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77화 (277/1,270)

프랜차이즈 갓 277화

67장 밥 잘 사주는 부자 의원(5)

의회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굳었다.

비싼 세금으로 왜 직원들이 회를 사먹느냐며 민원을 넣은 이의 신분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최미진 민원인이 왜 의장님하고 살갑게 인사하고 있어?"

"서로 아는 사이이신가?"

"별로 살가운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의장님 긴장해서 쩔쩔매시는 거 봐."

"근데 의장님이 지금 '최미진 회장님'이라고 하지 않았어?"

회장님이란 호칭은 괜히 불안감을 심어준다.

그때 직원 한 명이 아 하고 말했다.

"아, 저분! 저 알아요! 도곡동 하이네츠 아파트 부녀회장님이시잖아요."

"아파트 부녀회장? 그럼 전업주부일 텐데 의장님이 왜 저렇게……."

"거기 저번에 재개발해서 지금 1만세대 이상 꽉 들어찬 대단지인데, 거기 부녀회장이면 엄청 끗발 센 거죠. 1만 세대 표심을 움켜쥐고 있는거나 다름없는데."

한 세대를 평균 3인으로 가정해도, 3만 표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이다.

구의회 입장에서는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잠깐, 도곡동 하이네츠 아파트면……."

"의장님 지역구예요."

"……의장님이 쩔쩔맬 만하시네요."

"남편분이 서울시의회 의장이시라고."

"……."

쩔쩔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관계인데?

조용히 정보를 교환한 의회 직원들은 최대한 그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했다.

한편 조덕선 의장은 최미진 앞에서 애써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요즘 구의회 재정이 많이 넉넉한가 봐요. 저번에는 단체로 비싼 참치회식 하더니, 이번에는 한식 뷔페까지. 여기 두당 7만 원은 넘을 텐데…… 술까지 하면 이게 다 얼마야."

"그게 말입니다. 어떻게 된 거냐면……."

"뼈 빠지게 벌어서 세금 내면 뭐해요. 이렇게 예산이 줄줄이 새고 있는데. 진짜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니까. 안 그래요?"

"최 회장님, 그러니까 그게요………."

하수영을 포함한 세 초선 구의원들은 의아해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저분이 누구신데 의장님께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시는 거죠?"

"근데 얼핏 듣자니 우리가 비싼 거 먹는다고 한소리 하시는 거 같은데……."

거리가 있다 보니 최미진이 조곤조곤 뭐라고 갈구는지 확실히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대충 회식으로 세금 낭비, 뭐 그런 타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초선 윤현수 의원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회식에 참석한 자신의 보좌관이 조용히 보내온 톡 메시지였다.

내용을 확인한 윤현수는 부랴부랴 하수영과 동기인 박선주(초선 41세) 앞에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하수영 의원님, 박선주 의원님, 저기 저분이 그러니까 누구냐면요……."

자세한 설명을 들은 박선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고, 하수영은 피식거렸다.

"아, 난 또, 조용히 밥 먹으면 심심할까 봐 반찬거리 하라고 이런 이벤트를 열어주셨네."

"네? 이벤트요?"

하수영이 최미진을 향해 다가갈 기세이자 윤현수가 기겁을 해서 물었다.

"하수영 의원님, 저기 가셔서 뭐하시려고요? 그냥 모른 척하시는 게 낫습니다."

"엄연히 돈은 제가 냈는데 세금 타령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을 순 없습니다. 이건 도곡동의 침략이에요.

청담동 주민으로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도, 도곡동의 침략이요?"

"제가 지역감정 조장은 원치 않지만 걸어오는 도발을 그냥 넘기지는 않습니다."

"하수영 의원님!"

둘은 기겁을 했지만, 이미 하수영은 최미진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영향력 있는 유권자이고 이쪽은 구의원인데, 저래도 되는 거야?'

'이런 작은 시비가 나중에 국회 진출할 때 걸림돌이 되는데…….'

물론 객관적으로는 하수영이 최미진보다 끗발이 훨씬 높다.

하지만 큰 정치를 할 사람 아닌가.(라고 착각하고 있다)

유권자와 시시비비가 붙어서 좋을게 전혀 없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최미진 회장님."

