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83화
68장 슬기로운 의정 생활(6)
하수영은 혜성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한 정치 신인이다.
비록 기초단체의원이지만 어디 시골 산자락 지역도 아닌,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구의회에 당당히 입성했다.
심지어 만20세의 어린 나이에 무소속.
해변의 모래알처럼 치이는 게 기초정치인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들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어떤 인물인지 고개를 빼고 살펴볼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역대 최연소 선출직 정치인이라는 점, 의외로 의정 업무를 잘한다는 점, 의회 직원들에게 밥을 잘 사준다는 점, 무소속계의 범원로정치인 최우석 부의장과 어울려 다닌다는 점…….
그런 다양한 특징이 있었지만, 가장 큰 거 한 방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고한 부동산만 1조 3,000억 원이 넘는다고?"
"프라임컴퍼니가 이 친구 거였단 말이야? 프라임오일도?"
"수영라면이 이 친구 거라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는 가는 법이다.
본래 자기 지역구 기초의원 이름도 가물가물하기 마련인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하수영의 이름은 순식간에 퍼졌다.
'조대 자산가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은 퇴임을 앞둔 국회의장도 놀라 버선발로 뛰쳐나오게 만들 만한 강렬함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프리덤은 신고내역에 나오지 않는다. 실비아컴퍼니와 프리덤계약을 맺은 법인의 지분 소유 내역이 나온다)
"이렇게 돈이 많은 친구가 왜 기초의원을 하는 거야?"
"정치에 큰 뜻을 두고 있는 게 틀림없어. 처음부터 차근차근 자기 몸값을 쌓으려고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거야."
"무소속으로 시작한 것도 자기 존재감을 분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겠지. 이 정도 이력이면 강남구에서 기초의원으로 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돈보다는 정치에 더 큰 뜻을 두고 있는 인물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초의원부터 시작할 리가 없다.
이것이 여의도에서 오가는 하수영에 대한 인식이었다.
아직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형편없지만,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이들 중에는 하수영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 친구, 언젠가 반드시 중앙정치로 진출하려고 할 거야."
"절대로 다른 당에 뺏겨선 안 돼. 그렇다고 섣불리 나서서 읍소하는 것도 안 돼. 분명히 자기 몸값을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있을 테니까."
돈은 많지만, 그만큼 정치에 대한 탐욕도 많은 어린 새싹.
이빨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육즙이 줄줄 흐르는, 아주 탐스러운 먹잇감.
그게 바로 현재 여의도에서 하수영을 보는 시선이었다.
***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들 삥 뜯을 궁리부터 하는군요."
"어차피 여의도에 진출하려면 자네가 성의를 보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말이야."
"그래서 우선 문화재 보상금으로 한 번 간을 보겠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합법적이고 신사적으로 삥을 뜯기에는 적당한 소재가 아니겠나? 애초에 자네 것이 아니라 나라 것이었으니. 아, 그렇다는 게 아니고, 여의도 친구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딱 그럴 거란 말일세."
어이, 돈 많은 어린 친구.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장관이 되고 싶어? 나중에는 총리도 하고, 대통령도 하고 싶어?
그럼 통행세를 내고 이 문으로 들어와서 합류해.
하수영한테 관심을 보이는 중진 국회의원들의 마음이 딱 저럴 것이다.
"하 의원 자네도 알겠지만 정치는 돈이 정말 많이 들지.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돈이 팍팍 나간다네."
"돈줄 노릇하는 거물들은 총선, 대선 한 번 치를 때마다 특별당비를 수억, 수십억씩 척척 내기도 한다면 서요."
"재벌가 출신 정치인들이 보통 그렇지. 능구렁이들이 돈 많은 후배정치인을 환영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게야."
하수영이 국회 정문 통행세로 얼마를 내려고 할지 군침을 흘리며 기대하는 이들.
문화재 보상금처럼 적당한 게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나 바라고 있답니까?"
"적어도 못해도 보상금의 절반 이상은 나라를 위해 내놓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던데."
"절반이면 거의 1.4조 원이란 말입니다. 누가 미쳤다고 그런 큰돈을 국회의원 한 번 해보자고 덕덕 내놓습니까?"
"보통은 안 하지. 하지만 저들 눈에 자네는 돈 욕심보다 권력 욕심이 몇십 배는 더 앞선, 출세하고픈 야망으로 가득 찬 졸부란 말일세."
"제가 졸부라고요?"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됐으니 저들 눈에는 졸부로 보이겠지."
"어쨌든 그럼 졸부다운 기개를 보여줘야겠네요."
'얼마 안 되는' 문화재 보상금에는 크게 흥미가 없다.
하지만 다른 이가 허락도 없이 숟가락을 들이대는 꼴은 못 봐준다.
한 입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았는 데, 어디서 숟가락부터 꺼내 들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단 말인가.
'당비로 몇천억씩 내고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나 참…….'
애초에 기초의원을 한 이유가 청담에서 임대업, 요식업하기 딱 좋은 타이틀이라서 시작한 건데.
물론 겸사겸사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보람도 있지만, 자기 사는 마을의 청결이나 치안을 위해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
최우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당 중진 의원의 오른팔인 보좌관이 하수영을 만나기 위해 청담동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먼저 문화재 보상금부터 거론했다.
"보상금이 워낙 거액이고, 지금까지 이런 전례는 전혀 없었습니다.
문화재청의 권한이나 예산만으로는 보상금 지급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세금을 제외해도 2조 8,000억 원이 넘는 돈을 뚝딱 만들어내야 하는 판이었으니.
