고 있는 데,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말아라.
"전혀 안 담아두고 있으니까 전혀 걱정하실 것 없어요."
-진석이가 혹시 너 삐진 건 아닌가 하고 걱정 많이 하더라.
"제가 왜 삐지겠어요."
속이 편하기만 한데.
하지만 이런 말을 너무 대놓고 하면 마케미아가 서운해할 것이다.
"이익은 괜찮게 나고 있나요?"
-런칭한 지 이제 몇 달도 안 됐다. 광고비하고 판촉비로만 10억 달러 넘게 썼어. 당연히 아직은 적자인게 정상이지.
"그럼 광고비 집행한 거 빼고 이익은요? 매출은 어때요?"
-매출은 괜찮게 나오는 편이야. 하지만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 해. 너도 알다시피 이런 건강보조제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엘릭서드링크는 약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건강보조제다.
애초에 그렇게 판매 허가를 받았으니.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신뢰를 쌓기까지 충분한 담금질이 필요하다.
마케미야가 10억 달러가 넘는 광고비를 집행하며 융단폭격을 실시중이지만, 그래도 열기가 달아오르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고질병하고 기저질환 앓던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찮은 반응이 나타나고 있어. 나도 엘릭서드링크 먹고 원인불명의 오랜 요도통이 나았으니까.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홍보해 주거나 그러지는 않나요?"
-아직은 반신반의하고 있는 거지.
그동안 해왔던 치료가 효과가 좋아진 건지, 엘릭서드링크 덕분에 나아진 건지, 정확히 분간을 할 수가 없으니까.
"하긴, 그렇겠네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의사들은 당연히 엘릭서드링크의 효능을 부정하고 있고, 그냥 나을 때 돼서, 치료가 이제 약발이 받아서, 그래서 좋아진 거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냥 플라시보 효과라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어, 이미 의학계는 그러고 있는데?
"……."
-그래도 홍보에 돈 많이 써서 잘팔리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완전히 띄우기만 하면 건강보조식품시장 잡아먹고 돈 쓸어 담는 건 시간문제야.
마케미야의 목소리는 태평했다.
엘릭서드링크의 장밋빛 미래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사실 광고비 집행 액수가 워낙 커서 적자인 것이지, 매출은 기대했던만큼 잘 나오고 있었으니까.
"근데 신기하긴 하네요. 그 송이에 그런 효과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원래 다른 송이도 그러나요?"
-그럴 리가 없지. 하 사장의 송이가 아주아주 특별한 거란다. 그나저나 수영치킨은 이번에 크게 대박이 났다면서?
"네, 한국 배달치킨 시장을 그냥 싹쓸이했어요. 가맹점만 6만 개가 넘어요. 원래 국내 치킨점이 8만 8,000개 정도였으니, 거의 다 먹어 치운 거나 마찬가지죠."
게다가 수영치킨에 가입하지 않은 치킨점들 중 상당수가 페업 절차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조만간 치킨매장 수가 8만 개 미만으로 떨어질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수영치킨에 가입하지 못한 매장들은 좀 안됐구나.
"그 매장들, 가입을 거절당한 게 아니에요. 점주들이 가입 신청을 하지 않은 거죠."
-아니, 왜 그랬대?
"모두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자기만의 철학이나 고집이 있는 분들도 있죠. 그 가게들은 대부분 치킨 한 마리에 만 원 밑으로 받고 파는 곳이라, 우리와 겹치지 않는 소비층이 있어요."
아무리 맛이 있어도 한 마리에 만원이 훌쩍 넘는 치킨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층은 분명히 있으니까.
가입 신청을 하지 않은 점주들은 그런 점을 고려했다.
평소 자기들 매장에서 치킨을 사러가는 고객들의 소비 패턴을 꿰고 있었으니.
-참, 내가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바로 부산부터 들를 예정이다. 제주도 경유해서 김해공항으로 들어갈거야.
"부산은 왜요? 호텔에 무슨 일 있나요?"
정서희는 마케미야가 부산 해운대에 호텔 한 개를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해운대에 부동산 매물이 하나 나온다고 해서, 한 번 둘러볼까 생각 중이야. 별로 살 마음은 없었는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매물이라서 체크는 해두려고.
"무슨 매물인데요?"
-그게…….
***
주희도는 하수영이 참 독특한 사업가라고 생각했다.
수영레스토랑 때도 그렇지만, 그는 가맹점주의 이익을 최소한으로 일단 보장한다. 그 후에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본사가 가져가는 이익은 압도적으로 많지만, 수영레스토랑 가맹점주들은 불만이 없었다.
수영라면은 하수영만이 제공할 수 있는 식재료 원가 덕분에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거 이번 달에 서울지역 가맹점주들은 아무리 못해도 600 이상은 가져가겠는데요? 임대료, 인건비 다 제외하고 점주 본인 월급으로 가져갈 액수입니다."
"예전에는 서울 지역이라고 해도 평균 2, 300 정도밖에 안 됐을 텐데."
"그랬었죠. 워낙 레드 오션이었잖아요. 치킨 시장이."
"치킨 가격을 특별히 올린 것도 아닌데, 참 대단해."
"그러게 말입니다. 누가 보면 치킨을 한 마리에 2만 원 넘게 받는 줄 알겠어요."
물론 서울 기준이고, 지방이나 소도시는 당연히 매출이나 이익이 더 적다. 아무래도 시장 자체가 차이가 있으니.
그러나 전체 매출과 이익이 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 수영치킨은 다른 프랜차이즈와 달리 가맹점을 상대로 장사를 하지 않죠. 그게 컸습니다."
