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84화
68장 슬기로운 의정 생활(7)
자선사업 3,000억. 이것은 여론에 보여주기 위한 명분이다.
여당 정치자금 1,000억, 이것은 대외에 공개할 수 없는 비밀 약속이다.
두 가지 조건을 제안받은 여당은 서둘러 추경심의안 통과를 추진했다.
물론 야당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개인 한 명 문화재 보상금주자고 추경심사까지 하자는 겁니까?"
"어차피 줘야 할 돈입니다. 행정소송 들어오기 전에 빨리 처리하는 게 낫습니다. 문화재청 예산만으로는 이거 절대로 처리 못 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명 편의 봐주자고 국회가 나선다면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보상금 받으면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3,000억을 내놓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저소득층 기금 3,000억짜리를 추경 진행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심지어 국고에서 나가는 돈도 아닙니다. 미룰 이유가 전혀 없어요."
3,000억짜리 지원금 추경이라고 간주하니, 야당도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국민 입장에서도 싫을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추경은 진행되었다.
***
2조 8,673억.
하수영이 손에 쥔 문화재 보상금이었다.
하수영의 개인 명의로 된 현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전부 법인화해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즉, 현금은 모두 법인이 쥐고 운영하고 있다.
하수영은 보상금 중에서 3,000억원을 따로 떼어내서 자선사업 기금으로 운영했다.
"재단을 하나 만들까 했는데, 그러면 날파리만 괜히 꼬이게 만드는 거 같아서요."
"잘 생각했네. 어차피 그거 전부 다 써버릴 거지?"
"그럼요. 돈 없는 애들 학비, 생활비, 식비 지원하면서 그냥 다 써버릴 겁니다."
투자운용 과정에서 남는 이자만 사용하는 것은 하수영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팍팍 써버리고 훌훌 털어버려야죠. 귀찮게 두고두고 잡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 사람이 운영을 해야 할 텐데."
"아, 저는 그냥 프리덤한테 맡기려고요."
"프리덤이 그런 것도 할 수 있나?"
"단순 운용이니까 됩니다. 이 돈을 가지고 주식투자해서 불리라고 하면 안 되지만요."
물론 창조주인 하수영은 모든 제한에서 예외다.
하지만 최우석 부의장은 하수영이 프리덤 개발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원자 선별해서 적당한 항목과 금액으로 나눠서 정기적으로 지급하라고 하면 끝이죠."
***
거액의 현금이 생긴 하수영은 당연히 공직자 재산내역 변경 신고를 했다.
당연히 강남구의회에도 파다하게 알려졌고, 직원들은 하수영이 출근할 때마다 한껏 부러운 감정을 나타냈다.
"세상에…… 문화재 보상금으로만 2조 8,673억 원을 받으셨다고?"
"정말 난 사람은 어떻게든 나는구나."
"하수영 의원님은 진짜 서해그룹회장 안 부러우시겠다."
"탈세도 안 하고, 사기횡령도 안 하고, 정말 100원 하나까지 피땀 흘려가며 떳떳하게 버신 돈이잖아. 난 그게 제일 대단한 거 같아."
"문화재 보상금은 근데 피땀 흘려 번 돈은 아니지 않아? 그냥 농장으로 쓰던 땅에서 파보니까 문화재가 쏟아져 나온 건데?"
"사실 문화재 보상금은 극히 일부잖아. 프라임컴퍼니 주식 85% 가치가 얼마인데, 그거 추정 가치가 12조 원이 넘는다잖아!"
"라면 회사 지분만 12조…… 진짜 숫자만 들어도 넘어갈 거 같네."
"우리나라 정치인들 개인 자산 다 합쳐도 하수영 의원님 한 분한테도 못 비빌걸? 아, 재벌 회장 국회의원 그분 한 분은 빼고."
청담동 하수영 의원사무실도 축제분위기였다.
"여, 하 의원, 이번에 아주 크게 받았다면서?"
"청담의 자존심은 진짜 하수영 의원 자네 혼자서 떠 짊어지고 있구먼그래."
"저소득층 자선사업으로 통 크게 3,000억 원이나 내놓고 말이야. 정말 대단하이."
"그보다 국회와 팔 걷어붙이고 협상한 실력이 더 대단해. 안 그랬으면 보상금 받는데 세월아 네월아 했을 텐데."
"암, 조금 덜어내더라도 빨리 다 받아내는 게 낫지. 그게 마음이 편해."
"일단 주머니에 들어와야 내 돈이지. 남 주머니에 있으면 어디 그게 내 돈인가."
사무실에 출근 도장 찍는 노인들.
다들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자산이 백억 밑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런 그들 기준에서도 하수영은 범접할 수 없는 으뜸이었다.
"이거 하수영 의원 자네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할 이유가 생겼어."
"국회는 언제 진출할 텐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큰일을 해주면 싶지만, 그래도 아직은 좀 더 지역 일꾼으로 남아줬으면 하고…… 아, 마음이 복잡해."
"이 친구야. 그거야 하수영 의원이 알아서 잘 결정하겠지."
"맞네. 그나저나 자선사업 3,000억은 어떻게 쓸 건가?"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자 하수영은 쿨하게 대답했다.
"이제 1,000억 남았습니다."
"뭐야?"
"아니, 2,000억은 어디로 갔어?"
"설마 그새 2/3이나 되는 돈을 썼단 말인가?"
노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보상금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자선기금의 2/3를 소진했단 말인가.
"아주 보람차게 썼습니다. 1만 명의 사회 초년생들 구제해 줬거든요."
"구제를 해줘?"
"네, 학자금 대출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 1만 명 골라서 그거 갚아줬어요."
"……."
"……."
