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72화
66장 보궐선거(3)
하수영은 청담동 나이 든 지역 유지들을 공략하는 위주로 선거 운동에 임했다.
"저 친구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원이 돼줄 걸세. 저 친구들 마음만 붙잡으면 선거는 이긴 거나 다름없어."
"다음 선거, 다다음 선거까지 묶어서요?"
"그렇지, 역시 우리 하 사장이 이해가 빨라."
구의원, 그것도 보궐선거.
동네 정치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표를 던지지 않는다.
"젊은 유권자들? 공략할 필요 없어. 어차피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가 찍으라고 하는 대로 찍는 친구들이야."
"보궐선거까지 나오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 같은데요. 나선거구에서 거주할 정도면 어쨌든 여유가 넘치는 젊은이들 아닙니까. 저 같으면 보궐선거가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갈거 같은데요."
"대신에 구의원 당선되면 저 노인 네들이 이것저것 좀 귀찮게 할 순있어."
"그래서 사무실을 좀 크게 잡았습니다."
"그건 아주 잘했네, 사무실을 놀이 터로 제공하면 자네가 딱히 신경 쓸건 없어. 주전부리만 안 떨어지게 넉넉하게 사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얼굴 비치면 될 거야."
"전 어르신만 믿겠습니다."
"걱정 말게. 자네 없는 동안에는 내가 자네 사무실에서 관리해 줄 테니까."
최우석 노인은 하수영과 같은 나선거구다.
기초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정치가를 선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즉, 지금 만나는 이들은 최우석의 오랜 지지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선거구가 같으니까 이런 좋은 점도 있구먼. 앞으로 자네 사무실은 내가 잘 쓰겠네. 아니, 이참에 내 사무실도 자네 사무실 옆으로 옮길까?"
"그러시죠. 근데 큰 사무실은 이제 없습니다."
"난 20평 정도면 충분해. 임대료는 제값으로 지불할 테니 그건 염려하지 말고, 방이나 하나 두시게."
"일단 공실 하나 빌려드릴 테니, 반년 정도 써보시고 그때 상황 봐서 임대계약을 하던가 하시죠."
"고맙네."
과연 최우석이 같은 건물에 자기 사무실을 이전하려고 할까?
하수영은 아닐 거라고 봤다.
'그냥 하는 김에 내 사무실을 같이 쓰면 서로가 편하겠지.'
어차피 같이 놀자고 구의원 하는 건데, 그 큰 사무실을 놔두고 굳이 작은 사무실을 따로 둔다고?
너무 비효율적이다.
'어르신이 내 사무실에 있어야 지역구 관리도 쉽고 말이야."
***
[안녕하십니까, 하수영입니다.
제가 이번에 강남구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지역구민들을 하늘과 같이 섬기는 마음으로…
……중략…….
주변에도 제 이름을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문자 돌리면 될까요?"
"음, 이거 어차피 지인들에게만 돌릴 거지?"
"네, 선거구에 사는 지인들에게만 돌리려구요. 그래 봐야 20명도 안됩니다."
"그럼 무난한 거 같아. 이대로 돌리세."
"알겠습니다. 프리덤, 이대로 문자 돌려라."
-네, 마스터.
그동안 하수영은 열심히 바둑도 두고, 골프도 치고 하면서 선거운동에 임했다.
골프는 자칫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기에 헬스장 스크린골프를 이용했다.
실제로는 골프채를 든 채 앉아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지만, 골프채를 한 열 번이나 휘둘렀나?
"내 지지자들이 주변에 이미 이야기 쫙 돌렸어. 이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일세.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제가 낙선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요.?"
"역시 젊은 패기. 우리 청담동에 어울리는 인재야."
최우석은 껄껄 웃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재산신고는 문제없이 했나?"
"네, 법 조항과 판례를 분석해서 전혀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했습니다."
"자네는 부동산 자산이 많아서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해. 등기상 가격과 실수로 다르게 입력하면 나중에 그거 때문에 문제 되는 경우가 있어."
"에이, 바보도 아니고 숫자를 왜 틀립니까. 문제없이 했으니 걱정 마세요."
