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68화
65장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이 차원이나 저 차원이나(4)
'병특 31조에 의한 3주 훈련이라고?'
국방부로 서둘러 복귀한 임기태 과장은 일단 훈련 내역을 조회해 보았다.
하수영이란 이름을 검색하자 동명이인이 몇 명 주르륵 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전화번호로 검색을 하자 과연 일치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일단 이게 하수영 씨 같긴 한데.'
왜 훈련 이야기를 했는지, 그 의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중요한 군수 프로젝트니까 때를 가리지 말고 즉각즉각 보고하도록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전화 받을 테니까.'
직계상사인 전력관리자원실장의 당부가 생각났다.
임기태는 늦은 시간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저 임기태 과장입니다. 지금 추진 중인 황비버섯 군납건 말인데요……(중략)…… 네,그렇게 됐습니다. 네네."
-그러니까 농장주가 3주 군사훈련대상자라고?
"네, 그렇습니다. 심지어 나이도 이제 21세밖에 안 됐습니다."
-일단 나도 상부에 보고하지. 임과장도 추가 변동 사항이 있으면 즉각 알려주게.
"알겠습니다, 실장님."
이때만 해도 임기태 과장은 상상을 못 했다.
자신의 전화 한 통이, 전역까지 고민했었던 소령을 다시없을 충격과 공포의 순간으로 끌어들이게 될 줄은…
국방부 장관이 떴다!
느닷없는 상황에 연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특히 연대장 박동구 대령은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육군참모총장이 뜨는 바람에 연대는 물론이고 사단까지 거덜 날 뻔하다가 기사회생했는 데, 이번에는 국방부 장관이 행차할 줄이야.
'내 군생활에 왜 이렇게 마가 끼지?'
국방부 장관이 왜 방문했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면 최소한 3군 사령부 밑으로는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별만 떠도 숨이 막혀 죽으려고 하는 불쌍한 장병들은 대체 어떻게 하라고!
"대대장, 장관님이 우리 부대는 왜 방문하신 거지? 참모총장님처럼 불시점검, 뭐 그런 건가?"
"지금 장관님 엉덩이 무거운 분으로 소문나신 분입니다. 관록도 깊으시고요. 군단본부급 밑으로는 한 번도 방문하신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분이 대체 왜?"
혹시 양석현 소령이 합참본부를 다녀온 게 잘못됐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게 더 말이 안 된다.
그 일이 문제였으면 합참의장이 방문하지, 뭐 하러 장관이 이런 연대 급 부대까지 방문하겠는가.
아무튼 박동구 대령은 위병소까지 뛰어나가서 장관 수행단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옵니다! 옵니다!"
작전과장이 부르짖듯이 외쳤고, 연대장, 대대장 이하 장교들은 다시 한 번 매무새를 확인했다.
"연대장님! 군번줄, 군번줄!"
당번병이 오죽 급했으면 뒷말을 생략하고 외쳤다.
하지만 지금 말 짧은 걸 탓할 때가 아니었다. 바로 저 앞에 장관 수행단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내 군번줄 어디 갔어?"
"여기 있습니다!"
당번병이 잽싸게 내밀자 연대장은 안색이 환해져서 군번줄을 찼고, 대대장들도 허둥지둥했다.
"아차! 내 군번줄 어디 있지?"
"들어옵니다!"
"1대대장! 지금 군번줄 타령할 때가 아냐! 자세 갖춰!"
장관 차량이 마침내 위병소 코앞까지 진입했다.
"부대 차렷!"
제일 선두에 있는 장관 전용 관용 차가 위병소를 통과하는 순간, 연대장은 있는 힘껏 목청을 높였다.
"장관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장관은 그리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지 않았다.
전부 합쳐서 20명 정도.
하지만 수행 장성들이 달고 있는 별의 개수를 합치면 한 자릿수는 당연히 넘어간다.
"오, 양 소령. 다시 보니 반갑네."
장관 수행에 합류한 합참의장이 양석현 소령을 발견하고 조용히 반갑게 인사했다.
