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75화
67장 밥 잘 사주는 부자 의원(3)
'당신, 진짜 우리 효주 환생이라도 되는 거야?'
하수영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무수한 인연의 반복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반려.
성만 다르고 같은 이름에, 환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같이 닮은 얼하지만 둘이 서로 별개의 사람이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과거를 그려내는 추억을 대하듯이 해왔다.
억겁의 세월로 다져진 평정심을 몇 마디 말로 한순간 흔들어놓을 정도라니.
정말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의 환생, 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왜 그렇게 놀라요? 무안하게."
"……아닙니다."
"내가 너무 나쁜 여자 같잖아요. 그럼 슬슬 줄까요?"
"뭘요?"
"빠져나갈 틈이요. 지금 안 주면 수영 씨 그대로 쓰러질 거 같은데."
"제가 왜 쓰러집니까?"
"지금 안 쉬고 있잖아요. 숨."
그제야 하수영은 자신이 줄곧 호흡이 멈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호흡을 내뱉었다.
상쾌한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오며, 머리를 한결 맑게 만들었다.
장효주는 옆에 앉은 자세 그대로 술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았다.
보고 있던 다리를 푼 그녀는 먼저 쇼파에서 일어나며 손가방을 챙겼다.
"너무 놀라지 말아요. 당장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니까."
"……."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건 이제 슬슬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영 씨도 저한테 마음이 있는데 제 도도한 이미지 때문에 잠가만 두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마음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아직 본인도 모르시는 것 같네요."
장효주는 즐거운 듯이 조용히 웃으며 그의 어깨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모른 체해도 돼요.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도 돼요.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걸, 어디 무의식 한 구석에라도 쑤셔 넣어둬요. 그래야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대비할 수 있잖아요?"
"결정적인 순간이요?"
"여기 식사 맛있었어요. 다음에는 제가 살게요."
장효주는 손 인사와 함께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등을 돌려 또각또각 걸어갔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하수영은 다시금 심호흡을 토했다.
"순간 설겠네. 어휴."
-아들아.
"깜짝이야! 아버지,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기가 있기입니까?"
-네가 감각을 공유해 준 덕분에 방금 일어난 일을 다 봤단다.
얼마나 놀랐으면 저도 모르게 은하신목, 주신 아버지하고 의사소통을 열어두었을까.
-그에 관해서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단다.
"뭔데요? 설마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드니 놓치지 말고 잘해보라는, 뭐 그런 건가요?"
-지금 설겠지 않았느냐?
"……조금은요?"
-막 그 여자와 결혼해서 그려질 행복한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촤르륵 펼쳐지지 않았느냐?
"그랬었나……? 조금은 그랬던 거 같기도 하네요."
-그때가 제일 위험한 순간이란다. 아들아.
"네?"
-살다 보면 이 여자가 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팍 하고 꽂힐 때가 있어요. 그때가 인생 최대의 위기이니, 그 순간을 잘 견디고 넘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어요.
"아버지는 손주가 보고 싶지 않으신가 봅니다?"
-손주? 보고 싶지. 하지만 우리 아들은 너무 일러요. 아직 프랜차이즈갓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한 입신공부에 한창 정진해야 할 때에, 연애는 무슨 연애!
"역시 그거 때문이군요."
-연애 따위는 나중에 입신공부 마치고 훌륭한 주신, 아니 프랜차이즈갓이 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그때가 되면 저런 여자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아리따운 여신들이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을 거란다.
"걱정 마세요. 저도 연애를 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수영은 속으로만 조그맣게 '이번 생은요.'라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혼잣말이기에 아버지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나선 거야. 너 이놈아, 꼭 그 여자들하고 있을 때면 너도 모르게 의사소통을 열어제낀단 말이다. 얼마나 좋고 설레면 그러겠냐고, 이 아버지가 걱정이 태산이에요, 태산!
은하신목은 하수영의 눈과 귀를 통해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
바로 신어, 말로써 품은 의지를 구현하는 주신의 권능을 통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하수영 생각에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 일찍 가르친 것 같지만…….
-신어 권능 제어가 너도 모르게 흔들릴 정도면, 그 여자들한테 네가 정말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인 게야!!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잠깐, 그 여자들이라고요?"
-그래, 네 밑에서 일하는 그 여자 말이다.
'정서희 부사장…….'
하수영은 조금 당황했다.
'둘 다 예쁘고 매력 넘치는 여자들인 건 맞지만.'
객관적으로 둘이 매력 넘친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은 사랑이나 연애를 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은 그에 대해서 너무 지치고 권태기마저 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10번 정도 환생을 하고 난 뒤라면 모를까, 이번 생은 편안하게 농사나 지으면서 은퇴 라이프를 즐기려고 했는데.
-아들아, 지금은 연애질을 할 때가 아니란다. 하루라도 부지런히 수양을 쌓아서 프랜차이즈 갓갓이 되어야 한다! 알겠느냐!
"……지금 갓갓이라고 하신 거 같은데요?"
-지금 그게 중요하니! 10조 분의 1이라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는 우리 아들이 다른 데 마음을 빼앗기게 생겼는데! 여자는 프랜차이즈 갓이 되고 나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네, 알았어요. 여자한테 안 홀릴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요즘 신어 수련은 왜 이렇게 소홀한 거냐? 엘릭서로 신체를 탈바꿈하고 신어 수련으로 영혼을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프랜차이즈갓을 향한 여정을 인내할 수 있는 법이거늘!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성과가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럴 뿐이죠."
-거짓말하지 말거라, 아들아!
***
프라임컴퍼니는 현역 장병을 상대로 한 황금비단우산버섯 무료 배송서비스를 실시했다.
