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92화
71 장 시작은 500이지만……(2)
"1억 마리를 선금으로 구매하신다고요?"
"네, 그 정도 매출은 보장을 해드려야 사장님도 진지하게 양계업을 준비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진국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마리당 2,000원, 아니, 1,500원으로만 잡아도…… 1,500억 원이잖아?'
아직 계약서도 안 썼는데 1,500억원이라는 매출이 한꺼번에 생기는 셈이다.
물론 1,500억 원이 고스란히 남는 것은 아니다. 그 돈은 어디까지나 매출이었으니까.
또 1억 마리라는 닭을 한 번에 출하할 수도 없다.
양계장 규모를 대폭 키운다고 해도, 적어도 수십 년은 걸려서 납품을 해야 할 물량이다.
최진국은 최우석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분, 원래 이렇게 통이 크십니까?"
"암, 통이 크다마다. 요즘 닭 농장출하값이 얼마나 하지? 한 2,000원해?"
"1,500에서 2,000 왔다 갔다 할 겁니다."
"그럼 1억 마리라고 해봤자 대충 이 집 한 채 값 되겠구나."
"……."
최진국은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 어마어마한 돈이 겨우 집 한 채 값이라니.
새삼 하수영이 대단하고 드높아 보이기 시작했다.
"저…… 하수영 사장님. 1억 마리 대금이라고 하면 그게 선금이자 일종의 계약금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1,500원으로 잡아도 1,500억 원입니다. 제 어디를 믿고 그런 큰돈을 대뜸 먼저 주시려는지……."
"떼먹으실 거 아니잖아요. 우리 최우석 부의장님 혈육인데. 안 그래요?"
"그래도 좀 부담스럽습니다."
목장이고 집이고 뭐고 다 팔아도, 그 돈의 1/20이나 미치려나?
"이렇게 하시지요. 1억 마리가 아니라 500만 마리로 일단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500만 마리요?"
"네, 1억 마리 납품을 어느 세월에 다할지 지금으로써는 감도 안 옵니다. 어차피 양계사업이 나중에 제대로 궤도에 오르면 1년에 1억 마리 출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제가 양계 사업자리를 잡는 일입니다."
"흐음. 그런가요."
"사실 저도 나름 여윳돈이 있어서 매입만 보장해 주신다면 얼마든지 혼자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선금을 주시면 초반에 제대로 크게 양계장을 갖추는 데도 도움이 될테구요."
최진국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돌리면서 말했다.
"1억 마리 선금, 이건 사장님이 제가 양계장을 얼마나 크게 하는 무리 없이 생닭을 매입해 주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니 500만 마리 매출만 계약과 동시에 미리 주시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할 거 같습니다."
"95%나 삭감하시다니…… 참 현명하신 분이네요. 그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라 이거죠?"
"네, 그 이상은 더 받아봐야 무의미할 거 같습니다."
"그럼 닭값은 어떻게 계산을 할까요? 아까 시세가 마리당 1,500에서 2,000이라고 하셨죠?"
"네, 요즘에는 그 정도 합니다."
"그럼 첫 계약이니까 마리당 2,000원으로 계산하죠. 500만 마리니까 100억 원이네요. 바로 계약서 씁시다."
그러면서 하수영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업계 표준 계약서인 걸 확인한 최진국은 꼼꼼하게 내용을 확인했다.
그는 계약서에 서명날인을 했고, 이것으로 둘은 생닭 공급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근데 독점 계약은 따로 안 맺으셔도 상관없습니까? 보통 육계업 회사들은 양계 농가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어서 하는데……."
"상관없습니다."
"진국아, 어차피 물건 많이 사주는 사람이 갑 중의 갑이라는 건 진리 아니냐. 물량 가지고 한 번 장난치면 바로 아웃 되는 거 뻔히 아는데, 뭐하러 독점으로 묶어놔."
"하긴, 그렇네요."
최진국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이미 서해식품에서 한 달에 최소 6,000만 마리의 생닭을 공급받는 사람이다.