양석현 소령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긴장감을 억누른 채 조용히 대답했다.
"소령! 양석현. 감사합니다."
"긴장할 거 없어. 오늘은 나도 장관님 따라 온 거니까. 자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 맘 편히 가져."
"충성. 알겠습니다."
양석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합참본부를 다녀온 게 얼마 되지 않아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풍파와 무관한 모양이다.
국병호 장관은 연대장의 안내 하에 부대시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연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바짝 군기가 든 채 별을 대하는 일병의 태도와 마음으로 임했다.
장관이 사격장에 들어서자 사격장분위기가 살벌하게 날이 벼려졌다.
통제교관들은 혹시라도 훈련병들이 군기 빠진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진땀을 흘렸다.
뒷짐을 진 채 훈련병들이 한창 사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장관이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나?"
"네, 장관님. 그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합참의장이 씩씩하게 대답했고, 장관은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장교 한 명 불러서 조용히 데려오라고 하게."
장관은 육사 출신으로 4성 장군으로 예편하고 지금의 지위를 획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병사들의 마음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편이었다.
또한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파격을 감수하는 추진력을 발휘했다.
훈련병 하수영.
아니, 국내 유일의 황비버섯 농장주.
오늘 장관이 이 먼 부대까지 친히 행차한 이유였다.
연대 중앙회의실로 돌아온 장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수영을 만날 수 있었다.
"충성! 훈련병 하수영!"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먼저 쏘라고 했던가?
장관은 오늘 하수영의 마음을 제대로 쏘아서 떨어뜨릴 작정이었다.
"편히 앉으시게. 그렇게 너무 각 잡을 필요 없어."
장관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하자 병풍처럼 구석에 서 있던 연대장은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세상이 참 좁아. 우리 국방부에서 그렇게 만나기 힘든 농장주께서 아직 병역도 아직 필하지 못한 이런 젊은 청년일 줄 누가 알았겠나?"
하수영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제 전력자원관리실 직원분을 만났었는데, 혹시 그 일 때문에 오신 건가요?"
"맞네."
"장관씩이나 되시는 분이 저 훈련받는 부대까지 직접 오실 줄은 몰랐네요."
국병호 장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본인이 먼저 일부러 훈련 이야기를 흘린 거면서, 모른 척 발뺌하다니.'
왜 훈련 이야기를 흘렸겠는가?
일주일 넘게 훈련 받아보니 아마 죽을 맛이었겠지.
젊은 나이에 사업도 잘돼서 돈도 많을 텐데, 고된 훈련 받느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게, 아마 무척 손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보상심리를 어루만져주려고 장관은 긴급히 행차한 것이다.
3주 훈련이 다 끝난 뒤에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원칙적으로는 3주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장관 직권으로 남은 훈련 일정을 국방부 연수로 대체해 줄 수도 있네."
남은 시간을 아주 편하게 보낼 수 있다는 달콤한 당근을 먼저 제시했다.
"우리 직원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라네. 군 장병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는, 애국하는 길이야."
"제 조건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국회에서 납득하지 않을 거네. 사기업 납품가보다 군납가가 수십 배 비싸다? 군의 신뢰가 대추락을 할 일이야."
하수영은 잠자코 듣기만 했고, 장관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3주 훈련이 끝이 아니야. 아직 8년의 예비군 훈련이 남아 있어."
현재 한국군은 현역 자원의 감소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다시 늘리고 있는 추세였다.
기본적으로 예비군은 일 년에 4박 5일의 동원 훈련 2회, 5일이 향토훈련을 받는다. 당장 올해부터 반발을 무릅쓰고 시행된 일정이다.
"예비군 훈련도 전부 국방부 연수로 대체해 줄 수 있어."
그 말에 하수영은 솔깃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관은 속으로 흐뭇해했다.
그래, 3주 훈련은 어찌어찌 끝낸다 해도 내년부터 귀찮은 예비군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4박 5일 동안 부대에 합숙 훈련을 어찌 할 것이며, 중간중간 5일 동안 출퇴근 훈련은 또 어찌 받을 것인가?
