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71화
66 장 보궐선거 (2)
구의원.
누군가에게 이런 기초단체의원은 언젠가 큰 정치판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밑 발판이지만, 반대로 꿀 빠는 명예직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돈과 여유는 많고 뭔가 폼 나는 직함을 갖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복잡한 일에 골머리 앓기는 싫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이것만큼 좋은 놀이 직함은 없다.
그리고 최우석이 바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최우석은 수십 년 넘게 강남구에서 기초단체의원으로 왕성히 활동해 왔다.
천억대 자산가로 수십 년 동안 구의회에 몸을 담아온 그를 모르는 지역정치인은 없었다.
무소속 출신으로 역대 부의장을 역임해 온 그는 의장은 물론이고 구청장도 그 앞에서 굽실거리는 중진 의원이었다.
그의 제안을 받아 지역 정치에 출사표를 던진 하수영도 당연히 이슈가 되었다.
"스물한 살? 만으로는 스물이네요? 너무 젊은 거 아닙니까?"
"최우석 부의장님 손자라도 되나? 아니면 지인 손자?"
"군대는 어쩌고 그 나이에 기초의원을…… 아, 군대는 면제인가 보네요."
강남구의회는 뉴페이스의 등장에 술렁이고 있었다.
이번에 강남구의회 보궐선거 자리는 총 3석이다.
공교롭게도 중앙정치 진출, 개인적사유 등 여러 이유에서 의석 3개가 동시에 나온 것이다.
"하수영, 이 친구도 최우석 부의장님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거 같던데요."
"나 선거구에 후보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네요."
여당 지역위원회는 고민에 빠졌다.
당 입장에서 기초의원 관리는 소홀히 여길 수 없다.
하지만 후보자를 내자니 최우석의 눈치가 보인다.
그는 무소속이지만 명실공히 청담동 지역 유지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의 입김을 무시하고 강남구에서 함부로 정치 못 한다.
당장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강남구지역구 국회의원 2석 정도는 쉽게 가져올 수 있으니.
"우리 당은 이번에 나 선거구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했답니다."
"최 부의장님 눈치가 아무래도 보이죠. 야당은 어떻게 한답니까?"
"야당은 2당 모두 일단 후보자를 낼 모양입니다."
여당은 공천을 포기했고, 제1야당과 제2야당은 각각 후보자를 내기로 했다.
***
"보궐선거에 나가신다고요?"
프라임컴퍼니 부사장 정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아뇨, 최우석 어르신이 자기랑 같이 놀자고 꼬셔서 할 수 없이 져주는 겁니다."
"그, 그래요?"
"의원사무실 차려놓고 동네 유지들하고 노닥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어차피 청담이 제 영업장 기반이잖아요. 기왕이면 청담동을 제가 관리하는 게 좋죠."
"어, 그런데 겸업 금지에 걸리지는 않나요?"
"기초의원은 널널해서 크게 상관없어요. 어디 상장기업 이사 같은 것만 안 하면 됩니다. 저번에 법이 또 바뀌어서 시의원 이상은 좀 엄격하고, 기초의원은 많이 풀어줬어요."
"청담동 빌딩 관리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시겠어요."
"네, 그러니까 부사장님 빌딩은 언제 파실 겁니까?"
"그거 팔면 저 부모님한테 혼나요. 혼수 지참금으로 증여해 주신 건데 팔면 안 되죠."
정서희는 청담동에 시가 500억이 넘어가는 빌딩을 한 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으려던 부친, JM식품 오너 정재민이 딸에게 부동산을 준 것이다.
하지만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던 친오빠 정서진은 해외로 유학을 떠났고, 지금은 정서희가 JM식품 다음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빌딩을 가지려면 그럼 부사장님하고 결혼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건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아무튼 그 빌딩은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부사장님 빌딩은 제가 특별히 프리미엄 30% 이상 더 얹어드릴 수 있는데……."
빌딩 매매 유혹은 오늘도 소득 없이 넘어갔다.
"그럼 선거 운동 같은 거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보궐선거라서 투표율도 어차피 낮아요. 최우석 어르신하고 같이 압구정동, 청담동 한 바퀴 순회하면 선거 운동 끝입니다."