보통 치킨 본사들은 가맹점주한테 염지닭, 소스, 포장지, 치킨무 등등에 마진을 붙여서 판다.
여기에 상표 로열티, 매출 분배까지 남김없이 거둬간다.
치킨 본사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점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수영치킨은 가맹점주들한테 닭을 포함한 소스, 포장지, 치킨무등을 공급할 때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
매입원가에 배송비 정도만 붙여서 공급하는 방식이다.
'다른 치킨 본사들은 염지닭 한 마리에 4,000원씩 받고 넘겼는데, 우리는 2,500원 정도니까.'
서해식품에서 공급받은 생닭에 염지비와 운송비 정도만 붙여서 넘기는 수준이다.
아무리 닭을 많이 넘겨도, 닭 공급 자체에서 남기는 것은 전혀 없다.
실제로 가맹점주들은 닭을 너무 싸게 받는다며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닭뿐만 아니라 다른 공급재료도 마찬가지다.
이게 바로 치킨값을 올리지 않았는데도, 가맹점주들의 이익이 늘어난 이유였다.
타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수영치킨 본사의 이익 배분율은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인 것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올 한 해 국내치킨 프랜차이즈 매출은 작년의 배를 뛰어넘을지도 모릅니다."
"두 배 이상?"
"작년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매출을 올린 치킨 가맹점이 12억 5,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물론 꼴찌 가맹점은 1억에도 채 미치지 못했습니다만."
"……휘유."
주희도는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물론 본사 이익률만 보면 수영레스토랑이 압도적입니다."
"근데 수영레스토랑은 오프라인 매장이 25개뿐이잖아. 배달전문 매장도 150개밖에 안 되고, 가맹점 6만 개짜리 브랜드하고 비교하는 거 자체가 웃기지."
"아마 본사가 가져가는 실제 이익금도 수영레스토랑이 더 많을 겁니다. 수영치킨은 솔직히 본사 이익률이 처참할 정도로 낮은 편입니다."
"사장님이 안 그래도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
주희도의 말에 직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집중했다.
"치킨은 원래 박리다매라고, 수익률 좀 낮아도 괜찮으니, 시장 장악이 중요하다고."
"아……이해했습니다."
***
하수영은 우형신 중개사의 연락을 확인하고, 얼른 하던 일을 놓은 채 전화부터 받았다.
그가 갑작스럽게 전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한 가지 이유다.
바로 좋은 매물이 나온 것.
"하수영입니다. 좋은 매물 나왔나요?"
-아, 하 사장님, 우형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름 고민을 했는데 이왕이면 체크는 한 번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무슨 일이시죠?"
오늘따라 우형신의 말이 쓸데없이길었다.
하수영은 직감적으로 청담동 부동산 관련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부산에서 희귀한 매물 하나가 나왔습니다.
"부산이요?"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압구정동, 삼성동 매물도 별로 관심 없는 접니다. 청담에 모든 것을 올인해도 모자랄 판인데요."
애초에 하수영이 청담동 부동산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단지 시세차익등 투자의 목적이 아니었다.
투자가 목적이었다면 강남구 목 좋은 부동산 매물은 나오는 대로 집적거렸을 것이다.
-알죠. 제가 그걸 왜 모릅니까.
"그걸 아시면서 굳이 부산 매물을 전화 주신 건가요?"
-네, 이건 꼭 말씀은 한 번 드려봐야 될 거 같더군요. 누리마루 APEC 하우스입니다.
"그게 뭔가요?"
-해운대 동백섬 남쪽 끝에 있는 국제회의장 시설입니다. 원래 모 대학 수산과학연구소가 있던 곳인데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유치하면서 새로 지었죠.
하수영은 설명을 들으면서 이미 눈과 손으로는 노트북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다.
위치, 주변 풍경, 시설물 모습, 그리고 방문후기들을 빠르게 체크해 나갔다.
-벡스코 부속 전시시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벡스코 시설물이었군요."
-네, 부지는 약 6,000평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시설이 왜 매물로 나온 거죠? 부산시에서 매각을 찬성한 겁니까?"
하수영은 청담동 매물이 아닌, 저 먼 부산 매물임에도 왜 우형신이 연락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이런 특별한 매물이라면 부산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 해도 한 번쯤은 체크하고 넘어갈 만하다.
시중에서는 보기 드문 매물 아닌가.
-벡스코가 요즘 재정 상태가 안좋다고 합니다.
"부산시를 주주로까지 두고 있는 회사가 왜……."
-전시회에 여러 가지 악재가 많이 있었고, 투자운용에서도 손해를 좀 본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벡스코에서 3배 이상의 규모의 새로운 전시장을 짓고 있습니다.
"아하, 비슷한 용도의 더 좋은 시설을 짓고 있으니 누리마루 APEC 하우스는 필요가 없어진 거군요."
-네, 여러모로 계륵 신세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거기가 동백섬 남쪽이라 뷰는 참 좋을 텐데……. 바로 뒤에 특급 호텔도 하나 있고요."
-더베이101과 요트 선착장도 있죠.
"음…… 일단 한 번 알아봐주시겠어요?"
하수영은 큰마음을 먹고 금기를 깨기로 했다.
'부산 땅은 관심 없지만…… 그래도 이건 그냥 넘어가기 아까운데?'
아직 획득하지 못한 청담동 건물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런 별식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드니, 일단 돌아가는 상황이라도 파악을 해둬야 뒤늦게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