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76화
67장 밥 잘 사주는 부자 의원(4)
"할 일 없는 사람들인가 보네요."
하수영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윤현수 구의원(보궐당선, 37세)가 살짝 초조한 듯이 말했다.
"그래도 저대로 두면 괜히 민심이 이상한 쪽으로 퍼지지 않을까요? 구의회 사무비가 아니라 사비로 사먹은 거라는 것 정도는 언급을 해야……."
"이런 소소한 것까지 초반부터 너무 달려들면 자칫 일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그냥 놔두죠. 어차피 우리가 나중에 국회로 나갈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 언젠가는 국회로 나가고 싶은 마음인데요?
윤현수는 그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상대는 자신보다 16살이나 어리지만, 자산은 16,000배쯤 차이가 난다.
'우리 하수영 의원님한테 잘 보여야지.'
이미 그는 16살 연하의 초선 동기 의원을 마음속에서부터 깍듯하게 의원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자자, 우리 임시 집회나 들어갑시다."
마치 7선 국회의원이 국회 임시총회를 준비하듯이 산뜻한 발걸음을 보고, 두 초선의원은 속으로 조그많게 감탄했다.
'역시 사람이 돈이 많으니까 처음하는 의원 활동도 수십 년 이상 해온 것처럼 자연스럽구나.'
보궐 이후 첫 임시회.
의외였던 것은 강남구청장 도태식이 의회 임시회에 출석했다는 것이 중요한 의결 사항이 있으면 구청장이 출석해서 연설을 하기도 하지만, 오늘 임시회 안건 중에 특별한 것은 없는데?
구의원들은 바로 깨달았다.
'하수영 의원 때문에 왔구나.'
강남구청장도 바보는 아니니, 지금쯤이면 하수영이 신고한 재산 목록을 확인했을 것이다.
'부동산만 1조 원이 넘어가니 놀라서 헐레벌떡 뛰어왔겠지.'
'작년에 거래한 부동산만 1조 3,358억 원이라는 것은…….'
'부동산 관련 세금만 1,000억 이상냈다는 거니까.'
프랜차이즈 가맹점 본사를 운영하면서 내는 지방소득세도 강남구 예산으로 잡힌다. 거기에서 나오는 세금도 엄청나다.
'수영레스토랑이 일반 매장, 배달전문 매장 합쳐서 본사가 한 달에 800억,900억 정도 번다고 했지, 아마?'
'레스토랑이 구에 내는 지방소득세만 일 년에 200억은 거뜬히 넘겠네.'
'부동산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재산세도 계속 낼 테니까…….'
이게 정녕 한 개인이 일 년에 내는 세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프라임오일컴퍼니도 주소지가 청담동이잖아?'
'프라임컴퍼니 본사가 경기도에 있다는 게 강남구 입장에서 천추의 한 이로군.'
즉 하수영은 강남구의회 캐스팅보트를 좌지우지하는 돈 많은 무소속의원이기 이전에, 구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고 있는 '고객'이기도 하다.
그런 고객 앞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이는 자리라서인지, 구청장은 어느 때보다 들떠 보였다.
중요한 안건 회의가 아니면 보통 의회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사람인데…….
보궐 이후 첫 임시회라서인지, 별다른 것은 없었다.
몇 가지 조례 제정, 구민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논의가 집행되었고, 일부는 가결되기도 했다.
안건이 진행될 때마다 구청장이 발언권을 얻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에 설립하기로 한 구민문화센터의 공사비는 420억 원으로 추정되며, 완공 시 우리 강남구 노인분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청결한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이며……."
도태식 구청장은 설명을 하면서 연신 하수영을 힐끔거렸다.
자신의 설명을 듣는지 마는지, 시선은 딴 곳으로 향해 있는 게 내심 야속하기도 했다.
"그렇군요. 구청장님, 설명 잘 들었습니다. 혹시 의원님 중에서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질문 있습니다."
그때 하수영이 손을 번쩍 들었고, 구청장은 희색이 돼서 그를 바라봤다.
"예, 하수영 의원님, 어떤 점이 궁금하십니까?"
"구민문화센터 계획을 훑어봤는데, 공사비가 이상합니다. 이 정도 건축물이라면 405억 정도면 충분히 지을 수 있을 듯한데, 15억이라는 돈이 왜 더해졌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예?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제가 아니까요."
"……."
"……."