"그렇게 간단한가요?"
"네, 유권자들이 어르신 얼굴만 보면 게임 끝이래요. 그분이 구의원 생활이 수십 년이시랍니다."
하수영의 직접적인 사업 기반은 농장, 임대업, 요식업이다.
프리덤 구독 수입은 지적재산권으로 인한 수입이라 공직자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선 여부보다는 지금 재산신고가 가장 골치 아픕니다."
"맞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지 않으신가요?"
"제 재산은 부동산 빼면 대부분 주식이라서요. 회삿돈이 제 돈은 아니잖습니까. 죄다 상장을 안 했다 보니 아무래도 가지 감정하기가 곤란하네요."
소유와 경영 분리의 원칙에 따라, 하수영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라도, 회사가 가진 돈은 하수영의 돈이 아니다.
"회사 지분 평가액 쓰는 게 가장 어렵네요."
"하 사장! 얼른 나오시게! 지금부터 선거구 한 바퀴 돌아야 한다고!"
오픈을 앞둔 수영레스토랑 본점에 들어선 최우석이 큰 목소리로 하수영을 재촉했다.
하수영은 손바닥을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네, 갑니다. 그럼 부사장님, 나중에 또 봅시다. 선거 격려 방문 감사했습니다."
"선거 운동 잘 치르시고 꼭 당선되시길 빌어요."
***
하수영과 최우석은 먼저 선거사무실을 방문했다.
하수영은 휴민트타워 1층에 선거사무실을 차렸다. 당선이 되면 구의원 사무실로 쓸 예정이었다.
정문 앞에 선 최우석은 뒷짐을 진 채 흐뭇한 표정으로 휴민트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이 빌딩이 8,000억이라고?"
"네, 비싸게 주고 샀죠. 시세는 5,000억 정도인데 매매 경쟁이 붙는 바람에 프리미엄 더 얹어줬습니다."
"뉴월드그룹도 노리고 있었다던데, 용케 샀구먼."
최우석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래, 의원사무실을 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여기에 실비아컴퍼니도 입주했다면서?"
"네, 본사는 판교에 있고 여기는 청담지사 수준입니다."
핵심 인력이 이곳에 있기에, 사실 상 실질적인 본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들어가시죠."
"그러세나."
의원사무실에 들어서자 미리 와 있던 선거운동원들이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그들은 최우석의 소개로 선거 운동에 참가한 운동원들이었다.
그들은 8,000억짜리 빌딩에 입주한 200평이 넘어가는 사무실의 규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구의원 사무실이 뭐 이래? 대선사무실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대체 후보자님이 뭐 하는 분이시지?'
'최우석 부의장님하고 친하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돈 많은 집 같긴 한데…….'
오늘 하수영을 처음 만난 선거운동원들은 긴장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후보자님."
"반갑습니다. 선거 운동 기간이 얼마 안 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꼭 당선돼서 웃는 얼굴로 회식하고 선거캠프 해산할 수 있도록 해봅시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공손하고 정중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선거운동원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어쩜, 젊은 분이 저렇게 싹싹한 거 좀 봐.'
'돈 많아 보이는데 사람 인성이 아주 올바르게 됐어. 아무리 생각해도 구의원에 머물 분 같지는 않은데?'
'역시 최우석 부의장님이 중앙 정치무대로 보내려고 정성을 다해서 육성하시는 게 틀림없어.'
"자, 그럼 출발합시다."
선거운동원들은 저마다 맡은 구역을 향해 흩어졌고, 하수영도 최우석과 함께 선거 차량에 올랐다.
"국회의원 선거도 아니고 구의원 선거인데, 차량 동원은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이렇게 한 번 얼굴 각인해 놓으면 두고두고 편해, 이다음부터는 선거유세 같은 거 안 해도 무조건 당선 될 거야."
그렇게 하수영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최우석과 함께 돌아다니며 얼굴을 알렸다.
"지역 주민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지, 번화가는 가봤자 소용없어. 타지역 젊은 친구들이 데이트하러 오는 곳인데 가봤자 헛걸음질만 하지."
"여기 거주하는 젊은 유권자들도 있지 않느냐고? 아무 소용없다네. 청담동에 월세 사는 젊은이들이 기초의원 보궐선거에 나올 거 같나?"