"힘들게 졸업하고 힘들게 취직해서 힘들게 돈 버는데, 빚 갚느라 다 빠져나가면 일하는 맛이 안 나잖아요. 그래서 신나게 일하는 맛 좀 느껴보라고 싹 갚아줬죠."
노인들은 잠시 말문을 열지 못한 채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한 명이 목청을 가다듬고 정적을 깼다.
"선별은 어떻게 했나? 1만 명이나 되는 대상자를 이렇게 빨리 선별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혹시 예전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나?"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기도 했고, 선별하는 게 쉽고 간단하기도 했습니다."
대상자를 물색하는 것은 프리덤을 이용하면 간단하다.
물론 심사 과정에서 탈락자가 나오는 걸 만들지 않기 위해서, 아예 처음부터 딱 1만 명을 정하고 의사를 확인했다.
탕감 후보에 들었다가 떨어지게 되면 그것만큼 실망스러운 일이 없으니까.
"1순위는 청담에 있는 친구들, 2순위는 강남구 직장인, 3순위는 서울 경기권 직장인으로 했습니다."
"나름 명확한 기준이 있었군. 그냥 무작위로 뽑은 건 아닌가 봐?"
"네. 가정형편과 직장소득, 그리고 채무 크기와 신용도와 성실성 같은 걸 종합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이공계 출신에 좀 더 가산점을 줬고요. 제가 공대 출신이라."
"응? 하 의원, 자네 공대 출신이었어?"
"하 의원, 언제 대학 들어갔나? 야간 대학이라도 입학한 거야?"
"인류연맹대학 우주자연학과 4013학번입니다."
"별 희한한 야간대 이름도 다 있군."
"에이, 저런 대학은 들어본 적도 없어. 하 의원이 지금 농담하는 것도 모르나?"
처음 듣는 대학 이름에 다들 어리 둥절해 하다가 이내 하수영이 농담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넘어갔다.
"빚 까인 친구들은 다시 태어난 기분이겠어."
"네, 아주 고마워하더라고요. 저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우리 청담이 더욱 발전할 거잖아요?"
참고로 실비아컴퍼니 청담 본사에 출근하는 개발자 중에서 가난하고 학자금 대출이 있는 이들은 모두 1만 명 안에 들어서 혜택을 받았다.
"그럼 나머지 1,000억은 어떻게 쓰려고?"
"그건 저소득층 아동청소년들 식비, 학비로 골고루 뿌리려고요. 일년을 넘기기 전에 다 써버릴 겁니다."
"하 의원 돈 쓰는 거 보면 너무 시원시원해서 내가 목청이 다 트인단 말이야. 근데 차는 좀 사는 게 어때? 캠핑카 말고도 세단이나 스포츠카도 몇 대 있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에이, 캠핑카가 교통사고 나도 안전하고 좋아요. 화물차가 뒤에서 박으면 벤틀리 타도 죽습니다."
***
여당은 이제 한배를 탔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마치 하수영이 무소속이 아니라 당소속 정치인인 것처럼 친근하게 굴기 시작했다.
중앙당 사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청담동 의원사무실을 찾으며, 의정활동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 낱낱이 살폈다.
재빠른 보상금 지급. 거기에 하수영이 입당과 특별당비 지원 등을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소문은 이미 중앙당에서 비밀도 아니었다.
물론 1,000억이라는 정확한 사이즈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당에서도 일부 중진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어디 1,000억이 보통 돈인가.
'돈 안 주고 입당도 안 하면 그만이지.'
물론 하수영은 1,000억을 줄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약속을 어긴다 해도 당에서 자신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외부에 공개되면 오히려 여당이 큰 비난을 받는다. 부당한 밀실거래를 한 셈이니까.
하수영은 갈취당한 피해자 입장이 되므로 비난을 받을 여지도 없다.
여당만 비난과 내분에 시달리는 것이다.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여의 도에서 이 먼 청담까지 발걸음하시고."
"지역자치정치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것을 소홀히 하면 거대 여당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겁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구의회에서 혹시 부당한 경험을 겪으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중앙당에서도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는 여당 최고위원의 표정에는 '그래서 입당은 언제?'라는 감정이 진하게 떠올라 있었다.
물론 하수영은 그런 애단 마음을 모른 체했다.
"국회에서 기초의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너무 적절하게 잡아주셔서 지역정치 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생업에 열중하면서도 동시에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쓸 수 있으니,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하, 다른 기초의원분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지역 민심 확인하러 내려갈 때마다 이리저리 치이는 게 가끔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입당은 언제 해요?'
"오늘 구의회 직원들과 회식이 있는데 함께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지요."
"감사합니다."
'특별당비는 언제 줘요?'
하수영이 여당을 상대로 느긋하게 애를 태우고 있을 무렵, 청담동 프라임컴퍼니 본사 시공은 차근차근진행되고 있었다.
어렵지 않게 재건축 허가가 떨어졌고,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
사옥 설계를 위한 건축사 미팅에는 하수영도 참가했다.
"이분은……."
"이사회 일원은 아니지만 최대주주입니다."
"아, 그렇군요."
건축사는 하수영이 메인 클라이언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계 도면은 무조건 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하수영의 주문은 간결했다.
"최대한 높게, 크게, 예쁘게, 멋지게. 그렇게 설계도 한 번 뽑아주세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원하시는 모습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발사를 앞두고 있는 큰 우주발사선이 수직으로 서 있는 컨셉으로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베이스 컬러는 흰색으로 해주시고요. 나사 스페이스셔틀 같은 느낌이 딱 들면 좋겠습니다."
"스, 스페이스셔틀 말씀이십니까?"
건축사는 당황했다.
그렇게 못 지을 것은 전혀 없다.
구조적으로 어려운 요구도 아니고.
다만…….
'라면 회사라며?'
웬 우주선 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