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79화
68장 슬기로운 의정 생활(2)
프라임컴퍼니는 현재 3개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제1공장은 본래 JM식품의 것이었던 것을 매입해서 가동했다.
제2공장은 경기도 용수시에, 제3공장은 대전에 지어서 가동 중이다.
그리고 회사 본사 소재지는 경기도 새원시로 되어 있다.
즉 국가에 법인세 1억을 낼 때마다. 새원시에는 지방세로 1,000만 원을 또 낸다는 뜻이다. 10억이면 1억, 100억이면 10억이다.
"올해 수입 보면 법인지방소득세만 400억 이상 나올 거라고 하던데."
"상장회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이래봬도 돈 장사 하는 사람이야. 매출, 이익률만 보면 대강 견적 나오지. 또 프라임컴퍼니는 세금신고도 성실히 하는 기업이고 말이야."
"근데 박씨 말도 틀린 건 없어. 올해가 400억이면 내년에는 500억, 이렇게 쭉쭉 성장할 거 아닌가?"
"암, 그렇지. 원래 먹거리 시장 한번 독점하면 엔간해서는 망하기 힘들어."
"프라임컴퍼니야말로 우리 청담이 낳은 '카길'아닌가? 방황은 그만하고 이제 본가로 들어와야지."
카길,
전 세계적인 시장지배력을 가진 곡물 기업이다.
심지어 비상장에 가족들끼리 소유, 경영하는 곳,
"기름장사로 떼돈 긁어모으는 프라임오일도 소재지가 청담인 마당에, 맏이회사인 프라임컴퍼니가 청담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도 없지."
"박씨가 아주 좋은 지적을 했네그려. 근데 경기도지사하고 박씨가 사이 안 좋다는 건 무슨 말인가? 난 처음 듣는데?"
"박씨가 한때 이수문 지사 후원회장도 하고 그랬잖아. 사이 좋았었지.
근데 이수문 지사가 경기도지사 선거 나가면서 뭔가 좀 다뤘었어. 자세한 건 박씨한테 물어보게."
"됐네.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네. 내가 이 말을 한 건 어디까지나 우리 청담, 강남을 위해서한 말이야."
"공장이야 그대로 두더라도 본사소재지는 청담으로 옮기게, 아니, 사실상 본사 역할 하는 사무소는 정작 강남에 있는데 회사 소재지가 경기도라니, 이게 무슨 개그인가."
"예,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하수영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유권자들, 당연히 깍듯하게 받들어 모시는 게 슬기로운 대처 방법이다.
사무실을 나서는 하수영을 최우석이 배웅했다.
"의정 활동은 할 만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네요. 내가 사는 동네 꾸미는 일이다 보니 보람도 있고요."
"요즘 여기저기서 자네에 관해 좋은 이야기밖에 안 들려. 나도 자네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 어린 나이에 장사로 워낙 대성해서 정치는 좀 서투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최우석은 사업과 정치가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르다는 이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래 봬도 오랜 연륜이 있다.
"근데 시의회 쪽에서 탐탁지 않은 말이 조금씩 들려와서 말이야."
"설마 저를 견제한다거나, 그런 겁니까?"
"견제? 아니지. 양당이 자네를 얼른 영입해서 크게 키워야 한다고 욕심을 부리는 거 같아."
"피자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콜라부터 찾네요."
"그렇지? 혹시 괜히 자네가 헛바람 들면 어떡하나 하고 내심 걱정했네."
"어디까지나 임대업, 요식업이 주이고 의정 활동은 부가서비스로 하는 거니까요."
시의회만 진출해도 공직자로서 이것저것 제약을 받게 된다.
"구의회 밖은 위험합니다. 나가지 않는 게 좋아요."
"안심이야."
"원래 동네 골목대장 노릇이 더 재밌는 거잖아요. 보람도 있고요. 전국구로 나가면 여기저기 관리하고 중재하느라 골치만 아파져요."
