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73화
67장 밥 잘 사주는 부자 의원(1)
구의원들은 다들 충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수영이 젊은 재력가이자 최우석이 밀어주는 지인이라는 것은 사전에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첫날부터 그렇게 강렬한 주목을 받았던 것 아니었나.
하지만 구체적인 재산 내역까지는 알지 못했다.
신고한 재산 내역을 열람하지 않았으니까.
"부, 부동산만 1조 3,358억 원이라며?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는데? 회사 주식?"
박춘식 구의원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란 채 부르짖었다.
"네, 프라임컴퍼니 아시죠?"
"그게 뭔가?"
"황비버섯라면 만드는 회사요."
"아! 알지. 모를 수가 없지. 그 회회사 이름이 프라임컴퍼니였어? 근데 그 회사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우리 하수영 의원이 그 회사 실질적인 오너랍니다. 지분 85%를 갖고 있대요. 경영만 다른 사람이 하는 거죠."
"85%라고!"
"네, 그 회사 월 매출이 1.5조 원쯤 된답니다. 그런 회사의 지분 85%를 갖고 있죠."
"세상에나!"
"그리고 요즘 엘릭서드링크라고, 여배우 장효주 나와서 한창 광고하는 건강보조식품 있잖아요. 그거 만드는 회사 이름이 프라임웰빙이라고, 우리 하수영 의원이 또 70% 갖고 있더라고요."
여당 소속 구의원, 윤현수는 '우리 하수영'이라는 부분에 거듭 억양 강조를 넣었다.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아시죠? 그것도 하수영 의원이 직접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요식업이랍니다."
"청담에서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을 모르면 간첩이지! 그러고 보니 자기 이름을 따서 브랜드 명을 만든 거 아닌가?"
"그리고 프라임오일컴퍼니라고 국내에서 3위권 정유회사가 하나 있는데……."
"아니, 정유업까지 한다고? 근데 그건 겸직금지에 해당하는 거 아닌가?"
"지분만 갖고 있을 뿐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있는 거 같습니다."
국회의원이 정유계 관련 위원회를 맡게 된 사정이라면 모를까, 구의원이 경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분을 갖고 있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현재 법의 흐름이 기초의원에게는 느슨하게, 시의원급 이상은 엄격하게 변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현금 신고한 건 거의 없습니다. 3억도 안 되는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법인 명의로 전부 굴리는 거 같습니다."
하수영은 청담동 저택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자산을 법인 명의로 두었다. 그게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물론이고 현금성 자산까지 전부 법인 명의다.
심지어 실비아컴퍼니에서 지급받는 프리덤서비스 구독 수익도 프라임유통 법인 명의로 받는다.
부동산보다는 다른 사업체의 가치가 훨씬 크지만, 비상장법인이다 보니 정확한 가치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가격표에 액수를 적어 넣지 않은 상황이니, 이게 얼마짜리인지 누가 알 수 있겠나.
"근데 이 정도면 우리나라 10대 재벌 회장급 아닌가요?"
"……."
"그런 사람이 왜 구의원 같은 걸 합니까? 정치에 뜻이 있다면 국회로 가면 되지."
시의원은커녕 국회의원을 한다고 해도 거대 여당에서 읍소를 하며 모셔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구의원?
아무리 강남구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구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체급이 다르지 않은가?
누군가가 말했다.
"역시 최우석 부의장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인재가 맞는 듯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21세의 나이에 국회에 진출하면 재선이든 3선이든 얼마든지 하겠지만, 전국구 정치인으로 크기는 어렵습니다."
"아, 아주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기초부터 경험과 연륜을 쌓게 하려는 거군요."
그제야 구의원들은 납득했다.
충분히 납득이 가고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였다.
"로컬 정치인으로만 남을 거면 괜히 일찍부터 국회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국민들이 돈 많은 젊은 친구가 정치적 야망 때문에 나왔다고 반감을 품을 테니까요. 그래서야 나중에 대권 도전 같은 것은 꿈도 꾸기 어려워요."
"이제야 알겠어. 납득이 가."
"대충 20대는 구의회로 기초 경험을 다지고, 구청장 거쳐서 서울시장, 국회의원까지 두루두루 지낸 다음에 50대쯤 대권 도전한다 치면…… 휘유!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정계의 역사가 막 시작되는 과정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여당이고 야당이고, 당을 떠나서 구의원들은 그제야 하수영이 왜 하필 구의원 선거에 나왔는지 이해했다.
