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86화
69장 청담에 지으리랏다 (2)
"근데 수산업은 이미 진출하지 않았나?"
"이제 겨우 가두리양식으로 참치 몇 마리 키우는 수준인데, 이게 무슨 진출입니까. 그냥 어항놀이 조금 하는 거죠."
"그 큰 돈을 넣어놓고 어항놀이라니."
"수영참치에만 겨우 납품하는 수준인데요. 가맹점 개수도 몇 개 없잖아요."
참치를 취급하는 수영오세안은 수영레스토랑에 비해 아직 가맹점 수가 매우 초라한 수준이었다.
"일본에도 팔고 있잖나?"
"그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죠. 맛보기 수준인데요. 참치말고 다른 어류도 잔뜩 양식을 할 겁니다."
"그럼 축산업은?"
"황비버섯을 먹여서 키운 돼지와 소, 어떠세요? 막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지 않으세요?"
전성렬은 저도 모르게 끄덕이고 말았다.
"말만 들어도 맛있을 거 같은데."
"남들은 절대 못 따라잡는 프리미엄 육류라는 이미지를 내세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럼 고깃값이 비싸지지 않나?"
"제 농장, 초기 세팅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실제로 재배 비용은 많이 들지 않습니다. 지금도 프라임컴퍼니에 납품하는 가격 보시면 아시잖아요."
"그렇긴 해. 참 신기할 노릇이란 말이야."
"영업기밀이니 그 이상은 참아주시구요. 아무튼 프라임컴퍼니도 종합 식품회사로 거듭나려면 아직 갈 길 멀었습니다."
"자네가 생산하고 프라임컴퍼니가 그걸 가공해서 유통한다. 이것만 확실히 잘 하면 되겠지?"
"그럼요.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회사잖아요."
'하수영 농가'에서 생산한 수확물은(해외 수출 제외하고) 크게 두 가지로 유통된다.
하나는 하수영이 직접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의 식재료로 소진되는것.
다른 하나는 프라임컴퍼니 식자재로 납품되는 것.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을 관리하는 정도까지만 딱 신경 쓰고 싶어서요. 회사가 커지면 경영이 귀찮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도 지금 규모가 제법 크지 않나?"
"그래서 주희도 대표님이 대신 관리해 주시잖아요."
"……."
"그리고 가맹점들은 결국 본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하는 파트너인 걸요. 제가 고용한 직원이 아니잖습니까."
"그게 편하다는 거군. 알겠네. 앞으로도 자네가 경영 문제로 신경 쓰게 할 일은 없을 테니 마음 놓게."
"네, 그나저나 요즘 회사는 어떻죠?"
전성렬은 자신만만해서 대답했다.
"뭘 그런 걸 묻나?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지. 올해 총이익이 1조 원은 거뜬히 넘을 거 같아."
아무리 독식이라지만 라면 하나 팔아서 연이익이 1조 원을 넘어서다니.
"서해그룹이 무척 허탈하겠네요. 자기들은 전 세계 상대로 반도체 박리다매 장사해서 30조 원 겨우 버는데."
"1조 원하고 30조 원이 어디 상대가 되나? 애초에 넘볼 수도 없지."
전성렬은 잠시 생각한 뒤 덧붙였다.
"우리야 맘 편하게 웃으면서 장사하는 데도 이만큼이나 버는 거고. 음, 퀄리티는 우리가 더 낫군."
"반도체와 라면 차이를 생각하셔야죠."
"그래서 서해식품이 그렇게 우리 신경을 살살 건드리는 건가? 일전에 황비버섯 군납도 그놈들이 중간에 몰래 끼어들어서 장난친 거였잖아."
전성렬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빴다.
국방부를 내세워서 저렴하게 황비버섯을 공급받고, 그것을 해외로 빼돌릴 생각을 하다니.
물론 하수영이 군납을 전격 취소하고, 장병들에게 회사직송 버섯 공급을 결정했을 땐 속이 시원했지만,
"선거도 끝나고 의정 활동도 안정됐으니, 이제 슬슬 돌려줘야지요. 서해식품 말입니다."
"안 그래도 자네가 어떻게 하려나 조금 염려가 되긴 했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치킨 레이스 한 번 펼쳐볼 생각입니다."