그런 큰 바이어한테 물량 가지고 장난을 친다고?
거래 끊길 일 있나?
독점 계약으로 농가를 굳이 묶어 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근데 6,000만 마리면 우리나라 전체 도축량 아닙니까? 대충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7억 마리 정도가 도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배달치킨 사업을 런칭한다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이제 막 진입한 신규 배달치킨 브랜드가 그 많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까?
'혹시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말이 되겠지만,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수영치킨이 런칭하면 우리나라 치킨 소비량은 이제 급격히 늘어날 겁니다. 라면 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네? 라면 시장이요?"
최진국이 어리둥절해하자 최우석이 껄껄 웃으며 다시 끼어들었다.
"우리 하수영 사장이 누군지 알아?
바로 우리나라 라면시장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야."
"네? 그럼 설마……."
"이 친구가 바로 황비버섯라면의 주인이라고."
최진국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놀랐다.
지금 한국에서 황비버섯라면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그게 진짜인가요?"
"네, 제가 라면 회사 지분 85%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두고 있어요."
***
계약을 맺은 김에, 최진국은 배달치킨 사업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전국에서 6만 개가 넘는 가맹점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소름이 돋았다.
전국 치킨 매장의 거의 대부분을 싹쓸이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특히 황비버섯오일로 튀겨서 남이 쫓아올 수 없는 맛을 냈다는 말에는 흥미가 솟았다.
"한 번 드셔보실래요?"
"맙소사, 이게 치킨이라고요?"
바삭한 껍질에 감싸인 촉촉한 살점을 한 입 맛본 최진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먹었던 치킨의 맛이 혀안에서 모조리 부서지며 먼지가 되는 충격적인 경험을 겪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치킨이다.
다른 치킨은 치킨이 아닌, 치킨을 흉내 낸 형편없는 닭고기 튀김일 뿐이다.
"하지만 기름 하나만 바꾼 거라면 다른 매장에서도 따라 할 수 있는기 아닙니까?"
"그러려면 치킨 한 마리에 최소 20만 원은 받아야 장사가 될 겁니다."
"황비버섯오일이 그렇게나 비싼 겁니까? 황비버섯라면을 보면 가격이 많이 내려간 거 같은데요."
"제가 재배단가를 100배로 낮추는 법을 개발하긴 했는데, 그게 가업기밀이라서요."
"네?"
"프라임컴퍼니에 황비버섯을 납품하는 것도 바로 접니다."
"아, 버섯농장도 하셨던 거군요."
황비버섯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최진국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동시에 그는 확신이 생겼다.
'절대 망할 수가 없어. 아니, 무조건 성공한다. 치킨 시장 싹쓸이야.'
바야흐로 튀기는 치킨이라면 무조건 황비버섯오일 미만 잡것이라는 공식이 한국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왜 하수영이 6만 개나 되는 매장을 한꺼번에 포섭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이건 절대 실패할 수가 없는 아이 템이었다.
"그런데 황비버섯 재배 방법이 유출되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아,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 안심하세요. CIA가 와도 비법은 절대 못 훔쳐갑니다."
하수영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고, 최진국은 마음을 놓기로 했다.
성공을 확신하자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저, 죄송하지만 혹시 치킨 몇 마리만 더 튀겨주실 수 없습니까? 아내와 딸이 지금 서울에 같이 왔는 데, 둘한테도 이 치킨을 먹여주고 싶어서요."
"아, 그럼요.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한 100마리 튀겨드릴까요?"
"그,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최우석이 옆에서 기분 좋게 껄껄웃었다.
"우리 하 의원 손이 얼마나 큰데. 주변 사람들 돼지 만들지 못해 안달난 사람이라고."
"네? 하 의원이라고요?"
"아, 나와 같이 강남구의원 일도 하고 있어. 기초의원들은 본업을 거느리는 게 상당히 자유롭거든."
저 젊은 나이에 구의원 일까지?