"제가 동업자가 있어서 혼자 결정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 번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연대장."
"대령! 박! 동! 구!"
"내일부터 이 훈련병 장교 한 명 인솔해서 국방부로 오라고 하게."
장관 직권으로 남은 훈련 일정을 국방부 연수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아예 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 하자가 될 이유도 없었다.
"충성! 알겠습니다!"
"아, 장관님. 저는 기왕이면 양석현훈련과장님이 인솔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그분이 정말이지 참된 군인이 시더라고요."
"연대장. 들었는가?"
"충성! 알겠습니다!"
순간 합참의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무래도 아는 이름이 나온 것 때문이다.
"그럼 이만 일어나지."
국병호 장관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장관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 먼 거리를 손수 찾아와서 고된 훈련을 빼주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마음을 쏴서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사격이었겠지?
* * *
며칠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하수영은 지난 며칠간 용산의 국방부로 출퇴근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청담동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용산과, 경기도에 있는 훈련부대는 출퇴근 난이도 차이가 있다.
어느덧 1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3주 군사훈련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 이제 모레만 받으면 훈련은 끝인가?
"네, 그래요. 어우, 간만에 짬냄새맡았더니 전장 누비던 시절 트라우마 생각나서 죽을 뻔했습니다. 역시 군대는 안 가는 게 최고라니까요."
-누가 들으면 참전용사인 줄 알겠어. 그나저나 버섯 군납은 어떻게 하려고?
"그냥 입 씻을 건데요?"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전 애초에 확답을 준 적 없습니다. 동업자와 의논을 해보겠다고 했죠."
없는 동업자까지 지어내서 요리 조리 시간 끌면서 꿀 빨았구먼. 근데 나중에 장관이 보복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장관 임기가 겨우 2년인데 무슨 보복을 해요. 기껏해야 내년 예비군 훈련이나 좀 빡세게 하는 정도겠죠."
-하긴, 장관이라고 해봐야 자네 앞에서는 보름달 앞의 반딧불이지. 장관은 자네가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 줄 모르지?
"그냥 월급사장 써서 식품회사 경영하면서 버섯 키우는 농부로 알던데요."
-우리 하 사장이 청담동에 얼마만큼 비싼 빌딩들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굽실굽실할 텐데 말이야.
"뭐… 미끼 좀 던져주고 하면 나중에 재미난 꼴 보겠지만, 어떤 전개로 몰아갈지는 아직 생각 중이에요."
-미끼? 재미난 꼴?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 군납, 장관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 아닙니다."
-장관 지시로 추진된 군수 프로젝트라며?
"장관은 그냥 다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뿐이에요."
-소원? 누구 소원?
"뭐 군수품 장사로 차익 챙기려는 대기업들 짓이겠죠. 이 정도 사이즈면 아마 서해식품 정도 되겠네요."
전성렬은 황당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이게 대기업 짓이라고? 아니, 자네가 군납으로 버섯 납품하는 것과 대기업들이 뭔 상관…… 아!
"이해하셨군요."
하수영은 히죽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프라임컴퍼니 납품가로 버섯을 납품하면, 그 버섯이 과연 장병들 식사로만 들어갈까요? 적당히 덜어서 기업들이 해외에 내다 팔겠죠. 황비버섯은 어느 나라든 국물 요리에 많이 쓰이는 보편적인 인기 식재료니까요."
-역시 그놈의 군피아는…….
"예나 지금이나, 이 차원이나 저 차원이나, 군피아들 하는 짓은 다 똑같습니다."
-병사들 식단에는 절반 정도나 올라가면 다행이겠어.
"절반씩이나요? 전 10%도 안 올라갈 거라고 봅니다."
-근데 자네는 어떻게 알아차린 건가?
"하는 짓이 두루두루 수상하잖아요. 척 보면 알죠. 제가 이거랑 정확히 똑같은 꼴을 한 천 번은 넘게 봤습니다. 수법 참 안 변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