전성렬은 조금 긴장했다.
서해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피에 젖은 트로피를 쥘 수 있었던 것은, 치킨 레이스 가격 경쟁에서 버텨낸 덕분이다.
서해식품은 비록 방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식구.
그런데 하수영이 치킨 레이스라는 단어를 꺼내자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느껴진다.
"무차별 가격 출혈전이라도 벌이려고? 좋아. 어차피 지금 회사에 현금잔뜩 쌓여 있어. 그래, 어떤 시장을 뺏어올 건가?"
전성렬은 하수영이 출혈 경쟁을 통해 서해식품이 차지한 시장을 뺏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스낵? 도시락? 가공육? 음료수? 아이스크림?'
뭘까? 하수영이 노리는 품목이 무엇일까?
"웬 무차별 가격 출혈전이요?"
"치킨 레이스라고 했잖나. 서해그룹 맏이인 서해전자가 치킨 레이스로 반도체 시장을 차지한 것처럼, 우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서해식품과 현금 전쟁을 벌여서……."
"아뇨, 말 그대로 치킨 레이스 할 건데요?"
"그래, 그러니까 그게 같은 말……."
전성렬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멈칫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수영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육계 사업 그거?"
"네, 닭 시장을 한 번 건드려 볼까 합니다."
서해식품은 국내 먹거리 시장 중에서 웬만한 종목은 1위 아니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닭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서해식품은 점유율 22%로, 국내 닭 시장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약 700개의 농가가 서해식품에 닭고기를 공급한다.
그 때문에 대기업이 혼자서 다 해처먹는다는 비난도 가끔 나오지만,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은 없다.
"지금 닭고기 시장은 레드 오션 중의 레드 오션이야. 이제 와서 우리가 바닥부터 닭농가 세팅해서 시작하자고? 어느 세월에 자리를 잡고, 어느 세월에 서해식품을 제친단 말인가?"
"언제 라면 시장은 레드 오션이 아니었나요? 한때 우리나라 라면 브랜드 1위였던 윤라면이 지금 누구 겁니까?"
서해식품의 자회사인 태양심은 라면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대표브랜드인 윤라면도 프라임컴퍼니에 눈물을 머금고 양도했다.
고철값이라도 건지고자 하는 심정에서 내린 결정이다.
"그거야 황비버섯이 있었으니까 가능했지. 하지만 닭고기 시장은 좀 다르지 않나?"
"아까는 황비버섯 먹여 키운 돼지 고기, 소고기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신다면서요."
"그거야……."
전성렬은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한 마디도 안 져주는 거지? 아까 한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 오너의 생각에 무심코 맞장구를 친 것도 있었는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터 닭농가를 새로 세우는 인수하는 해서 육계 사업을 시작할 건가?"
"닭고기 잔뜩 만들어서 할 게 없잖아요. 일단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뭘 하든지 말든지를 할 텐데,누가 신생업체가 키운 닭고기를 사줍니까? 기존 거래처에서 공급받겠죠."
"그럼 어떻게 하려고?"
닭 시장을 뺏어오려면 당연히 닭을 생산한다는 게 아닌가?
영문을 이해 못 하던 전성렬의 머리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이번에도 프랜차이즈……."
"네, 닭고기를 파는 게 아니라 닭고기를 사야 합니다. 소비자들 앞에 떡하니 서서 지키는 수문장이 되어야죠."
"우리가 라면 시장 뺏을 때 한 것처럼 말이지."
전성렬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수영이 그리는 그림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했다.
"그럼 브랜드명은 수영 치킨이 되겠군?"
"당연하죠."
"처음부터 자네 이름을 내걸면 서해식품 그놈들이 경계하지 않을까?"
"자기들 파는 닭고기 사주는데 왜 경계합니까? 경쟁자도 아니고 바이어인데."
치킨, 배달치킨, 매장치킨, 양념치킨, 프라이드치킨.
대한민국에서 2등 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대표적인 국민 음식이다.
소고기를 안 먹고 살 순 있어도 치킨을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저렴하고, 가장 접근하기 쉽게 단백질 고기를 섭취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판매 루트 만들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직접 닭 농장을 차려도 되겠군. 아니면 서해식품 말고 다른 곳으로 공급처를 바꿔 버리든가."
