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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64화 (264/1,270)

프랜차이즈 갓 264화

64장 병영 체험은 가볍게(4)

"상병, 대답을 해야지?"

점잖은 말투의 질문이 사람의 정신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당번병은 처음 알았다.

육군참모총장은 왜 하필 나에게 말을 걸어서 이다지도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가.

차라리 전역 후 옆집 아저씨로 만나면 편안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왜 우리는 현역 육군 상병과 현역육군참모총장으로 연대본부에서 만나야만 했었나?

"후, 훈련병은 장교 면담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훈련과장이 사격훈련통제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터라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군."

당번병은 입안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럴듯한 변명이지만 과연 참모총장에게 먹힐까?

군 생활 끝판왕까지 올라간 참모총장이 과연 아무것도 모를까?

"훈련병."

"훈련병 하수영!"

"언제부터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지?"

하수영은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참모총장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훈련과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훈련에서 편의를 봐줬다는 것 정도는 바로 알아본 것이다.

'이 양반도 군 생활 한두 해 해본게 아니니까 못 알아채는 게 더 이상하지.'

아마 본인도 그런 식으로 지인들을 위해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해 봤을테니.

원래 도둑질도 해본 놈이 더 잘 아는 법 아닌가.

하수영은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고민했다.

대기 시간을 사실대로 말하면 훈련열외 편의를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참모총장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하극상, 항명이기도 하거니와, 나중에 사실이 발각되면 뒷감당이 안 된다.

'나야 괜찮지만…….'

3주만 훈련받고 훌쩍 떠날 자신은 상관없다.

하지만 자신의 편의를 봐주었던 소령은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연대는 물론이고 사단이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군단까지도 그 피해가 끼칠 수 있다.

아니, 육군 전체의 기강을 바로잡는다고 60만 육군이 고달픈 군 생활을 누리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제부터 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까무러칠 뻔했던 당번병의 표정에 한 줄기 화색이 돌아오는 게 엿보인다.

이제 입소 2일 차의 신병 이미지에 알맞으면서도 선은 넘지 않는 대답이다.

"3주 특별훈련 대상자면 뭔가 특기사항이 있을 텐데, 자네는 뭘 잘하나? 어떤 사유로 3주 훈련대상자가 된 건가?"

3주 훈련 특례는 보통 뛰어난 인재들이 군 생활로 시간과 경험을 잃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방위산업체 특채 등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젊은 인재들을 일반병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물론 현역 군 생활을 누릴 여건이 안 되는 이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지만, 대부분은 운동선수 등 젊은 나이에 무언가 큰 성과를 이룬 인재들이다.

"가족이 전혀 없는 고아입니다! 그래서 3주 병특 훈련대상자가 되었습니다!"

"……아, 그런가. 미안하군."

참모총장의 눈빛이 다소 변했다.

당번병의 안색도 밝아졌다.

천애 고아라는 사유로 3주 훈련대 상자가 되었다니.

장교 면담이라는 해명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이유 아닌가.

하수영이 굳이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 소령이 살길이 열린 셈이다.

그때였다.

"충! 성! 대령! 박! 동! 구!"

그때였다.

과장실에 들어선 연대장이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로 경례하며 관등성명을 댔다.

당번병은 연대장이 관등성명을 대는 걸 처음 봤다. 저렇게 목소리가 큰 줄도 몰랐다.

"연대장아, 편히 쉬어."

"충! 성!"

"여기 훈련과장이 누구지?"

양석현 소령은 번개처럼 앞으로 나서서 쩌렁쩌렁 크게 관등성명을 냈다.

"소령! 양! 석! 현! 제가 훈련과장입니다!"

"훈련병이 장교 면담 중이었다던데, 그 사유가 뭔가?"

점잖은 질문이지만, 연대장과 소령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연대장 역시 군 생활을 오래 해본 터라, 이유 없는 장교 면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양 소령 이놈 자식이!'

아마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훈련을 열외시켜준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에어컨 빵빵 나오는 훈련과장실에 대기해두었을 리가 없을 테니.

참모총장도 그걸 눈치채고 추궁하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망했네.'