물론 진실은 그들이 이해한 것과는 안드로메다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만…….
***
"로컬이 최고야."
"알죠. 로컬이 최고입니다."
"절대 구의회를 벗어나려고 하지 말게. 시의회만 봐도 아주 그냥 벗겨 먹으려는 빈대들이 바글거려. 하의원 자네는 가진 게 많아서 더욱 그런 빈대들이 들러붙을 거란 말이지."
"정치를 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건 이제 지긋지긋해요."
"응? 자네가 언제 정치를 했었다고?"
"부의장님, 의회에서만 정치가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게임에서도 정치 질은 언제나 벌어지고 있는걸요. 팀플레이 게임 하다가 자기 실수한 거 감추려고 남 탓으로 돌리는 것도 한 두 번 본 게 아닙니다."
"하긴, 그렇지. 정치는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가 없지."
최우석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래도 구의회 구정 업무는 꼬박 꼬박 챙길 생각입니다. 제가 밥 벌어먹고 사는 동네 행정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죠."
"좋은 자세일세. 내가 정치를 시작한 것도 사실 그런 이유에서였지."
"더 좋은 청담동을 위해, 우리 같이 노력해 봐요. 부의장님."
"압구정동을 빼놓으면 거기 유권자들이 서운해할 테니, 외부에서는 발언에 유의하게 둘 다 우리한테는 소중한 지역구야."
"그럼요. 압구정 부동산에는 전혀 관심 없지만, 그래도 지역구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챙길 겁니다."
***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담에 살으리랏다.
-참치랑 라면 먹고 청담에 살으리 랏다.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소리에 강남구의회 사무국 직원들은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노래야?"
"누가 우리 고전 청산별곡 개사를 저따위로……."
"아! 하수영 의원님 오신다! 모두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이른 점심을 먹고 들어온 하수영은 노래를 가볍게 흥얼거리면서 의회사무국에 들어섰다.
"안녕들 하십니까. 초선 구의원 하수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서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초선 의원이지만 그래도 먼저 찾아와서 쾌활하게 인사하며 고개를 숙이니, 그들도 좋은 마음에서 기꺼이 맞아 숙인 것이다.
"곧 점심인데 다들 메뉴는 정하셨습니까?"
"근처 식당에서 먹으려고요."
하수영은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의회 직원들이라고 해봐야 평범한 월급쟁이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의 중심,당연히 직장 근처의 밥값도 살인적인 가격이다.
전국구 프랜차이즈 매장 같은 경우는 밥값이 통일돼 있겠지만, 매번 그런 것만 먹으면서 어찌 안 질릴 최우석 노인이 왜 의회 직원들에게 꾸준히 밥을 사주는지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제가 의회 출근 첫날인데 그래도 밥 한 번 사야 할 것 같아서요. 괜찮을까요?"
"사주신다면 저희가 감사히 먹겠습니다!"
홍보팀 직원이 벌떡 일어나서 씩씩하게 외쳤다.
하수영은 피식 웃으면서 스마트폰에 대고 지시했다.
"프리덤, 지금 바로 참치 목 딴 거 들고 오라고 해. 수영라면 오리지널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얼마 후, 의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산더미같은 참치회와 회덮밥, 초밥, 그리고, 수영라면을 맛볼 수 있었다.
"우와, 이거 중금속 무공해 참치 아니야?"
"맞을걸, 우리 하수영 의원님께서 수영참치 운영하시잖아. 거기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말씀하시는 거 내가 들었어."
어느새 하수영은 직원들 사이에서 이미 '우리 하수영 의원님'이 되어 있었다.
"밥 잘 사주시는 최우석 부의장님하고 친한 사이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통이 큰 분들끼리라 서로 무소속으로 같이 어울려 다니시는 거였어."
"우리 하수영 의원님이 오래오래 구의원으로 일하셨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먹는 이거, 돈 주고 사먹으려면 한 사람당 10, 20은 가볍게 넘어가겠죠?"
"그 정도는 될걸? 수영라면 오리지널이 한 그릇에 35,000원이니까. 심지어 지금 본점에서 출장 나왔잖아."