"그렇다고 겨우 문화재 보상금 하나를 위해서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 점은 하수영 의원님이 양해해 주셔야 합니다."
오로지 한 개인의 사적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추경 예산 심사를 한다?
국회 역사상 한 번도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하수영은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제 보상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매년 정기예산심의에 반영하여 지급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합니다."
"매년이라고요?"
"네, 현실적으로 한 번에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닙니다. 관련 조항을 살펴본 결과, 집행 비용이 현저하게 클 경우 국가는 최대 20년까지 분할해서 지급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조항을 전혀 못 봤는데요. 무슨 법 몇 조 몇 항에 그런 조항이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하수영이 따지듯이 묻자 보좌관은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구체적인 법조문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적용 가능성 있는 조항들을 확대 해석해서 적용한 유권해석입니다."
확대 해석.
이것만큼 책임을 회피하기 좋은 구실은 없다.
우리가 우긴다면 20년 분할 지급을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알고 바짝 긴장하고 있어!!
대충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하수영은 차분히 반문했다.
"그 말씀을 하시려고 여당 4선 중진 국회의원님을 모시는 보좌관께서 이 먼 청담까지 오신 겁니까? 여의 도에서 여기는 상당히 멀 텐데요."
"아무래도 사안이 워낙 크다 보니……."
"이런 내용이라면 당연히 문화재청에서 저한테 언질을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보좌관은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는 사람처럼, 너도 다 알지 않느냐, 알면서 모르는 체를 하느냐, 딱 그런 표정이었다.
"물론 해결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국회에서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거죠."
"한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추경예산심사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례야 만들면 되죠. 다만 충분한 명분이 주어져야 국회도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
하수영은 차분한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봤다.
여태껏 길고 지루하게 주거니 받거니 딜 교환을 했다.
드디어 본론을 꺼낼 모양이다.
"추경심사를 거치고…… 최대 5년 만기의 국채를 다수 발행해서 보상금 지급 집행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채로요? 최대 5년 만기?"
"네, 당연히 현금을 일부 섞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5년 안에는 무조건 보상금을 전부 받으실 수 있죠. 또 채권시장에 국채를 내다 팔아도 됩니다. 5년짜리 국채이니만큼 할인 적용 없이 거의 전액 보전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걸 실행 가능하도록 제가 여당에 명분을 드려야 하는 거군요."
"아무래도 그래주시면 국회에서 집 행하기가 편하죠."
하수영은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제가 현역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몇 킬로그램씩 황금비단 우산버섯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아, 언뜻 들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면 제가 상당한 돈을 벌었을 군납 사업입니다. 하지만 저는 타지에서 고생하는 장병들을 생각해서 장기간 무상 지급을 약속했습니다."
보좌관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지워졌다.
"그것으로 명분이 설 수는 없습니까?"
"버섯 무상 공급은 감사한 일이나, 이미 서락산에서 한창 문화재가 쏟아지기 시작한 뒤에 시행한 사업입니다. 그 정도로 추경심사를 진행하기에는, 국민들이 보기에 좋지 않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생색을 냈다. 이렇게 보인다는 말씀이시죠?"
"아무래도 국민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수영은 잠시 깊이 생각에 잠기는 척했다.
보좌관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차분한 태도로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다.
"제가 받아야 할 보상금이 2조 8,673억 원입니다. 그중 3,000억 원을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운영하겠습니다."
기부가 아닌 '자선사업 운영'이라고 했다.
이것은 국가나 타단체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보좌관은 그 미세한 뉘앙스차이에 집중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 우선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그 내용이 이어진다면 하수영이란 인간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자신들이 분석한, 돈 욕심보다 권력 욕심이 월등히 많은 인간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1,000억을…… 우선 1차로 현 여당 정치자금으로 제공하겠습니다. 당연히 대외비입니다. 공천 확정이나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도 않겠습니다. 순전한 제 성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보좌관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하수영은 여당의 거래를 받아들인 것뿐만 아니라, 여당이 필요로 하는 대가를 스스로 생각해서 제시했다.
'역시 의원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 이 사람은 정치에 큰 욕심을 품고 있다.'
새로운 정치 지망생은 언제나 환영이야!
돈이 많다면 더욱 격렬히 환영이지!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대신 보상금은 일시불로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두 가지 약속을 이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 점 역시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겠습니다만,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
"자선사업에 3,000억이나 내놓는 것은 너무 속이 쓰린데……."
"원래 이제 슬슬 자선사업도 하려고 했습니다. 안 그래도 눕고 싶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돗자리 깔아준 셈입니다."
"헐, 자선사업을 그렇게나 크게?"
"많이 벌었으니 많이 써야죠. 그렇게 돈이 돌고 돌아야 저도 나중에 혜택을 봅니다."
"역시 큰 사람다운 신념이야.사실 나도 남부끄럽지 않게끔 기부를 하고 있다네. 근데 하 의원 앞에서는 너무 초라해지는군."
"자선기금 3,000억 정도 운영하면 제가 청담동을 싹쓸이해도 사람들이 땅장사에 눈이 멀었다고 손가락질은 못 할 겁니다."
미래를 내다본 빌드업이다.
"근데 정말 여당에 천억을 줄 생각인가?"
"제가 왜요?"
"정치자금 약속해 놓고 그냥 입 씻으려고?"
"그거 가지고 지들이 뭐 어떻게 할 수나 있답니까?"
"하긴, 국회의원 할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