수혜자는 어디까지나 현역 병사, 즉 부사관 이상의 계급은 해당 사항이 없다.
군부대를 통해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병사 개인이 병적증명서 전송을 통해서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다.
"근데 한 달에 5kg은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휴가 중이 아닐 때에는 가족들이 먹으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넉넉하게 주는 거랍니다."
"아, 그렇구나. 역시 우리 회사는 마음 씀씀이가 아주 크네요."
살짝 큼지막한 버섯이 50g 정도 된다.
즉 5kg은 살짝 큼지막한 버섯 100개 분량이다.
하루에 버섯 약 3.3개를 먹을 수 있는 양이니, 매끼마다 버섯 1개씩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옛날에 마트에서 황비버섯 5kg 사려면 50만 원은 줘야 했는데 말이에요."
"50g짜리 황비버섯라면이 1,400원이니까 라면 사서 버섯 내용물로 모으려면 그래도 14만 원은 줘야 돼."
"60만 국군 중에서 간부 이상 빼고 병사 수만 대충 57만 명으로 잡으면……. 한 달에 2,850톤이네?"
"원래 군납 예정이던 물량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오히려 무상으로 주는 거잖아? 역시 프라임컴퍼니는 혜자기업이야."
"큼지막한 황비버섯 듬뿍 넣어서 겨우 그 돈 받고 파는 거 볼 때부터 알아봤어. 진짜 친사회적인 기업이다."
한 번 병적을 증명하면, 전역예정일까지 별다른 조치 없이 꾸준히 버섯을 받을 수 있다.
의병제대, 의가사 제대의 경우에도 본래 복무했을 예정일까지 버섯을 지급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만기제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군 복무를 했었다는 것에 대한 기업으로서 감사 표시다.
복무 도중 사망의 경우에는 좀 다른데, 이 경우에는 유족의 뜻에 따라 남은 분량을 한번에 지급하거나, 지속적으로 지급하거나, 혹은 지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자식이 죽었는데 자식 이름으로 매달 꼬박꼬박 버섯이 오면 가족들 마음이 오죽 원통하겠습니까. 그것을 위한 조치입니다."
아무튼 버섯 배송이 시작되었고, 현역 병사 및 가족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국방부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애써 감사하다는 뜻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해 왔다.
버섯 군납을 서해식품에 밀어주고, 그로 인한 이익을 일부 장성들이 나눠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아예 무산되었으니 배가 아플 수밖에.
잡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왜 병사들만 버섯을 주는 거죠? 군대 안 간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는 건가요?
-이건 차별이에요, 차별! 프라임컴퍼니 라면은 앞으로 더러워서 안 사먹는다!
고객센터 게시판에 그런 글들이 도배되기도 했지만, 회사는 쿨하게 삭제 및 아이피 차단으로 넘어갔다.
그 정도가 크게 심한 경우에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등으로 경찰에 고발을 하기도 했다.
하수영이 군사훈련을 받았던 군부대의 양석현 소령이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사장님의 큰 결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병사들이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병사들은 자기 덕분에 가족들이 매끼 맛있는 버섯을 먹을 수 있게 돼서 너무 고마워합니다.
"아닙니다. 버섯 그거 키우는 원가는 얼마 하지도 않아요. 전 훈련 3주 받는 걸로 병역을 퉁쳤는데, 다른 병사들을 위해서 이 정도라도 해아 마음이 편하죠."
-병역법에 따라 정당히 필하신 건데요. 그렇게 부채의식을 가지실 것은 없습니다.
애초에 사촌 한 명 없는 천애고아이기 때문에 3주 군사훈련으로 가능했다.
만약 피부양자가 없고 조부, 혹은 삼촌친척이 있었더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양 소령님, 부대에서 괜히 저 때문에 난처해지신 것은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수영레스토랑 오너라는 거 말 안 했다고 불이익 받으셨을 거 같은데요."
합참의장이 처음 원한 것은 나진희가맹점주, 즉 양석현 소령의 와이프를 만나보는 것이었다. 수영레스토랑 가맹점 운영을 위한 조언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참의장은 하수영이 군사훈련을 마친 후에야 수영레스토랑 오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그 사실을 진작 말하지 않있다고, 양석현 소령에게 불쾌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계급 차이가 있는데, 내리 갈굼을 할 게 따로 있지, 4성장군이 소령한테 어떻게 매번 내리갈굼을 하겠습니까.
"인사상 불이익 받으시면 어떡합니까?"
-어차피 근무부대야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합참의장 마음대로 발령못 냅니다. 그런 인사 권한도 없고요. 다음 발령이나 진급 시에 의도적인 불이익이 주어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하 사장님 말씀대로 옷벗고 가맹점이나 자려야지요.
"언제든지 자리 만들어드릴 테니 마음 편안하게 군 생활 하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전화를 마친 하수영은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구의회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구의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가지는 집회이다 보니, 다른 두 보궐당선인들의 표정에는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하수영을 알아본 두 보궐당선인 구의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하수영 의원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이 우리 구의회들어오고 첫 집회죠?"
"네, 그래서인지 긴장됩니다. 아무 래도 처음이다 보니…… 아, 맞아요. 하수영 의원님, 구의회에 민원들어왔다고 했는데 들으셨어요?"
"민원이요?"
"네, 저번에 하수영 의원님이 구의회 사무직원들한테 크게 쏘셨잖아요. 그거로 민원 들어왔대요."
"아니, 그게 무슨 민원 들어올 거리나 되나요?"
"민원 대충 들어보니까 내가 낸 세금으로 무슨 직원들한테 값비싼 고급참치회를 사다먹이느냐, 뭐 그런 내용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