하수영도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대답으로 잘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굳이 한 번 더 교차 확인을 하려고 들 줄이야.

부대 방문하자마자 한 건 걸렸으니, 그걸 가지고 제대로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게 틀림없다.

"체력적으로 훈련을 힘들어하고 잘적응을 하지 못해 불편한 게 없는지 면담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훈련병한테 들은 대답과는 다른데?"

'아니, 아저씨? 내가 고아라서 3주훈련받는다고 이야기했지 장교 면담사유를 언제 이야기했다고?'

"이상하군. 왜 내가 들은 사유가 서로 다를까? 이걸 어떻게 소명하겠나?"

훈련과장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연대장과 소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이 사람의 숨을 멎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하수영을 제외하고 다들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왜 대답을 못 하지?"

"자, 장교 면담 사유는……."

"그래, 왜 훈련병의 대답과 다른 건지 소명해보게."

'함정수사야! 양 소령님, 거기에 빠지면 안 돼요!'

하수영이 안타까워서 속으로 외쳤지만, 양석현 소령은 이미 정신이 육신을 탈주하기 직전이었다.

프리덤도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다.'

창조주인 하수영이 위험한 게 아니다. 그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입장이니.

바로 사용자인 양석 소령이 큰 위기에 처했다.

'참모총장도 프리덤 사용자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상황인식 기능을 차단해둔 상태다.'

이 자리에 모인 군인들 전부가 프리덤 사용자이지만, 프리덤은 당번병의 단말기를 통해서만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참모총장, 수행 장군, 연대장, 양석현 소령 등은 단말기의 상황 인식 기능을 끈 채였기 때문이다.

군부대 안이기 때문에 보안유지를 위해서 프리덤이 주변 상황을 알지 못하게 차단을 해두었다. 보통은 프라이버시를 감추고 싶어서 쓰는 기능이지만,

'창조주는 자기 때문에 사용자 양석현이 징계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프리덤은 이 상황을 부드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

자신이 보유한 하수영과 육군참모총장의 개인정보를 쉼 없이 비교하며, 둘 사이에 교차점이 있는지를 찾았다.

-동문 초중고교 해당 사항 없음.

-겹치는 인터넷 커뮤니티 없음.

-겹치는 동호회 모임 없음.

-겹치는 거주지 내역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참모총장과 겹치는 게 이렇게도 없을 줄이야.

'완벽하게 없다.'

프리덤은 모든 검색을 마치고, 더 이상 하수영과 참모총장의 접점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두 사람은 겹치는 게 전혀 없다.

'검색 범위를 참모총장의 주변인으로 확대한다.'

'수집한 개인정보를 알고리즘 내부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부에 제공하지 않으면 상관없다.'

프리덤은 검색 범위를 주변인까지 확대했다.

참모총장의 가족, 친척들까지 확대해서 하수영과의 접점을 찾았다.

'검색되지 않는다.'

'검색 범위를 더욱 확대한다.'

지금 이 순간, 실비아컴퍼니 데이터센터는 갑작스럽게 폭증하는 전력 사용량에 관리자들이 기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완벽한 접점까지는 아니지만, 접점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고동진.'

연결고리를 쥐고 있는 이의 이름이었다.

당연히 그도 프리덤 사용자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프리덤을 안쓰는 이를 찾아보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으니.

프리덤은 곧바로 계획을 실행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참모총장의 전화가 울렸다.

재밌다는 듯이 대답을 기다리던 참모총장은 발신인을 확인하고 동공이 살짝 커졌다.

"다들 조용히."

연대장 이하 인원들은 지옥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듯한 기분이었다. 잠깐이겠지만 그래도 일단 한숨 돌렸다.

"네, 충성. 전화 받았습니다."

「어쭈? 관등성명 안 대지? 총장 달았다고 이제 좀 빠져도 된다, 이거냐?」

"하하, 형님. 왜 그러십니까. 지금 경기도 부대 시찰 중입니다."