"자네가 청담에 자산이 많으니까 우리 유권자들도 믿고 무한의 신뢰를 줄 걸세. 정말 오랜만에 동네가 원하는 지역정치인이 나왔다고. 나중에 시의원 출마해도 무난할 거."
"시의원까지는 안 갑니다. 거긴 겸직금지 제한이 너무 많잖아요."
"맞아. 나도 구의원 그 위는 권하지 않네. 권리보다는 의무가 더 크단 말이지."
구의원에 당선돼도 지금까지처럼 사업기반을 유지해도 된다.
하지만 시의원에 도전하려면 상당 부분을 내려놔야 한다.
사업체를 처분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경영은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
시의회는 시의원 업무 외 생계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
선거 당일까지 하수영은 방심하지 않고 지켜봤다.
그리고 보궐선거 개표가 종료된 후, 나선거구에 도전한 세 명 중에서 하수영은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
"축하하네. 85%라니, 이건 정말이지 몰표 수준이야."
휴민트타워 선거사무실에 모인 선거운동원들과 열성 지지자들은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하수영은 겸손의 자세로 유권자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앞으로 우리 지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당선된 것은 모두 주민 여러분의 뜻 덕분입니다."
"이제는 하 의원이라고 불러야겠구먼."
"근데 하 의원 사무실이 너무 좋은데. 여기 휴민트타워가 월세가 어마어마할 텐데, 부담이 되지는 않은가?"
"김씨. 이 친구 아직도 눈치 못 갔군그려. 여기 휴민트타워 주인이 바로 우리 하수영 의원이잖나."
다른 노인들이 가볍게 핀잔을 주자 김씨라 불린 이는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뭐? 휴민트타워가 우리 하 의원 빌딩이라고?"
"그래, 그걸 이제 알았나?"
"그, 그럼 우리 하수영 의원이 그 유명한 청담동 부동산 큰손이었단 말인가?"
"그렇지."
"세상에나."
김씨는 눈을 비비고, 저 멀리서 축하받기에 정신이 없는 하수영을 다시 보았다.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설마 그 친구였을 줄이야."
"우리 하 의원이야말로 청담에 뿌리를 내린 젊은 인재 중의 인재야.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쌀밥은 못 해줘도 다 된 밥에 재는 뿌리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그렇고말고."
"유씨 말로는 하수영후원회가 곧 출범한다고 하니까 자네도 거기에 이름 올리게, 돈은 됐고 발 벗고 뛰기라도 해야지. 우리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서 젊은 지역 정치인 한번 밀어주세나."
"그래야겠어."
그렇게 하수영은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무난하게 강남구의회에 입성했다.
[하수영 강남구의원 당선인.]
[직업 : 농업자, 부동산 임대업자, 요식업자,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가장 마지막 이력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보궐선거이다 보니 하수영은 당선이 확정되고 다음 날부터 바로 구의회에 출근을 해야 했다.
의회에 출근한 하수영은 보궐선거로 들어온 다른 두 명의 당선인을 만났다.
'38살, 41살이라고 그랬던가?'
"안녕하세요. 이번 보궐 당선으로 구의회 일원이 된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하수영이 먼저 쾌활하게 인사를 하자, 두 신임 구의원은 머뭇거리면서 미소로 인사를 받았다.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듣던 대로 정말 젊으신 분이네요."
"네, 이제 21살 됐습니다. 병역도 필했으니 구정 활동을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21살,
기초단체의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말이지 너무 젊은 나이다.
'아무리 피선거권 제한연령이 25세에서 20세로 낮춰졌다지만…….'
아마 국회의원, 시의원, 기초의원을 포함해서 가장 젊은 나이가 아닐까?
"오늘 임시회가 있나요?"
"아뇨, 오늘은 없고 3일 뒤에 임시회가 있습니다. 오늘은 보궐 당선자들하고 기존 의원님들하고 서로 인사하면서 면식을 다지자는 취지라고 들었어요."
강남구의회는 총 23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회의장에 들어서자 의장을 포함한 다른 의회 의원들이 모두 착석해 있는 상태였다.
두 초선 당선자는 모두의 이목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고 부담스러워 했다.
특히 선배 의원들의 시선은 하수영을 아예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21세의 가장 어린 구의원이니, 아무래도 주변의 관심이 남다를 것이다.
