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78화 (278/1,270)

프랜차이즈 갓 278화

68장 슬기로운 의정 생활(1)

김도전 사장은 시공견적을 수정해서 다시 구청과 구의회에 제출했다.

설계 및 건축 퀄리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소한 디테일 변경을 통해 불필요한 예산을 감축했다.

즉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왔다.

하수영이 낸 견적보다는 1억 더 많은 예산이었지만, 그것은 하수영이 의회에서 모든 절약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기들이 나름 쥐어짜 내서 가져온 것치고는 매우 양호하군요. 이 정도면 좋습니다."

"하수영 의원님, 그래도 처음 의원님이 제안한 것보다 1억 원 정도 높은 건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그때 시세나 상황 기준으로 즉석에서 낸 견적이니까요.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히 견적도 바뀌는 게 정상입니다."

"그럼 이렇게 진행을 해도 될까요?"

"네, 저는 괜찮을 거 같은데요. 다른 의원님들 의견도 한 번 물어보시죠."

구성에서 나온 복지사무국장은 그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서 다른 의원들을 돌아봤다.

다들 끄덕이는 것을 보니, 임시정례회에서 별 이견 없이 통과될 듯하다.

"네, 그럼 이대로 다음 임시회에 제출해서 심의받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더 이상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전합의안이었기에, 무난하게 만장일치 가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또……."

구청에서는 아예 민감한 집행사안을 싸들고 의회에 찾아와서 하수영과 논의했다.

보통 의회 산하 위원장 및 위원들과 논의해야 할 사항을 보궐로 들어온 초선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회의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하수영은 그런 행정, 정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모두 앞에서 입증한 데다가, 천문학적인 자산을 지닌 자수성가 재력가였으니까.

그한테 잘 보여두면 나중에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

돈 많은 정치인 동료를 둬서 나쁠건 전혀 없으니.

그리고 하수영은 이권 갈등이 얽힐문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미 확정이 난 사안에 한해서 좀 더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선에서만 그쳤다.

그런 점 덕분에 다른 의원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수영 의원님, 이번 보건소 분소확장 안건 말인데요. 지금 위치는 아무래도 방문 수요를 커버하기 어려우니, 역 북쪽에 신규 설립하는 게 어떨까요?"

보건소 이전이 아니라 분소 하나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하수영이 거주하는 청담동.

원래 분소를 어디에 설치하느냐를 놓고 기존 의원들은 치열하게 눈치 게임을 펼쳤다.

하지만 하수영이 등장한 덕분에 그들은 맘 편하게 손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내가 가지지 못한다면 너도 가지지 못하게 해주지!

그냥 '쟤'한테 줘버리면 너도, 나도, 모두가 마음 편한 거 아니냐?

"에이, 도로 하나 사이에 두고 본 소와 분소가 있으면 구민들이 좋게 보겠어요? 또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 하니 마니 뭐라고 할 겁니다."

하수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청담은 포화 상태입니다. 분소 같은 게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없어요."

공공기관이 하나 더 들어올 때마다 수집 가능한 트로피가 하나씩 줄어드는데, 그걸 용납할 이유가 없지.

그렇게 오늘 하루 의정 일과도 별일 없이 끝났다.

본회의장을 나선 하수영은 1층 로비에서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바로 최미진 회장이었다.

"아이, 하 의원님, 안녕하세요. 오늘 의정 업무는 이제 다 끝나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집이 근처라서 지나가다가 한 번 들렀는데 이렇게 뵙게 될 줄이야.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라도……."

"좋죠. 안 그래도 제가 사기로 했는데 함께 오시죠."

좋다는 말에 밝아졌던 최미진의 얼굴이 급속히 변했다.

"네? 함께요?"

"아, 오늘도 의회 근무하는 직원들하고 저녁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최회장님도 오세요."

"……아, 네. 그럼 저야 감사하죠."

이미 익숙한 일인 듯 의회 직원들이 계단에서부터 내려와서 하수영뒤를 우르르 따르고 있었다.

심지어 구청에서 나온 직원들까지 은근슬쩍 따라붙었다.

"오늘은 어디로 데려가 주신대?"

