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61화
64장 병영 체험은 가볍게(1)
수영레스토랑 본점.
한창 바쁜 주말 장사가 끝나고, 마감에 정신이 없을 때 한 여자가 조용히 가게를 찾았다.
바로 톱스타 여배우, 장효주였다.
"1,800만이에요."
"네? 뭐가요?"
"어제까지 누적 관객수요."
"아, 맞다. 저번에 개봉하셨었죠. 미안합니다. 명색이 투자자가 영화도 개봉했는데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아니에요. 가맹점들이 영업정지 당해서 여러모로 고생하셨잖아요. 그럴 수 있죠. 본업이 중요하신데."
장효주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개봉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1,800만이 넘었어요. 지금 영화계에서는 아주 난리예요, 난리. 역대 누적 관객수 1위 영화 타이틀을 우리가 쥐었다고요!"
"축하합니다."
"이대로면 진짜 수영 씨 말대로 2,000만은 확실히 넘을 거 같아요."
"앞으로 영화인들은 2,000만이라는 벽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겠군요."
"정태오 감독님은 지금 너무 기뻐서 난리도 아니세요. 잘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너무 잘될 줄은 몰랐다고, 수영 씨한테 절하면서 어부바라도 할 기세라니까요."
"중년 남자의 어부바는 사양합니다. 절까지만 받을게요."
레스토랑 직원들은 장효주가 나타났음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태연히 마감에 집중했다.
그녀가 하수영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건 직원들도 이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광고주와 CF모델, 임대인과 임차인, 영화투자자와 출연 배우의 관계라는 것은 전혀 몰랐다.
둘 다 청담동에 살고 있으니 어쩌다가 알게 된 사이겠거니 하는 것이다.
직원들 눈에는 하수영도 굉장한 부호였으니까.
"정태오 감독님은 벌써부터 다음 영화 제작에 수영 씨 투자받고 싶어하시던데. 저한테 말 좀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효주 씨가 출연하면 조금은 투자해 보겠습니다."
"어머, 그럼 제가 출연 안 하면 투자 안 하시는 거예요?"
"할 이유가 없죠. 전 영화 투자에는 별로 관심 없거든요."
"그렇게 갑자기 사람 설레게 하기 있기예요?"
"고작 이 정도로 설렐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맞아요. 아니에요. 근데 지금 순간 설?어요."
장효주가 배시시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고, 하수영도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연기력 좋으시네요. 저 순간 넘어갈 뻔했습니다."
"눈썰미 좋으시네요. 사실 다음 출연작 여주인공 아이덴티티가 짝사랑 이거든요."
"맞다, 드라마 찍는다고 하셨죠."
"네, 24부작으로 진행해요."
"근데 상속을 마다하고 농사지으러 시골 내려가는 재벌딸이 대체 누구를 짝사랑하는 겁니까?"
"음, 시골에서 크게 농사를 짓는 젊은 대농장인이에요. 저도 남주 캐릭터는 아직 잘 몰라요. 지금은 제 캐릭터 분석하기에 바빠서요."
"드라마도 대박 나시길 빕니다."
"말로만 그러지 마시고 투자 조금이라도 해주세요."
장효주급 되는 인물이 돈이 궁해서 투자를 해달라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녀는 출연자이지 투자제작과는 무관하다.
다만 영화의 대성공도 있겠다, 행운의 기를 받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그럼 제작사 관계자 한 번 가게에 데려오세요. 오늘처럼 가게 마감하고 나면요."
"네, 고마워요. 안 그래도 제작사대표님이 수영 씨 투자 한 번 받을 수 없나 고개 갸웃거리더라고요. 이번 영화 성공이 거기까지 소문났거든요."
사실 하수영은 많고 많은 투자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물론 개인 투자 30억은 엄청난 금액이지만, 그가 판에 끼기 전에도 이미 영화의 성공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하수영은 2,000만이 넘을 거라고 당연한 듯이 말했고, 실제로 그는 젊은 나이에 말도 안 되는 자수성가를 이루었으니.
미신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성지순례합니다.', '저도 기 좀 나눠 주세요'라는 문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24부작이면 대충 편당 15억 잡고, 총제작비가 360억 정도 들겠군요."