"일단 배달치킨 시장부터 먹어야죠."
"그것도 프랜차이즈로 운영해야겠지?"
"차근차근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 전 지역에 일시에 융단폭격하고 시장 먹어야 합니다."
"그럼 시작할 땐 프랜차이즈로 하되 전부 직영점 체제로 스타트를 끊어야겠어."
"그러다가 다른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계약 끝난 가맹점주들을 슬그머니 받아주면 되고요."
"노브랜드 치킨 매장주들도 설득해서 가맹점으로 끌어들이면 되겠어."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전국에서 오늘도 땀 흘리며 치킨을 튀기는 전 직 개발자 출신의 치킨점주들의 반발이다.
하지만 그들과는 철저히 공생하는 길을 걸으면 된다.
"근데 중요한 게 하나 있어. 황비버섯이 우리가 만든 라면의 차별성을 만들어준 것처럼, 그런 획기적인 무기가 필요해."
"무기야 언제든 준비되어 있죠. 꺼낼 타이밍만 재고 있을 뿐."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래, 그 무기가 뭔가?"
"이미 쓰는 무기입니다. 바로 황비버섯이죠."
"……치킨에 버섯을 첨가하자고?"
전성렬은 황당해졌다.
아무리 하수영의 안목과 비전을 철석같이 믿는다지만, 너무 허황된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황비버섯이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고급 식재료인 것은 맞다.
하지만 황비버섯의 장점은 국물 요리의 맛을 좋게 해주고 식감을 보태는 것에 있다.
"닭 전골이나 닭도리탕 같은 거라면 몰라도…… 배달치킨하고는 전혀 안 어울리지 않나?"
국물이 들어간 배달치킨이라니.
뭔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그런 걸 누가 먹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이제 슬슬 다 된 거 같아서요."
"응? 뭐가?"
"금방 나오겠습니다."
하수영은 잠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응접실로 나온 그는 커다란 접시에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치킨 요리를 담아서 가져 나왔다.
"안 그래도 맛보여드리려고 미리 준비했습니다."
"자네 집 주방에는 정말 별게 다 있군, 역시 천사백억짜리 집이라니까."
"한 번 드셔 보시죠."
"근데 황비버섯은 안 보이는데?"
하수영이 주방으로 갔을 때만 해도, 전성렬은 버섯과 같이 튀긴 치킨 요리를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바삭하게 잘 익은 치킨만 있을 뿐이다.
"버섯은 있습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설마 버섯을 가루로 갈아 만들어서 튀김옷을 입힌 건 아닐 테고……."
황비버섯을 갈면 그 본연의 식감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황비버섯은 원형 그대로, 혹은 몇 조각으로 썰어서 국물 요리에 넣어 맛을 내는 게 보편적인 조리법이다.
'버섯이 대체 어디 있다고?'
전성렬은 궁금증을 누르면서 치킨 한 조각을 들어 입에 넣었다.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프라이드 치킨이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
무심코 씹던 그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아스라한 풍취에 잠시 생각이 멎고 말았다.
순식간에 한 조각을 삼켜 버린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외쳤다.
"누, 눈물 나게 맛있어! 이런 치킨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이건 치킨의 혁명이야, 혁명!"
"이제 느껴지십니까, 황비버섯의 감미가?"
"그, 그런 건 모르겠어! 버섯 맛같은 건 모르겠네! 그냥 치킨이 맛있고 고기의 결 자제가 달라! 혹시 조리에 쓴 닭이 특등품인가?"
"그냥 시장에서 산 평범한 닭일 뿐입니다. 하지만 황비버섯이 그 맛을 바꿔놓은 거죠."
"대체 황비버섯이 어디에 있다는 건가?"
"치킨은 어떻게 만들죠?"
"그야, 닭고기에 밀가루 옷을 입히서 식용유에 튀겨서 만들지."
"그럼 식용유는 보통 어떻게 만들죠?"
"그야, 식물이나 동물의 지방을 쥐어짜서…… 잠깐? 설마 황비버섯으로 기름을 만들어서 튀긴 건가? 버섯은 균류계인데?"
"그래도 먹거리라서 쥐어짜면 나오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