배달용 35,000원짜리 수영라면은 재료는 동일하지만 비조리 상태로 배달이 되고, 조리는 주문자가 직접 해야 한다.
따라서 같은 가격이지만 매장에서 사먹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
출근 첫날 의회 전 직원들을 상대로 화끈하게 쏜 덕분에, 하수영은 '밥 잘 사주는 부자 의원님2' 라는 별칭을 얻었다.
***
"우리 하 의원은 어디 갔길래 코빼기도 안 내비치는 건가? 사무실 도낏자루 썩는 소리 들릴 정도네."
"딴소리하지 말고 빨리 돌이나 둬.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에잉. 난 돌을 던지겠네. 못 해먹겠어."
하수영 구의원 사무실.
200평 남짓한 널찍한 사무실은 수십 명이 넘는 노인들이 상시로 머무르고 있었다. 가끔 노인들 숫자가 100여 명이 넘어갈 때도 있었다.
상주하는 보좌관들도 하수영의 의회 출근 첫날을 제외하고는 아직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주인 없는 사무실에는 노인 지지자들이 바글거리면서 간식거리를 축냈고, 최우석 부의장이 마치 자기 사무실이라도 되는 양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렇다고 보좌관들이 방치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단톡방과 프리덤을 통해 업무 지시가 내려왔고, 보고가 올라가면 즉각 피드백이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자주 보진 않지만 극히 효율적이고 열성적으로 의원 업무가 이뤄지고 있었기에, 보좌관들도 바쁘게 일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다들 여기계셨네요."
그때 마침내 하수영이 나타났고, 바둑을 두거나 신문을 읽거나 잡담을 하던 노인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아니, 우리 하수영 의원은 왜 이렇게 사무실 관리를 안 하시는 겐가?"
"얼굴을 자주 비치진 못하지만 항상 사무실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수석보좌관님한테 하루에도 여러 번씩 사무실 상황과 구정 업무 상황을 보고받고 체크하고 있고요. 그렇죠?"
"네? 아, 네. 의원님. 그렇습니다."
졸지에 수석보좌관이 된 최고 연장자 보좌관은 얼떨떨해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하수영 의원님 왔으니 이제 5면 바둑 둘 차례야. 내가 먼저 두겠어!"
"그런 게 어디 있나! 자네는 저번에 뒀으니 이번에는 차례를 양보해야지!"
"어허, 저번의 설욕을 먼저 변제해야 할 거 아닌가!"
"누가 사채 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꼭 변제니 뭐니 하는 용어 갖다 붙이는 거 좀 보소."
"아니, 김씨? 사채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엄연히 상호신용금고라고!"
"그거나 사채나 그게 그거지."
노인들끼리 투닥거렸지만 보좌관들은 이제 의연했다.
저런 꼴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었고, 또 진심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울려 노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수영이 태연히 중재했다.
"잠시만요. 지금 당선 축하한다고 꽃 들고 사무실 오신다는 손님이 있어서요. 그분 좀 대접하고 돌려보낸드린 다음에 바둑 두겠습니다. 어르신들, 괜찮으시죠?"
"당선 축하 손님? 그래, 일단 그게 중요하지."
또각 또각.
"아, 온 모양이네요."
열린 문을 통해 하이힐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한 여자가 자그마한 화분을 안고 들어섰고, 보좌관들은 물론이고 노인 지지자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국민 여배우, 장효주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수영 씨, 당선 축하드려요. 그런데 손님이 많으시네요? 자리도 없으니 전 화분만 놓고 다음에 다시……."
"이의 있소! 자리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노인 한 명이 버럭하며 이의를 제기했고, 다른 노인들은 후다닥 자리에서 물러나 벽 쪽으로 몰리며 입구쪽 8인 테이블 하나를 깨끗하게 비웠다.
하수영이 손으로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리가 생겼네요? 앉으세요, 효주씨."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자리에 앉은 장효주는 조그맣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지자분들이 뭔가 수영 씨하고 닮은 거 같아요."
※작가의 말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담에 살으리 랏다."
"참치랑 라면 먹고 청담에 살으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저 두 줄을 쓰기 위한 273화에 걸친 빌드업이 드디어 빛을 봐서 혼자 기뻐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