"그보다는 더 들 거예요. CG나 세트 같은 것 때문에 돈이 좀 더 들어갈 거 같거든요."
"상속 포기 재벌녀의 농촌로맨스에 무슨 CG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나요?"
"농촌 귀신같은 것도 나올 모양인가 봐요. 더 이상은 비밀이에요. 나중에 제작사 미팅 때 들으세요."
"그러죠."
장효주는 수영라면을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하수영도 라면 네 그릇을 자기 앞에 둔 채 식사하며 대화했다.
정작 그릇이 비워지는 속도는 하수영이 훨씬 빨랐다.
"혹시 이번 주 금요일에 뭐하세요?"
"제작사 미팅 그때 하시게요?"
"……그건 아니지만, 그렇게 할까요?"
"금요일은 제가 가게에 없을 겁니다. 어딜 좀 가야 해서요."
장효주의 눈빛이 아주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어딜 가시는데요? 누구 만나시나요?"
"아뇨, 군대 갑니다. 영장 나왔어요."
"……뭐라고요?"
장효주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순간 그녀는 하수영이 이제 21살이라는 사실에 퍼뜩 정신이 미쳤다.
'설마…….'
저도 모르게 안색이 하얘졌다.
맞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한다.
어째서 자신은 그가 군대와 무관하다고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병무청의 관심을 한창 듬뿍 받을 21세인데.
"그, 그럼 이제 한동안 못 보는 건가요?"
"한동안? 뭐, 일단은 그렇죠.저도 이것저것 바쁠 테니까요."
"……요즘 그래도 군대 복무 기간 많이 줄었죠? 2년도 훨씬 안 된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근데 왜 그렇게 반응이 아무렇지 않아요? 1년 넘게 세상을 벗어나 있어야 하는데 걱정되지도 않으세요? 사업체는 어떡하고, 저 이번에 찍는 드라마는 또 어떡해요?"
장효주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군대 피하거나 미룰 방법 없어요?
부양가족 몇 명 이상이면 면제도 되고 그런다면서요? 지금 수영 씨한테 생계가 매달려 있는 사람이 몇 명인데, 이렇게 나 몰라라 하고 군대로 가시면 안 되죠."
"나라가 부르니 어쩔 수 없잖아요."
"……금요일에 입소하면 그럼 100일 뒤에나 볼 수 있겠네요. 휴가 나오시면 연락 주세요."
"휴가 같은 거 없는데요."
"아니, 무슨 군대가 휴가가 없어요?"
"3주 군사훈련만 받는 거니까요."
"……네?"
"심지어 출퇴근인데."
"……뭐라고요?"
장효주는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3주 훈련만 받는 데다가 심지어 출퇴근이라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 현역도 공익도 아닙니다. 작년에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서 출퇴근으로 3주 군사훈련만 받으면 돼요."
"……혹시 어디 건강이 안 좋으신건 아니죠?"
장효주는 정말 조심스럽게 질문했고, 하수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아라서 그렇습니다."
* * *
-널 처음 거두었을 때, 그때부터 이 날을 생각했다.
처음 입영 영장이 나온 날, 은하신목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비장했었다.
-입시보다 중요한 입신시험 준비에 바쁜 우리 아들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절 서류상 고아로 유지하셨군요."
-어떠냐, 고맙지?
"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또 군대를 가야 하나, 하는 마음에 나름 품고 있던 근심은 그렇게 깨끗이 사라졌다.
고대 주신인 양부는 하수영을 정식으로 입양하지 않았다.
하수영은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부모를 알 수 없는 고아로 존재하고 있었고, 덕분에 병역법상 고아특례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작년에 여당 발의로 개정된 병역법 혜택을 받아, 3주 출퇴근 군사훈련만 받으면 곧바로 민방위로 편입된다.
하수영은 굳이 지인들에게 입영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3주 군사훈련, 그것도 출퇴근하다가 끝나는 건데 뭐하러.
다만 자신이 직접 챙기고 있는 본 점 직원들에게는 3주간 주간 출근이 불가능함을 밝혔다.
"이번 생 군생활은 그래도 3주로 끝나는구나. 50년이 아닌 게 어디야."
심지어 마물이나 드래곤, 신족과 목숨 걸고 싸울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 * *
하수영은 캠핑카를 끌고 경기도에 있는 훈련소로 향했다.