의외로 하수영은 최미진 앞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한창 조덕선 의장을 웃으면서 갈구던 최미진이 의아해서 하수영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누구?"

"아, 최 회장님. 이쪽은 이번에 초선으로 구의회 들어온 하수영 의원이라고 합니다."

"아하, 초선 의원이시구나. 많이 젊으시네요?"

"예, 이제 만으로 스무 살입니다."

"……만 스무 살이라고요? 그럼 피선거권 연령 제한에……."

"네, 아슬아슬하게 넘었죠. 아마 전국 최연소 정치인일 겁니다."

하수영을 보는 최미진의 눈빛이 다소 달라졌다.

개정된 피선거권 자격은 만 20세.

하지만 미성년자 딱지를 벗자마자 정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유권자들도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후보자를 불신으로 바라보는 터라, 이십 대 초반이 당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돈이 좀 있나 보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강남구 의원이 됐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 팍팍 지원받고 있다는 것.

자연히 목소리가 상냥해졌다.

"저번 보궐 선거로 들어오신 모양이네요. 구의원님 얼굴이라면 제가다 꿰고 있는데, 처음 보는 거 보니 말이에요."

"아직 보궐 끝난 지 몇 주도 안 됐으니까요. 그래서 당선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의미로 제가 오늘 의회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여기로 모신 겁니다."

"아…… 설마 이거 우리 하수영 의원님께서 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최미진 입장으로서는 민망해진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꿈쩍않았다.

이 정도 가지고 민망해할 정도로 멘탈 관리가 안 되면, 1만 세대 아파트 부녀회 따위는 못 한다.

오히려 그녀는 하수영의 배포에 놀라워했다.

"이 많은 인원들한테 다 쏘시려면 한 끼에 천만 원은 넘게 나올 텐데……."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한 명당 8만 원짜리 뷔페.

심지어 다들 술도 마음껏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즐겁게 쏘겠습니까? 의회 사무예산은 단 1원도 지출하지 않았으니, 유권자님께서는 전혀 불안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조덕선 의장이 그제야 부리나케 끼어들었다.

하수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미진을 위해서였다.

저 둘의 체급 차이가 얼마인데, 자칫 최미진이 그 앞에서 실수할까 우려해서였다.

"자자, 우리 최 회장님. 제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올릴 테니 받아주시지요."

"어머, 전 맥주 안 먹는 거 알잖아요. 그나저나 우리 하수영 의원님하고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렇게 젊으신 분께서 우리 강남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 비전을 공유하고 싶어요. 혹시 소속당이 어디에요?"

당연히 여당이겠지, 하고 최미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무소속입니다. 소속 정당은 없습니다."

"네? 무소속이라고요?"

"예. 최우석 의원님의 권유를 받아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됐거든요."

"최우석 부의장님?"

최미진의 눈이 놀라움으로 살짝 가늘어졌다.

"최 부의장님하고 친분이 있으신가요?"

"바둑 친구입니다. 그분이 저희 집에서 살다시피 하시죠."

"그럼……."

최미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집이 좀 사나 보다, 생각했는데 말을 들어보니 좀 사는 수준이 아닌 거 같다.

자신이 알기로 최우석 부의장은 개인 자산이 수천억이 넘어가는, 청담동에서도 알아주는 지역 유지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최미진은 최우석 부의장을 발견했다.

그는 멀찌감치 떨어진 채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앞에 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이쪽을 구경하듯이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일어나 다가왔다.

"최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네, 부의장님, 간만에 뵙습니다."

"우리 하수영 의원하고는 이야기를 좀 했습니까? 어떤가요? 우리 강남구를 위해서 큰일을 할 인재라는 비전을 좀 받았습니까?"

"아, 네. 젊지만 그래서 더 정말 지역에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진균 의원은 잘 지냅니까? 요즘시의회에 예산 누수 때문에 말이 많던데요."

정진균 시의원,

현직 서울시의회 의장이자 최미진의 남편 이름이었다.

"안 그래도 그이가 골치가 아픈가 봐요. 시의원들도 잘 협조를 안 해주고요. 부디 부의장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일개 기초의원이 무슨 힘이 있다고요. 지방의원하고는 체급이 다른데요."