최우석은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수영레스토랑 본점 가는 건가?"
"네, 마감하는 건 챙겨야지요. 뭐, 막상 가봤자 눈으로만 보고 이거저거 잔소리만 하겠지요."
"그래도 가게는 사장이 얼굴을 자주 비쳐야 문제없이 돌아가는 거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아참."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자네 사무실에 공간도 많이 남아돌고 하지 않나?"
"그렇지요."
"내 의원 사무실을 굳이 새로 임대할 것 없이 자네 사무실에 빌붙었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내 보좌관들도 거의 자네 사무실에 상주해 있고 말이야."
"그렇게 하시죠. 임대료는 안 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노는 구석 칸 내어드리는 건데요."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사용하는 평당 면적으로 계산해서 임대계약 하세나."
"정 그러시면 제 사무실 관리를 대신 해주시는 것으로 임대료를 통치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저도 의원 사무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들릴까 말까 하잖습니까. 정작 부의장님이 제 사무실에 상주하시구요."
"그래도 될까?"
"그렇게 하시죠. 저도 이게 더 편합니다. 뭐하러 계약서까지 써가면서 번잡하게 운영하나요."
둘은 그렇게 합의를 봤다.
***
"사장님, 요즘 장사가 또다시 부쩍 잘되고 있습니다."
이택진 셰프가 상기된 얼굴로 보고 했다.
그는 사실상 본점 부지점장으로서, 하수영이 없을 때면 본점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사장님이 구의원 당선된 것 덕분에 얼굴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 같습니다."
"피해 있길 잘했네요. 가게에서만큼은 구의원이 아니라 매장 오너이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매장 및 주방 정리와 청소까지 다 마친 터라 더는 할 일이 없었다.
하수영은 끄덕이며 직원들을 배웅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퇴근들 하세요."
"네, 사장님, 사장님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직원들이 모두 나간 빈 매장에서, 하수영은 혼자 조용히 오늘 하루를 결산했다.
수영레스토랑의 본점 및 가맹점 매수영오세안의 본점 및 가맹점 매출.
이번 달에 들어오고 나가는 부동산임대업 관련 비용.
빼곡하게 작성된 전자문서의 글자와 숫자들을 흐뭇한 눈으로 자세히 읽었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다시피 입력된 정보지만, 눈으로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벌고, 썼구나."
하루 장사를 마친 본점의 고요한 적막 속에서 숫자를 훑는 것.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그만의 힐링타임이다.
***
상가 빌딩 한 채와 아파트 한 채가 매물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둘 다 주인이 동일인이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에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매로 나왔어요."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부동산중개사, 우형신이 반갑게 맞이하며 설명했다.
"혹시 매도인 재정에 문제가 생겼나요?"
"네, 맞습니다. 임대수익이 별로 좋지 않은 편입니다. 절반 이상이 공실이라서요. 대출금도 워낙 많은 편이구요. 얼마 전에 아들이 큰 사고를 쳐서 그거 수습하느라 급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그럼 오늘 계약서 쓰고 잔금일은 내일이든 모레든, 필요서류 준비되는 대로 하자고 하시죠."
"아이고,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그렇게 하수영은 75세 노인을 만나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잔금일은 내일이든 모레는 가능하다는 말에 매도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수인 양반, 혹시 오늘 당장은 곤란하신가?"
"전 가능합니다. 필요서류는 항상 들고 다녀서요."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준비해 뒀네. 그럼 잔금일을 오늘로 해줄 수 있으신가?"
"그러시죠."
법무사는 호출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달려왔다.
그 자리에서 잔금 지급까지 마신 하수영은 매도인 및 법무사와 함께 은행을 방문해서 대출을 모두 상환하고, 근저당권 말소신청절차 및 소유권이전신청까지 모두 마쳤다.
"그럼 어르신, 부산에서 평화로운 은퇴 생활을 보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하수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매도인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매수인 양반, 이번 보궐선거에 나갔었지?"