청담동 저택에서 30분이면 도착하는 위치였다.
본래 향토사단인 부대 연병장에는 군사훈련을 받으러 온 사람들과 차량으로 가득했다.
하수영의 캠핑카는 그들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았다.
"저거 캠핑카 아니야?"
"와, 저런 걸 타고 훈련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네."
"우와, 저거 독일제 '퍼포먼스' 캠핑카잖아? 저거 웬만한 벤틀리 뺨치게 비싼 건데."
하수영도 접수를 하고, 줄을 서서 군복 등 훈련에 필요한 물품을 받았다.
"출퇴근 훈련 대상자분들은 저녁에 퇴소하실 때 군복을 제외한 나머지 물품만 반납하시면 됩니다. 군복은 마지막 날 퇴소하실 때 반납하시면 됩니다."
"야, 조교야. 이거 군복 헌 거 아니야? 왜 새삥 안 줘?"
"3주만 사용하실 거라서 CS복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훈련 인원.
물론 모두가 하수영처럼 고아 특례대상은 아니었다.
산업특례, 스포츠특례, 국적부활특례 등 다양한 이유에서 3주 군사훈련만 받는 이들이었다.
"대대장님 훈시 있겠습니다."
"입소를 환영합니다, 훈련병 여러분. 비록 여러분들은 3주 군사훈련으로 병역 임무가 끝나지만, 앞으로 3주 동안은 현역병이나 마찬가지 신분으로 살게 되므로……."
졸음을 유도하는 길고 긴 훈시가 끝나고, 본격적인 훈련 일정이 시작되었다.
"안전을 위해 사격장에서는 구타가 허용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조교의 통제에 철저히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훈련 첫날부터 사격이라니. 이게 말이 돼?"
"양해해 주십쇼. 3주 안에 모든 걸 마쳐야 하기 때문에 필수적인 장비사용법 위주로 훈련 일정이 짜여 있습니다."
하수영도 훈련병 사이에서 투덜거렸다.
"첫날부터 사격이라니, 엄청 빡세게 하려나 보네. 남은 3주 고생길이 훤하다, 훤해."
옆에 있던 훈련병이 물었다.
"어떻게 3주 병특으로 빠지신 거예요? 전 산업특례로 빠진 건데. 훈련끝나고 3년 동안 방산업체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합니다. 끔찍하네요."
"천애고아입니다. 일가친척 한 명도 없어요."
"……저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1년 8개월 현역생활할 거 3주 훈련으로 퉁치니까 좋죠."
사격 전 총기 구조, 분해결합법, 자세훈련, 주의사항 등을 교습받는 데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간이사격장으로 향했다.
"사격장에서는 철저히 교관의 통제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게 사격을 실시했고, 하수영은 훈련병 중에서 으뜸가는 성적을 거두었다.
소령계급의 훈련통제교관은 하수영의 표적지를 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초보자가 10발 모두 이렇게 한 점에 뭉쳐 있다니. 완전 스나이퍼감이야. 자네, 혹시 장교로 들어올 생각 없는가?"
탄착군은 모두 단추만 한 크기 안에 형성돼 있었다.
장교 입장에서는 놀라는 게 당연했다.
태어나서 사격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테니까.
"제가 사격이 취미라서요. 올림픽에도 나가려고 준비했었습니다. 초심자 아닙니다."
"으음, 숙련자라 해도 이 정도 실력이면 정말 대단…… 잠깐, 근데 어디서 본 얼굴인데?"
"그래요? 저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어디서 봤더라…… 아, 퍼포먼스!"
미간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하던 소령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왼쪽 가슴 명찰을 향했고, 하수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확 변했다.
"하수영? 혹시 수영레스토랑 하수영 대표님 아니세요?"
"어, 맞는데요. 절 어떻게 아세요?"
"이야! 역시! 아까 연병장에서 퍼포먼스 봐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우리 부대에 입소하셨군요!"
3주 훈련병이지만 엄연한 부하 장병이다.
하지만 소령 장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투까지 바뀌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희 집사람이 수영레스토랑 이수역점 점주입니다! 오다가다 사장님 얼굴 본 적이 있습니다!"
*본 챕터에 나오는 3주 특별군사훈련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제도입니다.