최진국은 하수영이 한 번 더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그의 나이를 생각하자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저, 이제 스물한 살이면 군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병역기필자입니다."
"벌써 군대 다녀오셨다고요?"
"병특대상자라서 3주 군사훈련 받고 끝났어요. 이제 예비군 신분입니다."
하늘이 내린 팔자라는 게 이런 거겠지?
최진국은 하수영이 무지막지하게 부러워졌다.
***
하수영은 최진국이 출발하기 직전, 치킨 세 마리를 새로 튀겨서 주었다. 갓 조리해서 먹기 좋을 때 가족들과 함께 먹으라는 취지였다.
"그래도 열 마리 정도는 튀겨 드려야 할 거 같은데……."
"다 먹지도 못합니다!"
"뒀다가 나중에 에어프라이어에 한번 돌려서 드시면 괜찮은데……."
"정말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세 식구가 먹을 건데 무슨 열 마리를 튀기려고 해?
최진국은 처음에 말했던 '100마리도 튀겨드리죠'라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농부들이란 참, 다 똑같네.'
그렇게 치킨 3마리를 들고 청담동호텔로 향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친척이나 지인 이 놀러 오면 다 들고 가지도 못할만큼 고기를 바리바리 싸주곤 했었다.
농업, 축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마음이란 다 똑같은 것일까?
아무튼 호텔에 돌아왔을 때 아내와 딸은 없었다.
"뉴월드 강남점 갔나?"
쇼핑을 위해 서울 나들이만을 잔뜩 벼렸으니, 아마 백화점에 갔을 것이다.
아내와 딸은 정확히 8시 40분에 돌아왔다.
시간을 확인한 최진국은 아내를 흘끔 돌아보며 말했다.
"여태 백화점에 있었지? 마감하고 바로 나온 거야?"
"어떻게 알았어요?"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잖아. 그리고 결제문자도 있고."
최진국이 스마트폰 문자 내역을 띄우고 흔들어 보이자 아내는 배시시웃으며 팔을 끌어안았다.
"아이, 미안해요. 그렇게 많이 안샀어. 거의 우희 거 위주로 샀단 말이에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카드를 많이 긁긴 했지만 진심으로 별생각 없었다.
딸 같은 아내 데리고 사는 주제에, 이 정도라도 해줘야지.
"치킨 먹어. 내가 치킨 사왔어."
"서울까지 와서 치킨을 또 먹으라구요?"
"이거 진짜 맛있는 치킨이야.내가 이 치킨 때문에 서울 출장 온 거라고."
"잉…… 아빠, 나 치킨 먹기 싫은데, 스테이크 먹으면 안 돼?"
"일단 속는 셈치고 한 입만 먹어 봐. 맘에 안 들으면 원하는 거 뭐든지 사줄게."
아내와 딸은 반신반의해서 치킨을 한 조각 먹었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이거 너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 아빠!"
결국 최진국은 치킨에는 한 조각도 손을 대지 못한 채 양보했고, 두 모녀는 세 마리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음 날…….
"여보, 어제 그 치킨 먹으러 가면 안 돼요?"
"아빠, 나도 그 치킨 먹고 싶어. 먹으러 가자."
"그 치킨은 아직 파는 게 아니야. 어제 다 먹었으니 오늘은 스테이크먹자."
하지만 황금비단우산버섯오일 치킨 맛에 단단히 반한 모녀는 한사코 치킨을 원했다.
최진국은 할 수 없이 하수영에게 조용히, 정중히 메시지를 보내서 물었다.
'죄송합니다. 가족들이 너무 맛있어 해서 그러는데, 혹시 어제 튀기고 남은 치킨 없으십니까'라고.
그리고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하수영의 대답이 왔다.
[찍어드린 주소로 오세요. 제가 최진국 사장님 가족분들에게 청담 해공의 맛이 무엇인지 오늘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해공이요?]
[육해공에서 아직 육군 편제가 안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