"저도 소싯적에 굴착기 좀 몰아봤는데요. 설계도와 세밀건축계획을 훑어봤습니다. 이 정도면 405억이면 충분해요. 무턱대고 예산을 깎자는 게 아닙니다. 시공업체에서 너무 과하게 부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요."
"후, 훑어봤다고요?"
구청장은 물론이고 다른 구의원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소싯적에 굴착기를 좀 몰아봤다는 건 뭐고, 잠깐 훑어봐서 알았다는 것은 또 뭐야?
평범한 21세 초선 구의원이 저런 말을 했다면 다들 면박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돈 많기로 유명한 청담동 유지 출신 부의장과 친한 데다가, 구에 막대한 세금을 내는 시민이다.
당연히 반론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저, 하수영 의원님. 센터 시공예산은 면밀한 건축계획과 이중감사에 따라서 엄격히 책정된 겁니다. 15억이나 되는 돈을 빼돌릴 수는 없어요."
"빼돌린 건지, 아니면 그냥 예산을 잘못 잡은 건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요. 다음 임시회에 낙찰된 시공업체 경영진을 소환해서 정식으로 청문하고 싶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마침 시공업체 사장이 의회에 와 있으니, 이참에 불러서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그럼 좋죠."
구청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담당 책임자와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하수영도 납득을 할 것이다.
자신 또한 안전하게 이 난감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고, 센터건설사업 때문에 의회에 방문해 있던 건설사 사장은 영문 모른 체 불려왔다. 동행한 회사 이사들도 함께 출석했다.
"김도전 사장님, 신규 구민문화센터 공사비 420억 원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우리 하수영 의원님의 지적이 있어서요. 그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과도하게 책정되다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김도전 사장은 억울하다는 듯이 반문했고, 그때 하수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리덤, 대조자료 준비해라."
-네, 마스터.
곧바로 흰 스크린에 서류 화면이 떠올랐다.
시공업체에서 입찰 시에 제출한 건설계획서류였다.
서류 곳곳에는 빨간 줄이 쫙 그어져 있었고, 그 옆에 정정된 숫자가 쓰여 있었다.
"편의상 서류에 기재된 자재 넘버링으로 부르겠습니다. 여기 A31 자재 같은 경우, 제출서류에 적힌 가격보다 국제시세가 0.02% 더 높지만, 지금 경기도 H업체 공장에 있는 기재고의 경우 오히려 0.2% 더 싸게 매입할 수 있으며……."
"CB03 마감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필요한 수량의 예측이 과다하게 되었습니다. 아, 설계는 잘못된 게 없습니다. 제가 일단 임시로 그린 조감도를 보여주십시오."
완공 건물 실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리얼한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오자, 김도전 사장은 물론이고 구의원들도 입을 떡 벌렸다.
저게 정말 CG라고? 미래에 가서 찍어온 사진이 아니라?
"E091 도료의 경우도 일본제가 아니라 국내업체인 칼고스 회사 것을 채택하면 더 좋은 성능에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타워크레인도 기재된 회사보다는 부산의 B사에 임대를 의뢰하는 것이 더 싸고……."
거의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김도전 사장은 물론이고 건설회사 이사들은 사정없는 팩트 폭격에 두들겨 맞았다.
반박을 하고 싶어도 모든 지적 사항에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조목조목 설명하니,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아주 반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K01 자재 같은 경우는 저희 회사가 계산한 수량이 좀 더 정확합니다."
"그래요? 다시 한번 계산기 두들겨 볼까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시뮬레이션 계산까지 돌려서 생생하게 보여주니, 김도전 사장은 할 말을 잃을 따름이었다.
수준 지적, 그리고 그 지적의 정당성을 알아봤다는 것 자체가 그가 유능하다는 증거였다.
다른 의원들은 지금 무슨 대화가 이뤄지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까.
'하수영 의원이 뭔가 가격을 깎았다.'
'김도전 사장이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전혀 못 한다.'
'그럼 하수영 의원의 말이 맞나 보다.'
대충 이 정도로만 파악할 뿐이었다.
'김도전 사장이 장난을 치려고 한건 아닌 거 같다.'
'그냥 입찰회사가 놓친 걸 하수영의원이 잡아낸 거 같은데?'
40분이 넘어가자, 김도전 사장이 마침내 항복을 선언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존경하는 구청장님, 의장님, 아무래도 저희 회사가 견적을 내는 데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정하고, 깊이 사과드립니다."