"저기 앞 K은행지점 2층에 새로 생긴 샤브샤브 집 간대. 이미 예약도 다 해두셨나 봐."

"이야, 오늘도 뱃속에 기름칠 좀하겠구나."

"난 이제 의회 집회날만 손꼽아 기다려져,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잖아."

이제는 다들 익숙한 듯이 자연스럽고 즐거워 보인다.

가게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먼저 식사를 하니, 늦게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직원들도 하나둘씩 들어와서 합류했다.

"하수영 의원님, 의회 직원들에게 매일 이렇게 밥을 사주시는 거예요?"

"매일은 아니고 의회 나올 때만요."

"그게 그거죠. 그나저나 이 많은 인원 데리고 매번 이렇게 좋은 데만 오면 밥값이 엄청나겠어요."

한 끼에 기본 몇백에서 천 이상이 들지 않을까?

최미진으로서는 혀가 내둘러지는 씀씀이였다.

"지역사회를 위해서 중요한 근로 활동을 하는 분들입니다. 밥 한 끼사드리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아요."

"그래도 공금도 아니고 사비로 매번……."

"이 정도 여유는 있어서 괜찮아요. 요즘 매물 나오는 게 없다 보니 통장에 돈만 쌓여가고 있거든요."

식사를 하던 도중 최미진은 분위기를 봐서 용기를 냈다.

"저, 하 의원님. 제가 활동하는 지역시민단체 말인데요, 하 의원님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언제 꼭 한 번 모셔오라고 난리도 아니에요."

"시간 나면 반드시 방문하겠습니다."

"다들 적극적인 정치 참여중이라서 의원님 의정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나중에 시의회나 국회에 진출하실 때에도……."

"시의회는 나갈 생각 없습니다. 지금은 구의회 의정 생활이나 슬기롭게 임하는 게 목표입니다."

"아, 역시. 참된 지역인재셔."

그 뒤로도 하수영은 의회에 출근할 때마다 지역에서 끗발 좀 날린다는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하지만 일상생활이나 의정 생활에는 조금도 방해를 받지 않았다.

권력이나 돈을 향해 모이는 불나방떼를 접한 게 어디 한두 해인가.

그 정도는 주변에도 불편함을 끼치지 않고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관록이 있다.

다만 하수영도 거리를 두는 사람은 있었다.

"하수영 의원님, 구청장님께서……."

"바빠서 퇴근했다고 하세요."

"네?"

"그 양반은 좀 애가 타도 됩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영업정지 처분에 구청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은 없다.

하지만 괘씸죄라는 게 있지 않나?

구청장이 행정업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가맹점주들이 가슴앓이를 겪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 정도 애간장 태우는 것은 약과다.

***

서울 지역구 기초단체조직(여러 구의회) 사이에서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강남구의회에 최연소 기초의원이 보궐로 들어갔다면서?"

"청담, 압구정 지역구라던데?"

"누구 돈 많은 부잣집 아들이 정치 경력 쌓으려고 일찍부터 준비하나 보지."

"근데 그렇게 돈 많으면 일단 해외유학이든 뭐든 공부부터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고교 졸업하자마자 정치부터 시키면 나중에 유권자들이 어떻게 보겠어?"

학력, 학벌은 정치인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스펙이다.

아무리 편견, 차별 없는 정치를 추궁한다고 하지만, 최종학력이 고졸이면 오래 정치하기에는 불리하다.

"돈이 많다던데?"

"많으니까 그 어린 나이에 기초의원부터 시작하는 거겠지."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 많대. 집안이 강남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재벌이라고."

"부동산 재벌?"

"듣자니 강남3구에서 부동산만 3, 4천억 정도 갖고 있다나 봐."

공직자 재산신고한 것만 봐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그 정도까지 부지런하진 않았다.

얼굴 볼 일이 거의 없는 타지역구의원 보궐당선자 재산 내역까지 뭐하러 열람하겠는가.

처음에는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던 소문.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묘한 살이 붙기 시작했다.

"요즘 시의장님이 그렇게나 강남구정을 자주 방문하신다면서?"

