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81화
68장 슬기로운 의정 생활(4)
감이라는 것은 미신에 지나지 않을까?
전성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성공한 이의 감이란, 그 성공과정에서 쌓은 수많은 경험들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계산된 것이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수영은 청담동에서도 알아주는 부동산 큰손이다.
심지어 처음에 농장으로 샀던 서락산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그런 이가 빌딩을 사면 안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니,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되는 징조다.
'빌딩? 땅? 등기부?'
대체 어디에 무슨 하자가 숨어 있는 걸까?
순간 퍼뜩 스친 생각이 있었다.
'매매 사기?'
비일비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드물게 일어나곤 하는 게 부동산 사기다.
등기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애초에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등기부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너무 바보 같은 수법.
"알았네.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그냥 이 빌딩을 안 사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너무 아까운 매물이잖나. 한 번 알아보겠네.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으면 포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부동산 중개사 앞에서는 대충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때우고, 계약을 바로 진행하지는 않았다.
회사로 돌아온 전성렬은 사람을 시켜 해당 빌딩에 관해 자세히 조사하도록 했다.
건물 자체에 하자는 없는지, 소유주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등등을 면밀히 살폈다.
사립 탐정까지 고용해서 진행한 조사였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뭔가 제대로 숨어 있는 건지 싶어서 더욱더 집요하고 자세하게 조사했다.
"깔끔한데? 아무 문제도 없어."
"그럼 제 예감이 틀렸나 봅니다."
"그래도 구입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거지?"
"네, 별로 안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혹시 그 꺼림칙한 문제가 지금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걸 그렇게 해석하세요? 그냥 제 혼자만의 감일 수도 있는 겁니다."
"아니지. 부동산에 관한 한 자네의 육감은 그저 미신으로만 볼 수 없어. 자네가 말로 설명하기 힘들 뿐이지, 매물에 관해서 뭔가 안 좋은 판단이 서는 거야."
전성렬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빌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나중에 뭔가 문제가 터지는 것은 아닐까?
"구매는 미루고,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일단 다른 매물을 중점으로 알아보겠네."
"네, 그렇게 하시죠."
전성렬은 다시 압구정동의 다른 매물을 알아봤고, 그때마다 하수영한테 보여주었다.
하지만 하수영은 매번 인상을 찌푸린 채 같은 대답을 했다.
"별로입니다."
"안 내켜요."
"구매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3번째부터는 전성렬도 굳이 힘들게 돈과 노력을 써서 빌딩의 하자를 조사하지 않았다.
알아본 매물 4개 연달아 모두 매수희망자가 쉽사리 찾아내기 힘든 하자가 있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전성렬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빌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압구정동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압구정동의 몰락, 강남부동산 신화가 드디어 무너지는 것인가?
전성렬은 더 이상 압구정동에서 매물을 알아보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청담동 위주로 빌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저 시장에 나온 매물을 찾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희망하는 빌딩소유주를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매매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하 사장! 찾았어! 우리 회사 사옥으로 쓸 만한 땅을 마침내 찾아냈어!"
"청담동에서요?"
"응, 소유주가 원래 팔 생각이 없어서 매물로 내놓지도 않은 건데, 혹시 팔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니까 마침 자기도 현금이 필요해서 아는 사람한테 팔 생각이었대."
불특정 매수희망자를 찾지 않고 특정인에게 매도하는 건수가 얼마나 더 있을까?
"우리가 20억 더 쳐준다고 하니까 그럼 우리한테 팔겠다고 했네. 근데 값이 좀 비싸."
"얼만데요?"
"1,500억. 아무래도 땅이 원체 크다 보니…… 3,000평이 조금 넘게든."
"좋습니다. 제가 사서 빌딩 올릴게요. 프라임컴퍼니에는 세를 주는 것으로 진행하죠."
"그냥 회사 명의로 사면 안 되나? 어차피 회사도 자네 것이지 않은가?"
"제 부동산 법인 이름이 '하수영'인 거 아시죠? 등기부 열람했을 때 제 이름이 딱 찍혀 나오는 게 좋습니다."
"그냥 이참에 프라임컴퍼니 사명을 하수영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가?"
"회사가 100% 제 것도 아니잖습니까. 저는 청담동만큼은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청담동 등기부에 이름 올려놓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잠이 벌떡 깬단 말입니다."
결국 전성렬이 양보하기로 했다.
프라임컴퍼니 명의로 구매하지 않고 하수영이 구매한 다음, 회사에 세를 주는 것으로, 전성렬 입장에선 아깝긴 했다.
아무래도 불필요한 비용이 추가로 지출되는 형태니까.
하지만 등기부에 자기 이름이 찍혀 나오는 걸 원한다는 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회사 명의로 되어 있어도 하 사장 자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데…….'
"근데 이번에는 확인하러 안 가나?"
"확인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청담동 매물은 이미 모두 머릿속에 있어요. 나오는 대로 무조건 사들여야죠."
"막 이상한 예감이 들진 않고?"
"전혀 없습니다."
"거참……."
강남 전체가 아니라, 압구정동에만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전성렬은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품는 자신에게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시작부터 나쁜 감이 드는 물건은 피해가는 게 상책이지.'
결과적으로 청담동 좋은 매물을 찾았으니 다행 아닌가?