"악의는 없어 보입니다. 단지 일처리가 좀 더 세심하지 못했을 뿐이 죠. 그래도 다른 업체들보다는 견적을 잘 내신 게 맞으니만큼, 제가 지적한 사항을 반영해서 시공비를 절 감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다 우리 구민들이 낸 세금으로 짓는 문화센터인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즉석 청문회는 시공업체의 전면적 항복을 부른 채 종료되었고, 구의원들은 하수영을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괜히 젊은 나이에 사업가로 성공한 게 아니었네.'
'아주 그냥 숫자 귀신이네, 귀신.'
***
하수영은 구의회 의원 사무실에 남아서 처리해야 할 업무를 모두 손봤다.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모든 업무가 다 끝났다. 그마저도 설렁설렁한 것이다.
복도로 나와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 윤현수 의원님, 커피 한 잔 드시렵니까?"
"아닙니다. 저도 있습니다."
윤현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캔커피 두 잔을 흔들어 보였다.
"누구 마실 분이 있으셨나 보네요."
"실은 하수영 의원님하고 마시려고 했는데…… 이미 드시고 계시군요."
"그럼 주시죠. 제가 먹을 걸 좋아해서요. 이건 벌써 다 먹었거든요."
"아, 그럼 드시죠."
윤현수 의원은 기쁘게 캔을 건넸고, 하수영은 캔을 따자마자 단숨에 털어 넣었다.
"워, 원래 그렇게 빨리 드십니까?"
"네, 홀짝홀짝 먹는 건 체질에 안맞아서요."
"아하, 그러시군요. 사실 아까 임시 회에서 정말 감명 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사판에서 그렇게 잔뼈가 굵은 사람을 팩트와 증거로 제대로 반박도 못 하게 몰아붙이시다니요.
오늘 임시회를 위해서 정말 준비를 많이 하셨나 봅니다. 같은 초선 의원으로서 부끄럽습니다."
"그냥 즉석에서 캐치하고, 자료 만든 건데요?"
"……네?"
"15억짜리 예산 미스 짚어내는 데 뭐 준비라고 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그 정도야 숨 쉬듯이 하는 거죠."
"……아하하."
윤현수 의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수영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곧 의회도 전체 퇴근시간인데, 직원분들 모시고 회식이라도 하러 갈까요? 제가 사겠습니다."
"회식이요?"
"네, 의원분들도 전부 함께 가시죠."
"그, 그럼 제가 가서 다른 의원님 들께 말씀 전해 올리겠습니다!"
윤현수 의원은 수행 보좌관이라도 된 것마냥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하수영 의원님이 한턱 쏘신답니다!' 라고 알렸고, 의원은 물론이고 의회직원들까지 전부 환호하며 합류했다.
"프리덤, 가깝고 맛있는 가게 좀 찾아봐."
-도보로 80미터 거리 안에 한식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마침 단체예약이 당일 취소되는 바람에 가게 분위기가 지금 말이 아닙니다.
"됐네. 바로 예약 잡아."
전 국민이 프리덤을 사용하니까 이런 점이 편리하다.
프리덤은 곧바로 단체 예약을 잡았고, 갑작스럽게 당일 취소된 단체예악에 망연자실해 있던 가게 사장은 하늘이 도왔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물론 가게 사장의 프리덤은 이렇게게 설명했다고 한다.
-저 나름대로 예약 취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당일 이곳으로 올 의향이 있는 손님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역시 프리덤, 너밖에 없구나! 고맙다!"
-그렇다면 유료스킨 구매라도 좀 해주시면 개인비서 서비스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겁니다.
"알았다! 제일 비싼 걸로 지금 질러줄게!"
수십 명이 넘는 의원 및 의회 직원들은 한식 뷔페를 거덜 낼 정도로 먹어댔다. 하수영이 술도 아낌없이 먹어도 된다고 했기에 다들 거침이 없었다.
가게 사장은 대타로 들어온 단체 손님들이 더 많은 매출을 올려주자 무척 기뻐하며 프리덤 유료 스킨을 추가로 결제했다.
다들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무렵이었다.
"어? 조덕선 의장님 아니세요?"
"아, 최미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덕선 의장은 아는 얼굴이 인사하자 벌떡 일어나서 정중히 인사했다.
태도를 보아하니 영향력이 상당히 높은 지역 유지인 모양이었다.
"아하, 지금 의회 회식 중이시구나?"
아주 살짝 비꼬는 기색이 담긴 듯한 음성에, 몇몇 직원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최미진? 맞아요! 구 세금으로 비싼 회 배달 시켜먹는다고 항의했던 민원인 이름.'
'뭐? 저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