"아이, 우리 최 부의장님을 누가 일개 기초의원으로 보나요? 마음만 잡수시면 언제든 국회의원도 하실 역량이 있으시면서,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일부러 희생하고 계신 거잖아요."

"참, 저번에 민원 넣은 거 들었습니다."

"아, 그거요……."

"오해가 있었어요. 의회 공금으로 밥 먹은 게 아니라 우리 하수영 의원이 첫 출근이라고 자기 사비로 쓴 겁니다."

"어머나, 그랬군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부의장님도 밥 많이 사신다고 들었어요."

"우리 하수영 의원이 손이 아주 크고 인심이 좋아요. 그 값비싼 식재료를 가득 넣은 라면을 한 그릇에 고작 35,000원에 파는 거 보면 알지 않습니까?"

"네? 라면 35,000원이요? 설마……."

"혹시 최 회장도 수영라면 좋아합니까? 난 그거 없어서 못 산다오."

"세상에나."

최미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눈동자를 돌려 하수영을 바라봤다.

"하수영 의원님이 수영레스토랑 주인이었어요?"

"지금 구의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도 수영레스토랑 가맹점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번번이 심사에서 떨어지기만 했어요."

"하겠다는 사람은 많고, 매장 개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이러다가 강남3구 티오 다 차버리면 어떡하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 프랜차이즈 사업주분이 있었을 줄이야."

하수영을 바라보는 최미진의 눈동자가 부드러워졌다.

"하수영 의원님, 언제 우리 아파트단지 한 번 발걸음해 주세요. 입주민들끼리 나름 소소하게 지역시민단체 활동하고 있는데, 오셔서 얼굴도 비치시고 좋은 말씀도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요. 시간 나면 언제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꼭 오셔야 해요, 꼭이요!"

최미진은 손을 덥석 잡고 간절히 말했고, 조덕선 의장은 뭔가 자괴감이 들어서 바라봤다.

자신 앞에서는 언제나 도도하고 거 만하기 그지없는 저 강남아파트 부녀회장이 저 두 사람 앞에서는 저리 깍듯할 줄이야.

하수영과 최우석, 최미진은 자리 하나를 잡고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웃고 떠들었다.

최미진 일행도 슬금슬금 자리 하나둘씩 차지하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덕분에 의회 직원들은 날 선 분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었다.

"하수영 의원님과 최우석 부의장님이 배려심이 넘치시네. 가만히 놔둬도 되는 걸, 우리가 눈치 보여서 밥 제대로 못 먹을까 봐 그걸 커버해 주시네."

"역시 밥 잘 사주시는 부자 듀오다워. 체하지 말고 편히 먹으라고 세심하게 신경까지 써주시고."

"최미진 회장님이 구의원들 앞에서 저렇게 나긋나긋 대하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아."

"남편이 서울시의회 의장이잖아. 정진균 시의원. 원래 최우석 부의장님 빼고는 다 자기 아래로 보시는 분이야."

한편 구청장은…….

"하수영 의원님은 아직 최미진 회장 일행하고 이야기 중인가?"

"네, 구청장님."

"어떻게 잠깐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구청장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음식점 위생 및 건물화재 안전관리 과잉단속 때문에 피해를 본 최우석의 지인이 하수영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그 점을 사과하고 진정성있는 관계로 거듭나고 싶은데, 도무지 자리가 안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남들 눈치도 있는데 무턱대고 다짜고짜 그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고…….

"사과를 하긴 해야 하는데."

애달픈 구청장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최미진 일행의 웃음소리만 크게 울렸다.

"진상 주민이라는 평이 자자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 같던데요?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웃음도 잃지 않고."

"그러게 말이야. 조덕선 의원이 유권자 마음 다독일 줄을 모른단 말이지."

"청담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선 건데 그럴 필요도 없었네요. 제가 너무 과민반응했나 봅니다."

"진균이 그 친구도 아까워. 우리 지역구였으면 내가 팍팍 밀어줬을 텐데, 시의장 하면서 이리저리 치이느라 살만 빠졌어요."

"전 경기도 농장 관리하러 이따가 내려가 봐야겠습니다. 내일 새벽에나 올라올 거 같네요."

"아이구, 쉬엄쉬엄하게. 우리 하수영 의원이 가만 보면 구의회에서 가장 바쁘고 치열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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