"오, 하수영 의원. 이리 와서 내 옆에 앉게."
"아, 거기가 제 자리인가요?"
"응, 우리 같은 무소속 의원들끼리 서로 뭉쳐야 하지 않겠나?"
유일한 무소속 의원이자 부의장인 최우석이 일어나 웃으면서 하수영을 잡아끌었다.
하수영이 전혀 어색함 없는 태도로 자연스럽게 착석하자 선배 의원들의 눈빛에 묘한 기색이 깃들었다.
의장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신임 당선인, 아니, 의원님들을 우리 모두 박수로 환영해 줍시다."
가벼운 박수가 울렸고, 하수영을 포함한 세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여기저기 인사했다.
"우리 강남구의회 구성원이 되신걸 환영하며, 앞으로 ……."
의장은 신임 당선자들을 위해서 한참 동안 길게 이것저것 설명했다.
하수영은 지루함을 느끼고 최우석에게 슬쩍 말했다.
"의회나 학교나 교장 선생님 훈시 지루한 건 다를 바가 없군요."
"알겠지만 우리 강남구의회는 여당이 11석, 제1야당이 7석, 제2야당이 3석, 그리고 무소속이 2석이야. 원래 무소속은 나 혼자였고 제1야당이 8석이었었는데, 이번에 의석 하나를 잃게 된 거지."
"1야당 입장에선 뼈아프겠네요. 제가 밉겠어요."
"자네가 밉기보단 어떻게든 자네를 끌어들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할 걸세. 자네는 재산도 많잖나."
"입당 제안으로 사람을 귀찮게 할까요?"
"대놓고는 못 하지만 절 때마다 한 마디씩 넌지시 던지겠지. 그건 여당도 마찬가지일 거고, 아, 제2야당이 가장 귀찮게 할지도 몰라."
말이 제2야당이지, 현재 한국의 정치는 거대 정당 2개의 대립 체제를 갖고 있다.
규모가 작고 가난한 제2야당 입장에서는 돈 많은 조선 구의원을 어떻게든 입당시키고 싶을 것이다.
"23석이니까 안건 가결시키려면, 12석이 필요한데 여당이 11석이고, 야당은 두 개 당을 합쳐서 10석이니…"
"우리 같이 힘없는 무소속 의원들이 큰소리치기에는 딱 좋은 구성이지. 안 그런가?"
옆에서 슬쩍 들은 여당 의원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힘없는 무소속 의원이라니. 아니, 대체 누가?
'부의장님, 진짜 너무 하신다.'
설명을 위장한 길고 긴 훈시를 마친 뒤, 의장은 삼일 뒤에 있을 임시회에 대한 안내사항을 다시 한번 당부했다.
다른 보궐당선자 두 명은 새내기 대학생처럼 눈을 반짝이며 의장의 설명을 귀담아들었다.
"하 사장, 아니, 하 의원. 우리도 식사하러 가세. 라면 한 그릇 어떤가?"
"좋죠.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최의원님."
"고맙네, 하 의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무소속 의원이 먼저 퇴장했고, 남은 의원들 사이의 분위기가 별안간 어수선해졌다.
"와, 진짜 젊네요."
"저 사람이 진짜 그 수영레스토랑 오너인가요?"
"맞습니다. 제가 직접 본점에서 봤어요. 처음에는 매니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이더라고요."
"거기 본점 빌딩 자체가 저 사람, 아니, 하 의원 거라던데."
4선 의원 한 명이(구의원만 4선이라니, 이런 고인물이 없다) 꼬장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니, 기초의원 한다는 사람치고 자기 지역구에 건물 몇 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들 왜 그렇게 난리들이랍니까?"
"저…… 박춘식 의원님. 혹시 하수영 의원 재산신고한 거 못 보셨나요?"
"뭐, 한 2, 3천억쯤 된답니까?"
박춘식 의원은 그게 뭐 대수냐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2천억만 되어도 엄청난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신고한 부동산만 1조 3,358억 원이던데요?"
"……뭐?"
순간 박춘식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지금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근데 부동산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재산명부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또, 뭐가 있는데?"
"주식이요. 비상장 회사 주식을 엄청나게 갖고 있는데, 그 추정가치가 정말이지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