"네, 그렇습니다."
"나도 자네를 찍었다네. 자네라면, 우리 청담을 위한 듬직한 지역 일꾼이 되어줄 거 같았거든."
"아이고, 감사합니다. 언제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나는 서울을 떠나니 더 이상 자네에게 표를 줄 순 없지만…… 그래도 항상 지켜보겠네. 나중에 꼭 내가 자네에게 표를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네."
"하하, 과연 그런 날이 오겠습니까? 어르신께서 청담으로 다시 오시거나 아니면 제가 부산으로 내려가야 할 거 같은데요."
"에이, 자네가 대선에 나오면 되지."
"아직 30년은 멀었습니다."
"30년이라…… 그때까지는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군. 20년 정도면 어찌어찌 버텨보겠는데 말이야."
그렇게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하수영은 매매서류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20채를 채웠군."
오늘 매입한 것은 각각 21호기, 22호기.
하지만 4호기(뉴월드 그룹이 먼저 사버린 아트록 부지), 19호기(그라 디에이원 백화점, 아직 소유주가 팔 의사가 없음)가 결번이다 보니, 현직 소유물은 정확히 20채다.
"20이라는 숫자는 아주 길한 의미가 있지. 마치 메이저리거 투수의 20승처럼."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닌가?
하수영은 오늘 자신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
"상이라는 게 요리 파티라니, 너무 소박한 거 아닌가?"
"먹는 게 가장 남는 거고, 가장 사치스러운 겁니다. 사람은 옷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먹을 거 없이는 못살거든요."
하수영은 전성렬과 정서희를 초대해서 청담동 저택 정원에서 바베큐파티를 열었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통돼지를 구경하던 정서희가 물었다.
"그럼 이제 수집한 빌딩이 20채가 되신 거예요?"
"아파트 같은 주택도 포함해서 20채요. 아트락 부지도 빨리 되찾아와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요원하네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지. 돈은 많이 들지만."
"뉴월드그룹 인수라면 접어두시죠. 그런 큰 회사를 인수할 돈이 어딨습니까."
"나노소프트가 미국에서 수영라면 팔아서 번 돈도 엄청날 텐데."
"그거 아직 입금도 안 됐습니다.
미국 나노소프트 계좌에 고스란히 잠자고 있어요."
"그래도 얼마쯤 쌓였는지는 바로바로 확인 가능하지 않나?"
"일부러 확인 안 해봤습니다.모아 뒀다가 한꺼번에 즐기려구요."
"이미 오천만 달러 이상은 남겼을 거 같은데."
"얼마가 남았든 간에 몽땅 청담동건물 사기만도 부족합니다. 뉴월드그룹 인수라뇨,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애초에 멀쩡한 회사를 팔 리도 없지 않은가.
안 팔겠다는 덩치 큰 우량 매물을 강제로 사려면 몇 배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정당한 자본공격이든, 비열한 협잡질이든 간에,
"그래도 청담동 매물이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매년 할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여유가 되는 돈을 쥐고만 있는 것보다는 다른 쪽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정서희가 끼어들었다.
"대기업들 치고받는 레드오션 시장진출은 싫어하시니까, 청담 말고 삼성동이나 압구정동 같은 곳에 나오는 매물도 눈길을 한 번 돌려보시죠? 꼭 청담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주변동은 청담부터 일단 기반을 다져놓고 생각을 해보려고요. 참, 대주주로서 두 분께 질문이 있는데요."
"뭔가?"
"뭔데요?"
"프라임컴퍼니 본사는 게속 경기도에 두실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그 말에 전성렬과 정서희는 서로 마주 보고 씩 웃었다가 하수영을 향해 대답했다.
"안 그래도 청담으로 본사 옮기려고 했네."
"청담으로 이사할 거예요."
"우리 회사가 입주할 만한 빌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