"시의장이나 되는 분이 지역자치구하나를 너무 그렇게 싸고돌면 안 좋은 거 아니야? 아무리 자기 지역구라지만……."

참고로 현직 서울시의장의 선거구는 도곡동이다.

"설마 그 돈 많은 어린 초선 구의원 친구, 다음 지방총선에서 서울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건 아니겠지?"

***

하수영은 오랜만에 휴민트타워 의원사무실을 찾았다.

의원사무실에는 수십 명이 넘어가는 지역 유지들이 바둑을 두거나 TV를 보거나 실내 골프를 하는 등, 자기들끼리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최우석 부의장도 그들과 함께였다.

"오, 우리 하수영 의원 오셨는가."

"거참, 며칠 만에 얼굴을 비추시는 겐가? 의원 직원들한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밥 사준다면서."

"뭐? 아니, 우리는 왜 밥 안 사줘?"

"김씨, 우리한테 밥 사주면 그건 유권자 돈봉투 살포야. 의회 직원들 밥 사주는 거하고는 전혀 다르다구."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잖아. 이봐, 하 의원. 난 뭐라도 얻어먹어야겠으니 지금 짜장면이라도 시키게.

얼른!"

"안 그래도 제가 시원한 통참치 생선회 준비했습니다."

하수영이 손짓하자 뒤따르던 직원들이 얼른 들어와서 얼음박스에 든 큼지막한 참치 살덩이를 꺼냈다.

하수영이 칼을 쥐고 횟감을 썰기 시작하자, 다들 정신없이 그 현란한 칼놀림을 구경했다.

"우리 하수영 의원은 진짜 못 하는 게 없구먼."

"키야, 살살 녹는다. 이게 하 의원 참치 매장에서 판다는 그 산지직송무공해 참치회 맞지?"

지역 유지들은 사양 않고 신선한 참치회 맛을 즐겼다.

어느 정도 식사가 진행된 후 문득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하수영 의원, 아니, 하 사장, 내가 긴히 물어볼 게 있네."

"네, 어르신. 말씀하시죠."

"딱히 나 좋자고 물어보는 건 아니고, 일단 그걸 먼저 강조하고 싶어."

"그럼요. 저를 위해서 물어보신다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프라임컴퍼니 본사는 언제까지 경기도에 둘 건가?"

"……음."

"지금 본사 주소지가 경기도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본사 역할은 강남사무소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네.

경기도 본사라고 해봤자 실질적으로는 공장 컨트롤타워만 하는 거라고."

"네, 그렇습니다. 경영진과 임직원들도 강남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합니다."

"보니까 프라임컴퍼니 연 매출이 20조가 넘을 거라고 전망되던데 말이야."

"아마 그 정도쯤 될 거 같습니다."

"영업이익률 8% 잡고, 그럼 영업이익 1.6조에 법인소득세가 대충 4,000억, 지방세가 400억쯤 되겠어."

"그렇게 되겠네요."

"그 400억을 우리 청담, 강남에 내야지, 왜 애?은 경기도에 내고 있나? 이거 다음 선거에서 분명히 말나올 걸세. 프라임컴퍼니가 우리 하수영 의원 소유라는 건 신고재산 내 역만 열람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거니까."

"정말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수영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금 나온 지적은 지역 유권자이자 지지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정당한 조언이었다.

"공장은 두더라도 본사 소재지는 이제 그만 청담으로 옮기게. 경기도에 공장 큰 거 두 개나 줬으면 됐잖은가."

옆에서 다른 지역 유지가 히죽이면서 참견했다.

"하수영 의원, 박씨 말이 구구절절이 좋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자네 회사니까 본사 소재지는 이제 청담으로 옮기는 게 맞지."

우리 지역에 뿌리를 내려!

지역 유권자로서 지역 정치인에게 당연히 할 수 있는 요구다.

"근데 하 의원, 이건 알아두고, 박씨가 지금 경기도지사하고 사이가 안 좋아. 사심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이봐, 김씨! 내가 뭐 내 이익 보자고 이런 말 하나? 다 이게 우리 청담을 위하고 강남구를 위한 뼈 있는 조언이야!"

"겸사겸사 경기도지사 골탕 먹는 것도 좀 보고 말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