「또 블랙호크 타고 거기까지 날아갔냐? 기강 확립하는 것은 좋은데 좀 쉬엄쉬엄해라. 아, 근데 지금 거기 부대에 양석현 소령이라고 있냐?」

"양석현 소령 말씀하십니까?"

참모총장의 눈길이 양석현 소령을 향했고, 영문을 모르는 그는 안색이 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내가 그 친구한테 뭐 좀 물어볼게 있는데, 연락처를 알 수가 없네. 나도 오늘 처음 이름 알게 된 친구라서. 지금 바꿔줄 수 있나? 급한 거야.」

"알겠습니다."

참모총장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신음을 잠시 차단(내 목소리가 전화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게 하는 것)한 후, 양석현을 향해 물었다.

"이상하군. 둘이 아는 사이 같지도 않은데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건지…… 일단 받아보게."

"소령! 양! 석! 현!"

양석현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누구 전화이기에 참모총장을 통해서 자신을 찾는 거지?

통화 내용을 얼핏 보면 군인은 아닌 거 같고, 친하게 지내는 선배 같은데…

"예, 전화 받았습니다. 양석현입니다."

「그래, 네가 양석현이지?」

"……예, 맞습니다."

누군데 대뜸 반말이지?

아무리 참모총장의 친한 형님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자신과는 불면 식의 관계 아닌가.

「자네 와이프하고 자네하고 한번 만나고 싶은데, 시간 한 번 내줄 수 있나? 지금 와이프한테 물어봐 주면 더 좋고.]

"제 와이프요?"

「우리 딸이 자네 와이프를 만나보고 싶어 해서 말이야. 물어볼 게 있거든. 자네 와이프가 레스토랑인가 뭔가 한다면서?」

"네, 맞습니다."

「우리 딸도 그 레스토랑 하고 싶어 했는데 티오가 다 차는 바람에 아깝게 떨어졌어. 혹시 또 언제 가맹점 신청받는지 그런 정보도 공유받고 싶고, 가게 운영 노하우도 미리 습득하고 싶어서 그러네. 시간 좀 만들어줘.」

"무,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내 번호는 준형이가 알려 줄 거야.」

준형이는 또 누구, 하던 양석현은 참모총장의 왼쪽 가슴에 오준형이라고 쓰여 있는 명찰을 발견했다.

친근하게 대하는 걸 보니 정말 사적으로 친한 형, 동생 관계가 맞나보다.

양석현은 스마트폰을 참모총장에게 돌려주었다.

"뭐라고 하시던가?"

"따, 따님께서 제 와이프가 운영하는 가게에 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실 게 있으신가 봅니다. 시간 한 번 만들어달라고……."

"아, 수영레스토랑? 나도 알지. 재윤이가 저번에 그거 티오 다 차서 가맹점 탈락했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데. 양 소령 와이프가 가맹점주였어? 대단하네."

양석현을 대하는 참모총장의 눈빛과 목소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잘 좀 도와드려. 부탁한다."

참모총장은 밝게 웃으며 양석현의 팔꿈치를 정답게 툭툭 만져주기까지했다.

새카맣게 죽어 있던 연대장의 얼굴이 살아났다. 탈주했던 당번병의 의식도 다시 돌아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참모총장이 양석현을 정답게 대하고 있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이다.

"자네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만사를 내팽개치는 한이 있더라도 잘 도와드려야 하네. 알겠나?"

"소령! 양! 석! 현! 알겠습니다!"

"만약 잘못되면 나도 자네를 커버할 수 없어. 이 점은 분명히 명심해야 해. 알겠지?"

"예!"

"그럼 양 소령 자네는 지금 당장 용산으로 이동하게. 블랙호크 빌려 줄 테니 그거 타고 가. 한시도 지체할 순 없잖나."

양석현은 물론이고 연대장 이하 모두 어리둥절했다.

참모총장 수행원들도 다들 이해가 안 가서 당황한 눈치였다.

"응? 의장님이 자기 누구라고 말씀안 하시던가?"

"……."

"방금 통화한 분, 합참의장님이시네."

"……!"

"빨리 합참본부로 가보게. 설마 나중에 전화하랬다고 정말 나중에 전화하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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