"나이 든 지역 주민들 위주로 공략해야 하네."
그렇게 하수영은 최우석과 함께 '고인물'만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넷스틱타워네요?"
"여기 주인장이 이거 말고도 청담동에만 건물이 세 채가 더 있는……."
"네, 압니다. 황달식 어르신 맞죠?"
"둘이 서로 알고 있었나?"
"청담동 소재 부동산의 모든 등기 부는 제가 꿰고 있습니다."
하수영은 프리덤을 시켜서 매일 저녁마다 온라인으로 부동산 등기부를 조회한다. 등기상 변동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달식이, 날세."
"아, 최 형, 어서 와, 옆에 있는 친구가 이번에 보궐 나간다는 친구인가?"
"그래. 앞으로 잘 좀 부탁함세."
"우리 구의원이 될 자격은 충분한가? 이 친구, 지금 어디에 살고 있어?"
"형진이 집에 살고 있네."
"아니, 그럼 형진이 죽고 그 집 샀다는 젊은 친구가 바로 이 친구였어?"
"그렇지. 비록 내 손주뻘이지만 배포가 아주 큰 친구야. 앞으로 우리 청담동을 위해 큰일을 할 걸세."
"내 팍팍 밀어주지."
"그리고 이 빌딩 나중에라도 팔 일생기면 여기 이 친구한테 말하게나. 아주 후한 조건으로 사줄 거야."
하수영은 두 손으로 공손히 선거용 명함을 내밀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르신,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하수영? 설마 이 친구가 요즘 청담을 주물럭거린다는 신흥 부동산재벌인가?"
"알고 있군."
"이거 참, 더욱 이 친구를 팍팍 밀어줘야 하겠는데."
"당선은 따논 당상이니까 여기 와서 앉으시게. 우리 하수영 후보자, 바둑은 둘 줄 아시는가?"
"5면 바둑 한 판 두실까요? 돌은 얼마든지 까셔도 좋습니다."
노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우리 5명을 상대로 한꺼번에 바둑을 두겠다고?"
"이 친구 패기 좀 보세나."
"큰일을 할 사람이면 저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분위기를 타다 보니 순식간에 바둑판 5개가 놓였고, 하수영은 5명의 노인과 함께 5대1 바둑을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탁.
"말도 안 돼! 난 돌을 던지겠어!"
"이럴 수가! 5단 프로기사한테도 이긴 적이 있던 내가, 어떻게 5면 바둑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아니, 하 사장! 자네는 적당히란 것도 모르나! 유권자들을 상대로 접대 바둑을 둘 생각을 해야지, 모조리 박살을 내버리면 어떡하나!선거운동을 이렇게 하는 친구가 어딨어!"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다른 지역도 돌아야 해서 속전속결로 끝냈습니다. 나중에 당선되면 의원사무실에 오시죠. 하루 종일이라도 바둑 둬드리겠습니다."
"진짜지? 약속한 거네!"
"다른 데 가지 말고 그냥 이 자리로 불러서 한꺼번에 유세하는 게 낫지 않겠나? 우리가 지금 바로 전화 돌리겠네."
돈 많고 시간 많고 할 일 없던 노인들은 곧바로 전화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돈 많고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찾아왔다.
허름한 옷을 입고 기사가 운전하는 수억짜리 차에서 내린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누구야? 우리 정식이 5면 바둑으로 박살 냈다는 친구가? 나도 한 판 두세!"
"이 친구야? 하수영? 가만, 혹시 수영레스토랑 주인장이라는 그 하수영인가?"
"오, 당선, 무조건 당선, 우리 하수영 후보자, 내가 요즘 들어 입맛이 없어 기력이 바닥을 쳤었는데 수영라면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네.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
"수영오세안 통참치 판매는 안 하시는가? 한 마리 사다가 가족끼리 집에서 먹으려고 하는데 통참치는 팔지 않는다고 해서 말이야."
***
그 시각 야당 후보자들은…….
"민의생당 오지선 후보입니다! 한 표 부탁드립니다! 우리 강남구를 위해서 열심히 뛰겠습니다!"
"한 표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번화가 길거리에서 열심히 인사하며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