본사 소재지가 청담동이라니,지인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빌딩은 철거하고 새로 올려야 할 거 같은데. 본사 사옥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낡기도 많이 낡았고."
"그렇게 하시죠. 돈은 당연히 제가 내겠습니다."
"알았네. 그럼 매입하고 재건축은 모두 회사에서 진행할 테니, 자네는 돈만 내게."
"네."
그렇게 해서 하수영은 23호기를 얻었고, 소유 부동산은 총 21채가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철거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
"하수영 의원님,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우리 기초단체 선거구가 개편되려나 봐요."
"선거구 개편이요?"
"네, 압구정동 일부 혹은 전부가 분리될 전망으로 가닥이 잡히나 봅니다. 압구정동은 하수영 의원님 선거구잖아요?"
보궐로 들어온 윤현수 의원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자세히 소식을 알아보니 선거구 개편은 거의 확정된 사안이었다.
강남구의원 중에서도 선거구가 달라진 의원이 하수영을 포함해서 5명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밥그릇 싸움하는 과정에 광역자치단체, 기초자 치단체 선거구도 겸사겸사 묶여서 변한 것이다.
하수영은 최우석 부의장을 찾아가 문의했다.
"부의장님, 이거 정말입니까? 우리 선거구 변하는 건가요?"
"응, 압구정동 일부가 떨어져 나갈거 같아. 구의원 의석도 2석 정도 더 늘어날 거 같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다음 선거 전에 진행할 거 같은데, 여기서 더 변할 수도 있고."
"압구정동 전체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겠네요."
"그런 이야기도 지금 나온다고 하더군."
하수영은 구의회에서 퇴근하는 길에 전성렬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설명을 듣고 난 전성렬은 작게 탄성을 냈다.
-역시 그래서 우리 하 사장이 그런 찜찜한 기분을 느꼈던 거였군.
"압구정동 전체 혹은 일부가 떨어져 나갈지는 모릅니다. 근데 지도를 보니까 어느 쪽이든 그 빌딩들은 차피 제 선거구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고요."
-그 빌딩들 샀으면 큰일 날 뻔했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앞으로 어디 부동산 매입할 일있으면 하 사장한테 자문을 구해야겠어. 하 사장 촉이라고 하면 철석같이 받들어 모셔야지. 아니, 선거구개편될 걸 어떻게 예감하고 빌딩에 안 좋은 기운이 있다고 딱 집어 낼수가 있나?
"그 빌딩을 사면 안 될 거 같다고 했지 빌딩에 안 좋은 기운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거나 저거나.
"아무튼 이제 경기도의 압박만 해결하면 되겠네요."
-해결이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그냥 본사 소재지 옮기면 그만인걸. 도정부 허가나 승인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설마 소심하게 그런 걸로 보복을 하거나 그렇진 않겠죠?"
-보복하려면 하라고 그래. 그럼 공장 옮기면 그만이지. 대전도 공장 운영해 보니까 나쁘지 않아. 전부 옮긴다고 하면 대전시에서도 엄청 좋아할 거야.
물론 경기도정부에서 특별히 지나치게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굳이 옮길 일은 없을 것이다.
***
하수영은 보람찬 의정 생활에 임하고 있었다.
구의원으로서의 업무는 프리덤을 시켜서 끝낸 다음 보좌관들에게 통보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의원들처럼 조례의안을 검토하느라고 머리를 싸매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프리덤을 통해서 처리할 수 없는 일, 예컨대 의회 출석 및 발언이라던가, 구의회 직원들 밥 사주는 일같은 것 정도만 직접 맡아서 했을 뿐이다.
오늘도 저녁에 직원들을 데리고 어디로 갈까 즐거운 고민을 검토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자 알림이 울렸다.
[하수영 귀하
문화재청 문화재보상관리과 황규진 계장입니다.
귀하께서 넓은 마음으로 기증해 주신 문화재에 대한 발굴이 모두 끝났습니다.
……중략……
하여 가까운 시일 안으로 문화재청문화재보상관리과를 방문해 주시면…….
……중략……
오늘도 평온하고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 이제야 겨우 끝났나 보네."
하수영은 그제야 잊고 있던 서락산문화재가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조선시대 콜렉터의 보물창고가 발견되는 바람에 애써 재배한 송이 농장도 다 버리고 경기도에 다시 새로운 농장을 지어야 했다.
서락산 소유권도 당연히 국가가 거둬 갔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금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유물이 대거 발견된 서 락산 자체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럼 이제 보상금을 결정하는 일만 남았네."
토지 보상금은 받았지만, 문화재보상금은 아직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발굴이 다 끝나고 최종적인 감정이 매겨져야 돈을 주든 말든 할것 아닌가.
-그래? 정말 축하하네. 나도 잊고 있었지 뭔가.
"언제는 보상금으로 떼돈을 받을 거라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시더니."
-그래 봤자 휴민트타워 한 채만 하겠어? 그사이 눈부시게 증식한 자네 자산을 생각해야지.
큰돈이 나올 거라며 호들갑을 떨던 예전의 전성렬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문화재 가치를 떠나서 금값만 따져도 엄청난 가치일 텐데, 정부에서 제대로 보상을 해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게 좀 걱정이군, 문화재청예산으로는 감당이 안 될 텐데 말이야. 이거 설마 자네가 정치인이라는 신분 걸고넘어지면서 무상 기증해 달라고 뻔뻔하게 나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